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丁 2013. 8. 19. 22:37

고려 승려 탄연(坦然)

 

탄연(坦然, 1070~1159)은 안적사(安寂寺)에서 출가하여 고려 예종 1년(1106년) 때에 대사가 되고 인종 24년(1146년)에 왕사(王師)가 된다. 그는 신품사현(神品四賢)의 한 사람으로, 한국의 선문을 중흥시켰고 필법이 가장 정묘하여 홍관(洪灌)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서거정(徐居正)은 “동국의 필법에 김생이 제일이요, 탄연이 다음 간다.”라고 평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를 본받았으며 詩에도 조예가 깊었다. 춘천의 문주원비(文株院碑), 예천의 북룡사비(北龍寺碑), 삼각산 승가굴중수비(僧伽窟重修碑) 등을 썼다. 이번 전시회에는 문주원비(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 탁본 글씨가 전시되었다.

 

                           진락공중수청평산문주원기<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 1130년, 개인소장

 


안평대군(安平大君)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 1453)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종의 셋째 아들로, 형 수양대군(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란에 황보인 김종서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그의 글씨는 매우 뛰어나 우리나라 4대 명필에 들며 그의 송설체는 훈민정음 등 당시의 서체를 주도하던 글씨체이다. 그의 몽유도원도 발문은 특히 유명하다. 이번에는  안평대군의 7언시가 전시되었다.

 

 

                                                     안평대군 7언시 (27X28cm) 개인소장

 

한석봉(韓石峰)

 

초등학교 책에서 익히 알고 있는 석봉 한호(韓濩, 1543-1605)는 고졸하고 무게있는 글씨가 특징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도산서원 현판과 검명(劒銘)이 전시되었다.

 

                   한호(1543-1605), <도산서원> , 1572년, 도산서원운영위원회 기탁/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한호(1543-1605), <검명劒銘> , 1604년, 『한경홍진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선조, 영조, 정조

 

나라를 잘 다스리지도 못했고 임진왜란 등에서 처신도 보잘것 없었던 선조는 조선의 왕들 중 글씨는 잘쓰기로는 정평이 나 있다. 조선왕조 최장의 재임기간을 자랑하는 영조의 어필도 다수 보였으나 아직 내공이 모자란 필자의 눈에도 글씨는 별로인 듯하였다. 반면 조선의 왕들 중 명석한 머리와 지혜를 지녔다던 두분 중의 한분인 정조의 글씨는 예술적인 것은 몰라도 참 단아하고 잘 쓴 글씨임에 틀림없다.

 

퇴계, 다산, 그리고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의 글씨는 생각하던대로 그들의 인품이 묻어나는 글씨체였다. 명필들 처럼 큰 글씨가 전시되지 않고 세필의 서간체가 대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서산대사의 글씨 그리고 학자이며 정치가로 그림에도 능했던 강세황의 글씨도 볼 수 있었다.

 

 

                  강세황 글씨-표암유체

 

추사 김정희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필자도 여러번 올린 바 있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글씨 사진으로 가름한다.

 

 

 

  김정희 8폭 병풍 글씨(현장에서 직접 촬영)

 

 

그외 전시회에서 직접찍은 사진들

 

  김생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