[스크랩] 오래 된 계모임과 오래 된 계약서
난정서를 공부하다가 유독 계<契>자에 관심이 머물렀습니다.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가 계모임이었다고 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서 발 담그고 술 마시는 것이 최상의 낙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고,
이 모임으로 인하여 천하제일의 명필이 탄생하였으니 난정서는 말하자면 이 계모임에서 계약서 택이었고, 계모임 치고는 참으로 가치 있는 모임을 가졌다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그러자 계약서라는 생각이 비화하여 재미있는 매매계약서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고 팔았으니 틀림없이 계약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원본은 없고 사본이 있어 소개합니다.
김선달이 대동강 가 나룻터에서 평양의 사대부 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는데 그 때 언뜻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 올랐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술을 한 잔 사면서 동전 몇 닢을 꺼내 놓고는 <내일부터는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이 동전을 한 닢씩 던져 주고 가시게나.>하면서 물장수에 동전을 모두 주었다.
그리고는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 의연히 앉아서 물장수가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받고 있었다.
이 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호되게 야단을 맏고 있었는데, 이를 본 약삭 빠른 한양 상인들이 대동강 물이 주인이 저 어수룩한 시골 노인네 김선달인줄 착각하고는 저 노인네만 구워 삶으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김선달을 주막으로 모시고 가서 술을 대접하였다.
술이 몇 순배 얼큰해지자 상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김선달을 꼬득이며 대동강 물을 자기들에게 팔아라고 흥정을 시작했다.
김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터이라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이를 물려 줄 자식이 없음을 한스러워 하고 있다고 장탄식을 했다.
한양상인들은 안달이 나서 천냥으로 시작했던 흥정을 자꾸만 올려, 이천 냥, 삼천냥, 삼천 오백 냥,.......
드디어는 오천냥에 낙찰이 되었다.
이 돈은 당시 황소 일백마리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한양상인들 김선달이 마음이 변할까 봐서 서둘러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 계약서는 다음과 같았다.
계약서
매매 물건 ; 대동강 물
매매 대금 ; 일금 오천냥
갑 ; 봉이 김선달
을 ; 한양상인들
갑과 을 간에 상기 물건을 매매함에 있어 본 계약을 체결하고, 매매 대금은 일시불로 하며, 권리행사는 금일 동짓날 부터 물건을 이의 없이 양도양수하기로 한다.
조선 인종 윤동지일
서명 날인 ; 갑 봉이 김선달
을 한양상인들
김선달은 도장찍기가 못내 서운한 듯 머뭇거리자 상인들이 먼저 서명날인하여 김선달에게 내밀고 돈뭉치를 내 놓고는 날인을 재촉했고, 선달은 마지 못해 도장을 눌러주고는 돈뭉치를 들고 나와 처음의 물장수를 불러 이 돈을 함께 나누어 써라고 건내 주고는 얼마간의 노자를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