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한국의 예서
◈ 주자가례: (주자가 儒家의 禮法儀章에 관하여 상술한 책)
문공가례(文公家禮)라고도 한다. 5권. 부록 1권. 그러나 이것은 후인(後人)의 의탁(依托)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에 전해진 것은 고려 말 주자학과 함께 전래되었다. 그 뒤 명(明)나라 성화(成化)연간에 구준(丘濬)이 위의 주자가례를 기초로 하여 여기에 의절고증(儀節考證) ·잡록(雜錄)을 추가하여 문공가례의절(文公家禮儀節) 8권을 만들었다.
관(冠)·혼(婚)·상(喪)·제(祭) 사례(四禮)에 관한 예제(禮制)로서의 이 주자가례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자학이 국가 정교(政敎)의 기본강령으로 확립되면서 그 준행(遵行)이 강요되어 처음에는 왕가와 조정 중신에서부터 사대부(士大夫)의 집안으로, 다시 일반서민에까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송대(宋代)에 이루어진 이 가례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아 많은 예송(禮訟)을 야기 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주자학과 함께 조선이 세계문물에 뒤지는 낙후성(落後性)을 조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면 예학(禮學)과 예학파의 대두는 예(禮)와 효(孝)를 숭상하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발달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 가례의절: (주희가 저술한 文公家禮에 대한 해설서)
중국 명(明)나라 때의 유학자 구준(丘濬)이 편집한 책으로 문공가례를 시행하는 절차와 그때 착용하는 복장 등에 대한 그림 따위가 첨부되어 있다. 문공가례는 흔히 주자가례(朱子家禮)라고 한다.
◈ 가례집람: (한국의 禮說을 집대성한 禮書)
1599년(선조 32)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 중국 송대(宋代)의 학자 주자의 가례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아들 김집(金集)이 교정을 보았고, 1685년(숙종 11) 서문중(徐文重)·이사명(李師命)이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국의 학설을 기반으로 하였다고는 해도 한국의 가정의례(家庭儀禮) 전반에 걸쳐 그때까지의 여러 학설과 풍속에 대하여 기술하고, 엮은이 자신의 의견을 곁들여 놓았기 때문에 주체적인 색채가 짙은 책이다.
권1에 의례 전반에 대한 그림을 설명과 함께 실어 보기에 편리하게 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엮은이의 서(序)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가례전집람후서(家禮專輯覽後序)가 있고, 권2에 성년의식인 관례, 권3에 혼례, 권4∼9 상례, 권10에 제례의 순으로 실려 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가묘(家廟) 제도와 혼례·상례·제례에 대한 일반 가정의 의식절차와 그 의미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김장생은‘한국 예학(禮學)의 종장(宗長)’이라 일컬을 만큼 예학에 밝은 학자이다. 김장생은 또 의례문해(疑禮問解), 상례비요(喪禮備要)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 중 가례집람은 한국의 예서 중 민간 본으로 완벽한 이론서로는 처음 나온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예서의 원류로 알려졌고, 예학에 대한 기본 경전이 되었다. 이후 이 책을 준거로 하여 많은 예서들이 간행되었다.
◈ 사례편람: (조선 후기 학자 李縡가 四禮에 관하여 편찬한 책)
1844년(헌종 10)에 이광정(李光正)이 간행하였다. 그 후 1900년(광무 4)에 황필수(黃泌秀)·지송욱(池松旭)이 증보·증간하여 증보사례편람(增補四禮便覽)이라 하였다. 이재의 예학(禮學)에 관한 깊은 조예를 토대로, 주자의 가례(家禮)의 허점을 보완하면서 이를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엮었다. 따라서 이 책이 간행되어 보급된 후 모든 예가 이 책에 따라 행해지게 되었다.
<韓國의 禮書 및 著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