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까지 전서를 제대로 쓰고 나면 자기가 쓰고 싶은 어떤 서체를 쓰더라도 가능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전서에서 배운 방필법 만으로도 웬만큼은 글씨의 형상은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능숙하지 못하거나 좀더 다양한 운필을 알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려면 행서나 초서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예서나 해서로 가서 방필법이라는 또 다른 운필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전서에서 주로 쓰는 원필법이 아닌 방필법에 대해서 말하고 예서와 해서에 대해서 차례로 말하고자 한다.
방필법에 의해 쓰여지는 서체는 대표적으로 예서와 해서라 할 수 있지만 예서와 해서라 해서 온전히 방필법만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원필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은 이미 등석여 전서를 설명하면서 전서에서 방필이 응용되고 있는 것으로 설명했었다. 하지만 예서와 해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방필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므로 예서나 해서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방필법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예서와 해서에서는 어떤 글씨가 좋은 글씨인지도 알 수 있고, 같은 예서에서도 어떤 서체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파악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운필법에서 방필법이라면 원필법의 반대되는 필법이고 원필법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필법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서예 이론 책을 보더라도 서로의 관련성에 대하여 설명 해 놓은 것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작가들도 그렇게 알고있다. 하지만 나는 방필법은 원필법의 근거에서 탄생된 필법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반대되는 필법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표현되는 외형으로만 보면 반대적 개념의 필법이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원필과 원필이 합쳐지며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필과 원필이 결합하여 방필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둥근 붓이 면으로 작용하며 방필로 쓰여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천원지방의 동양사상의 근본 원리가 붓과 서예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서예가 우주 원리를 조화한 예술임을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해서나 예서에서의 운필을 힘차고 웅장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 되기도 하고 실제 표현에 있어서도 힘차고 웅장하면서 부드럽고 편안한 좋은 글씨가 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것을 이해해야 해서나 예서에서의 좋은 글씨가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방필법의 근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글씨가 어떤 것인지 10년이 넘게 공부해도 알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원리를 모르고 쓰면 획의 질에 대한 느낌을 알 수도 없고 결구와 장법의 자연스러움이나 우주조화의 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특별한 재주가 있어 획의 바람직한 느낌을 조금 느낀다 해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일 수 없으며 완전한 느낌의 1/10을 넘기 어렵다. 물론 아주 특별한 경우에 이런 과정이나 근본을 몰라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는 탁월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원필법에서 방필법이 탄생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는 운필의 원리를 풀어가지 못하고 억지로 모양새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멋과 맛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창작의 원리는 더더욱 짐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제대로 공부하면 최소 10년을 앞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운필법은 쓰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말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잘 전달된다. 이것을 지면에서 글로 보여준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설명도 어렵지만 변화의 단계별로 보여 주며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방필법의 운필 원리는 원필법과 달리 원필법과 원필법이 결합해서 이루어지는 비교적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까닭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먼저 예서의 획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본다.
예서에 있어서 가장 특징이 두드러진 가로획을 먼저 백묘 실선으로 따놓고 살펴보자. <그림 1>에서 처음 기필 부분을 보면 <1*> 이와 같은 과정이나 <2*>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붓이 움직일 때 먼저 세로로 내려와서 접어 오른쪽으로 진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세로로 내리는 짧은 획이나 접으며 가로로 나아가는 긴 획 모두가 편봉이나 측필로 쓸고 내려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편봉이나 측봉으로 내려온다고 글씨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봉으로 내려왔을 때보다 훨씬 가볍고 모나 보이며 또한 얇고 가볍게 보인다<그림 2>. 하지만 우선 모양새 잡기는 편봉이나 측봉으로 시작하여 쓰는 것이 초보자에게는 훨씬 쉽다. 때문에 대부분 초보자들이나 선생 없이 혼자 쓰는 사람이면 이렇게 쓰게 되고 선생이 있어도 자칫 잘못 배우면 그렇게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 서예를 시작하면서 예서나 해서로 시작하는 사람은 특히 이점에 주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서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공부한 사람도 예서나 해서에서 방필법을 공부하면서 전서에서 배운 원필법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모양을 그리며 뭔가를 자꾸 더 배우려는 욕심을 가지고 특별한 새로운 법을 가르쳐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손해다. 한번 원리를 풀어 가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영원히 잘못 갈 수도 있고 서체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워야만 알 수 있는 답답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서에서 배운 기본 운필 원리를 예서 획을 내는데 응용해 보는 노력을 선생의 도움을 받아 끝없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서에서 세로획이나 사선으로 내려오는 획과 가로획이 만나는 원리를 예서나 해서의 기필 원리로 보자는 것이다. 전서의 기본 운필법을 연습할 때 그린 삼각형이나 별을 그릴 때 그리는 선 질로 <3*> 부분을 그리던 것을 생각하며 가로 긋기를 연습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다만 기필에서는 운필의 길이가 매우 짧기 때문에 그것이 결코 쉽게 되지는 않는다. 자꾸 연습하여 숙달시켜야 한다. 이것이 숙달되면 획에 무게감이 생기며 튼튼함과 예리함을 다 갖출 수 있다. 다만 이 원리를 적용하려고만 해도 글씨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록 서툰 글씨지만 늘 품이 완연히 보이게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초보나 전서를 어느 정도 쓰고 올라온 분에게도 이 원리를 설명하고 그렇게 쓰도록 하면 대부분은 전서를 쓰며 연습할 때처럼 붓을 접어가지 못하고 붓끝을 들었다가 다시 붓을 놓는 경우가 많다. 분명 원필법을 배울 때 삼각형이나 별을 하면서 붓을 들지 말고 꺾어야 된다는 것을 설명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숙달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어도 예서나 해서에서는 또 다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원리의 적용이 능숙하지 못하면 모양이 눈으로 보이는 비첩의 모양과 같이 예리하게 꺾어지지 않고 두루뭉술해지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에 속는다. 나중에는 다 되니 외형에 연연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우선 외형을 따라가는 것이 잘 써 보이기 때문에 외형을 따라 가게 된다. 법첩을 교본으로 삼고 있는 이상 여기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선생의 역할이란 이런 법첩의 맹점 등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서예계는 오직 체본 해주는 것을 선생의 할 일로 아는 경우가 더 많다. 원리를 터득하여 숙달하면 나중에는 예리하게 법첩처럼 쓸 수도 있고 글씨의 격이 살아나는 것을 시청각 자료로 이용하여 비교하며 보여주는 방법이 차라리 체본보다 훨씬 낳을 것이다.
붓을 들지 않고 꺾어 들어가면서도 모양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려면 붓의 면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한다. 면을 나누어 사용하는 법은 이미 전서를 설명할 때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더 할 필요가 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예서의 가로획을 예로 들며 설명해 보기로 한다.
예서의 가로획을 쓰려고 붓을 처음 종이에 대면 둥글면서 뾰족했던 붓은 좌우로 넓어지며(펴지며) 지면에 닿게 된다. 이때 지면에 닿은 부분을 아래라 하고 그 반대를 위라 하며 넓어진 양쪽 모서리를 좌우라 이름하여 설명하면 좀더 쉽게 설명 할 수 있다. 예서 가로획, 기필 부분에서 처음 장봉하여 아래로 그을 때는 전서에서 배운 과봉으로 내렸다가 우측으로 꺾으며 획을 만들어 갈 때는 지면에 닿았던 밑면이 위로 올라와 윗면이 되고 윗면이 아래로 내려가며 밑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지 않고 퍼져 내려와서 왼쪽 면이 위가 되고 우측면이 아래가 되게 꺾어 나갔다면 짧게 내려오는 기필 부분에서 과봉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평포로 내려 왔다는 말이다. 이 경우는 기필은 비록 잘못 했으나 진행은 힘차게 된 경우다. 그리고 만약 붓을 오른쪽으로 진행하는데 붓의 면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것은 붓을 꺾지 않고 밑에서 붓이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운필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경우로 붓을 꺾지 못하고 돌아가서 면이 바뀌지 못하고 상하가 그대로 방향을 전환하여 쓰여진 최악의 운필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서예 작품은 이렇게 쓰여지고 있으며 그렇게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알고 보면 무척 한심한 일이다.
그 다음 좋지 않은 것은 좌우가 상하로 바뀐 것이다. 좌우가 상하로 바뀌는 경우는 나중 반이 이루어 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붓에 힘도 생기고 획도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결코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창작의 경우 이런 식의 운필을 적절히 이용하면 멋진 획을 얻을 수도 있지만 초보들이 이 방법에 맛들이면 제대로 된 운필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이것을 처음에는 많이 경계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처음 기필 때 장봉하며 과봉으로 내려와 꺾어서 우측으로 진행할 때 과봉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제대로 운필을 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전서에서 말한 붓에 날이 선 것을 예서나 해서에 응용한 것이며 예서나 해서에서도 이렇게 날이 서야 글씨가 확연히 살아나게 된다.
그러니 초보 때는 이런 것들이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 해주는 선생님을 찾아서 부지런히 연습하며 이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은 획이나 점 하나라도 날을 세워 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져야 나중에 자유자재가 될 수 있다.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면 그때는 날이 서고 안 서고 상하좌우 면이 나뉘고 나뉘지 않고가 의미 없이 조화를 부릴 수 있으니 만법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과정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니 아무쪼록 날이 서서 움직이며 면이 바뀌는 것을 잘 연구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