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입문/서예자료

의임(意臨)의 근원을 찾아서

時丁 2014. 9. 23. 09:00

암각화와 서예 -의임(意臨)의 근원을 찾아서-

 

"서외구서(書外求書)"라는 말이 있다.

"서예의 밖에서 서예를 구한다"는 말이다.

 암각화는 문자발생의 전단계로서,

 보다 근원적인 서예를 바라보게 한다.  

 

                       <중국 선사시대 암각화>

 

암각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암각화는 종교적 심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보이지않는 세계를 경배하고 소원을 기구하는 것은

태초의 인간들이 지닌 본능인 것 같다.

 

둘째, 암각화는 문자성과 관계한다.

선사시대의 암각화는 문자적인 성질을 지닌 것이 많아

소통성이 강하다. 특히 중국의 암각화는 상형적인 성분이 많아 

문자의 모태를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중국 선사시대 암각화(상)와 갑골문(하)>

 

도판에서 보듯이 춤을 추는 사람 처럼 보이는 암각화와

갑골문의 무(舞)자 4자는 형태상으로 볼 때 상관성이 있어 보인다.

 

 

           <중국선사시대 암각화(상) 상나라 갑골문(하)>

 

도판에서 보듯이, 암각화(상)와, 갑골문(하)은 친연성이 느껴진다.  

암각화의 마차(馬車)와  갑골문의 차(車)자가 서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셋째, 암각화는 형태보다는 느낌(이미지)을 표현하려고 했다.

암각화의 형태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형태묘사의 정확성보다는 그가 지닌 의미의 전달에 충실하고 있다.

좀 더 쉬운 말을 빌자면, 암각화는 사물을 그대로 옮기는 사진기법이 아니라,

인간의 견해가 추가되어 새롭게 창조된 형태다.

바로 이점은 서예의 원형성을 탐구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논의를 진전할 필요가 있다.

 

         <사실을 표현한 낙타>                          <암각화의 낙타>

 

왼쪽은 낙타의 사실적인 표현이고, 오른쪽은 낙타의 이미지를 표현한 암각화다.

그림에서 보듯이 암각화는 실제의 모습을 많이 벗어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림에 대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솟아오른 육봉은 낙타를 상징하는 특징이므로 금방 이해가 간다.

그런데 왜 다리를 실제의 낙타보다 몇 배나 더 굵게 그렸을까?  

추측컨데, 사막의 짐꾼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지고 뙤약볕을 받으며

먼 모랫길을 어기적 어기적  걷는 모습을 굵은 다리를 통해 이미지화 한 것 같다.  

 

          <사실을 표현한 말>                            <암각화의 말>

 

말 그림에서도 낙타그림과 같은 해법을 적용할 수 있다.

왼쪽은 실제의 말을 그렸고, 오른쪽(암각화)은 말의 이미지를 묘사했다.

말은 잘 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암각화를 제작한 선사인들은 날씬하게 변형시킨 말 그림이 

사실적으로 그린 말 그림보다 좀 더 말의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대상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간취하여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선사시대 암각화의 공통적 특징이다.

암각화의 말은 실제의 말과 닮지 않았다.

그러나 속성과 느낌상으로 볼 때 실제의 말보다 오히려 더 닮았다.

이와같은 "닮지않은 닮음", 즉"불사지사(不似之似)"의 표현법은

선사시대의 암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조각이나 회화, 그리고 창조성이 강한 서예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서예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서예의 임서는 세가지로 나뉜다.

법첩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을 형임(形臨)이라고 하고,

법첩의 느낌과 특징을 간취하는 것을 의임(意臨)이라고 하며,

법첩을 외워쓰는 것을 배임(背臨)이라고 한다.

 

위의 세가지 임서법중에서 법첩의 느낌과 특징을 간취하는 의임(意臨)은

암각화에 나타난 "불사지사(닮지않은 닮음)"의 표현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형태는 법첩과 다르되 느낌이 법첩보다도 오히려 더 유사하게 다가오는 것은 훌륭한 의임의 특징이다.

외면(外面)보다 이면(裏面)이 강조되고,  형(形)보다는 상(象, 이미지)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암각화와 의임은 다를 바가 없다.  

이 '불사지사'의 표현기법은 역대의 창조적인 서예가들의 임서작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서예세상의 임서교실에 올린 "임서가 살아야 창작이 산다"에서

자세하게 논의한 바 있다.  

 

 

 참고할 글 :  서예세상 임서교실 "임서가 살아야 창작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