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교우음(睡覺偶吟)-백거이(白居易)
잠에서 깨어 우연히 읊다
官初罷後歸來夜(관초파후귀내야) : 관리 초임에는 일 마치고 밤에 귀가하고
天欲明前睡覺時(천욕명전수각시) : 날이 밝기도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었다.
起坐思量更無事(기좌사량경무사) : 일어나 앉아 생각에 잠겨도 할 일도 없어
身心安樂復誰知(신심안낙복수지) : 마음과 몸이 편하고 즐거움을 누가 알기나 할까.

항주춘망(杭州春望)-백거이(白居易)
望海樓明照曙霞(망해누명조서하) : 망해루에 날이 밝아 새벽놀 비치고
護江隄白蹋晴沙(호강제백답청사) : 호강제는 깨끗하여 청명한 모래를 밟는다.
濤聲夜入伍員廟(도성야입오원묘) : 파도소리는 밤에 오원의 사당에 들고
柳色春藏蘇小家(류색춘장소소가) : 버들 빛은 봄날 소소가에 숨겨있다.
紅袖織綾誇柿蔕(홍수직능과시체) : 붉은 소매 비단 짜며 감꼭지 문양 과시하고
靑旗沽酒趁梨花(청기고주진리화) : 주막에서 술 사서는 배꽃으로 쫓아간다.
誰開湖寺西南路(수개호사서남노) : 누가 호숫가 고산사에 서남쪽 길을 열어
草綠裙腰一道斜(초녹군요일도사) : 초록 치마 가는 허리인양 한 줄기 길이 비껴있나.

양풍탄(涼風歎)-백거이(白居易)
차가운 바람의 탄식
昨夜涼風又颯然(작야량풍우삽연) : 어젯밤 찬 바람 또다시 바람소리
螢飄葉墜臥床前(형표섭추와상전) : 반딧불 날리고 나뭇잎 침상 머리에 진다.
逢秋莫歎須知分(봉추막탄수지분) : 가을을 맞아 탄식 말라 분수를 알아라
已過潘安三十年(이과반안삼십년) : 이이 반안을 진난 지 삼십 년이 되었어라.

감구시권(感舊詩卷)-백거이(白居易)
옛 시집에 느껴워
夜深吟罷一長吁(야심음파일장우) : 밤 깊어 시를 읊고 길게 탄식하니
老淚燈前濕白鬚(노누등전습백수) : 등잔 앞 노인의 눈물 귀밑머리 적신다.
二十年前舊詩卷(이십년전구시권) : 이십 년 전 옛 시집이라
十人酬和九人無(십인수화구인무) : 수창한 열사람 중 아홉 사람 죽어 없구나.

야초회숙(夜招晦叔)-백거이(白居易)
밤에 회숙을 초대하며
庭草留霜池結冰(정초류상지결빙) : 정원의 풀에는 서리 내리고 못에는 얼음 얼어
黃昏鍾絶凍雲凝(황혼종절동운응) : 황혼에 종소리 끊이고 구름도 얼어 엉기었다.
碧氈帳上正飄雪(벽전장상정표설) : 푸른 모직 휘장 위로 지금 한창 눈발이 날리고
紅火爐前初炷燈(홍화노전초주등) : 붉은 화로 앞에 처음으로 등불 심지에 불을 붙인다.
高調秦箏一兩弄(고조진쟁일량농) : 높은 음조로 진나라 쟁으로 한 두 번 노는데
小花蠻榼二三升(소화만합이삼승) : 작은 꽃 무늬 오랑캐 술통에 두 세 되 술도 있다.
爲君更奏湘神曲(위군경주상신곡) : 그대 위해 다시 상군곡을 연주하려는데
夜就儂家能不能(야취농가능부능) : 밤이면 바로 우리집에 올 수 있을까 없을까.

희초제객(戲招諸客)-백거이(白居易)
놀이로 여러 객을 초청하여
黃醅綠醑迎冬熟(황배녹서영동숙) : 누른 술, 푸른 술 겨울에 익어가고
絳帳紅爐逐夜開(강장홍노축야개) : 붉은 휘장 붉은 난로 밤 쫓아 열린다.
誰道洛中多逸客(수도낙중다일객) : 누가 낙양에 명사가 많다고 말하나
不將書喚不曾來(부장서환부증내) : 책으로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았었다.

지변즉사(池邊卽事)-백거이(白居易)
못가에서
氈帳胡琴出塞曲(전장호금출새곡) : 모직 휘장, 오랑캐 거문고, 출새곡
蘭塘越棹弄潮聲(난당월도농조성) : 난초 못 건너는 노가 조수 소리 희롱한다.
何言此處同風月(하언차처동풍월) : 풍월 같은 이곳을 어찌 말로 하랴
薊北空南萬里情(계배공남만리정) : 계북의 하늘 남쪽 만리 먼 풍정이로다.

추사(秋思)-백거이(白居易)
가을 생각
夕照紅於燒(석조홍어소) : 석양이 불타는 것보다 불고
晴空碧勝藍(청공벽승남) : 갠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구나.
獸形雲不一(수형운부일) : 동물 모양 구름 하나가 아니고
弓勢月初三(궁세월초삼) : 활모양의 달은 처음 삼 일이로다.
雁思來天北(안사내천배) : 기러기 마음은 하늘 북쪽으로 오고
砧愁滿水南(침수만수남) : 다듬이질하는 수심은 강 남쪽에 가득하다.
蕭條秋氣味(소조추기미) : 쓸쓸하여라, 가을 기운의 맛
未老已深諳(미노이심암) : 늙지도 않았는데 이미 깊이 기억된다

송객(送客)-백거이(白居易)
손님을 보내며
病上籃輿相送來(병상남여상송내) : 병으로 남여에 올라 전송고 돌아오니
衰容秋思兩悠哉(쇠용추사량유재) : 쇠한 얼굴, 가을 생각이 모두 아득하다.
涼風嫋嫋吹槐子(양풍뇨뇨취괴자) : 찬 바람 하늘하늘 홰나무에 불어와
却請行人勸一盃(각청항인권일배) : 도리어 행인에게 한 잔 술을 따르게 한다.

낭도사사륙수1(浪淘沙詞六首1)-백거이(白居易)
낭도사
一泊沙來一泊去(일박사내일박거) : 물결 한 번 드니 모래 밀려오고, 한 번 드니 씻겨가고
一重浪滅一重生(일중낭멸일중생) : 한번 무거워지니 물결 사라지고, 한 번 무거워지니 물결 인다
相攪相淘無歇日(상교상도무헐일) : 씻어내고 행구내며 그칠 날이 없으니
會敎山海一時平(회교산해일시평) : 마침내 산과 바다를 일시에 평평하게 하는구나.

낭도사사륙수2(浪淘沙詞六首2)-백거이(白居易)
白浪茫茫與海連(백낭망망여해련) : 흰 물결 망망한데 바다와 이어지고
平沙浩浩四無邊(평사호호사무변) : 평평한 뱃사장은 넓디넓어 끝이 없구나.
暮去朝來淘不住(모거조내도부주) : 조석으로 오고가며 물결은 멈추지 않고
遂令東海變桑田(수령동해변상전) : 마침내 동해가 뽕나무 밭을 바꾸게 하는구나.

낭도사사륙수3(浪淘沙詞六首3)-백거이(白居易)
靑草湖中萬里程(청초호중만리정) : 호수 가운데 푸른 풀은 만 리 기다란 길
黃梅雨裏一人行(황매우리일인항) : 빗속의 누렇게 익은 매실꽃 한 사람 걸을 거리
愁見灘頭夜泊處(수견탄두야박처) : 수심겨워 여룰 가에 밤에 정박할 곳 바라보니
風翻闇浪打船聲(풍번암낭타선성) : 바람이 푸른 물결을 뒤집으며 뱃전을 치는 소리

낭도사사륙수4(浪淘沙詞六首4)-백거이(白居易)
借問江潮與海水(차문강조여해수) : 강물과 바닷물에 잠시 묻노니
何似君情與妾心(하사군정여첩심) : 어찌 님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같을까요
相恨不如潮有信(상한부여조유신) : 서로 한하니 조수의 믿음만도 못하고
相思始覺海非深(상사시각해비심) : 그립고 보고프니 바다가 깊지 못함을 비로소 알았지요

낭도사사륙수5(浪淘沙詞六首5)-백거이(白居易)
海底飛塵終有日(해저비진종유일) : 바닷밑이 흙먼지 날리니 태양만이 남아있고
山頭化石豈無時(산두화석개무시) : 산 머리가 바위를 변화시키니 어찌 때가 없으랴
誰道小郎抛小婦(수도소낭포소부) : 누가 젊은 지아비가 젊은 아낙 버렸고 말하나
船頭一去沒廻期(선두일거몰회기) : 뱃머리 한번 떠나더니 돌아올 기약 묻혀버렸구나.

낭도사사륙수6(浪淘沙詞六首6)-백거이(白居易)
隨波逐浪到天涯(수파축낭도천애) : 물결을 따르면 하늘 끝에 이르건만
遷客生還有幾家(천객생환유기가) : 귀양객이 돌아온 일 몇 집이나 되는가.
却到帝鄕重富貴(각도제향중부귀) : 물리치고 서울에 이르면 부귀를 귀히 여겨
請君莫忘浪淘沙(청군막망낭도사) : 청컨대 그대는 낭도사를 잊지 마시오.

한항(閒行)-백거이(白居易)
한가히 걸으며
五十年來思慮熟(오십년내사려숙) : 오십 년 동안 익숙한 생각이 있나니
忙人應未勝閒人(망인응미승한인) : 바쁜 사람은 한가한 사람보다 못하다네.
林園傲逸眞成貴(림원오일진성귀) : 숲에 사는 자부심과 편안함이 정말 귀하고
衣食單疎不是貧(의식단소부시빈) : 입고 먹는 간편함은 가난함이 아니라네.
專掌圖書無過地(전장도서무과지) : 책만 간직하니 허물이 없는 처지이며
遍尋山水自由身(편심산수자유신) : 산수를 두루 찾아다니니 자유의 몸이라네.
儻年七十猶强健(당년칠십유강건) : 만냑 나이 칠십이라도 여전히 강건하다면
尙得閒行十五春(상득한항십오춘) : 오히려 편히 걷는 십오 세 청춘을 얻은 것이네.

한출(閒出)-백거이(白居易)
한가히 나아가
兀兀出門何處去(올올출문하처거) :
올올히 문을 나서니 어디로 가나
新昌街晩樹陰斜(신창가만수음사) :
신창 거리의 저녁에 나무그늘 기울었네.
馬蹄知意緣行熟(마제지의연항숙) :
말발굽은 내 뜻 아노니 길이 익숙해서라
不向楊家卽庾家(부향양가즉유가) :
양가집 향하지 않으면 유가집이라네.

한영(閒詠)-백거이(白居易)
한가하게 읊다
步月憐淸景(보월련청경) : 달빛 아래 걸으니 맑은 풍광 애련하고
眠松愛綠陰(면송애녹음) : 소나무 아래서 잠드니 푸른 그늘이 좋아라.
早年詩思苦(조년시사고) : 젊어서는 시를 지음에 애를 쓰고
晩歲道情深(만세도정심) : 늙어서는 도를 찾는 마음이 깊어진다.
夜學禪多坐(야학선다좌) : 밤에는 참선을 배우려 앉아있는 일이 많고
秋牽興暫吟(추견흥잠음) : 가을에는 흥에 이끌려 잠시 시를 읊는다.
悠然兩事外(유연량사외) : 이 두 가지 일 외에는 아득하니
無處更留心(무처경류심) : 다시 마음 머물게 할 곳이 하나도 없도다.

자탄(自歎)-백거이(白居易)
스스로 탄식하다
豈獨年相迫(개독년상박) : 어찌 다만 나이만 많아지는가
兼爲病所侵(겸위병소침) : 아울러 병마저 찾아오는구나.
春來痰氣動(춘내담기동) : 봄이 되니 가래기운이 끓어오르고
老去嗽聲深(노거수성심) : 늙어가니 기침소리가 깊어지는구나.
眼暗猶操筆(안암유조필) : 눈이 어두워져도 붓을 잡고
頭斑未挂簪(두반미괘잠) : 머리가 빠져 비녀마저 꼽지 못한다.
因循過日月(인순과일월) : 습관대로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다니
眞是俗人心(진시속인심) : 진정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심정인가.

석낙화(惜落花)-백거이(白居易)
지는 꽃이 애달파
夜來風雨急(야내풍우급) : 간밤에 비바람 심하였으니
無復舊花林(무복구화림) : 옛 꽃과 숲을 회복하지 못하리라.
枝上三分落(지상삼분낙) : 가지 위의 삼분의 일이나 떨어져
園中二寸深(원중이촌심) : 정원 안에 두 치나 깊어졌도다.
日斜啼鳥思(일사제조사) : 해 지는 저녁에 우짖는 새들의 심사
春盡老人心(춘진노인심) : 저무는 봄날에 늙어가는 사람들 마음이라
莫怪添盃飮(막괴첨배음) : 술잔을 더 한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
情多酒不禁(정다주부금) : 정이 많아 술을 금할 수가 없도다.

노병(老病)-백거이(白居易)
늙고 병들어
晝聽笙歌夜醉眠(주청생가야취면) : 낮엔 생황노래 듣고 밤엔 취하여 잠드는데
若非月下卽花前(야비월하즉화전) : 달빛 아래가 아니면 꽃 앞에 있노라.
如今老病須知分(여금노병수지분) : 지금처럼 늙고 병들어야 분수를 알리니
不負春來二十年(부부춘내이십년) : 봄이 옴을 저버리지 않은 지가 이십 년이어라.

춘풍(春風)-백거이(白居易)
봄바람
春風先發苑中梅(춘풍선발원중매) : 봄바람에 먼저 핀 동산 안의 매화꽃
櫻杏桃梨次第開(앵행도리차제개) :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薺花楡莢深村裏(제화유협심촌리) : 냉이꽃 느릅나무 열매 마을 안에 깊숙하니
亦道春風爲我來(역도춘풍위아내) : 또한 말하리라, 봄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왔다고.

탄추사(彈秋思)-백거이(白居易)
가을 마음을 타다
信意閒彈秋思時(신의한탄추사시) : 마음에 맡겨 가을 마음을 타는 시간
調淸聲直韻疎遲(조청성직운소지) : 맑은 음조, 곧은 소리에 운율은 성글고 더디다.
近來漸喜無人聽(근내점희무인청) : 근래에 점차 기뻐지는데 들어주는 사람 없으나
琴格高低心自知(금격고저심자지) : 거문고 격조의 높고 낮음이야 마음의 절로 아노라.

추유(秋遊)-백거이(白居易)
가을놀이
下馬閒行伊水頭(하마한항이수두) : 말에서 내려 한가히 이수 가를 걸으니
涼風淸景勝春遊(량풍청경승춘유) : 서늘한 바람 맑은 경치가 봄나들이 보다 좋아라.
何事古今詩句裏(하사고금시구리) : 무슨 일로 고금에 시구 안에는
不多說著洛陽秋(부다설저낙양추) : 낙양의 가을을 논하여 적은 글이 많지 않았을까.

유가화(劉家花)-백거이(白居易)
유씨 집, 꽃나무
劉家牆上花還發(유가장상화환발) : 유씨 집, 담장 위에 꽃들 다시 피고
李十門前草又春(리십문전초우춘) : 이씨 집, 문 앞에는 풀빛이 또 봄이로다.
處處傷心心始悟(처처상심심시오) : 곳곳에서 상심하여 비로소 알았느니
多情不及少情人(다정부급소정인) : 다정이 미치지 못하여 정인이 적었구나.

장십팔(張十八)-백거이(白居易)
장씨네 열여듧째 아들
諫垣幾見遷遺補(간원기견천유보) : 간원에서 몇 번 보았는데 유보로
옮겨가고
憲府頻聞轉殿監(헌부빈문전전감) : 헌부에서 자주 들었는데 전감으로 옮겼구나.
獨有詠詩張太祝(독유영시장태축) :
오직 시 읊는 장태축이 있으니
十年不改舊官銜(십년부개구관함) : 십 년 동안 옛 관함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고상댁(高相宅)-백거이(白居易)
고 재상댁
靑苔故里懷恩地(청태고리회은지) : 푸른 이끼 옛 고을 은혜받은 이 땅
白髮新生抱病身(백발신생포병신) : 백발이 새로 나서 병 안은 이내 몸.
涕淚雖多無哭處(체누수다무곡처) : 흐르는 눈물 많아도 울 곳도 없으니
永寧門館屬他人(영녕문관속타인) : 영녕문관이 남의 손에 넘어가버렸다네.

증매송자(贈賣松者)-백거이(白居易 )
소나무 파는 자에게
一束蒼蒼色(일속창창색) : 한 묶음 푸르고 푸른 빛
知從澗底來(지종간저내) : 골짜기 아래에서 온 것을 알겠다.
斸掘經幾日(촉굴경기일) : 찍어서 파낸지가 몇 일이나 지났나
枝葉滿塵埃(지섭만진애) : 가지와 잎에 흙먼지가 가득하다.
不買非他意(부매비타의) : 사지 않은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城中無地栽(성중무지재) : 성 안에는 심을 땅이 전혀 없어서라네

송춘(送春)-백거이(白居易)
봄을 보내며
三月三十日(삼월삼십일) : 때는 삼월 삼십 일
春歸日復暮(춘귀일부모) : 봄은 가려하고 해도 다시 지려한다.
惆悵問春風(추창문춘풍) : 추창이 봄바람에 물어보노니
明朝應不住(명조응부주) : 내일 아침에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거야.
送春曲江上(송춘곡강상) : 곡 강 위에서 봄을 보내려니
眷眷東西顧(권권동서고) : 아쉬움에 동서로 돌아보노라.
但見撲水花(단견박수화) : 보이는 것은 물위에 떨어지는 꽃
紛紛不知數(분분부지삭) : 분분하여 그 수를 알지 못하겠다.
人生似行客(인생사항객) : 인생이란 길가는 나그네 같아
兩足無停步(양족무정보) : 두 발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日日進前程(일일진전정) : 날마다 앞을 향해 나가지만
前程幾多路(전정기다노) : 가야할 길은 얼마나 많이 남았을까.
兵刀與水火(병도여수화) : 전쟁과 천재지변의 재앙을
盡可違之去(진가위지거) : 모두를 피해 갈 수가 있지만
唯有老到來(유유노도내) : 오직 늙음이 다가오는 것은
人間無避處(인간무피처) : 인간으로는 피할 길이 하나 없다.
感時良爲已(감시량위이) : 시절을 느낌을 진정 그만두고
獨倚池南樹(독의지남수) : 홀로 못 남쪽 나무에 기대어본다.
今日送春心(금일송춘심) : 오늘 이 봄을 보내는 마음
心如別親故(심여별친고) : 마치 친구를 보내는 마음 같아라.

연자루(鷰子樓)-백거이(白居易)
滿窗明月滿簾霜(만창명월만렴상) : 창에 가득한 밝은 달, 주렴에 가득한 서리
被冷燈殘拂臥牀(피냉등잔불와상) : 이불은 차고 등불 희미한데 잠자리 추켜올린다.
燕子樓中霜月夜(연자누중상월야) : 연자루 안, 서리 내리는 달 밤
秋來只爲一人長(추내지위일인장) : 가을이 오니 오직 이 한 사람 위해 길기만하다.

야금(夜琴)-백거이(白居易)
밤 거문고
蜀桐木性實(촉동목성실) : 촉 나라 오동나무는 든든하고
楚絲音韻淸(초사음운청) : 초 나라 악기는 소리 맑기도 하다.
調慢彈且緩(조만탄차완) : 느슨한 줄을 골라 통기다 늦추며
夜深十數聲(야심십삭성) : 밤 깊도록 열 몇 곡을 타노라.
入耳淡無味(입이담무미) : 귀에 들리는 소리 담담하여 맛도 없는 듯
愜心潛有情(협심잠유정) : 마음에 흡족하여 젖어들어 정겨워라.
自弄還自罷(자농환자파) : 스스로 즐기다가 도리어 그치나니
亦不要人聽(역부요인청) : 또한 다른 사람이 듣기를 바라지 않아서라.

영의(詠意)-백거이(白居易)
내 마음을 노래하다
常聞南華經(상문남화경) : 남화경의 말을 항상 들었다
巧勞智憂愁(교노지우수) : 재주 있는 자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자는 근심한다고.
不如無能者(부여무능자) : 차라리 못하리라, 무능한 사람이
飽食但遨遊(포식단오유) : 배불리 먹고 마음대로 노는 것만 말이다.
平生愛慕道(평생애모도) : 평생토록 그 도를 좋아하고 그리워했는데
今日近此流(금일근차류) : 오늘에야 이런 부류에 가까게 되었구나.
自來潯陽郡(자내심양군) : 심양군에 온 이래로
四序忽已周(사서홀이주) : 사계절이 흘러 벌써 이미 일 년이 되었구나.
不分物黑白(부분물흑백) : 일의 흑백을 가리지 않고
但與時沈浮(단여시침부) : 다만 때와 더불어 부침하였다.
朝飧夕安寢(조손석안침) : 아침에는 밥 먹고 저녁에는 편히 잠자며
用是爲身謀(용시위신모) : 이렇게 하며 자신을 위해 살았다.
此外卽閑放(차외즉한방) : 이 외에는 한가하게 지내며
時尋山水幽(시심산수유) : 때때로 자연의 그윽함을 찾았다.
春遊慧遠寺(춘유혜원사) : 봄에는 혜원사를 노닐었고
秋上庾公樓(추상유공누) : 가을이면 유공의 누각에 올랐다.
或吟詩一章(혹음시일장) : 간혹 시 한 편을 읊기도 하고
或飮茶一甌(혹음다일구) : 간혹 차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
身心一無繫(신심일무계) : 몸과 마음 어느 한 곳에도 얽히지 않아
浩浩如虛舟(호호여허주) : 호방함이 마치 빈 배 같았다.
富貴亦有苦(부귀역유고) : 부귀한 사람에게도 고통이 있나니
苦在心危憂(고재심위우) : 고통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스럽다.
貧賤亦有樂(빈천역유낙) : 빈천한 사람에게도 즐거움이 있나니
樂在身自由(낙재신자유) : 즐거움은 몸의 자유로움에 있다.

제원십팔계정(題元十八溪亭)-백거이(白居易)
원 팔의 팔계정에 제하다
怪君不喜仕(괴군부희사) : 이상하나니, 그대 벼슬살이 싫어하고
又遊煙霞里(우유연하리) : 연기와 놀 낀 마을을 나다니지도 않다니.
今日到幽居(금일도유거) : 오늘 그윽한 그대 거처에 와보니
了然知所以(요연지소이) : 그 까닭을 확실히 알았도다.
宿君石溪亭(숙군석계정) : 그대의 석계정에 묵으니
潺湲聲滿耳(잔원성만이) : 졸졸 흐르는 물소리 귀에 가득하고
飮君螺盃酒(음군나배주) : 그대에게 소라잔으로 술을 권하니
醉臥不能起(취와부능기) : 취하여 누운 채로 일어나지 못하는구려.
見君五老峯(견군오노봉) : 그대 사는 오로봉을 보고나니
益悔居城市(익회거성시) : 시내에 사는 것이 더욱 후회스럽소.
愛君三男兒(애군삼남아) : 사랑스런 그대 세 아들을 보니
始歎身無子(시탄신무자) : 자신이 자식 없음을 비로소 한탄스럽소.
余方鑪峯下(여방로봉하) : 나도 이제야 향로봉 아래에 있어
結室爲居士(결실위거사) : 집 짓고 거사가 되리라.
山北與山東(산배여산동) : 산 북쪽과 산 동쪽을
往來從此始(왕내종차시) : 오가며 이제부터 시작하리라.

초동린(招東鄰)-백거이(白居易)
동쪽 이웃을 초대하며
小榼二升酒(소합이승주) : 작은 통에 담긴 두 되의 술
新簟六尺床(신점륙척상) : 새 삿자리 깔린 여섯 자의 평상.
能來夜話否(능내야화부) : 오셔서 밤에도 얘기 않으리오
池畔欲秋涼(지반욕추량) : 못가에 지금 가을 찬 바람 입니다.

남정대주송춘(南亭對酒送春)-백거이(白居易)
남쪽 정자에서 술을 마주하여 봄을 보내다
含桃實已落(함도실이낙) : 앵두는 이미 떨어지고
紅薇花尙薰(홍미화상훈) : 붉은 장미는 꽃이 아직 향기롭다.
冉冉三月盡(염염삼월진) : 흐르는 세월 삼월도 다 지나는데
晩鶯城上聞(만앵성상문) : 철 늦은 꾀꼬리 소리 성 위에서 들린다.
獨持一杯酒(독지일배주) : 홀로 한 잔의 술을 잡고
南亭送殘春(남정송잔춘) : 남쪽 정자에서 남은 봄을 떠나보낸다.
半酣忽長歌(반감홀장가) : 반쯤 취하여 문득 길게 노래 부르니
歌中何所云(가중하소운) : 노래 속말에서 무엇을 말했던가.
云我五十餘(운아오십여) : 내 나이 오십 세가 넘었다 하니
未是苦老人(미시고노인) : 상늙은이는 아직 아니로구나.
刺史二千石(자사이천석) : 자사의 녹봉은 이천 석이니
亦不爲賤貧(역부위천빈) : 또한 빈천하지는 않도다.
天下三品官(천하삼품관) : 세상의 삼품 관리들
多老於我身(다노어아신) : 내 몸보다 늙은이가 많도다.
同年登第者(동년등제자) : 같이 과거에 오른 사람들
零落無一分(령낙무일분) : 영락하여 십분의 일도 남아있지 않도다.
親故半爲鬼(친고반위귀) : 친구의 절반은 이이 귀신이 되었고
僮僕多見孫(동복다견손) : 동복들도 대부분 손자를 보았도다.
念此聊自解(념차료자해) : 이런 일들 생각하면 그런대로 스스로 풀어져
逢酒且歡欣(봉주차환흔) : 술을 만나 잠시 즐거워지고 기뻐지노라.

삼년위자사이수1(三年爲刺史二首1)-백거이(白居易)
삼년 동안 자사를 지내고서
三年爲刺史(삼년위자사) : 삼년 동안 자사가 되어 일했어도
無政在人口(무정재인구) : 백성의 입에 오르는 치적도 없었다.
唯向郡城中(유향군성중) : 오직 고을 성읍 안을 향하고
題詩十餘首(제시십여수) : 십여 수의 시를 지었었다.
慙非甘棠詠(참비감당영) : 부끄러워라, 선정을 읊는 시 없으니
豈有思人否(개유사인부) : 어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삼년위자사이수2(三年爲刺史二首2)-백거이(白居易)
삼년 동안 자사를 지내고서
三年爲刺史(삼년위자사) : 삼년 동안 자사가 되어 일했어도
飮冰復食蘗(음빙복식벽) : 찬 물 마시고 다시 당귀만 먹었구나.
唯向天竺山(유향천축산) : 오직 천축산을 향하여
取得兩片石(취득량편석) : 두 조각 돌을 취하였도다.
此抵有千金(차저유천금) : 이 것을 밀어내고 천금을 찾았으니
無乃傷淸白(무내상청백) : 이 것이 바로 청백리 정신을 상하게 한 것 아닌가.

이가입신댁(移家入新宅)-백거이(白居易)
이사하여 새집에 입주하며
移家入新宅(이가입신댁) : 이사하여 새 집에 들고 보니
罷郡有餘資(파군유여자) : 군의 벼슬을 그만 두어도 자산이 넉넉하다.
旣可避燥濕(기가피조습) : 건조함과 습기를 피할 수 있고
復免憂寒飢(복면우한기) : 다시 추위와 굶주림의 근심 면하였다.
疾平未還假(질평미환가) : 병이 나았는데 휴가는 끝나지 않았고
官閒得分司(관한득분사) : 관직은 한가하게도 분사의 자리라
幸有俸祿在(행유봉녹재) : 다행히도 봉록은 나오고
而無職役羈(이무직역기) : 얽어매는 직무도 전혀 없구나.
淸旦盥潄畢(청단관수필) : 맑은 아침 세수를 마치고
開軒卷簾幃(개헌권렴위) : 마루문을 열고 발과 휘장을 걷는다.
家人及雞犬(가인급계견) : 식구들과 닭과 개는
隨我亦熙熙(수아역희희) : 나를 따르며 즐거워한다.
取興不過酒(취흥부과주) : 흥을 갖는데는 술이 빠질 수 없나니
放情或作詩(방정혹작시) : 마음을 풀기 위해 간혹 시를 짓는다.
何必苦修道(하필고수도) : 어찌 반드시 애서 도를 닦아야 하나
此卽是無爲(차즉시무위) : 이런 것들도 곧 무위자연인 것을.
外累信已遣(외누신이견) : 외물에 얽매임이 이미 사라지고
中懷時有思(중회시유사) : 마음속엔 때때로 생각이 난다.
有思一何遠(유사일하원) : 생각남은 하나같이 어찌나 먼지
黙坐低雙眉(묵좌저쌍미) : 말없이 앉으니 두 눈썹을 내려본다.
十載囚竄客(십재수찬객) : 지나온 십년이 귀양 온 나그네 처지
萬里征戍兒(만리정수아) : 만 리 변방 수자리간 젊은이 신세로다.
春朝鏁籠鳥(춘조쇄농조) : 봄날 아침에 새장에 갇힌 새 처지
冬夜支牀龜(동야지상구) : 겨울 밤 동안 책상을 바치고 있는 거북이로다.
驛馬走四蹄(역마주사제) : 역마의 달리는 네 발굽은
痛酸無歇期(통산무헐기) : 아프고 쓰라려도 쉴 기간이 전혀 없도다.
磑牛封兩目(애우봉량목) : 맷돌 가는 소는 두 눈을 가리니
昏閉何人知(혼폐하인지) : 어굽고 갑갑함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誰能脫放去(수능탈방거) : 누가 불어주고 놓아주어 떠나가게 하여
四散任所之(사산임소지) : 사방으로 흩어져 마음대로 가고
各得適其性(각득적기성) : 각자 그들의 본성에 맞추어
如吾今日時(여오금일시) : 나의 오늘날의 시간과 같게 할 수 있을까.

초견백발(初見白髮)-백거이(白居易)
백발을 처음 보고
白髮生一莖(백발생일경) : 흰머리 터럭이 한 줄기 생겨
朝來明鏡裏(조내명경리) : 아침에 거울 속에 분명하도다.
勿言一莖少(물언일경소) : 한 줄기가 적다고 말하지 말라
滿頭從此始(만두종차시) : 머리에 가득한 백발도 여기서 시작된다.
靑山方遠別(청산방원별) : 청산을 멀리 떠나 이별하여
黃綬初從仕(황수초종사) : 누른 인끈 두르고 처음 벼슬하였다.
未料容鬢間(미료용빈간) : 얼굴과 귀밑머리 생각도 못했는데
蹉跎忽如此(차타홀여차) : 한 순간 잘못되어 이처럼 되었구나.

금중월(禁中月)-백거이(白居易)
궁궐의 달
海上明月出(해상명월출) : 바닷가에 밝은 달 떠오르고
禁中淸夜長(금중청야장) : 궁궐 안에는 맑은 밤이 길기만 하다.
東南樓殿白(동남누전백) : 동남 쪽, 높은 전각 휘영청 밝은데
稍稍上宮牆(초초상궁장) : 조금씩 궁궐 담장 위로 솟아오른다.
淨落金塘水(정낙금당수) : 금당 연못물에 깨끗이 떨어져
明浮玉砌霜(명부옥체상) : 옥돌 섬돌에 서리가 밝게도 있다.
不比人間見(부비인간견) : 늘어선 사람들이여 보지를 말라
塵土汚淸光(진토오청광) : 세상의 티끌이 맑은 빛을 더럽힐까 한다.

고상(枯桑)-백거이(白居易)
마른 뽕나무
道傍老枯樹(도방노고수) : 길가에 늙고 마른 나무 있는데
枯來非一朝(고내비일조) : 마르게 된 지가 하루아침이 아니다.
皮黃外尙活(피황외상활) : 껍질은 누렇지만 밖은 아직 살아있어
心黑中先焦(심흑중선초) : 속이 검은데 가운데가 먼저 타들어간다.
有似多憂者(유사다우자) : 많은 근심거리가 있는 듯한데
非因外火燒(비인외화소) : 밖의 화제로 인해서 탄 것은 아니로다.

증왕산인(贈王山人)-백거이(白居易)
왕산인에게 드리다
聞君減寢食(문군감침식) : 듣건대, 그대가 침식을 줄이고
日聽神仙說(일청신선설) : 날마다 신선의 설을 듣는다지요.
暗待非常人(암대비상인) : 남몰래 대단한 분 모셔다가
潛求長生訣(잠구장생결) : 장생의 비결을 은밀히 구한다지요.
言長本對短(언장본대단) : 장수란 본래 단명과 상대적이라 하나
未離生死轍(미리생사철) :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거라오.
假使得長生(가사득장생) : 비록 장생을 얻는다하더라도
才能勝夭折(재능승요절) : 겨우 요절보다 나을 정도라오.
松樹千年朽(송수천년후) : 소나무는 천년을 살다 썩고
槿花一日歇(근화일일헐) : 무궁화 꽃은 하루 만에 진다오.
畢竟共虛空(필경공허공) : 그러나 필경에는 모두가 공허하니
何須誇歲月(하수과세월) : 어찌 반드시 세월 긴 것만 자랑하리오.
彭殤徒自異(팽상도자리) : 팽조의 장수와 팽자의 단명은 헛된 차이
生死終無別(생사종무별) : 살고 죽음이 끝내는 구별이 없어진다오.
不如學無生(부여학무생) : 차라리 무생을 배움만 못하며
無生卽無滅(무생즉무멸) : 무생이 바로 멸하지 않는 것이라오.

영숭리관거(永崇里觀居)-백거이(白居易)
영숭리 도관에 머물면서
季夏中氣候(계하중기후) : 늦여름 반이 지난 날
煩暑自此收(번서자차수) : 무더위가 지금부터 물러난다.
蕭颯風雨天(소삽풍우천) : 쌀쌀한 비바람 내리는 날씨
蟬聲暮啾啾(선성모추추) : 저녁이면 매미소리 들리고
永崇里巷靜(영숭리항정) : 영숭리 골목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華陽觀院幽(화양관원유) : 황양관 원내는 조용하고
軒車不到處(헌거부도처) : 귀인 탄 수레는 어디고 오지 않는다.
滿地槐花秋(만지괴화추) : 회나무 꽃 땅에 가득한 가을
年光忽冉冉(년광홀염염) : 세월은 홀연히 흘러만 가고
世事本悠悠(세사본유유) : 세상사란 원래 아득하기만 하다.
何必待衰老(하필대쇠노) : 하필 늙어 노쇠하기만 기다려야
然後悟浮休(연후오부휴) : 죽고 사는 것의 진리를 깨달을까.
眞隱豈長遠(진은개장원) : 진정한 은일이 어찌 멀리 있을까
至道在冥搜(지도재명수) : 지극한 도는 깊이 추구하는 데 있다.
身雖世間住(신수세간주) : 몸은 비록 세간에 머물러 있으나
心與虛無遊(심여허무유) : 내 마음은 아득한 하늘과 노닌다.
朝飢有蔬食(조기유소식) : 아침에 배고프면 나물밥 먹고
夜寒有布裘(야한유포구) : 저녁에 차가우면 무명옷을 입는다.
幸免凍與餒(행면동여뇌) : 헐벗음과 굶주림 면하기만 한다면
此外復何求(차외복하구) : 그밖에 다시 무엇을 바랄까보냐.
寡慾雖少病(과욕수소병) : 비록 조금 아프지만 욕심을 줄이고
樂天心不憂(낙천심부우) : 천명을 즐기니 마음이 우울하지 않다.
何以明吾志(하이명오지) : 어찌해야 나의 뜻을 밝힐까
周易在床頭(주역재상두) : 주역이 내 책상머리에 놓여있다.

범춘지(泛春池)-백거이(白居易)
봄 못에 배 띄워
白蘋湘渚曲(백빈상저곡) : 상수 물가에 흰 마름
綠篠剡溪口(녹소섬계구) : 섬계 어구에는 푸른 조릿대.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 각각 하늘 먼 곳에 있어
信美非吾有(신미비오유) : 정말 아름답지만 나의 소유 아니다.
如何此庭內(여하차정내) : 어떠한가, 이 정원 안
水竹交左右(수죽교좌우) : 수죽은 좌우로 얽혀있다.
霜竹百千竿(상죽백천간) : 서리 맞은 대나무 여러 줄기들
煙波六七畝(연파륙칠무) : 예닐곱 이랑이 물안개에 덥혀있다.
泓澄動堦砌(홍징동계체) : 맑은 물속에는 섬돌이 일렁거리고
淡泞映戶牖(담저영호유) : 깨끗한 물에는 문과 창문이 비추인다.
蛇皮細有紋(사피세유문) : 뱀껍질 같은 문양이 섬세하게 보이고
鏡面淸無垢(경면청무구) : 거울 표면처럼 맑아 먼지하나 없구나.
主人過橋來(주인과교내) : 주인이 다리를 지나오는데
雙童扶一叟(쌍동부일수) : 두 어린 아이가 한 노인을 부축하고 있다.
恐汙淸冷波(공오청냉파) : 맑고 찬 물결 더럽힐까 두려워
塵纓先抖擻(진영선두수) : 갓에 앉은 먼지부터 털어낸다.
波上一葉舟(파상일섭주) : 물결 위에 작은 배 띄우고
舟中一樽酒(주중일준주) : 배 안에는 한 동이 술을 실었다.
酒開舟不繫(주개주부계) : 술동이는 열어놓고 배는 풀어
去去隨所偶(거거수소우) : 배 가는 대로 따라 가고 또 간다.
或遶蒲浦前(혹요포포전) : 부들 물가 앞은 둘러싸고
或泊桃島後(혹박도도후) : 복숭아 섬 뒤에 멈추기도 한다.
未撥落杯花(미발낙배화) : 술잔에 떨어진 꽃잎을 건져내지도 않고
低衝拂面柳(저충불면류) : 얼굴을 스치는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半酣迷所在(반감미소재) : 반쯤 취하니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倚榜兀回首(의방올회수) : 노에 기대어 우뚝 머리를 돌려본다.
不知此何處(부지차하처) : 이곳이 어느 곳인지 모르겠는데
復是人寰否(복시인환부) : 혹시 인간세상이 아닌가.
誰知始疎鑿(수지시소착) : 누가 알리오, 처음 연못을 뚫고서
幾主相傳受(기주상전수) : 몇 사람의 주인이 서로 바뀌었는지를.
楊家去云遠(양가거운원) : 양씨는 떠난 지 오래되고
田氏將非久(전씨장비구) : 전씨는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天與愛水人(천여애수인) : 하늘은 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었으니
終焉落吾手(종언낙오수) :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도다.

증언(贈言)-백거이(白居易)
드리는 말씀
捧籯獻千金(봉영헌천금) : 바구니에 받들어 천금을 바쳐도
彼金何足道(피금하족도) : 저 황금이 어찌 만족스럽다 말하랴.
臨觴贈一言(임상증일언) : 술잔을 마주하여 한 마디 말 드리니
此言眞可寶(차언진가보) : 이 말은 정말 보배롭습니다.
流光我已晩(류광아이만) : 흐르는 세월에 나는 이미 늙어
適意君不早(적의군부조) : 마음에 맞추는 일 그대 빠르지 않습니다.
況君春風面(황군춘풍면) : 하물며 봄바람 같이 부드러운 얼굴
柔促如芳草(유촉여방초) : 유연하나 짧기가 향기로운 풀 같습니다.
二十方長成(이십방장성) : 나이 스물에야 장성해져서
三十向衰老(삼십향쇠노) : 서른이 되면은 늙어지기 시작합니다.
鏡中桃李色(경중도리색) : 거울 속 복숭아 자두 같은 얼굴빛도
不得十年好(부득십년호) : 좋은 때는 십년도 못갑니다.
胡爲坐脈脈(호위좌맥맥) : 무엇 때문에 거저 묵묵히 앉아서
不肯傾懷抱(부긍경회포) : 마음 속 회포를 풀려고 하지 않는가.

춘즙신거(春葺新居)-백거이(白居易)
봄날 새 거처를 고치며
江州司馬日(강주사마일) : 강주 사마 시절
忠州刺史時(충주자사시) : 충주 자사 시절이었다.
栽松滿後院(재송만후원) : 후원에 심은 소나무 가득
種柳蔭前墀(종류음전지) : 섬돌 위에 버드나무 그늘졌어라.
彼皆非吾土(피개비오토) : 그곳은 모두 우리 땅 아니었지만
栽種尙忘疲(재종상망피) : 심고 가꾸어도 피곤함을 몰랐어라.
況茲是我宅(황자시아댁) : 하물며 이곳은 바로 우리 집인데
葺藝固其宜(즙예고기의) : 수리하고 가꿈은 진정 마땅하여라.
平旦領僕使(평단령복사) : 이른 아침 종들을 거느리고
乘春親指揮(승춘친지휘) : 봄을 맞아 직접 지휘하였다.
移花夾暖室(이화협난실) : 꽃나무는 온실에 가득 채우고
徙竹覆寒池(사죽복한지) : 대나무는 옮겨 연못을 덮어라.
池水變綠色(지수변녹색) : 연못의 물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池芳動淸輝(지방동청휘) : 연못의 방초들은 깨끗해 졌어라.
尋芳弄水坐(심방농수좌) : 꽃을 찾고 물과 놀며 앉았노라면
盡日心熙熙(진일심희희) : 종일토록 마음은 희희낙락 즐거워라.
一物苟可適(일물구가적) : 한 물건이라도 진실로 마음에 맞으면
萬緣都若遺(만연도야유) : 만사는 모두 잊어버림과 마찬가지라.
設如宅門外(설여댁문외) : 설사 문 밖 세상에서
有事吾不知(유사오부지)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몰라라.

병중봉추초객야작(病中逢秋招客夜酌)-백거이(白居易)
병중에 가을밤 손님을 청해 술자리를 갖다
不見詩酒客(부견시주객) : 시객도 주객도 만나지 못한 채
臥來半月餘(와내반월여) : 누워서 반 달 여를 지나왔었다.
合和新藥草(합화신약초) : 새 약초를 섞어보고
尋檢舊方書(심검구방서) : 예 의약서적도 찾아보았다.
晩霽煙景度(만제연경도) : 안개 지난 뒤 저녁이 개어
早涼牕戶虛(조량창호허) : 이른 추위에 창문도 허전하다.
雪生衰鬢久(설생쇠빈구) : 늙은 귀밑머리 서리 내린지 오래인데
秋入病心初(추입병심초) : 병든 마음에 가을이 들기 시작한다.
臥簟蘄竹冷(와점기죽냉) : 자리에 누우니 기죽자리가 차갑고
風襟邛葛疎(풍금공갈소) : 옷깃에 바람부니 공갈도 성기다.
夜來身校健(야내신교건) : 밤에는 몸도 비교적 건강한데
小飮復何如(소음복하여) : 술 조금 마신들 또 무슨 일 있겠는가.

과낙산인야거소지(過駱山人野居小池)-백거이(白居易)
낙산 사람의 교외 집 연못에 들러
茅覆環堵亭(모복환도정) : 띠 풀로 지붕 올리고 담 두른 정자
泉添方丈沼(천첨방장소) : 샘물 들여 만든 작은 연못 있다.
紅芳照水荷(홍방조수하) : 붉은 꽃, 물에 비치는 연잎
白頸觀魚鳥(백경관어조) : 하얀 목을 빼어 물고기 노리는 새.
拳石苔蒼翠(권석태창취) : 주먹만한 돌에 이끼가 푸르고
尺波煙杳眇(척파연묘묘) : 한 자 길이 물결마다 안개가 자욱하다.
但問有意無(단문유의무) : 뜻이 있는가, 없는가만 묻고
勿論池大小(물논지대소) : 연못이 크고 작음은 논하지 말라.
門前車馬路(문전거마노) : 문 앞에 수레와 말이 다니는 길
奔走無昏曉(분주무혼효) : 밤낮 없이 달리는구나.
名利驅人心(명리구인심) : 명예와 이익에 사람 마음 달리게 하여
賢愚同擾擾(현우동요요) : 어질거나 어리석은 사람 모두가 바쁘구나.
善哉駱處士(선재낙처사) : 훌륭하도다, 낙산의 선비여
安置身心了(안치신심료) : 몸과 마음을 편안히도 가지시구려.
何乃獨多君(하내독다군) : 어찌 다만 그대 같은 사람 많을까
丘園居者少(구원거자소) : 전원에 사는 사람 적어서랍니다.

자영(自詠)-백거이(白居易)
스스로 읊다
夜鏡隱白髮(야경은백발) : 밤에 거울 속에 백발이 숨어있고
朝酒發紅顔(조주발홍안) : 아침술에 얼굴이 붉어진다 .
可憐假年少(가련가년소) : 가련하다, 여생이 얼마 되지 않음이여
自笑須臾間(자소수유간) : 짧은 인생, 절로 우습다.
朱砂賤如土(주사천여토) : 주사를 흙처럼 천하게 여겨
不解燒爲丹(부해소위단) : 태우면 단약이 됨을 알지 못한다.
玄鬢化爲雪(현빈화위설) : 검은 머리 백발이 되어도
未聞休得官(미문휴득관) : 아직 벼슬을 그만 두지 못한다.
咄哉箇丈夫(돌재개장부) : 한심하여라, 못난 한 사내여
心性何墮頑(심성하타완) : 심성이 얼마나 게으르고 어리석은가.
但遇詩與酒(단우시여주) : 시와 술만 만나면 야
便忘寢與餐(편망침여찬) : 잠자고 먹는 일도 잊어버린다.
高聲發一吟(고성발일음) : 소리 높여 한번 읊으면
似得詩中仙(사득시중선) : 마치 시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引滿飮一琖(인만음일잔) : 가득 채워 술 한 잔 마시면
盡忘身外緣(진망신외연) : 세상일은 모두를 잊어버린다.
昔有醉先生(석유취선생) : 그 옛날 취선생은
席地而幕天(석지이막천) : 땅을 자리로 삼고 하늘을 장막으로 삼는다.
于今居處在(우금거처재) : 지금 거처할 곳이 있어
許我當中眠(허아당중면) : 나는 그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眠罷又一酌(면파우일작) : 잠에서 깨면 또 술 한 잔 마시고
酌罷又一篇(작파우일편) : 마시고 나서 또 한 편의 시를 읊는다.
回面顧妻子(회면고처자) : 고개 돌려 처자식을 보니
生計方落然(생계방낙연) : 생계는 이제 막막하다.
誠知此事非(성지차사비) : 정말 이런 일이 잘못인 줄 알고
又過知非年(우과지비년) : 또 내 나이 잘못을 아는 나이 50세가 지났다.
豈不欲自改(개부욕자개) : 어찌 스스로 고치려하지 않았을까만
改卽心不安(개즉심부안) : 고치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且向安處去(차향안처거) : 우선 마음 편히 가지면서
其餘皆老閑(기여개노한) : 그 나머지 일은 모두 버려두고 살리라.

낙하복거(洛下卜居)-백거이(白居易)
낙양성으로 옮겨 살아
三年典郡歸(삼년전군귀) : 삼 년 고을을 맡고 돌아오며
所得非金帛(소득비금백) : 얻은 것은 황금과 비단이 아니었다.
天竺石兩片(천축석량편) : 천축석 두 조각
華亭鶴一隻(화정학일척) : 화정학 한 마리였다.
飮啄供稻粱(음탁공도량) : 마시고 쪼는데 벼와 기장을 주고
包裹用茵席(포과용인석) : 싸가지고 옴에는 방석 자리를 썼다.
誠知是勞費(성지시노비) : 수고와 낭비를 잘 알지만
其奈心愛惜(기나심애석) : 마음으로 아끼는 것을 어찌하랴.
遠從餘杭郭(원종여항곽) : 멀리 항주의 성곽에서
同到洛陽陌(동도낙양맥) : 낙양의 거리까지 같이 왔다.
下擔拂雲根(하담불운근) : 짐을 내리고 돌을 풀어놓고
開籠展霜翮(개농전상핵) : 새장을 여니 화정학이 흰 날개를 펼친다.
貞姿不可雜(정자부가잡) : 곧은 자태는 섞일 수가 없고
高性宜其適(고성의기적) : 고고한 성품은 유유자적함에 어울린다.
遂就無塵坊(수취무진방) : 마침내 먼지 없는 깨끗한 마을에 나가
仍求有水宅(잉구유수댁) : 연못 있는 집을 찾았다.
東南得幽境(동남득유경) : 성의 동남쪽에 그윽한 땅을 마련하니
樹老寒泉碧(수노한천벽) : 우거진 나무, 차가운 샘물은 푸르다.
池畔多竹陰(지반다죽음) : 못가에 대나무 그림자 짙은데
門前少人跡(문전소인적) : 문 앞에는 사람의 자취 드물다.
未請中庶祿(미청중서녹) : 중서성의 복록을 청하지 않아
且脫雙驂易(차탈쌍참역) : 말 두 필 풀어주고 바꾸었다.
豈獨爲身謀(개독위신모) : 어찌 내 몸만을 위해 도모하리오
安吾鶴與石(안오학여석) : 나의 화정학과 천축석도 편안하게 하리라.

과이생(過李生)-백거이(白居易)
이생의 집을 지나며 들러
蘋小蒲葉短(빈소포섭단) : 개구리밥 작고 창포잎 짧은데
南湖春水生(남호춘수생) : 남호의 봄 물결 일어난다.
子近湖邊住(자근호변주) : 그대 호숫가에 머물러 사는데
靜境稱高情(정경칭고정) : 고요한 경치 고상한 인품과 어울린다.
我爲郡司馬(아위군사마) : 나는 강주사마가 되어서는
散拙無所營(산졸무소영) : 산만하고 재주 없어 해내는 일 하나 없다.
使君知性野(사군지성야) : 태수도 나의 거친 성격 알고 있으리니
衙退任閒行(아퇴임한항) : 관아에서 퇴근하며 한가히 걸어본다.
行攜小榼去(항휴소합거) : 나가면서 작은 술통 가지고 떠나
逢花輒獨傾(봉화첩독경) : 꽃 볼 때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半酣到子舍(반감도자사) : 거나하게 취하니 그대 집에 이르러
下馬叩柴荊(하마고시형) : 말에서 내려 사립문을 두드린다.
何以引我步(하이인아보) : 무엇이 나의 발걸음 이끌었을까
繞籬竹萬莖(요리죽만경) : 울타리 둘러싼 울창한 대나무 줄기로다.
何以醒我酒(하이성아주) : 무엇이 나의 술을 깨게 하였을까
吳音吟一聲(오음음일성) : 노나라 노랫소리 한 곡조 읊음이었다.
須臾進野飯(수유진야반) : 잠깐 만에 들어온 시골 밥상
飯稻茹芹英(반도여근영) : 거친 밥에 미나리꽃 반찬이었다.
白甌靑竹箸(백구청죽저) : 흰 사발에 푸른 대젓가락
儉潔無羶腥(검결무전성) : 검소하고 정결하여 비린내가 전혀 없다.
欲去復徘徊(욕거복배회) : 떠나려다가 다시 망설이는데
夕鴉已飛鳴(석아이비명) : 저녁 갈가마귀 이미 와 울며 난다.
何當重遊此(하당중유차) : 어느 때나 다시 와서 이렇게 놀아보나
待君湖水平(대군호수평) : 호수가 잔잔할 때 그대 기다려 보련다.

문조앵(聞早鶯)-백거이(白居易)
아침 꾀고리 소리 들으며
日出眠未起(일출면미기) : 해가 솟아도 잠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屋頭聞早鶯(옥두문조앵) : 지붕 위에서 앵무새 소리 들린다.
忽如上林曉(홀여상림효) : 홀연 상림원의 새벽에
萬年枝上鳴(만년지상명) : 만년수 나뭇가지 위 우는 듯 하다.
憶爲近臣時(억위근신시) : 돌이켜 보건데, 천자의 근신이었던 때
秉筆直承明(병필직승명) : 붓을 잡고 승명원에서 당직했었다.
春深視草暇(춘심시초가) : 봄은 깊어가고 글을 보던 여가시간
旦暮聞此聲(단모문차성) : 아침저녁으로 이 소리를 들었었다.
今聞在何處(금문재하처) : 지금 듣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寂寞潯陽城(적막심양성) : 바로 적막한 심양성이로다.
鳥聲信如一(조성신여일) : 새소리는 진실로 하나같지만
分別在人情(분별재인정) : 사람의 마음 따라 달라지는 법이어라.
不作天涯意(부작천애의) : 하늘 끝 떠도는 마음 되지 못하면
豈殊禁中聽(개수금중청) : 어찌 대궐 안에서 듣는 것과 다르리오.

수조(垂釣)-백거이(白居易)
낚싯대 드리우며
臨水一長嘯(임수일장소) : 강가에서 길게 휘파람 불어보니
忽思十年初(홀사십년초) : 문득 지난 십 년 전 일이 생각난다.
三登甲乙第(삼등갑을제) : 세 번 진사과에 합격하고
一入承明廬(일입승명려) : 한 번 한림원에 들어갔었다.
浮生多變化(부생다변화) : 덧없는 인생 변화가 많나니
外事有盈虛(외사유영허) : 세상일이란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법.
今來伴江叟(금내반강수) : 지금은 강가의 노인들과 벗하어
沙頭坐釣魚(사두좌조어) : 모랫가에 앉아서 물고기 낚고 있다.

소지이수2(小池二首2)-백거이(白居易)
작은 연못
有意不在大(유의부재대) : 뜻이 큰 곳에 있지 않아
湛湛方丈餘(담담방장여) : 담담하여 마음이 여유롭구나.
荷側瀉淸露(하측사청노) : 연꽃 곁에 맑은 이슬 쏟아지고
萍開見游魚(평개견유어) : 개구리밥 열리니 헤엄치는 물고기들.
每一臨此坐(매일림차좌) : 매번 이 곳에 앉을 적마다
憶歸靑溪居(억귀청계거) : 청계의 거처에 돌아가고 싶어라.

소지이수1(小池二首1)-백거이(白居易)
작은 연못 ㅍ
晝卷前齋熱(주권전재열) : 낮에는 앞 서재가 더웠는데
晩愛小池淸(만애소지청) : 저녁에는 작은 연못에 물이 맑다.
映林餘景沒(영림여경몰) : 햇볕 든 숲에 경치가 어둑한데
近水微涼生(근수미량생) : 가까운 물가에 미풍이 가볍게 인다.
坐把蒲葵扇(좌파포규선) : 앉은 채로 포규선 손에 잡고
閒吟三兩聲(한음삼량성) : 한가하게 두 세 마디 시를 읊는다.

팽규(烹葵)-백거이(白居易)
아욱을 삶으며
昨臥不夕食(작와부석식) : 저제 석식을 먹지 않고 누웠더니
今起乃朝飢(금기내조기) : 이제 일어나니 아침 시장기가 생긴다.
貧廚何所有(빈주하소유) : 가난한 집 부엌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炊稻烹秋葵(취도팽추규) : 밥 짓고 가을 아욱 정도를 삶는다.
紅粒香復軟(홍립향복연) : 붉은 밥알은 향기롭고도 부드럽고
綠英滑且肥(녹영골차비) : 녹색 꽃부리는 부드럽고도 두터워라.
飢來止於飽(기내지어포) : 굶주리면 배가 불러져야 그치고
飽後復何思(포후복하사) : 배불리 먹었으면 다시 무얼 생각하리오.
憶昔榮遇日(억석영우일) : 지난 날 영화로웠던 그날을 생각하니
迨今窮退時(태금궁퇴시) : 궁하게 물러난 지금에 이르렀다.
今亦不凍餒(금역부동뇌) : 지금도 굶주리지 않고
昔亦無餘資(석역무여자) : 지난날도 여유 있지는 않았었다.
口旣不減食(구기부감식) : 밥 먹기에 굶지 않고
身又不減衣(신우부감의) : 몸에는 옷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撫心私自問(무심사자문) : 가슴을 부비며 혼자서 물어보노니
何者是榮衰(하자시영쇠) : 무엇이 영달이고 무엇이 쇠락이던가.
勿學常人意(물학상인의) : 배우지 말자, 세상 사람의 마음 속 생각
其間分是非(기간분시비) : 영달과 쇠락 간에 시비 가리는 그 마음을.

등향노봉정(登香爐峯頂)-백거이(白居易)
향로봉 정상을 오르며
迢迢香爐峯(초초향노봉) : 아득하다, 향로봉이여
心存耳目想(심존이목상) : 마음으로는 듣고 싶고 보고 싶었어라.
終年牽物役(종년견물역) : 해가 다가도록 세상일에 끌리어
今日方一往(금일방일왕) : 오늘에야 한번 오르는구나.
攀蘿蹋危石(반나답위석) : 넝쿨을 부여잡고 높은 바위 타고
手足勞俯仰(수족노부앙) : 굽어보고 쳐다보아 손발이 피곤하여라.
同遊三四人(동유삼사인) : 함께 노닌 사람이 서너 명
兩人不敢上(양인부감상) : 두 사람은 감히 오르지도 못했어라.
上到峯之頂(상도봉지정) : 위로 향로봉 정상에 올라보니
目眩心怳怳(목현심황황) : 눈은 어지럽고 마음은 두려웠어라.
高低有萬尋(고저유만심) : 높고 낮은 높이는 만 길인데
濶狹無數丈(활협무삭장) : 넓고 좁은 폭은 몇 길도 안 되어라.
不窮視聽界(부궁시청계) : 끝없는 보이고 들리는 세계
焉識宇宙廣(언식우주광) : 우주의 광활함을 어찌 알겠는가.
江水細如繩(강수세여승) : 양자강은 노끈처럼 가늘고
湓城小於掌(분성소어장) : 분성은 손바닥보다 작아라.
紛吾何屑屑(분오하설설) : 어지럽거니, 나는 그리도 자잘한가
未能脫塵鞅(미능탈진앙) : 아직도 세속의 굴레를 벗지 못하여라.
歸去思自嗟(귀거사자차) : 돌아가려니 생각할수록 한탄스러워
低頭入蟻壤(저두입의양) : 고개 숙이고 개미 땅 속으로 들어가노라.

상향노봉(上香爐峯)-백거이(白居易)
향로봉에 오르며
倚石攀蘿歇病身(의석반나헐병신) : 바위에 기대고 덩굴 잡아 병든 몸 쉬노니
靑笻竹杖白紗巾(청공죽장백사건) : 흰 깁 수건에 푸른 대나무 지팡이 짚었구나.
他時畫出廬山障(타시화출려산장) : 훗 날 여산의 언덕을 그려내리니
便是香爐峯上人(편시향노봉상인) : 곧 향로봉 위에 있는 이 사람이리라.

세모(歲暮)-백거이(白居易)
한 해가 다가는데
已任時命去(이임시명거) : 이미 시운이 가는대로 맡기고
亦從歲月除(역종세월제) : 또한 세월이 가는대로 따라간다.
中心一調伏(중심일조복) : 심중을 하나로 바로 가져
外累盡空虛(외누진공허) : 외부의 얽힘을 다 비워버렸다.
名宦意已矣(명환의이의) : 명예로운 벼슬자리에 대한 마음 버리고
林泉計何如(임천계하여) : 자연으로 돌아갈 생각이 어떠한가.
擬近東林寺(의근동림사) : 동림사 가까운 곳 어디
溪邊結一廬(계변결일려) : 개울가에 한 채의 오두막 지어볼까.

출산음(出山吟)-백거이(白居易)
나아가 산을 읊다
朝詠遊仙詩(조영유선시) : 아침에는 유선시를 읊고
暮歌采薇曲(모가채미곡) : 저녁에는 채미가를 노래한다.
臥雲坐白石(와운좌백석) : 구름에 눕고 흰 바위에 앉아
山中十五宿(산중십오숙) : 산속에서 보름 동안을 보냈다 .
行隨出洞水(항수출동수) : 걸어서 골짜기 나오는 물을 따르고
回別緣巖竹(회별연암죽) : 되돌오며 바위가 대나무를 떠난다.
早晩重來遊(조만중내유) : 조만간 다시 와 놀리니
心期瑤草綠(심기요초녹) : 마음으로 요초의 푸르름 기대한다.

춘침(春寢)-백거이(白居易)
봄잠에 겨워
何處春暄來(하처춘훤내) : 어디서 봄날의 따스함이 오는가
微和生血氣(미화생혈기) : 조금 풀린 날씨에 혈기가 일어난다.
氣薰肌骨暢(기훈기골창) : 날씨가 온화하니 기골에 생기 통하고
東窓一昏睡(동창일혼수) : 동쪽 창가에서 한바탕 깊은 잠에 빠졌다.
是時正月晦(시시정월회) : 때는 바야흐로 정월 그믐날
假日無公事(가일무공사) : 휴가일이라 공무도 하나 없도다.
爛熳不能休(난만부능휴) : 깊은 잠에서 깰 수가 없고
自午將及未(자오장급미) : 오시부터 미시가 가까워진다.
緬思少健日(면사소건일) : 아련히 젊고 건강한 날 생각해보니
甘寢常自恣(감침상자자) : 달콤한 잠, 언제나 절로 가능했었다.
一從衰疾來(일종쇠질내) : 일단 한번 늙고 병들어버린 뒤로
枕上無此味(침상무차미) : 잠자리가 이처럼 맛있는 적은 없었다.

배정독숙(北亭獨宿)-백거이(白居易)
북정에 홀로 묵으며
悄悄壁下床(초초벽하상) : 초조한 벽 아래 침상 있노라니
紗籠耿殘燭(사농경잔촉) : 비단 초롱에는 촛불이 깜빡인다.
夜半獨眠覺(야반독면교) : 밤 깊어 홀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疑在僧房宿(의재승방숙) : 내가 절간 승방에서 자고 있는가.

숙간적관(宿簡寂觀)-백거이(白居易)
간적관에 묵다
巖白雲尙屯(암백운상둔) : 바위에 흰구름 아직 모여 있고
林紅葉初隕(림홍섭초운) : 숲에는 붉은 단풍잎 처음으로 진다.
秋光引閒步(추광인한보) : 가을 경치에 끌리어 한가히 걸으니
不知行遠近(부지항원근) :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도 모르겠구나.
夕投靈洞宿(석투령동숙) : 저녁에 영동관에 투숙하니
臥覺塵機泯(와각진기민) : 누우니 세상 속된 기운 사라짐을 느낀다.
名利心旣忘(명리심기망) : 명예와 이익, 마음속에서 이미 잊고
市朝夢亦盡(시조몽역진) : 저잣거리와 조정의 일들 꿈에서도 사라졌다.
暫來尙如此(잠내상여차) : 잠시 와 있어도 이러하거늘
況乃終身隱(황내종신은) : 하물며 평생토록 숨어산다면 어떠할까.
何以療夜飢(하이료야기) : 무엇으로 저녁 시장기 면하여볼까
一匙雲母粉(일시운모분) : 한 숟가락 운모 가루나 먹어 보련다.

조춘(早春)-백거이(白居易)
이른 봄날
雪消冰又釋(설소빙우석) : 눈 녹고 얼음마저 풀리어
景和風復暄(경화풍복훤) : 햇볕 온화하여 바람도 따뜻하다.
滿庭田地濕(만정전지습) : 뜰에 가득한 햇볕, 땅에 촉촉 비
薺葉生牆根(제섭생장근) : 냉이는 담장 아래에서 자란다.
官舍悄無事(관사초무사) : 관사에는 초조하게 일 하나 없고
日西斜掩門(일서사엄문) :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문을 닫는다.
不開莊老卷(부개장노권) : 장자와 노자의 책 펴지 않으려니
欲與何人言(욕여하인언) : 누구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야 하나.

답고인(答故人)-백거이(白居易)
친구에게 답하여
故人對酒歎(고인대주탄) : 친구가 술잔 마주하고 탄식하니
歎我在天涯(탄아재천애) : 내가 먼 하늘 끝에 있음을 탄식한다네.
見我昔榮遇(견아석영우) : 지난 날 내가 영전하게 됨을 보고는
念我今蹉跎(념아금차타) : 내가 지금 역경에 처해있음을 생각하네.
問我爲司馬(문아위사마) : 나에게 묻기를, 사마가 되었다가
官意復如何(관의복여하) : 새로 관직을 가진 마음이 어떠한가 물었다네.
答云且勿歎(답운차물탄) : 대답하여 이르기를, 탄식하지 말고
聽我爲君歌(청아위군가) : 들어보게나,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라.
我本蓬蓽人(아본봉필인) : 나는 본래 빈곤하고 천한 사람
鄙賤劇泥沙(비천극니사) : 지루하고 천함이 흙모래보다 심하다오.
讀書未百卷(독서미백권) : 책 읽은 것이 백 권도 못되고
信口嘲風花(신구조풍화) : 되는 대로 풍월을 지껄인다오.
自從筮仕來(자종서사내) : 벼슬길에 들어선 이래로
六命三登科(륙명삼등과) : 여섯 번 전임되고 세 번을 과거에 올랐다네.
顧慙虛劣姿(고참허렬자) : 돌아보건 데 부끄러워라, 자질은 보잘 것 없고
所得亦已多(소득역이다) : 소득도 또한 이미 많아졌다네.
散員足庇身(산원족비신) : 한직의 관직이나 몸을 충분히 비호하고
薄俸可資家(박봉가자가) : 박봉이나 집안 살림은 꾸릴 만하다네.
省分輒自愧(생분첩자괴) : 순수를 살피니 문득 스스로 부끄러웠다네.
豈爲不遇耶(개위부우야) : 어찌 하여 불우하게 되었던가
煩君對杯酒(번군대배주) : 번거롭게도 그대 술잔 마주하고
爲我一咨嗟(위아일자차) : 네 한 몸 때문에 탄식하게 되었다네.

배정(北亭)-백거이(白居易)
북쪽 정자에서
廬宮山下州(여궁산하주) : 여궁의 산 아래 고을
湓浦沙邊宅(분포사변댁) : 분수 갯가에 집이 있도다.
宅北倚高岡(댁배의고강) : 집의 북쪽에 기댄 높은 언덕
迢迢數千尺(초초삭천척) : 아득하여 수천 척이나 높아라.
上有靑靑竹(상유청청죽) : 위에는 푸른 대숲이 있고
竹間多白石(죽간다백석) : 대숲 사이에 흰 돌도 많아라.
茅亭居上頭(모정거상두) : 띠풀 정자가 위에 있어
豁達門四闢(활달문사벽) : 환하게 사방으로 문이 열려있다.
前楹捲簾箔(전영권렴박) : 앞 기둥에서 발을 걷어 올리고
北牖施牀席(배유시상석) : 북쪽 창 쪽에 침상을 깔아놓았다.
江風萬里來(강풍만리내) : 강바람은 만 리나 멀리 와
吹我涼淅淅(취아량석석) : 서걱거리며 나에게로 불어온다.
日高公府歸(일고공부귀) : 해가 높아서야 관청에서 돌아와서
巾笏隨手擲(건홀수수척) : 두건과 홀을 닥치는 대로 던져놓는다.
脫衣恣搔首(탈의자소수) : 옷을 벗고 마음대로 머리 긁다가
坐臥任所適(좌와임소적) : 발걸음 가는 곳에서 앉았다 누웠다 한다.
時傾一盃酒(시경일배주) : 가끔씩 술 한 잔 기울이며
曠望湖天夕(광망호천석) : 멀리 저녁의 하늘과 호수를 바라본다.
口詠獨酌謠(구영독작요) : 시를 읊으며 혼자 술 따르고 노래하며
目送歸飛翮(목송귀비핵) : 눈으로 날아 돌아가는 새를 보노라.
慙無出塵操(참무출진조) : 부끄러워라, 세상을 벗지 못한 마음
未免折腰役(미면절요역) : 허리를 꺾는 수고를 면하지 못했구나.
偶獲此閑居(우획차한거) : 우연히 이러한 한가로운 거처를 얻어
謬似高人跡(류사고인적) : 외람되게도 고상한 선비 자취를 보인다.

군정(郡亭)-백거이(白居易)
고을 정자
平旦起視事(평단기시사) : 이른 새벽 일어나 일을 보고
亭午臥掩關(정오와엄관) : 정오의 정자에서 누워 문을 가린다.
除親簿領外(제친부령외) : 공문서를 가까이 하는 일 외에
多在琴書前(다재금서전) : 자주 거문고와 책 앞에 있도다.
況有虛白亭(황유허백정) : 하물며 허백정이 있는데야
坐見海門山(좌견해문산) : 어찌 앉아서 해문산만 바라보랴.
潮來一凭檻(조내일빙함) : 조수가 밀려오면 난간에 기대어 보고
賓至一開筵(빈지일개연) : 손님이 오면 술자리를 마련하노라.
終朝對雲水(종조대운수) : 아침이 다하도록 구름과 물을 바라보고
有時聽管絃(유시청관현) : 때때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持此聊過日(지차료과일) : 이렇게 그럭저럭 나날을 보내니
非忙亦非閑(비망역비한) : 바쁘지도 않고 한가하지도 않도다.
山林太寂寞(산림태적막) : 산림은 너무 적막하기만 하고
朝闕空喧煩(조궐공훤번) : 조정은 헛되이 시끄럽고 번잡하다 .
唯茲郡閤內(유자군합내) : 오직 이곳의 정자 안에서만은
囂靜得中間(효정득중간) :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아 좋아라.

호중자조(湖中自照)-백거이(白居易)
호수 안에 자신을 비추어보다
重重照影看容鬢(중중조영간용빈) : 몇 번이고 그림자 비춰, 얼굴과 살쩍을 바라본니
不見朱顔見白絲(부견주안견백사) : 혈색있는 젊은 얼굴 보이지 않고 흰 머리만 보인다.
失却少年無覓處(실각소년무멱처) : 젊은 날들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없으니
泥他湖水欲何爲(니타호수욕하위) : 남의 호수에 빠져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추일회표직(秋日懷杓直)-백거이(白居易)
어느 가을날에 표직을 떠올리며
晩來天色好(만내천색호) : 저녁이 되니 하늘빛이 좋아
獨出江邊步(독출강변보) : 홀로 나가 강변을 거닌다.
憶與李舍人(억여리사인) : 기억하노니, 이 사인과 함께
曲江相近住(곡강상근주) : 곡강 서로 가까이 살았던일을.
常云遇淸景(상운우청경) : 항상 이르기를, 좋은 경치 만나면
必約同幽趣(필약동유취) : 그윽한 정취 함께 하자 약속했었다 .
若不訪我來(야부방아내) : 만약에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還須覓君去(환수멱군거) : 도리어 반드시 그대 찾아 나섰었다.
開眉笑相見(개미소상견) : 미간을 펴고 웃으며 서로 만나
把手期何處(파수기하처) : 손을 잡고 어느 곳을 약속했던가.
西寺老胡僧(서사노호승) : 서쪽 절에는 늙은 서역 중이 있었는데
南園亂松樹(남원난송수) : 남쪽 동산에는 소나무 어지럽게 있었다.
攜持小酒榼(휴지소주합) : 작은 술통을 가지고 가서
吟詠新詩句(음영신시구) : 새로 지은 시구를 읊었다.
同出復同歸(동출복동귀) : 같이 나갔다가 다시 같이 돌아와
從朝直至暮(종조직지모) : 아침부터 저적까지 줄곧 함께 하였다.
風雨忽消散(풍우홀소산) : 비바람처럼 갑자기 서로 흩어져
江山眇回互(강산묘회호) : 강산을 두고 아득히 서로 바라 보게 되었다.
潯陽與涔陽(심양여잠양) : 심양과 잠양에서
相望空雲霧(상망공운무) : 쓸쓸한 구름과 안개 사이를 바라만 본다.
心期自乖曠(심기자괴광) : 마음의 기약을 스스로 어겼지만
時景還如故(시경환여고) : 시절의 경치는 여전히 지난날과 같다.
今日郡齋中(금일군재중) : 오늘 마을 관사에서는
秋光誰共度(추광수공도) : 가을풍광을 누구와 함께 지낼 것인가.

식후(食後)-백거이(白居易)
식후에
食罷一覺睡(식파일각수) : 식사 후, 한 숨의 잠
起來兩甌茶(기내량구다) : 깨어나면, 두 잔의 차.
擧頭看日影(거두간일영) : 머리 들어 해 그림자 보니
已復西南斜(이복서남사) : 이미 서남쪽으로 기울었다.
樂人惜日促(낙인석일촉) : 즐거운 사람은 한 날이 짧음 아쉬워하고
憂人厭年賖(우인염년사) : 우울한 사람은 한 해가 더디 감을 싫어한다.
無憂無樂者(무우무낙자) : 우울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은
長短任生涯(장단임생애) : 인생의 길고 짧음도 생애에 맡기노라.

중하재계월(仲夏齋戒月)-백거이(白居易)
한여름 한거 기간에
仲夏齋戒月(중하재계월) : 한여름 한거 기간
三旬斷腥羶(삼순단성전) : 한달 동안, 육식을 끊었다 .
自覺心骨爽(자각심골상) : 마음과 몸이 상쾌함을 느껴
行起身翩翩(항기신편편) : 일어나다님에 몸이 날 것같다.
始知絶粒人(시지절립인) : 이제야 알겠다, 곡기 끊은 사람이
四體更輕便(사체경경편) : 사지가 더욱 가볍고 편해짐을.
初能脫病患(초능탈병환) : 처음에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久必成神仙(구필성신선) : 오래 계속하면 신선이 되리라.
禦寇馭冷風(어구어냉풍) : 열어구가 시원한 바람 부리고
赤松游紫煙(적송유자연) : 적송자가 붉은 연기 속에서 논 일들.
常疑此說謬(상의차설류) : 항상 이러한 말이 거짓이라 의심했는데
今乃知其然(금내지기연) : 이제야 그런 것들이 사실임을 알겠다.
我年過伴百(아년과반백) : 내 나이 이미 반백이 지나고
氣衰神不全(기쇠신부전) : 기력이 쇠하고 정신도 온전하지 않다.
已垂兩鬢絲(이수량빈사) : 이미 두 귀밑머리도 실같이 드리우고
難補三丹田(난보삼단전) : 세 단전에 기운 보충하기도 어렵도다.
但減葷血味(단감훈혈미) : 다만 훈채롸 고기맛이라도 줄여서
稍結淸淨緣(초결청정연) : 조금이라도 청정의 인연을 맺어보리라.
脫巾且修養(탈건차수양) : 벼슬살이 하면서 수양도 하여
聊以終天年(요이종천년) : 애오라지 하늘이 주신 나이를 누려보련다.

완신정수인영소회(翫新庭樹因詠所懷)-백거이(白居易)
뜰에 새로난 나무를 보며 감회를 읊다
靄靄四月初(애애사월초) : 구름 어둑한 사월 초순
新樹葉成陰(신수섭성음) : 새로 나온 나뭇잎 그늘졌구나.
動搖風景麗(동요풍경려) : 흔들리는 풍경이 아름답고
蓋覆庭院深(개복정원심) : 나뭇잎으로 덮인 뜰은 깊숙하다.
下有無事人(하유무사인) : 나무 아래에 일 없는 사람 있어
竟日此幽尋(경일차유심) : 종일토록 이러한 그윽한 곳 찾는다.
豈唯翫時物(개유완시물) : 어찌 시절 물상만을 보았을까
亦可開煩襟(역가개번금) : 번뇌하는 속마음도 열 수 있다.
時與道人語(시여도인어) : 때때로 도사와 말을 나누고
或聽詩客吟(혹청시객음) : 가끔씩 시인들과 시를 읊는다.
度春足芳色(도춘족방색) : 봄 지나가도 향긋한 기분 충분하고
入夜多鳴禽(입야다명금) : 밤에 드니 지저귀는 새소리 많아진다.
偶得幽閑境(우득유한경) : 우연히 깊고 한적한 곳 찾으니
遂忘塵俗心(수망진속심) : 잡되고 속된 마음 다 잊어버렸다.
始知眞隱者(시지진은자) : 이제야 알았느니, 진정한 은자란
不必在山林(부필재산림) : 반드시 살림 속에 있어야 함이 아님을.

청조음(淸調吟)-백거이(白居易)
청조로 부르는 노래
索索風戒寒(색색풍계한) : 씽씽 부는 바람은 추위를 경계시키고
沈沈日藏耀(침침일장요) : 어둑해지는 해는 그 빛을 감추는구나.
勸君飮濁醪(권군음탁료) : 권하노니, 탁주를 마시며
聽我吟淸調(청아음청조) : 나의 청조로 읊는 노래를 들어주게나.
芳節變窮陰(방절변궁음) : 방초의 계절이 음산한 계절로 변하고
朝光成夕照(조광성석조) : 아침의 햇살이 저녁의 황혼으로 되었구나.
與君生此世(여군생차세) : 그대와 이 세상 살아가지만
不合長年少(부합장년소) : 오랜 세월 젊지만은 않으리라.
今晨從此遊(금신종차유) : 오늘 아침은 이처럼 다니지만
明日安能料(명일안능료) : 내일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若不結跏禪(야부결가선) : 가부좌 틀고 참선하지 않는다면
卽須開口笑(즉수개구소) : 곧바로 입 벌리고 웃어야 하리라.

억강남2(憶江南2)-백거이(白居易)
강남을 생각하며
江南憶(강남억) : 강남을 생각하면,
最憶是杭州(최억시항주) : 가장 생각나는 곳은 항주이어라.
山寺月中尋桂子(산사월중심계자) : 산사에 달빛 비치는 가운데에 물푸레나무 찾고
郡亭枕上看潮頭(군정침상간조두) : 고을 정자에서 베게 베고 강 어구의 조수를 보았나니
何日得重游(하일득중유) : 어느날에야 다시 놀아볼 수 있을까.

달리이수1(達理二首1)-백거이(白居易)
사리에 통달하여
何物壯不老(하물장부노) : 무엇이 장성하고 늙지 않겠으며
何時窮不通(하시궁부통) : 어느 시운이 궁하고 통하지 않겠는가
如彼音與律(여피음여률) : 저 음률과 꼭 같아서
宛轉旋爲宮(완전선위궁) : 완연히 변하였다가 처음 음으로 돌아간다.
我命獨何薄(아명독하박) : 나의 운명은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여
多悴而少豐(다췌이소풍) : 곤란하고 피곤한 일만 많고 풍성한 일은 적은가.
當壯已先衰(당장이선쇠) : 장녕에 이미 남 먼저 늙어서
暫泰還長窮(잠태환장궁) : 잠깐 운수가 트였다가 도리어 길이 궁하여라.
我無奈命何(아무나명하) : 나는 나의 운명을 어찌할 수 없어
委順以待終(위순이대종) : 맡기고 순조하며 종말을 기다리노라.
命無奈我何(명무나아하) : 운명도 나를 어찌할 수 없어
方寸如虛空(방촌여허공) :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아라.
瞢然與化俱(몽연여화구) : 흐리멍덩 자연의 조화와 함께하고
混然與俗同(혼연여속동) : 혼연히 세속과 같이 하고 살아가노라.
誰能坐此苦(수능좌차고) : 누가 능히 이러한 고통에 앉은 채로
齟齬於其中(저어어기중) : 그 안에서 거스르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달리이수2(達理二首2)-백거이(白居易)
사리에 통달하여
舒姑化爲泉(서고화위천) : 서고가 변하여 샘이 되고
牛哀病作虎(우애병작호) : 우애가 병들어 호랑이가 되었다.
或柳生肘間(혹류생주간) : 간혹 버드나무가 팔꿈치에서 생기고
或男變爲女(혹남변위녀) : 간혹 남자가 변하여 여자가 되었다.
鳥獸及水木(조수급수목) : 새와 짐승, 물과 나무
本不與民伍(본부여민오) : 본래는 백성과 함께하지 않았었다.
胡然生變遷(호연생변천) : 어렵풋이 생겨나 온갖 모양으로 변하여도
不待死歸土(부대사귀토) : 죽어서 흙으로 돌아감을 바라기는 않는다.
百骸是己物(백해시기물) : 온갖 몸들은 곧 이미 죽었으니
尙不能爲主(상부능위주) : 오히려 어찌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況彼時命間(황피시명간) : 하물며 저 시간과 운명의 사이에 있어서야
倚伏何足數(의복하족삭) : 바뀌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時來不可遏(시내부가알) : 시운이 다가 옴을 막을 수 없고
命去焉能取(명거언능취) : 명운이 떠나감을 어찌 잠을 수 있겠는가
唯當養浩然(유당양호연) : 오직 호연함을 기름에 당하니
吾聞達人語(오문달인어) : 나는 달인의 말을 듣겠노라.

산중독음(山中獨吟)-백거이(白居易)
산중에서 홀로 읊다
人各有一癖(인각유일벽) : 사람은 고유한 병적 버릇 하나 있는데
我癖在章句(아벽재장구) : 나의 병적 버릇은 글 쓰는 것에 있다네.
萬緣皆已消(만연개이소) : 온갖 인연이 다 이미 사라졌지만
此病獨未去(차병독미거) : 이 병폐만 오직 아직 떠나지 않았도다.
每逢美風景(매봉미풍경) : 좋은 풍경을 만날 때마다
或對好親故(혹대호친고) : 혹 친한 친구라도 만나는 듯하다네.
高聲詠一篇(고성영일편) : 소리 높여 한 편을 읊고 나면
怳若與神遇(황야여신우) : 마치 신을 만난 듯이 멍해진다네.
自爲江上客(자위강상객) : 스스로 강호의 나그네 되어서
半在山中住(반재산중주) : 절반을 산 속에 머물러 산다네.
有時新詩成(유시신시성) : 때때로 새로 시가 지어지면
獨上東巖路(독상동암노) : 홀로 동쪽 바윗길로 올라간다네.
身倚白石崖(신의백석애) : 흰 바위 언덕에 몸을 기대고
手攀靑桂樹(수반청계수) : 손으로 푸른 계수나무 잡고 오른다네.
狂吟驚林壑(광음경림학) : 미친 듯이 읊으면 산골짜기 놀래고
猿鳥皆窺覰(원조개규처) : 원숭이와 새들도 모두 가만히 엿본다네.
恐爲世所嗤(공위세소치) :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 될까 두려워
故就無人處(고취무인처) : 그래서 사람 없는 곳으로 나간 것이라네.

영회(詠懷)-백거이(白居易)
마음 속 생각을 읊다
冉牛與顔淵(염우여안연) : 공자의 제자 염구와 안회
卞和與馬遷(변화여마천) : 옥공 변화씨와 역사가 사마천
或罹天六極(혹리천육극) : 그들은 혹 하늘의 육극을 만나고
或被人刑殘(혹피인형잔) : 혹은 인간의 가혹한 형벌을 당했다.
顧我信爲幸(고아신위행) : 나를 돌아보면, 다행하기만 하니
百骸且完全(백해차완전) : 온 몸쭝이가 우선 완전히 남아있다.
五十不爲夭(오십부위요) : 오십 살은 요절하는 것도 아닌데
吾今欠數年(오금흠삭년) : 나는 지금 몇 년이 부족할 뿐이다.
知分心自足(지분심자족) : 분수를 알면 마음은 절로 흡족하고
委順身常安(위순신상안) : 순리에 맡기면 몸은 항상 편안하도다.
故雖窮退日(고수궁퇴일) : 그래서 궁하고 물러나 있어도
而無戚戚顔(이무척척안) : 슬퍼하는 얼굴빛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昔有榮先生(석유영선생) : 옛 영계기 선생이 있어서
從事於其間(종사어기간) : 그러한 경지에 처신하였다.
今我不量力(금아부량력) : 지금 나는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擧心欲攀援(거심욕반원) : 온 마음으로 잡아당겨 올라가려고만 한다.
窮通不由己(궁통부유기) : 곤궁함과 영달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고
歡戚不由天(환척부유천) : 즐거움과 슬픔은 하늘에 달려있지도 않도다.
命卽無奈何(명즉무나하) : 운명은 곧 어찌할 수 없으나
心可使泰然(심가사태연) : 내 마음은 태연하게 할 수 있도다.
且務由己者(차무유기자) : 우선은 내 의지에 달려있는 것에 힘쓰고
省躬諒非難(생궁량비난) : 자신을 성찰하면 실로 어려운 일은 아니도다.
勿問由天者(물문유천자) : 하늘에 달려있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天高難與言(천고난여언) : 하늘은 높아서 같이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속계(贖雞)-백거이(白居易)
닭을 되사서 풀어주며
淸晨臨江望(청신림강망) : 맑은 새벽, 강가에서 바라보니
水禽正諠繁(수금정훤번) : 물새들이 마침 어지럽게도 소란스럽다.
鳧雁與鷗鷺(부안여구노) : 물오리와 기러기, 갈매기와 백로들이
游颺戲朝暾(유양희조돈) : 노닐며 날아올라 아침 햇살을 희롱한다.
適有鬻雞者(적유죽계자) : 마침 닭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
挈之來遠村(설지내원촌) : 닭들을 끌고 먼 시골에서 왔다.
飛鳴彼何樂(비명피하낙) : 날아 지저귀는 소리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窘束此何寃(군속차하원) : 막히어 갇힌 이것들은 얼마나 원망스럽겠는가.
喔喔十四雛(악악십사추) : 꼭꼬댁 거리며 악을 쓰는 열네 마리의 달들
罩縛同一樊(조박동일번) : 갇히어 한 닭장에 있구나.
足傷金距蹜(족상금거축) : 다리 다친 쇠 발톱으로 종종 걸음치고
頭搶花冠翻(두창화관번) : 머리 서로 부딪쳐 벼슬이 뒤집혀있구나.
經宿廢飮啄(경숙폐음탁) : 밤새도록 마시지도 먹이를 쪼지도 못하고
日高詣屠門(일고예도문) : 새가 높이 솟으면 도살장으로 가겠구나.
遲廻未死間(지회미사간) : 죽지 않은 기간에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은
飢渴欲相呑(기갈욕상탄) : 주리고 목말라 삼키고 싶어서라.
常慕古人道(상모고인도) : 언제나 옛사람의 도리를 흠모하여
仁信及魚豚(인신급어돈) : 어짊과 믿음이 물고기와 돼지에도 미친다.
見茲生惻隱(견자생측은) : 이 닭들을 보니 측은한 마음 일어나
贖放雙林園(속방쌍림원) : 돈 들여 되사서 쌍림원에 놓아준다.
開籠解索時(개농해색시) : 닭장 열고 끈을 풀어 줄 때
雞雞聽我言(계계청아언) : 닭들아 내 말 좀 들어라
與爾鏹三百(여이강삼백) : 너희들을 삼백 량 돈을 주었으나
小惠何足論(소혜하족논) : 어찌 족히 작은 은혜를 논하겠는가.
莫學銜環雀(막학함환작) : 배우지 말라, 옥을 물고 온 공작새가
崎嶇謾報恩(기구만보은) : 거북하게도 보은의 도를 더럽힌 일을.

전원낙칠수1(田園樂七首1)-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出入千門萬戶(출입천문만호) : 천문만호의 황궁을 출입하고
經過北里南鄰(경과배리남린) : 북쪽남쪽 온갖 마을을 다 오간다.
屧躞鳴珂有底(섭섭명가유저) : 천천히 말 구슬 울리며 다녀도
崆峒散髮作人(공동산발작인) : 공동산 속, 산발한 사람 누구인가.

전원낙칠수2(田園樂七首2)-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再見封侯萬戶(재견봉후만호) : 두 번째 알현으로 만호 식읍의 제후에 봉해져
立談賜璧一雙(입담사벽일쌍) : 선 채로 담화하며 한 쌍의 고리옥을 하사 받는다.
詎勝耦耕南畝(거승우경남무) : 그것이 어찌 남향의 논밭을 경작함보다 나으며
何如高臥東窓(하여고와동창) : 동쪽 창가에 높이 누워 살아가는 것만 하겠는가.

전원낙칠수3(田園樂七首3)-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採菱渡頭風急(채능도두풍급) : 마름을 캐는데 나루터에 바람은 급하고
策杖邨西日斜(책장촌서일사) : 서쪽에는 해 저무는데 지팡이 짚고서있다.
杏樹壇邊漁父(행수단변어부) : 은행나무 제단가에 어부 하나 있어
桃花源裏人家(도화원리인가) : 도화원 안에는 사람의 집들이 보인다.

전원낙칠수4(田園樂七首4)-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萋萋芳草春綠(처처방초춘녹) : 우거진 방초로 봄은 푸르고
落落長松夏寒(낙낙장송하한) : 늘어진 긴 소나무에 여름도 차갑다.
牛羊自歸邨巷(우양자귀촌항) : 소와 양은 절로 마을 골목으로 돌아오는데
童稚不識衣冠(동치부식의관) : 어린 아이들은 벼슬아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전원낙칠수5(田園樂七首5)-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山下孤煙遠邨(산하고연원촌) : 산 아래 먼 마을에 외로운 연기
天邊獨樹高原(천변독수고원) : 하늘 가 높은 고원에 외로운 나무.
一瓢顔回陋巷(일표안회누항) : 한 쪽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 사는 안회
五柳先生對門(오류선생대문) : 오류선생과 서로 대문을 마주보고 있다.

전원낙칠수6(田園樂七首6)-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桃紅復含宿雨(도홍복함숙우) : 복사꽃 붉은데다 지난 밤비 머금고
柳綠更帶春煙(유녹경대춘연) : 버들잎 푸른데 더욱이 봄 안개 가득하다.
花落家僮未掃(화낙가동미소) : 꽃잎이 떨어져도 어린 하인은 쓸지 않고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 꾀꼬리 울어도 산속 나그네 여전히 자고 있다.

전원낙칠수7(田園樂七首7)-백거이(白居易)
정원의 즐거움
酌酒會臨泉水(작주회림천수) : 샘물가에 모여 술 따라 마시며
抱琴好倚長松(포금호의장송) : 거문고 안고 와 긴 소나무에 기댄다.
南園露葵朝折(남원노규조절) : 남쪽 동산 아욱을 아침에 따고
東谷黃粱夜舂(동사황량야용) : 동쪽 골짝 매조는 저녁에 찧는단다.

哭孟浩然 (哭孟浩然 )-백거이(白居易)
맹호연을 곡하다
故人不可見(고인부가견) : 친구를 이제 볼 수가 없는데
漢水日東流(한수일동류) : 한수는 날마다 동쪽으로 흘러간다.
借問襄陽老(차문양양노) : 묻노라, 양양 땅 늙은이여
江山空蔡洲(강산공채주) : 강산은 채주를 비워논 채로구나.

최흥종사진(崔興宗寫眞)-백거이(白居易)
최흥종의 사진
畫君年少時(화군년소시) : 그대의 소년 때를 그렸으니
如今君已老(여금군이노) : 지금 보면, 그대도 이미 늙었구나.
今時新識人(금시신식인) : 요즈음 처음 알게 된 친구들도
知君舊時好(지군구시호) : 그대 지난 날 아름다웠음을 알아주리라.

추접(秋蝶)-백거이(白居易)
가을나비
秋花紫蒙蒙(추화자몽몽) : 가을꽃은 자색으로 덮혀있고
秋蝶黃茸茸(추접황용용) : 가을나비는 노란빛으로 가득하다.
花低蝶新小(화저접신소) : 꽃 아래 나비는 신기고도 작은데
飛戲叢西東(비희총서동) : 날아다니며 놀다가 동서로 모여든다.
日暮涼風來(일모량풍내) : 해 저물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紛紛花落叢(분분화낙총) : 어지러이 꽃잎이 떨기에 떨어진다.
夜深白露冷(야심백노냉) : 밤 깊어지니 흰 이슬이 차가운데
蝶已死叢中(접이사총중) : 나비는 이미 떨기 속에 죽어있다.
朝生夕俱死(조생석구사) : 아침에 나서 저녁이면 다 죽었으니
氣類各相從(기류각상종) : 기운이 같은 종류는 서로 따르는구나.
不見千年鶴(부견천년학) : 천 년 학이 보이지 않나니
多棲百丈松(다서백장송) : 대부분 백 길 소나무에 깃들어있구나.

오추(吾雛)-백거이(白居易)
내 새끼
吾雛字阿羅(오추자아나) : 내 새끼의 이름은 아라
阿羅纔七齡(아나재칠령) : 아라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다.
嗟吾不才子(차오부재자) : 아, 나는 못난 놈이라
憐爾無弟兄(련이무제형) : 형제도 없는 네가 불쌍하다.
撫養雖驕騃(무양수교애) : 애지중지 길러서 철없지만
性識頗聰明(성식파총명) : 타고난 머리는 자못 총명하다.
學母畫眉樣(학모화미양) : 어미를 배워 눈썹모양 그리고
效吾詠詩聲(효오영시성) : 내가 시 읽는 소리도 흉내 낸다.
我齒今欲墮(아치금욕타) : 내 치아는 빠져 떨러지려는데
汝齒昨始生(여치작시생) : 너의 치아는 작금에야 나왔다.
我頭髮盡落(아두발진낙) : 나의 머리털은 다 빠지는데
汝頂髻初成(여정계초성) : 너의 정수리에 머리갈래 이제야 생겼다.
老幼不相待(노유부상대) : 늙음과 젊음은 서로 기다리지 않아
父衰汝孩嬰(부쇠여해영) : 아버지는 늙고 너는 아직 어리구나.
緬想古人心(면상고인심) : 아득히 옛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봐도
慈愛亦不輕(자애역부경) : 자애로움은 또한 가볍지가 않구나.
蔡邕念文姬(채옹념문희) : 채옹은 딸 문희를 늘 생각했고
于公歎緹縈(우공탄제영) : 우공은 딸 제영의 효심에 감탄했었다.
敢求得汝力(감구득여력) : 감히 너의 도움 얻기를 바라겠는가
但未忘父情(단미망부정) : 다만 아비의 정을 잊지나 말아다오.

산노우흥(山路偶興)-백거이(白居易)
산길에서 우연히 흥겨워
筋力未全衰(근력미전쇠) : 근력은 아직 다하지 않는 않았고
僕馬不至弱(복마부지약) : 마부와 말도 약해지지 않다.
又多山水趣(우다산수취) : 더욱이 자연에 흥취가 많아
心賞非寂寞(심상비적막) : 마음에 느껴짐이 적막하지는 않다.
捫蘿上煙嶺(문나상연령) : 덩굴 부여잡고 안개 낀 고개 올라
蹋石穿雲壑(답석천운학) : 바위를 지나 구름 낀 산골짜기 지난다.
谷鳥晩分啼(곡조만분제) : 골짜기 새들은 저녁에도 나누어져 울고
洞花秋不落(동화추부낙) : 골짝의 꽃들은 가을인데도 지지 않는다.
提籠復攜榼(제농복휴합) : 대그릇 쥐고 가다 다시 술동이 들고 가
遇勝時停泊(우승시정박) : 절경을 만나면 때때로 멈추어 머문다.
泉憩茶數甌(천게다삭구) : 샘이 보이면 쉬면서 차를 몇 잔 마시고
嵐行酒一酌(남항주일작) : 안개 속을 걸으며 술 한 잔을 마신다.
獨吟還獨嘯(독음환독소) : 혼자 시를 읊으며 다시 혼자 휘파람 부니
此興殊未惡(차흥수미악) : 이러한 흥취는 결코 싫지가 않다.
假使在城時(가사재성시) : 만약 성 안에 있을 때였다면
終年有年樂(종년유년낙) : 한 해가 다가도 즐거울 날 없었으리라.

영회(詠懷)-백거이(白居易)
내 마음 속 생각을 읊다
昔爲鳳閤郎(석위봉합낭) : 예전에는 봉합랑이었는데
今爲二千石(금위이천석) : 지금은 봉록 이천 석을 받는 자사입니다.
自覺不如今(자각부여금) : 스스로는 지금보다 못하다고 느끼지만
人言不如昔(인언부여석) : 다른 사람들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말하지요.
昔雖居近密(석수거근밀) : 예전에는 황제를 가까이 모시고 살아도
終日多憂惕(종일다우척) : 종일토록 근심과 두려움이 많았었지요.
有詩不敢吟(유시부감음) : 시를 지어도 감히 읊지 못하고
有酒不敢喫(유주부감끽) : 술이 있어도 감히 마시지 못했습니다.
今雖在疎遠(금수재소원) : 지금은 비록 황제의 먼 곳에 있지만
竟歲無牽役(경세무견역) : 한 해가 다하도록 아무런 구속이 없습니다.
飽食坐終朝(포식좌종조) : 아침이 다하도록 앉아서 배불리 먹고
長歌醉通夕(장가취통석) : 밤새도록 취하여 길게 노래를 부릅니다.
人生百年內(인생백년내) : 인생살이 미처 백 년도 못되는데
疾速如過隙(질속여과극) : 빠르기가 마치 망아지 문틈을 지나는 듯합니다.
先務身安閒(선무신안한) : 우선은 몸이 편안하고 한가한 것에 힘쓰고
次要心歡適(차요심환적) : 다음은 마음이 기쁘고 명랑해야 합니다.
事有得而失(사유득이실) : 사람의 일에는 얻었다가 잃기도 하고
物有損而益(물유손이익) : 세상 물건이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이익을 보기도 합니다.
所以見道人(소이견도인) : 그래서 도인을 살펴보면
觀心不觀跡(관심부관적) : 마음을 살피지 결코 자취를 살피지는 않습니다.

정저인은병(井底引銀甁)-백거이(白居易)
우물 바닥에서 은 두레박을 당겨올리다
井底引銀甁(정저인은병) : 우물 바닥에서 은 두레박을 당겨 올리니
銀甁欲上絲繩絶(은병욕상사승절) : 은 두레박은 올라올 듯 끈 끊어집니다.
石上磨玉簪(석상마옥잠) : 돌 위에 옥비녀를 갈아보니
玉簪欲成中央折(옥잠욕성중앙절) : 옥비녀는 갈아질듯 가운데가 부러집니다.
甁沈簪折知奈何(병침잠절지나하) : 두레박은 빠지고 비녀는 잘리니 어찌하나
似妾今朝與君別(사첩금조여군별) : 저의 오늘 아침 남과의 이별과 비슷합니다.
憶昔在家爲女時(억석재가위녀시) : 생각해봅니다, 옛날 처녀시절 집에 있을 때
人言擧動有殊姿(인언거동유수자) : 사람들은 내 거동이 특별한 자태 있다 하였지요.
嬋娟兩鬢秋蟬翼(선연량빈추선익) : 아리따운 두 살쩍은 매미 날개 같고
宛轉雙蛾遠山色(완전쌍아원산색) : 둥그스름한 눈썹은 먼 산 빛과 같았지요.
笑隨戲伴後園中(소수희반후원중) : 후원 안에서 웃으며 친구 따라 놀았는데
此時與君未相識(차시여군미상식) : 그때는 나는 당신과 아직 알지도 못했습니다.
妾弄靑梅憑短牆(첩농청매빙단장) : 내가 청매를 들고 낮은 담장에 기댔을 때
君騎白馬傍垂楊(군기백마방수양) : 그대는 백마 타고 수양버들 옆에 계셨었지요.
牆頭馬上遙相顧(장두마상요상고) : 담장 머리, 말위에서 아득히 서로 눈 마주쳐
一見知君卽斷腸(일견지군즉단장) : 한눈에 그대 속 타는 심정을 알았었지요.
知君斷腸共君語(지군단장공군어) : 그대의 속 타는 심정을 알고 서로 이야기 하며
君指南山松柏樹(군지남산송백수) : 그대는 남산의 송백을 가리키며 맹세하셨지요.
感君松柏化爲心(감군송백화위심) : 그대의 송백 같은 굳은 마음에 감격하여
暗合雙鬟逐君去(암합쌍환축군거) : 남몰래 머리손질하고 마침내 그대를 따랐지요.
到君家舍五六年(도군가사오륙년) : 그대 집에 와서 산지 대 여섯 해 되었는데
君家大人頻有言(군가대인빈유언) : 그대 아버님은 자주 제게 말씀하시기를
聘則爲妻奔是妾(빙칙위처분시첩) : ˝혼례 해야 아내가 되지 도망쳐오건 첩이라
不堪主祀奉蘋蘩(부감주사봉빈번) : 조상의 제사상을 차리게 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終知君家不可住(종지군가부가주) : 끝내 그대 집에 더 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其奈出門無去處(기나출문무거처) : 그러나 문을 나서면 갈 곳도 없음을 어찌할까.
豈無父母在高堂(개무부모재고당) : 어찌 부모가 생존해 계시기는 않았겠는가 마는
亦有親情滿故鄕(역유친정만고향) : 또한 고향에는 아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요.
潛來更不通消息(잠내경부통소식) : 더구나 몰래 가출하여 소식이 끊겼으니
今日悲羞歸不得(금일비수귀부득) : 오늘날 슬프고 부끄러워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爲君一日恩(위군일일은) : 그대 위한 하루 사랑 때문에
誤妾百年身(오첩백년신) : 저의 일생의 신세가 그르치게 되었소.
寄言癡小人家女(기언치소인가녀) : 세상의 철부지 어린 아가씨들에게 충고하니
愼勿將身輕許人(신물장신경허인) : 신중하게 처신하여 몸을 경솔히 남에게 주지 마라.

사죽창(思竹窓)-백거이(白居易)
그리운 대나무 창가
不憶西省松(부억서성송) : 서성의 소나무 기억나지 않고
不憶南宮菊(부억남궁국) : 남궁의 국화도 기억나지 않는다.
惟憶新昌堂(유억신창당) : 오직 기억나는 것은 신창당 뿐
蕭蕭北窓竹(소소배창죽) : 쓸쓸하다, 북창의 대숲이여.
窓閑枕簟在(창한침점재) : 한가한 창가에 베개와 삿자리 남았는데
來後何人宿(내후하인숙) : 내 돌아 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묵을까.

제물이수2(齊物二首2)-백거이(白居易)
평등한 만물이여
椿壽八千春(춘수팔천춘) : 참죽나무의 수명은 팔천 년이 봄
槿花不經宿(근화부경숙) : 무궁화꽃은 하룻밤도 지나지 못한다.
中間復何有(중간복하유) : 그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冉冉孤生竹(염염고생죽) : 부드럽게 홀로 자란 대나무가 있다.
竹身三年老(죽신삼년노) : 대나무 몸체는 삼 년이면 늙어지나
竹色四時綠(죽색사시녹) : 대나무 몸빛은 사시사철 푸르다.
雖謝椿有餘(수사춘유여) : 비록 여유 있는 참죽나무만 못하나
猶勝槿不足(유승근부족) : 무궁화 꽃의 부족함보다는 여전히 낫다.

제물이수1(齊物二首1)-백거이(白居易)
평등한 만물이여
靑松高百尺(청송고백척) : 푸른 소나무 높아서 백 자
綠蕙低數寸(녹혜저삭촌) : 초록빛 혜초는 낮아서 몇 치.
同生大塊間(동생대괴간) : 천지간에 함께 자랐건만
長短各有分(장단각유분) : 길로 짧음에는 서로 구분이 있다.
長者不可退(장자부가퇴) : 긴 것은 짧게 할 수 없고
短者不可進(단자부가진) : 짧은 것은 길게 할 수 없도다.
若用此理推(야용차리추) : 만약 이와 같은 이치로 헤아린다면
窮通兩無悶(궁통량무민) : 궁하건 통하건 모두 번민 할 것 없도다.

은궤(隱几)-백거이(白居易)
안석에 기대어
身適忘四支(신적망사지) : 몸이 쾌적하니 손발을 잊고
心適忘是非(심적망시비) : 마음이 쾌적하니 시비도 잊는다.
旣適又忘適(기적우망적) : 이미 쾌적하니 쾌적함도 잊으니
不知吾是誰(부지오시수) : 내가 곧 누구인지도 모르겠구나.
百體如槁木(백체여고목) : 온 몸이 마른 나무 같아
兀然無所知(올연무소지) : 멍하니 아는 것 아무것도 없어라.
方寸如死灰(방촌여사회) : 마음은 꺼져버린 재와 같아서
寂然無所思(적연무소사) : 적막하게도 아무런 생각도 없어라.
今日復明日(금일복명일) : 오늘 아침 또 내일 아침
身心忽兩遺(신심홀량유) : 몸과 마음을 홀연히 모두 잊는다.
行年三十九(항년삼십구) : 살아온 내 나이 이미 서른아홉
歲暮日斜時(세모일사시) : 세모에 해가 기우는 때이로다.
四十心不動(사십심부동) : 마흔 살이면 마음 동요가 없다는데
吾今其庶幾(오금기서기) : 나는 지금 그러한 경지에 가까울까.

지반이수2(池畔二首2)-백거이(白居易)
연못가에서
持刀剮密竹(지도과밀죽) : 칼을 잡고 빽빽한 대숲 쳐주니
竹少風來多(죽소풍내다) : 대나무가 성기어 자주 바람이 분다.
此意人不會(차의인부회) : 이런 내 마음 남들은 모르리라
欲令池有波(욕령지유파) : 연못에 물결일게 하려는 것인 줄을.

식포(食飽)-백거이(白居易)
배불리 먹고서
食飽拂枕臥(식포불침와) : 배불리 먹고 베개 털고 눕고
睡足起閒吟(수족기한음) : 충분히 자고 일어나 한가히 시를 읊는다.
淺酌一杯酒(천작일배주) : 가볍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緩彈數聲琴(완탄삭성금) : 천천히 거문고 노래 몇 곡을 타노라.
旣可暢情性(기가창정성) : 이미 마음 속 기분을 펼 수 있고
亦足傲光陰(역족오광음) : 또한 세월을 편안히 보내기에 충분하다.
誰知名利盡(수지명리진) : 누가 알리오, 명예심과 이해심을 다하여
無復長安心(무복장안심) : 다시는 장안 그리운 마음 조금도 없음을.

과자하난야(過紫霞蘭若)-백거이(白居易)
자하 낭야에 들러서
我愛此山頭(아애차산두) : 나는 이 산머리가 좋아
及此三登歷(급차삼등력) : 이 곳에 와서 세 번이나 올랐다.
紫霞舊精舍(자하구정사) : 자하정사는 오래된 정사
寥落空泉石(요낙공천석) : 쓸쓸히 빈 산천만 남아있다.
朝市日喧隘(조시일훤애) : 조정과 시정은 날마다 시끄럽고 험한데
雲林長悄寂(운림장초적) : 구름 낀 숲 속은 오래도록 고요하다.
猶存住寺僧(유존주사승) : 절에 머물러 사는 스님 아직도 살아있어
肯有歸山客(긍유귀산객) : 기꺼이 산에 돌아와 사는 나그네도 있으리라.

망강누상작(望江樓上作)-백거이(白居易)
망강루 위에서 짓다
江畔百尺樓(강반백척누) : 강가의 백 척 누대
樓前千里道(누전천리도) : 누대 앞에는 천 리 먼 실.
憑高望平遠(빙고망평원) : 높은 곳에 기대어 평원을 바라보니
亦足舒懷抱(역족서회포) : 또한 마음속에 품은 생각 풀리는구나.
驛路使憧憧(역노사동동) : 역으로 통한 길에는 사신들이 왕래하고
關防兵草草(관방병초초) : 관문의 방어벽에는 병사들이 바쁘게 다닌다.
及茲多事日(급자다사일) : 이처럼 다사한 세월에는
尤覺閒人好(우각한인호) : 한가하게 사는 사람 좋음을 더욱 알겠다.
我年過不惑(아년과부혹) :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
休退誠非早(휴퇴성비조) : 물러나 쉬어도 진정 빠른 것은 아니다.
從此拂塵衣(종차불진의) : 이제부터 먼지 묻은 세상 옷 털고
歸山未爲老(귀산미위노) : 아직 늙어지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폐관(閉關)-백거이(白居易)
문 닫아 걸고
我心忘世久(아심망세구) : 나는 마음으로 세상 잊은 지 오래고
世亦不我干(세역부아간) : 세상도 나를 상관하지 않는다.
遂成一無事(수성일무사) : 마침내 전혀 아무 일 없게 되니
因得長掩關(인득장엄관) : 오래도록 문 닫고 지낼 수 있었다.
掩關來幾時(엄관내기시) : 문 닫고 지낸지 얼마나 되었을까
髣髴二三年(방불이삼년) : 아마도 이삼 년은 되었을 것이다.
著書已盈帙(저서이영질) : 저서는 이미 한 질을 채웠고
生子欲能言(생자욕능언) : 태어난 자식은 이미 말을 다 배웠다.
始吾身易老(시오신역노) : 이제부터 이 몸 쉽게도 늙어가니
復悲世多艱(복비세다간) : 세상에 어려운 일 많음이 다시 슬퍼진다.
廻顧趨時者(회고추시자) : 뒤돌아보면, 시류를 쫓아 사는 사람들도
役役塵壤間(역역진양간) : 속된 세상 속에서 힘겨워한다.
歲暮竟何得(세모경하득) : 늙어가는 형편에 결국 무엇을 얻을까
不如且安閑(부여차안한) : 차라리 편안하고 한가히 삶만 못하리라.

산하숙(山下宿)-백거이(白居易)
산 아래서 묵으며
獨到山下宿(독도산하숙) : 혼로 산 아래에 이르러 묵으며
靜向月中行(정향월중항) : 고요히 달빛 속을 향해 걸어본다.
何處水邊碓(하처수변대) : 어느 곳인가, 물가 방앗간에서
夜舂雲母聲(야용운모성) : 밤에 운모 찧은 소리가 들려온다.

범분수(泛湓水)-백거이(白居易)
분수에 배 뛰워
四月未全熱(사월미전열) : 사월이라 아직 완전히 무덥지 않아
麥涼江氣秋(맥량강기추) : 보리에 서늘한 바람, 강 기운은 가을
湖山處處好(호산처처호) : 호수와 물은 곳곳이 좋으나
最愛湓水頭(최애분수두) : 분수의 머릿가가 가장 좋아라.
湓水從東來(분수종동내) : 분수는 강 쪽에서 동쪽으로 와서
一派入江流(일파입강류) : 한 줄기는 장강 물줄기에 흘러든다.
可憐似縈帶(가련사영대) : 아름다워라, 구불구불한 띠 같아서
中有隨風舟(중유수풍주) : 강 가운데는 바람으로 가는 배 있다.
命酒一臨泛(명주일림범) : 술 가져오라 명하고는 한 번에 배 띄우고
捨鞍揚棹謳(사안양도구) : 말안장 버려두고 소리 날리며 뱃노래 부른다.
放廻岸傍馬(방회안방마) : 언덕 기슭의 말은 놓아 돌려보내고
去逐波間鷗(거축파간구) : 말 떠난 뒤에는 물결 사이의 백구를 쫓는다.
煙浪始渺渺(연낭시묘묘) : 자욱한 물결은 아득하고
風襟亦悠悠(풍금역유유) : 바람에 날리는 옷깃도 아득하구나.
初疑上河漢(초의상하한) : 처음에는 은하수에 올랐나 하였는데
中若尋瀛洲(중야심영주) : 중간에는 신선 사는 곳을 찾는 것 같았다.
汀樹綠拂地(정수녹불지) : 물가의 나무 푸름은 못을 떨치고
沙草芳未休(사초방미휴) : 모래벌판의 향기로운 풀은 가시지 않았구나.
靑蘿與紫葛(청나여자갈) : 푸른 담쟁이와 자줏빛 칡은
枝蔓垂相樛(지만수상규) : 가지와 덩굴을 늘어지고 서로 얽혀있다.
繫纜步平岸(계람보평안) : 닻줄을 매어놓고 평편한 언덕을 걸으며
回頭望江州(회두망강주) : 머리 돌려 강주를 아득히 마라본다.
城雉映水見(성치영수견) : 성가퀴는 물에 비춰 보이고
隱隱如蜃樓(은은여신누) : 신기루처럼 은근하기만 하구나.
日入意未盡(일입의미진) : 해가 저물어도 뜻은 다하지 않아
將歸復少留(장귀복소류) : 돌아가려다가 다시 잠시 머무노라.
到官行半歲(도관항반세) : 강주의 관리 생활 반년도 지나지 않아
今日方一遊(금일방일유) : 오늘에야 비로소 한 번 노니노라.
此地來何暮(차지내하모) : 이 땅에 돌아옴이 그리도 저무니
可以寫吾憂(가이사오우) : 이렇게 나의 근심을 베껴내 버릴 수 있으리라.

광가사(狂歌詞)-백거이(白居易) v
호방한 내 노래여
明月照君席(명월조군석) : 밝은 달 그대 자리 비추고
白露霑我衣(백노점아의) : 흰 이슬은 나의 옷을 적신다.
勸君酒杯滿(권군주배만) : 권하노니, 술 잔에 가득 술을 채우고
聽我狂歌詞(청아광가사) : 나의 호방한 노래 들어보게나.
五十已後衰(오십이후쇠) : 오십 이후는 기운이 쇠하고
二十已前癡(이십이전치) : 이십 전에는 철없는 법이다.
晝夜又分半(주야우분반) : 낮과 밤으로 또 반으로 나누어지니
其間幾何時(기간기하시) : 그 사이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나.
生前不歡樂(생전부환낙) : 살아서 즐기지 못하면
死後有餘貲(사후유여자) : 죽고 난 뒤에 재산이 남는다.
焉用黃墟下(언용황허하) : 그런들 어찌 황천 아래서
珠衾玉匣爲(주금옥갑위) : 비단 이불과 옥 상자만 사용하나.

백운기(白雲期)-백거이(白居易)
백운과 약속하여
三十氣太壯(삼십기태장) : 서른 나이는 기운이 가장 왕성하니
胸中多是非(흉중다시비) : 가슴 속에는 시비 가리는 일 많구나.
六十身太老(육십신태노) : 예순 나이는 몸이 너무 늙어서
四體不支持(사체부지지) : 사체마저 지탱하고 유지하지 못한다.
四十至五十(사십지오십) : 마흔에서 오십 나이에 이르면
正是退閒時(정시퇴한시) : 바로 은퇴하여 한가히 지낼 시기라
年長識命分(년장식명분) : 나이가 많아 천명과 순수를 알아
心慵少營爲(심용소영위) : 마음은 게을러져 하는 일도 적어진다.
見酒興猶在(견주흥유재) : 술을 보면 여전히 흥이 나고
登山力未衰(등산력미쇠) : 산에 올라도 힘은 모자라지 않는다.
吾年幸當此(오년행당차) : 다행히 내 나이가 바로 이러한 나이라
且與白雲期(차여백운기) : 장차 백운과 기약하여 지내리라.

하처난망주칠수7(何處難忘酒七首7)-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逐臣歸故園(축신귀고원) : 쫓겨난 신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赦書逢驛騎(사서봉역기) : 임금의 사면 조서 역마에서 만나니
賀客出都門(하객출도문) : 축하의 나그네 도성 문을 나온다.
半面瘴煙色(반면장연색) : 얼굴 절반에는 흐릿한 병색지고
滿衫鄕淚痕(만삼향누흔) : 옷에 가득한 고향 그린 눈물 자국.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物可招魂(하물가초혼) : 무엇으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을까.

하처난망주칠수6(何處難忘酒七首6)-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靑門送別多(청문송별다) : 청문에서는 송별의 잔치도 많아라.
斂襟收涕淚(렴금수체누) : 옷깃을 걷으며 눈물을 거두리니
簇馬聽笙歌(족마청생가) : 늘어선 말들은 생황 소래 소리 듣는다.
煙樹灞陵岸(연수파능안) : 패릉 언덕에 안개 낀 나무들
風塵長樂坡(풍진장낙파) : 장락궁 언덕에 풍진이 일어난다.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奈去留何(쟁나거류하) : 떠나고 머무는 것을 다투어 어찌하려나.

하처난망주칠수5(何處難忘酒七首5)-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軍功第一高(군공제일고) : 군사의 공은 제일 높도다.
還鄕隨露布(환향수노포) : 고향에 돌아가려니 군사들 따르고
半路授旌旄(반노수정모) : 거리는 반이나 깃발로 덮여있구나.
玉柱剝蔥手(옥주박총수) : 거문고 발에 고운 손 다 벗겨지고
金章爛椹袍(금장난심포) : 금빛 문장이 도포보다 찬란하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以騁雄豪(하이빙웅호) : 무슨 수로 영웅호걸을 불러올까나.

하처난망주칠수3(何處難忘酒七首3)-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朱門羨少年(주문선소년) : 귀문귀가 사람들 젊음을 부러워한다.
春分花發後(춘분화발후) : 춘분날 온갖 꽃 활짝 핀 뒤
寒食月明前(한식월명전) : 한식날에 달은 눈앞에 밝기도하다.
小院廻羅綺(소원회나기) : 작은 궁궐에 비단옷 걸친 여인들 다니고
深房理管絃(심방리관현) : 깊은 방 안에서는 음악을 켠다.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過艶陽天(쟁과염양천) : 아름답고 따뜻한 날들은 다투어 지나 가라라.

하처난망주칠수2(何處難忘酒七首2)-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天涯話舊情(천애화구정) : 하늘 끝 먼 곳에서 친구의 정 나눈다.
靑雲俱不達(청운구부달) : 청운의 꿈 이루지 못하고
白髮遞相驚(백발체상경) : 백발이 갈아드니 서로가 놀라는구나.
二十年前別(이십년전별) : 이십 년 전에 이별하여
三千里外行(삼천리외항) : 삼천 리 밖을 돌아다니는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以敍平生(하이서평생) : 무슨 수로 평생의 마음을 풀어보나.

하처난망주칠수1(何處難忘酒七首1)-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長安喜氣新(장안희기신) : 장안에서 공기의 신선함을 즐긴다.
初登高第日(초등고제일) : 처음 과거에 오르던 날
乍作好官人(사작호관인) : 잠깐 동안 좋은 관료가 되었다.
省壁明張牓(생벽명장방) : 성벽에는 밝게 방이 붙어있고
朝衣穩稱身(조의온칭신) : 공복이 편하게도 몸에 꼭 맞았다.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奈帝城春(쟁나제성춘) : 다투어 서울의 봄을 어찌해야 하나.

추강송객(秋江送客)-백거이(白居易)
가을 강에서 손님을 보내며-백거이(白居易)
秋鴻次第過(추홍차제과) : 가을 기러기 차례로 지나가고
哀猿朝夕聞(애원조석문) : 애처로운 원숭이 울음 조석으로 들린다.
是日孤舟客(시일고주객) : 오늘 외 딴 배 탄 나그네
此地亦離羣(차지역리군) : 이 땅에서도 친구들과 떠나는구나.
濛濛潤衣雨(몽몽윤의우) : 부슬부슬 옷을 적시는 비
漠漠冒帆雲(막막모범운) : 막막하게 돛단배를 덮는 구름.
不醉潯陽酒(부취심양주) : 심양주에 취하지도 않는데
煙波愁殺人(연파수살인) : 자욱한 물보라에 수심 겨워 사람 죽는다.

밤비-백거이(白居易)
早蛩啼復歇(조공제복헐) : 초가을 귀뚜라미 울다가 그치고
殘燈滅又明(잔등멸우명) : 새벽등불 꺼질 듯 다시 밝아진다.
隔窓知夜雨(격창지야우) : 창밖에 밤비 내리는 줄 아는데
芭蕉先有聲(파초선유성) : 파초가 먼저 빗방울소리 듣는다.

하처난망주칠수4(何處難忘酒七首4)-백거이(白居易)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霜庭老病翁(상정노병옹) : 서리 내린 뜰에 늙고 병든 사람.
闇聲啼蟋蟀(암성제실솔) : 으슴푸레한 소리로 귀뚜라미 우는데
乾葉落梧桐(건섭낙오동) : 마른 잎은 오동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
鬢爲愁先白(빈위수선백) : 귀밑머리털이 수심에 먼저 희어지고
顔因醉暫紅(안인취잠홍) : 얼굴은 취하여 잠시 얼굴 붉어지는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計奈秋風(하계나추풍) : 무슨 수 있어 가을바람을 어찌해보나.

추산(秋山)-백거이(白居易)
가을산
久病曠心賞(구병광심상) : 오랜 병으로 마음이 비어
今朝一登山(금조일등산) : 오늘 아침 한번 산에 올랐다.
山秋雲物冷(산추운물냉) : 가을 산에 구름은 찬데
稱我淸羸顔(칭아청리안) : 내 얼굴이 맑고 파리하단다.
白石臥可枕(백석와가침) : 깨끗한 돌은 누워 베개 삼을 만하고
靑蘿行可攀(청나항가반) : 푸른 담쟁이덩굴 붙잡을 만하다.
意中如有得(의중여유득) : 마음 속에 득의함이 있어
盡日不欲還(진일부욕환) : 종일토록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人生無幾何(인생무기하) : 인생은 얼마 되지도 않아
如寄天地間(여기천지간) : 천지 사이에 기숙하는 것 같도다.
心有千載憂(심유천재우) : 마음에는 천년의 근심이 있고
身無一日閑(신무일일한) : 몸에는 하루의 한가함도 없도다.
何時解塵網(하시해진망) : 어느 때라야 속세의 거물을 끊고
此地來掩關(차지내엄관) : 이곳에 와서 대문 닫고 살아볼까.

송성(松聲)-백거이(白居易)
소나무
月好好獨坐(월호호독좌) : 달이 좋아 혼자 않기도 좋나니
雙松在前軒(쌍송재전헌) : 두 소나무가 집 앞에 서 있도다.
西南微風來(서남미풍내) : 서남쪽에서 미풍이 불어와
潛入枝葉間(잠입지섭간) : 몰래 가지와 잎 사이로 불어온다.
蕭寥發爲聲(소요발위성) : 쓸쓸히 날 위해 소리 내고
半夜明月前(반야명월전) : 밤 깊어지자 밝은 달이 내 앞에 있다.
寒山颯颯雨(한산삽삽우) : 차가운 산에는 삽삽히 비 내리고
秋琴泠泠絃(추금령령현) : 가을 거문고의 냉랭한 줄 소리
一聞滌炎暑(일문척염서) : 한 번 들으니 불같은 더위 씻기고
再聽破昏煩(재청파혼번) : 다시 들으니 어둡고 번잡한 일 없어진다.
竟夕遂不寐(경석수부매) : 저녁이 다하도록 잠 못 이루니
心體俱翛然(심체구소연) : 마음과 몸이 모두 찢어지는 듯하다.
南陌車馬動(남맥거마동) : 남쪽 거리에 수레와 말이 움직이고
西鄰歌吹繁(서린가취번) : 서쪽 마을에는 노랫소리 빈번하다.
誰知茲簷下(수지자첨하) : 누가 알리요, 이 처마 아래서는
滿耳不爲喧(만이부위훤) : 귀에 가득 차나 결코 시끄럽지 않은 것을.

증오단(贈吳丹)-백거이(白居易)
오단에게 드리다
巧者力苦勞(교자력고노) : 간교한 자는 몸이 괴롭고 고달픈데
智者心苦憂(지자심고우) : 지혜로운 자는 마음이 괴롭고 근심스럽습니다.
愛子無巧智(애자무교지) : 사랑하는 선생은 간교와 지혜가 없어
終歲閑悠悠(종세한유유) : 평생토록 한가하고 여유롭습니다.
嘗登御史府(상등어사부) : 일찍이 어사부에 등청하시고
亦佐東諸侯(역좌동제후) : 동쪽의 제후들도 보좌하셨지요.
手操糺謬簡(수조규류간) : 몸소 그릇된 기록을 바로 잡고
心運決勝籌(심운결승주) : 마음으로 좋은 정책을 결정했었지요.
宦途似風水(환도사풍수) : 벼슬길은 바람과 물 같고
君心如虛舟(군심여허주) : 당신의 마음 빈 배와 같았지요.
汎然而不有(범연이부유) : 마음이 넓어서 집착하지 않으시고
進退得自由(진퇴득자유) : 벼슬에 나가고 물러남에 자유로웠지요.
今來脫豸冠(금내탈치관) : 이제야 치관을 벗으시고
時往侍龍樓(시왕시룡누) : 때대로 용루에 가서 모십니다.
官曹稱心靜(관조칭심정) : 관리들은 마음이 고요하여
居處隨跡幽(거처수적유) : 사시는 곳은 자취 따라 그윽하답니다.
冬負南簷日(동부남첨일) : 겨울에는 남쪽 처마의 햇빛 받아
支體甚溫柔(지체심온유) : 지체는 대단히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夏臥北窓風(하와배창풍) : 여름에는 북쪽 창에서 바람 불어
枕席如涼秋(침석여량추) : 잠자리는 서늘한 가을 같았습니다.
南山入舍下(남산입사하) : 남산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시면
酒甕在牀頭(주옹재상두) : 술단지가 언제나 평상 머리에 있었지요.
人間有閑地(인간유한지) : 인간 세상에 한가로운 땅 있는데
何必隱林丘(하필은림구) : 어찌 반드시 숲 속 언덕에 숨어야만 합니까.
顧我愚且昧(고아우차매) : 저 자신을 돌아보니, 어리석고도 우매하여
勞生殊未休(노생수미휴) : 삶을 수고롭게 하고, 특별히 쉬지도 못하여
一入金門直(일입금문직) : 한번 대궐에 들어 직분을 맡아
星霜三四周(성상삼사주) : 세월은 벌써 삼사 년이나 되었습니다.
主恩信難報(주은신난보) : 임금의 은혜는 진정 보답하기 어렵고
近地徒久留(근지도구류) : 가까운 곳에서 헛되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終當乞閒官(종당걸한관) : 결국에는 마땅히 한가한 관직을 빌어
退與夫子遊(퇴여부자유) : 물러나 선생과 즐겁게 교유하고 싶습니다.

금중(禁中)-백거이(白居易)
궁궐에서
門嚴九重靜(문엄구중정) : 문은 삼엄하여 아홉 겹이 조용하고
窓幽一室閑(창유일실한) : 창안은 깊숙하여 온 방은 한가하여라.
好是修心處(호시수심처) : 마음 닦는 곳으로는 이곳이 좋아라
何必在深山(하필재심산) : 어찌 반드시 깊은 산에 있어야 하나.

중제사수4(重題四首4)-백거이(白居易)
거듭 제하다
宦途自此心長別(환도자차심장별) : 벼슬길 여기서 맘으로 길이 이별하고
世事從今口不言(세사종금구부언) : 세상일 이제부터 입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豈止形骸同土木(개지형해동토목) : 어찌 한 몸을 흙이나 나무에 그치며
兼將壽夭任乾坤(겸장수요임건곤) : 아울러 장수하고 요절함을 천지에 맡기랴.
胸中壯氣猶須遣(흉중장기유수견) : 가슴 속에는 사나이 기상이 필요하니
身外浮雲何足論(신외부운하족논) : 몸 밖의 뜬 구름을 어찌 족히 논하리오.
還有一條遣恨事(환유일조견한사) : 도리어 남겨진 한스런 일, 하나 있으니
高家門館未酬恩(고가문관미수은) : 귀인의 집으로 아직 인사한 번 못 드렸다오.

중제사수3(重題四首3)-백거이(白居易)
거듭 제하다
日高睡足猶慵起(일고수족유용기) : 해는 높이 뜨고 잠도 충분한데 일어나기 귀찮아
小閣重裘不怕寒(소각중구부파한) : 작은 누각에서 겹이불 덮으니 추위도 두렵지 않다.
遺愛寺鍾欹枕聽(유애사종의침청) : 유애사의 종소리 베개 높이 베고 누워 듣는데
香爐峯雪發簾看(향노봉설발렴간) : 향로봉의 남은 눈을 발을 제치고 바라본다.
匡廬便是逃名地(광려편시도명지) : 광속이 살던 이곳 여산이야 말로 은둔할 땅이고
司馬仍爲送老官(사마잉위송노관) : 사마 벼슬도 바로 노년을 보내는 관직이로다.
心泰身寧是歸處(심태신녕시귀처) : 마음 편하고 몸이 안녕한 이곳이 은퇴할 곳이니
故鄕何獨在長安(고향하독재장안) : 고향이 어찌 다만 장안에만 있어야 하겠는가.

화비화(花非花)-백거이(白居易)
꽃이면서 꽃아니어라
花非花(화비화) : 꽃이면서 꽃 아니고
霧非霧(무비무) : 안 개이면서 안개 아니어라.
夜半來(야반내) : 밤 깊어 왔다가
天明去(천명거) : 날 밝아 떠나가더라.
來如春夢幾多時(내여춘몽기다시) : 봄 꿈처럼 왔던 것이 얼마나 되던가
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 아침 구름처럼 떠나고는 찾을 곳이 없어라.

중심행원(重尋杏園)-백거이(白居易)
살구농원을 다치 찾아
忽憶芳時頻酩酊(홀억방시빈명정) : 젊은 시절 자주 술 취한 일 생각나서
却尋醉處重徘徊(각심취처중배회) : 문득 취한 곳 찾아서 다시 배회하노라.
杏花結子春深後(행화결자춘심후) : 살구꽃 열매 맺고, 봄이 무르익은 뒤
誰解多情又獨來(수해다정우독래) : 누가 알까, 정겨워 다시 혼자 찾은 것을.

한규야(寒閨夜)-백거이(白居易)
차가운 규방의 밤
夜半衾裯冷(야반금주랭) : 밤 깊도록 이불 컽감이 차갑고
射眠懶未能(사면나미능) : 잠들려도 나른하여 잠들지 못한다.
籠香銷盡火(롱향소진화) : 상자 속 향도 다 타들어가고
巾淚滴成氷(건루적성빙) : 수건 눈물 방울은 얼음이 되었다.
爲惜影相伴(위석영상반) : 그림자 서로 친구 됨이 애석하여
通宵不滅燈(통소불멸등) : 밤새도록 등불을 꺼지도 못했도다.

영졸(詠拙)-백거이(白居易)
모자람을 노래한다
所稟有巧拙(소품유교졸) : 타고난 재주는 정교함과 졸렬함이 있어
不可改者性(부가개자성) : 고칠 수 없는 것이 성품이도다.
所賦有厚薄(소부유후박) : 주어지는 것은 두터움과 엷음이 있어
不可移者命(부가이자명) : 옮길 수 없는 것이 운명이도다.
我性拙且憃(아성졸차창) : 내 성품은 졸렬하고 어리석고
我命薄且屯(아명박차둔) : 내 운명은 박복하고 어렵도다.
問我何以知(문아하이지) : 나에게 묻기를, 무엇으로 아는가
所知良有因(소지량유인) : 아는 것은 진실로 원인이 있도다.
亦曾擧兩足(역증거량족) : 또한 일찍이 두 발을 들고 가서
學人蹋紅塵(학인답홍진) : 사람에게 배워 티끌세상을 밟았다.
從茲知性拙(종자지성졸) : 이로써 내 성품이 졸렬함 알았으니
不解轉如輪(부해전여륜) : 수레처럼 굴러갈 줄을 알지 못했다.
亦曾奮六翮(역증분륙핵) : 또한 일찍이 여섯 날개 떨치어
高飛到靑雲(고비도청운) : 높이 날아 청운에 이르렀도다.
從茲知命薄(종자지명박) : 이로써 내 운명이 박복함 알았으니
摧落不逡巡(최낙부준순) : 꺾이어 떨어도 머뭇거리지 못했다.
慕貴而厭賤(모귀이염천) : 부귀를 부러워하나 천박함을 싫어하고
樂富而惡貧(낙부이악빈) : 부유함을 좋아하나 가난함이 싫어한다.
同此天地間(동차천지간) : 남과 같이 이 천지 사이에 태어났거늘
我豈異於人(아개리어인) : 내가 어찌 남과 다르겠는가.
性命苟如此(성명구여차) : 타고난 성품과 운명이 그러하니
反則成苦辛(반칙성고신) : 어겼다가는 도리어 고생스러워진다.
以此自安分(이차자안분) : 이 때문에 스스로 분수에 만족하고
雖窮每欣欣(수궁매흔흔) : 비록 궁색하여도 매양 기뻐하노라.
葺茅爲我廬(즙모위아려) : 띠풀 엮어 나의 집 만들고
編蓬爲我門(편봉위아문) : 쑥대 엮어서 나의 대문을 삼는다.
縫布作袍被(봉포작포피) : 베를 재봉하여 솜이불 만들고
種穀充盤飧(종곡충반손) : 곡식을 심어 반찬과 밥을 만든다.
靜讀古人書(정독고인서) : 조용히 옛 사람의 책을 읽으며
閑釣淸渭濱(한조청위빈) : 한가롭게 맑은 위수에서 낚시질 한다.
優哉復游哉(우재복유재) : 한가롭기도 하여 다시 마음껏 놀며
聊以終吾身(요이종오신) : 애오라지 조용히 한 평생을 마치리라.

소곡신사이수1(小曲新詞二首1)-백거이(白居易)
짧은 곡, 새 노랫말
霽色鮮宮殿(제색선궁전) : 갠 날빛에 궁궐은 선명하고
秋聲脆管絃(추성취관현) : 가을 소리에 음악소리 가냘프다.
聖明千歲樂(성명천세낙) : 태평한 세상 천년이 즐거운데
繼情似今年(계정사금년) : 이어지는 속마음도 올해와 같아라.

소곡신사이수2(小曲新詞二首2)-백거이(白居易)
짧은 곡, 새 노랫말
紅裙明月夜(홍군명월야) : 밝은 달 밤, 붉은 치마
碧簟早秋時(벽점조추시) : 이른 가을철에 푸른 대나무.
好向昭陽宿(호향소양숙) : 기분 좋아 소양궁에 가 묵으니
天涼玉漏遲(천량옥누지) : 청량한 날 시간은 드디기만 하다.

상춘사(傷春詞)-백거이(白居易)
봄날에 마음 아파서
深淺檐花千萬枝(심천첨화천만지) : 짙고 엹은 처마 가의 꽃, 천 만 가지
碧紗牕外囀黃鸝(벽사창외전황리) : 창밖 푸른 버들잎에 꾀꼬리들 지저긴다.
殘粧含淚下簾坐(잔장함누하렴좌) : 얼룩진 화장에 머금은 눈물, 주렴에 떨구며 앉아
盡日傷春春不知(진일상춘춘부지) : 종일토록 봄날에 마음 아파도 봄은 모른다.

별교상죽(別橋上竹)-백거이(白居易)
다리 위의 대나무를 떠나며
穿橋迸竹不依行(천교병죽부의항) : 다리를 뚫고 솟은 대나무 통행에 도움 못되니
恐礙行人被損傷(공애항인피손상) : 행인이 가다가 걸려 부상당할까 걱정 되는구나.
我去自慙遺愛少(아거자참유애소) : 내가 떠나며 부끄럽나니, 남긴 애정이 적어
不敎君得似甘棠(부교군득사감당) : 그대를 앵도나무처럼 되게 하지 못하였음이라.

서원만망(西原晩望)-백거이(白居易)
서쪽 언덕에서 저녁에 바라보다
花菊引閑步(화국인한보) : 봄 가을날에는 한가히 걷는데
行上西原路(항상서원노) : 서쪽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노라.
原上晩無人(원상만무인) : 언덕 위에는 저녁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어
因高聊四顧(인고료사고) : 높이 올라가서 애오라지 사방을 돌아본다.
南阡有煙火(남천유연화) : 남쪽 길에는 밥 짓는 연기 오르고
北陌連墟墓(배맥련허묘) : 북쪽 길에는 무덤만이 들어서 있도다.
村鄰何蕭疎(촌린하소소) : 고을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가
近者猶百步(근자유백보) : 가까운 곳은 백 걸음도 정도로다.
吾廬在其下(오려재기하) : 내 오두막집도 그 아래에 있는데
寂寞風日暮(적막풍일모) : 적막하게도 바람에 해가 저물어간다.
門外轉枯蓬(문외전고봉) : 문밖에는 마른 쑥이 바람에 굴러다니고
籬根伏寒ꟙ(리근복한토) : 울타리 아래에는 겨울 토끼가 엎드려 있도다.
故園汴水上(고원변수상) : 고향은 변수 위에 있었으나
離亂不堪去(리난부감거) : 혼란하여 떠나지 않을 수 없었도다.
近歲始移家(근세시이가) : 근래에 비로소 이사 와서
飄然此杓住(표연차표주) : 표연히 이 곳에서 살게 되었도다.
新屋五六間(신옥오륙간) : 새로 지은 집은 대여섯 칸
古槐八九樹(고괴팔구수) : 오래된 느티나무 여덟아홉 그루.
便是衰病身(편시쇠병신) : 이곳은 곧 노쇠하고 병 든 몸이
此生終老處(차생종노처) : 이 인생이 늙은 삶을 마칠 곳이로다.

관사내신착소지(官舍內新鑿小池)-백거이(白居易)
관사 내에 새로 작은 연못을 파다
簾下開小池(염하개소지) : 발아래에 작은 연못 마련하니
盈盈水方積(영영수방적) : 가득히 물이 이제 모여드는구나.
中底鋪白沙(중저포백사) : 연못 가운데 바닥에 흰 모래 깔고
四隅甃靑石(사우추청석) : 사방에는 푸른 돌로 꾸몄다.
勿言不深廣(물언부심광) : 깊고 넓지 않다고 말하지 말게나
但取幽人適(단취유인적) : 숨어사는 사람의 한적함만 맛보려네.
泛灩微雨朝(범염미우조) : 물이 가득한 보슬비 내리는 아침
泓澄明月夕(홍징명월석) : 물이 깊고 맑은 밝은 달 뜬 저녁.
豈無大江水(개무대강수) : 어찌, 큰 강에 물이 있어
波浪連天白(파낭련천백) : 그 물결이 하늘에 닿아 희게 보이는 일 없겠는가
未如牀席間(미여상석간) : 그러나, 평상의 자리 사이로
方丈深盈尺(방장심영척) : 사방 한 길에, 한 자 깊이로 가득한 못물보다는 못하다.
淸淺可狎弄(청천가압농) : 맑고 얕아 마음대로 놀 수 있어
昏煩聊漱滌(혼번료수척) : 흐릿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애오라지 씻어버린다.
最愛曉暝時(최애효명시) : 무엇보다, 이른 새벽 어둑한 때에
一片秋天碧(일편추천벽) : 한 조각 가을 하늘의 푸름이 가장 좋구나.

향로봉하신치초당(香鑪峯下新置草堂)-백거이(白居易)
향로봉 아래에 초당 지어
香鑪峯北面(향로봉배면) : 향로봉 북쪽
遺愛寺西偏(유애사서편) : 유애사의 서쪽 치우친 곳
白石何鑿鑿(백석하착착) : 흰 바위는 어찌나 잔잔하고
淸流亦潺潺(청류역잔잔) : 맑게 흐르는 물도 잔잔하도다.
有松數十株(유송삭십주) : 소나무가 수십 그루 있고
有竹千餘竿(유죽천여간) : 대나무가 천여 그루나 있도다.
松張翠傘蓋(송장취산개) : 소나무는 비취빛 우산 펼친 듯 하고
竹倚靑琅玕(죽의청랑간) : 대나무는 푸른 옥돌에 의지하여 있다.
其下無人居(기하무인거) : 그 아래에 사는 사람 아무도 없어
悠哉多歲年(유재다세년) : 아득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有時聚猿鳥(유시취원조) : 때때로 원숭이와 새들이 모여들고
終日空風煙(종일공풍연) : 종일토록 쓸쓸히 바람과 이내만 인다.
時有沈冥子(시유침명자) : 당시에 깊숙한 곳에 사는 녀석 있었으니
姓白字樂天(성백자낙천) : 성은 백이요 자는 낙천이었단다.
平生無所好(평생무소호) : 평생토록 좋아하는 것이 없다가
見此心依然(견차심의연) : 이것을 보고 마음이 흡족했단다.
如獲終老地(여획종노지) : 마침내 늙어 죽을 곳을 얻은 듯 하여
忽乎不知還(홀호부지환) : 갑자기 돌아갈 줄을 몰라 했어라.
架巖結茅宇(가암결모우) : 바위사이 가로 질러 작은 초가집 짓고
斲壑開茶園(착학개다원) : 골짜기를 파서 차밭을 만들었단다.
何以洗我耳(하이세아이) : 어디 가서 나의 귀를 씻으리오
屋頭飛落泉(옥두비낙천) : 처마모리에서 날아 떨어지는 샘이 있도다.
何以洗我眼(하이세아안) : 어디 가서 나의 눈을 씻으리오
砌下生白蓮(체하생백련) : 섬돌 아래에는 백련 꽃이 피었구나.
左手攜一壺(좌수휴일호) : 왼손에는 술 한 병을 들고
右手挈五絃(우수설오현) : 오른손에는 거문고 끼고 다녔단다.
傲然意自足(오연의자족) : 도도하게도 뜻이 절로 만족하여
箕踞於其間(기거어기간) : 그 사이에 다리를 걸터앉았단다.
興酣仰天歌(흥감앙천가) : 술에 취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노래하니
歌中聊寄言(가중료기언) : 노래 속에 애오라지 할 말을 담았도다.
言我本野夫(언아본야부) : 나는 본시 시골 사람으로
誤爲世網牽(오위세망견) : 잘못하여 세속의 그물에 걸렸단다.
時來昔捧日(시내석봉일) : 지난날엔 때를 만나 임금 받들었는데
老去今歸山(노거금귀산) : 늙어버린 지금에는 산으로 돌아왔단다.
倦鳥得茂樹(권조득무수) : 날다 지친 새는 무성한 숲을 얻고
涸魚反淸源(학어반청원) : 마른 물의 물고기는 맑은 물로 돌아왔단다.
捨此欲焉往(사차욕언왕) : 여기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人間多險難(인간다험난) : 인간세상은 험난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단가행(短歌行)-백거이(白居易)
白日何短短(백일하단단) : 낮은 어찌 이렇게도 짧은가
百年苦易滿(백년고역만) : 백 년은 괴롭게도 쉽게도 차는구나.
蒼穹浩茫茫(창궁호망망) : 창공은 넓고도 아득한데
萬劫太極長(만겁태극장) : 만 겁 세월은 끝없이 길기만 하다.
麻姑垂兩鬢(마고수량빈) : 마고 할멈도 두 귀밑머리 드리우고
一半已成霜(일반이성상) : 절반은 이미 서리가 다 되었구나.
天公見玉女(천공견옥녀) : 천제도 옥녀를 보고
大笑億千場(대소억천장) : 크게 웃은 지 억 천 번이 되었도다.
吾欲攬六龍(오욕람륙룡) : 나는 여섯 용을 고삐를 잡고
回車掛扶桑(회거괘부상) : 수레를 돌려 부상목에 매달고 싶도다.
北斗酌美酒(배두작미주) : 북두칠성에 맛있는 술 따라서
勸龍各一觴(권룡각일상) : 용들에게 각자 한 잔씩 권하리라.
富貴非所願(부귀비소원) : 부귀는 내가 바라는 것 아니니
與人駐顔光(여인주안광) : 사람들과 젊은 얼굴빛이나 지키리라.

양가남정(楊家南亭)-백거이(白居易)
양씨네 남쪽 정자
小亭門向月斜開(소정문향월사개) : 작은 정자문은 달 향해 열려 있고
滿地凉風滿地苔(만지양풍만지태) : 서늘한 바람과 이끼 땅에 가득하여라.
此院好彈秋思處(차원호탄추사처) : 이 집은 가을 마음 노래하는 곳으로 좋아
終須一夜抱琴來(종수일야포금래) : 끝내 온 밤을 거문고 안 고와서 보내는구나.

오야제(烏夜啼)-백거이(白居易)
까마귀 밤에 울어
城上歸時晩(성상귀시만) : 성 위에 돌아온 때는 저녁v
庭前宿處危(정전숙처위) : 뜰 앞, 잠자는 곳은 높기만 하다.
月明無葉樹(월명무섭수) : 밝은 달,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
霜滑有風枝(상골유풍지) : 눈 내려 미끄러운 가지에 바람인다.
啼澀飢喉咽(제삽기후인) : 굶주린 목구멍에 울음소리 껄끄러운데
飛低凍翅垂(비저동시수) : 낮게 날다가, 얼어버린 날개가 처진다.
畫堂鸚鵡鳥(화당앵무조) : 집안에 그려진 앵무새는
冷暖不相知(냉난부상지) : 차가움도 따뜻함도 알지 못한다.

조한(早寒)-백거이(白居易)
이른 추위
黃葉聚牆角(황섭취장각) : 누런 나뭇잎 담장 모퉁이에 모이고
靑苔圍柱根(청태위주근) : 푸른 이끼는 기둥뿌리를 둘러싸있다.
被經霜後薄(피경상후박) : 서리 지나간 뒤에는 더욱 엷어져
鏡遇雨來昏(경우우내혼) : 거울이 비를 맞아 어두워지는구나.
半卷寒簷幕(반권한첨막) : 차가운 처마 아래 휘장 반 쯤 걷히니
斜開暖閣門(사개난각문) : 따스한 전각문이 비스듬히 열리는구나.
迎冬兼送老(영동겸송노) : 겨울 맞아 늙음을 보내는 것 함께하며
只仰酒盈樽(지앙주영준) : 오직 술이 술독에 가득한 것을 바라만 본다.

춘노(春老)-백거이(白居易)
봄 늙은이
欲隨年少强遊春(욕수년소강유춘) : 젊은이들 따라서 억지로 봄놀이 같지만
自覺風光不屬身(자각풍광부속신) : 경치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단다.
歌舞屛風花障上(가무병풍화장상) : 병풍의 꽃 언덕 위에선 노래하고 춤추니
幾時曾畫白頭人(기시증화백두인) : 어느 때라야 백머리의 사람을 그려넣을까.

오려(吾廬)-백거이(白居易)
내 오두막집
吾廬不獨貯妻兒(오려부독저처아) : 내 오두막에는 아내와 자식들만 없으니
自覺年侵身力衰(자각년침신력쇠) : 나이가 많아져 몸이 쇠약해짐을 알았다.
眼下營求容足地(안하영구용족지) : 현실은 발하나 들여 놓을 작은 땅 찾지만
心中準擬挂冠時(심중준의괘관시) : 마음속 기준으로는 갓 걸어놓을 때와 같다.
新昌小院松當戶(신창소원송당호) : 신창의 작은 관아 집 앞에 소나무
履道幽居竹遶池(이도유거죽요지) : 그윽한 내 집을 걷자니 대숲이 못을 둘러있다.
莫道兩都空有宅(막도량도공유댁) : 두 도읍에 공연히 집 가졌다 말하지 말라
林泉風月是家資(림천풍월시가자) : 숲속 바람과 달이 곧 내 집의 재산인 것을.

지서정(池西亭)-백거이(白居易)
못 서편 정자에서
朱欄映晩樹(주란영만수) : 붉은 난간에 저녁 나무 비치는데
金魄落秋池(금백락추지) : 가을의 신이 가을 연못에 내렸구나.
還似錢塘夜(환사전당야) : 오리려 전당 연못의 밤 같아라
西樓月出時(서루월출시) : 서편 누대에 달 떠오를 이 때는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백거이(白居易)
오진사에 놀고 지은 시
元和九年秋(원화구년추) : 때는 원화 9년 가을
八月月上弦(팔월월상현) : 팔월이라, 달은 상현달.
我遊悟眞寺(아유오진사) : 나는 오진사를 유람했는데
寺在王順山(사재왕순산) : 절은 왕순산에 있었다.
去山四五里(거산사오리) : 산을 떠나, 사오 리 쯤 되는 곳
先聞水潺湲(선문수잔원) : 먼저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린다.
自茲捨車馬(자자사거마) : 여기서 말과 수레를 두고
始涉藍溪灣(시섭남계만) : 푸른 개울 굽이를 걸어 건넌다.
手拄靑竹杖(수주청죽장) : 손에 푸른 대지팡이 짚고
足蹋白石灘(족답백석탄) : 여울의 깨끗한 돌을 밟고 지난다.
漸怪耳目曠(점괴이목광) : 점점 이상하게도, 눈과 귀 환해지고
不聞人世喧(부문인세훤) : 세상의 시끄런 소리 들리지 않는다.
山下望山上(산하망산상) : 산 아래서 산 위를 바라보니
初疑不可攀(초의부가반) : 처음에는 오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誰知中有路(수지중유노) : 안에 길이 있을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盤折通巖巓(반절통암전) : 편평한 바닥길이 꺾여 바위 위까지 통했다.
一息幡竿下(일식번간하) : 번간 아래에서 한 번 쉬었다가
再休石龕邊(재휴석감변) : 돌 감실 곁에서 다시 한번 쉬었다.
龕間長丈餘(감간장장여) : 감실 간격은 길이가 한 길이 넘었고
門戶無扃關(문호무경관) : 문에는 빗장이 전혀 없었다.
俯窺不見人(부규부견인) : 내려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石髮垂若鬟(석발수야환) : 돌에는 풀이 귀밑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驚出白蝙蝠(경출백편복) : 흰 박쥐들이 놀라 나오는데
雙飛如雪翻(쌍비여설번) : 쌍쌍이 나는 것이 눈 흩날리듯 했다.
回首寺門望(회수사문망) : 고개 돌려 절문을 바라보니
靑崖夾朱軒(청애협주헌) : 푸른 언덕에 끼어있는 붉은 집이 있다.
如擘山腹開(여벽산복개) : 손톱 같이 산 중턱이 열렸는데
置寺於其間(치사어기간) : 그 사이에 절이 위치해 있었다.
入門無平地(입문무평지) : 절문에 드니 평지는 없었고
地窄虛空寬(지착허공관) : 땅이 좁아 빈 곳도 거의 없었다.
房廊與臺殿(방낭여대전) : 방의 회랑과 누대의 전각이
高下隨峯巒(고하수봉만) : 산봉우리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
巖崿無撮土(암악무촬토) : 바위와 낭떠러지에 흙은 조금도 없었다.
樹木多瘦堅(수목다수견) : 나무은 마르고 단단한 것이 많았고
根株抱石長(근주포석장) : 나무뿌리는 길게 돌을 감싸고 있었다.
屈曲蟲蛇蟠(굴곡충사반) : 울룩불룩한 뿌리는 뱀처럼 서리어 있다.
松桂亂無行(송계난무항) : 소나무가 어지러워 다닐 길 없고
四時鬱芊芊(사시울천천) : 사시사철 울창하고 무성했다.
枝梢嫋淸翠(지초뇨청취) : 가지는 늘어져 하늘거리고 빛은 푸르고
韻若風中絃(운야풍중현) : 그 운치는 바람 속의 음악소리 같았다.
日月光不透(일월광부투) : 햇빛과 달빛이 들지 못하여
綠陰相交延(녹음상교연) : 푸른 나무그늘이 섞이고 이어져있다.
幽鳥時一聲(유조시일성) : 그윽한 새소리 때때로 한 번씩 들리니
聞之似寒蟬(문지사한선) : 들으면 마치 가을매미 소리 같았다.
首憩賓位亭(수게빈위정) : 처음에는 빈위정에서 쉬면서
就坐未及安(취좌미급안) : 자리에 앉았으나 편안하지 않았다.
須臾開北戶(수유개배호) : 잠시 북쪽 문을 열어보니
萬里明豁然(만리명활연) : 만 리 먼 곳까지 환하게 밝았다.
拂簷虹霏微(불첨홍비미) : 처마 걸쳐 가랑비에 무지개 서고
遶棟雲回旋(요동운회선) : 마룻대를 둘러 구름이 돌아 흐른다.
赤日間白雨(적일간백우) : 붉은 해가 소나기 사이에 보이는데
陰晴同一川(음청동일천) : 흐리고 개는 것이 한 내에 같이 있다.
野綠蔟草樹(야녹족초수) : 들판의 푸른 기운이 초목에 모이고
眼界呑秦原(안계탄진원) : 내 시야는 중국 벌판을 삼킨다.
渭水細不見(위수세부견) : 위수는 가늘어 보이지 않고
漢陵小於拳(한능소어권) : 한나라 언덕은 주먹보다도 작다.
却顧來時路(각고내시노) : 물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縈紆映朱欄(영우영주난) : 얽히고 굽은 것이 붉은 난간에 비친다.
歷歷上山人(력력상산인) : 산 위의 사람들도 뚜렷하여
一一遙可觀(일일요가관) : 하나하나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前對多寶塔(전대다보탑) : 앞에 마주보이는 다보탑
風鐸鳴四端(풍탁명사단) : 바람에 풍경소리는 사단을 울린다.
欒櫨與戶牖(란로여호유) : 난 두공과 지게 창
恰恰金碧繁(흡흡금벽번) : 부드러운 장식이 금벽처럼 번화롭다.
云昔伽葉佛(운석가섭불) : 이러기를, 옛날 가섭 부처가
此地坐涅槃(차지좌열반) : 이 땅에 앉아서 열반하였다고 한다.
至今鐵鉢在(지금철발재) : 지금까지 쇠 바리때가 남아있어
當底手跡穿(당저수적천) : 아래에는 손자취가 뚫려있단다.
西開玉像殿(서개옥상전) : 서쪽으로 옥상전이 열려있고
白佛森比肩(백불삼비견) : 흰 부처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다.
抖擻塵埃衣(두수진애의) : 흙먼지 붙은 옷을 털고
禮拜永雪顔(례배영설안) : 영설안에 예배하였다.
疊霜爲袈裟(첩상위가사) : 겹겹이 쌓인 눈을 가사로 삼고
貫雹爲華鬘(관박위화만) : 우박을 꿰어 흰 머리로 삼았다.
逼觀疑鬼功(핍관의귀공) : 핍진히 보고 귀신의 공인가 했는데
其跡非雕鐫(기적비조전) : 그 자취는 결코 꾸민 것이 아니었다.
次登觀音堂(차등관음당) : 다음으로 관음당에 오르는데
未到聞栴檀(미도문전단) : 미처 이르지도 않아 전단 향기가 난다.
上階脫雙履(상계탈쌍리) : 계단에 올라 두 신을 벗고
斂足升瑤筵(염족승요연) : 발을 거두어 예배하는 자리에 올랐다.
六楹排玉鏡(륙영배옥경) : 여섯 기둥에 거울은 없고
四座敷金鈿(사좌부금전) : 사방 자리에는 금 세공품을 놓아두었다.
黑夜自光明(흑야자광명) : 칠흑 같은 밤에 절로 빛이 밝아지고
不待燈燭燃(부대등촉연) : 등촉 타는 것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衆寶互低昂(중보호저앙) : 여러 보석들이 번들거리고
碧珮珊瑚幡(벽패산호번) : 푸른 구슬과 산호가 번쩍이었다.
風來似天樂(풍내사천낙) : 하늘 음악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相觸聲珊珊(상촉성산산) : 서로 부딪쳐 그 소리가 쟁쟁거린다.
白珠垂露凝(백주수노응) : 흰 구슬은 늘어진 이슬이 맺힌 듯
赤珠滴血殷(적주적혈은) : 붉은 구슬은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
點綴佛髻上(점철불계상) : 부처 머리 위에 점철되어
合爲七寶冠(합위칠보관) : 합하여 칠보관이 되었다.
雙甁白琉璃(쌍병백류리) : 한 쌍의 병은 흰 유리이고
色若秋水寒(색야추수한) : 색은 가을 물의 차가움과 같았다.
隔甁見舍利(격병견사리) : 병 너머로 사리가 보이는데
圓轉如金丹(원전여금단) : 둥글게 구르는 것이 금단 같았다.
玉笛何代物(옥적하대물) : 옥피리는 어느 시대의 물건인가
天人施祗園(천인시지원) : 천인이 지원에 시주하였다.
吹如秋鶴聲(취여추학성) : 부는 소리는 가을 학의 소리 같아
可以降靈仙(가이강령선) : 신령한 신선을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是時秋方中(시시추방중) : 이 때는 마침 가을이었는데
三五月正圓(삼오월정원) : 보름달이 한참 둥글었다.
寶堂豁三門(보당활삼문) : 보당에 확 뚫린 세 개의 문
金魄當其前(금백당기전) : 달이 그 앞에 와있었다.
月與寶相射(월여보상사) : 달과 보당이 마주 보여.
晶光爭鮮姸(정광쟁선연) : 수정 빛이 선명함을 다투었다.
照人心骨冷(조인심골냉) : 사람을 비춰 마음과 뼈가 차가운데
竟夕不欲眠(경석부욕면) : 저녁이 다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曉尋南塔路(효심남탑노) : 새벽에 남탑로를 찾으니
亂竹低嬋娟(난죽저선연) : 어지러운 대나무 선연히 늘어져있다.
林幽不逢人(림유부봉인) : 숲이 깊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寒蝶飛翾翾(한접비현현) : 가을나비가 파뜩파뜩 날아다닌다.
山果不識名(산과부식명) : 산속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데
離離夾道蕃(리리협도번) : 길게 뻗혀 길을 끼고 무성하였다.
足以療飢乏(족이료기핍) : 배고픈 것을 족히 면할 수 있어서
摘賞味甘酸(적상미감산) : 따다가 그 맛을 보니 달콤새콤하였다.
道南藍谷神(도남남곡신) : 길 남쪽의 푸른 골짜기는 신비롭고
紫繖白紙錢(자산백지전) : 자줏빛 천에는 흰 종이돈이 있었다.
若歲有水旱(야세유수한) : 만약에 한해가 있다면
詔使修蘋蘩(조사수빈번) : 조서를 내려 풀을 깎아버리게 했다.
以地淸淨故(이지청정고) : 땅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獻奠無葷羶(헌전무훈전) : 비리고 누린 음식을 못 올리게 했다.
危石疊四五(위석첩사오) : 큰 바위가 네댓 개나 쌓여
嵬欹敧且刓(외의기차완) : 높고 기울어지고 또 깎여있었다.
造物者何意(조물자하의) : 조물주는 무슨 의도로
堆在巖東偏(퇴재암동편) : 바위 동쪽에 치우쳐 쌓아놓았는가.
冷滑無人跡(냉골무인적) : 차고 미끄러워 사람 자취 없고
苔點如花牋(태점여화전) : 이끼 얼룩이 마치 꽃종이 같았다.
我來登上頭(아내등상두) : 내가 와서 위쪽으로 올라서
下臨不測淵(하림부측연) : 아래를 보니 못을 헤아릴 수 없었다,
目眩手足掉(목현수족도) : 눈이 어지럽고 팔다리가 흔들려
不敢低頭看(부감저두간) : 감히 머리를 숙이고 살펴보지 못했다.
風從石下生(풍종석하생) : 바람은 돌 아래에서 일어나고
薄人而上搏(박인이상박) : 사람을 하찮게 여겨 올라가 친다.
衣服似羽翮(의복사우핵) : 의복은 날개 같아서
開張欲飛騰(개장욕비등) : 펼쳐서 날아오르고 싶었다.
??三面峯(외외삼면봉) : 높고 높은 삼면의 산봉우리 *여기서 ??는 <山+雙>임
峯尖刀劍攢(봉첨도검찬) : 칼끝을 모아 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
往往白雲過(왕왕백운과) : 가끔씩 흰 구름이 지나가고
決開露靑天(결개노청천) : 구름 터진 틈으로 푸른 하늘 드러난다.
西北日落時(서배일낙시) : 서북으로 해가 넘어갈 시간
夕暉紅團團(석휘홍단단) : 저녁 햇볕 붉게 둥글었다.
千里翠屛外(천리취병외) : 푸른 병풍 밖, 아득한 천 리
走下丹砂丸(주하단사환) : 붉은 둥근 모래판으로 달려 내려갔다.
東南月上時(동남월상시) : 동남쪽에 달 뜰 시간
夜氣淸漫漫(야기청만만) : 밤기운은 맑고 질펀하였다.
百丈碧潭底(백장벽담저) : 백 길이나 되는 푸른 못 아래
寫出黃金盤(사출황금반) : 황금빛 둥근 쟁반이 쏟아져 나왔다.
藍水色似藍(남수색사남) : 푸른 물, 물빛은 쪽빛 같았고
日夜長潺潺(일야장잔잔) : 밤낮으로 길이 졸졸 흘러갔다.
周廻繞山轉(주회요산전) : 주변을 돌아 산을 둘러 돌아가니
下視如靑環(하시여청환) : 아래로 내려 보니 푸른 고리 같았다.
或鋪爲慢流(혹포위만류) : 혹은 퍼져 천천히 내려가고
或激爲奔湍(혹격위분단) : 혹은 부딪쳐서 빠른 여울물이 된다.
泓澄最深處(홍징최심처) : 가장 깊은 곳은 넓고도 맑아서
浮出蛟龍涎(부출교룡연) : 교룡의 침처럼 둥둥 떠서 나온다.
側身入其中(측신입기중) : 몸을 비스듬히 그 안으로 들이면
懸磴尤險難(현등우험난) : 돌길이 매어달린 듯이 더욱 험난하다.
捫蘿蹋樛木(문나답규목) : 덩굴 붙잡고, 굽은 나무 밟으며
下逐飮澗猨(하축음간원) : 계곡물 마시는 원숭이를 아래로 쫓는다.
雪迸起白鷺(설병기백노) : 눈이 흩어지니 백로가 놀라 일어나고
錦跳驚紅鱣(금도경홍전) : 붉은 상어에 놀라 비단결처럼 뛰어오른다.
歇定方盥漱(헐정방관수) : 쉴 곳을 정하고 세수하고 양치하여
濯去支體煩(탁거지체번) : 다 씻고 나니 팔다리가 피곤하였다.
淺深皆洞徹(천심개동철) : 옅고 깊은 모든 골짝물이 투명하니
可照腦與肝(가조뇌여간) : 가히 뇌와 간이라도 비출 것 같았다.
但愛淸見底(단애청견저) : 오직 바닥 보이는 맑음이 좋아
欲尋不知源(욕심부지원) : 찾으려 했으나 그 근원을 알지 못했다.
東崖饒怪石(동애요괴석) : 동쪽 언덕에는 괴석이 많고
積甃蒼琅玕(적추창랑간) : 돌을 쌓아놓은 것이 푸른 옥돌 같았다
卞和死已久(변화사이구) : 변씨와 화씨가 죽은 지 오래되어
良玉多棄捐(량옥다기연) : 좋은 옥돌이 많이도 버려졌었다.
或時洩光彩(혹시설광채) : 혹 때때로 광채를 끌어들이고
夜與星月連(야여성월련) : 밤에도 별과 달이 이어졌다.
中頂最高峯(중정최고봉) : 가운데 꼭대기가 최고봉이라
拄天靑玉竿(주천청옥간) : 하늘을 밭치는 푸른 옥 줄기 같도다.
형령上不得(형령상부득) : 올라가려 해도 갈 수가 없으니
豈我能攀援(개아능반원) : 어찌 내가 능히 잡아당겨 갈 수 있을까
上有白蓮池(상유백련지) : 위에는 백련지 연못이 있어
素葩覆淸瀾(소파복청란) : 흰 꽃이 푸른 물결을 덮었구나.
聞名不可到(문명부가도) : 이름을 들었어도 가보지 못했으니
處所非人寰(처소비인환) : 사는 곳이 사람의 세계는 아니었으리라.
又有一片石(우유일편석) : 또 한 조각, 돌이 있는데
大如方尺甎(대여방척전) : 크기가 사방 한 자의 벽돌과 같았다.
揷在半壁上(삽재반벽상) : 벽 절반 위에 꽂아 두었으니
其下萬仞懸(기하만인현) : 그 아래로 만 길이나 매달려있었다.
云有過去師(운유과거사) :
사람들이 이르기를, 과거에 스님이 있었는데
坐得無生禪(좌득무생선) : 앉아도 선을 이루지 못했었단다.
號爲定心石(호위정심석) : 정심석이라 이름을 지어
長老世相傳(장노세상전) :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왔다.
却上謁仙祠(각상알선사) : 물러나 신선 사당에 올라가 아뢰니
蔓草生綿綿(만초생면면) : 덩굴풀이 면면히 자라났도다.
昔聞王氏子(석문왕씨자) : 옛날에 들으니, 왕씨의 자식
羽化升上玄(우화승상현) :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고 했다.
其西曬藥臺(기서쇄약대) : 그 서쪽에 쇄약대가 있는데
猶對芝朮田(유대지출전) : 여전히 지출전과 마주보고 있다.
時復明月夜(시복명월야) : 때로 다시 밝은 달 뜬 밤이면
上聞黃鶴言(상문황학언) : 황학의 말이 위에서 들린다고 하였다.
廻尋畫龍堂(회심화룡당) : 돌아서 화룡당을 찾았더니
二叟鬚髮斑(이수수발반) : 두 늙은이가 수염이 반백이었다.
想見聽法時(상견청법시) : 생각해 보니, 불법을 들을 때
歡喜禮印壇(환희례인단) : 예인단을 보면서 기뻐하였으리라 .
復歸泉窟下(복귀천굴하) : 다시 천굴 아래로 돌아와
化作龍蜿蜒(화작룡완연) : 바꾸어서 용완연을 만들었다.
階前石孔在(계전석공재) : 계단 앞에는 돌구멍이 있는데
欲雨生白煙(욕우생백연) : 비가 내리려 하면 흰 연기가 생긴단다.
往有寫經僧(왕유사경승) : 왕년에 경전을 베끼는 중이 있었는데
身靜心精專(신정심정전) :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정성스럽고 순수했다.
感彼雲外鴿(감피운외합) : 저 구름 밖 비둘기 느끼어
羣飛千翩翩(군비천편편) : 수 천 번을 퍼덕이며 떼 지어 날았다.
來添硯中水(내첨연중수) : 내려와 돌 속에 물을 보태고
去吸巖下泉(거흡암하천) : 날아가서는 바위 아래 샘물을 들이킨다.
一日三往復(일일삼왕복) : 하루에 세 번 씩 왕복하면서
時節長不僣(시절장부참) : 시절마다 언제나 교만하지 않았다.
經成號聖僧(경성호성승) : 자신을 다스려 이루어 성승이라 불렸는데
弟子名揚難(제자명양난) : 제자를 양난이라 명명하였다.
誦此蓮花偈(송차련화게) : 이 연화의 게송을 외웠는데
數滿百億千(삭만백억천) : 그 수가 백억 천 개를 채웠다.
身壞口不壞(신괴구부괴) : 몸은 부서져도 입은 부서지지 않았으며
舌根如紅蓮(설근여홍련) : 혀는 붉은 연꽃 같았다 .
顱骨今不見(로골금부견) : 해골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石函尙存焉(석함상존언) : 돌함에는 아직도 그것이 남아있다.
粉壁有吳畫(분벽유오화) : 가루 발린 집에는 오도자의 그림이 있었는데
筆彩依舊鮮(필채의구선) : 붓으로 그린 채색그림이 옛날처럼 선명하였다.
素屛有褚書(소병유저서) : 흰 병풍에는 저수량의 글씨가 있었는데
墨色如新乾(묵색여신건) : 먹빛이 금방 말라 버린 것 같았다.
靈境與異跡(령경여리적) : 신령한 경지와 이색적인 자취들
周覽無不殫(주람무부탄) : 두루 살려보아도 끝이 없었다.
一遊五晝夜(일유오주야) : 한 번 돌아다니면, 오 일 밤낮 다녔고
欲返仍盤桓(욕반잉반환) : 돌아가려하니 머뭇거려졌다.
我本山中人(아본산중인) : 나는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인데
誤爲時網牽(오위시망견) : 잘못 시대의 거물에 끌려들었다.
牽率使讀書(견률사독서) : 나를 끌고 와서 책을 읽게 하고
推挽令效官(추만령효관) : 나를 추천하여 관리가 되게 하였다.
旣登文字科(기등문자과) : 이미 문학으로 과거에 올라
又忝諫諍員(우첨간쟁원) : 욕되게도 간쟁하는 관리가 되었다.
拙直不合時(졸직부합시) : 졸렬하게 곧아서 시대에 맞지 않아
無益同素餐(무익동소찬) : 유익이 없으면서 녹만을 함께 먹었다.
以此自慚惕(이차자참척) : 이 때문에 스스로 부끄럽고 두려워
戚戚常寡歡(척척상과환) : 불안해하면서 항상 기뻐하는 일이 적었다.
無成心力盡(무성심력진) : 일은 이루지 못하면서 심력은 다하여
未老形骸殘(미노형해잔) : 늙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쇠약해졌다.
今來脫簪組(금내탈잠조) : 이제 비녀의 끈을 풀고 벼슬길에서 물러나니
始覺離憂患(시각리우환) : 비로소 근심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도다.
及爲山水遊(급위산수유) : 산수에 노닐게 되어
彌得縱疎頑(미득종소완) : 내게 소홀하고 완고함이 가득 하여도
野麋斷覇絆(야미단패반) : 들판의 사슴처럼 구속됨을 끊어버렸다.
行走無拘攣(항주무구련) :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구속됨이 없어
池魚放入海(지어방입해) : 못 속의 물고기를 놓아 주어 바다로 들게 하였다.
一往何時還(일왕하시환) : 한 번 가면, 어느 때나 돌아오나
身著居士衣(신저거사의) : 몸에는 거사의 옷을 입고
手把南華篇(수파남화편) : 손에는 도덕경을 들고 돌아다녔다.
終故此山住(종고차산주) : 끝내는 고향의 이 산에 머물러 살며
永謝區中緣(영사구중연) : 영원히 이 땅 안의 인연에 감사한다.
我今四十餘(아금사십여) :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從此終身閑(종차종신한) :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한가로우리라.
若以七十期(야이칠십기) : 만약 칠십 살이 내 생애라면
猶得三十年(유득삼십년) : 여전히 삼십 년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白樂天詩集,卷六,閒適二)

절검두(折劍頭)-백거이(白居易)
부러딘 칼 머리
拾得折劍頭(습득절검두) : 칼 부러진 머리 주웠는데
不知折之由(부지절지유) : 부러진 사유는 알 수 없구나.
疑是斬鯨鯢(의시참경예) : 혹은 고래를 잘랐나
不然則蛟虬(불연칙교규) : 아니면 교룡을 잘랐을까.
缺落尼土中(결락니토중) : 흙 속에 떨어져 있어
委棄無人收(위기무인수) : 버려둔 채, 줍는 사람 없구나.
我有鄙介性(아유비개성) : 나는 지루한 고집 있어
好剛不好柔(호강불호유) : 강직한 것 좋고 굽히는 것 싫도다.
勿輕直折劍(물경직절검) : 곧아서 부서진 칼 얕보지 말라
猶勝曲全鉤(유승곡전구) : 굽혀서 온전한 갈구리보다 낫도다.

지반이수1(池畔二首1)-백거이(白居易)
연못가에서
結構池西廊(결구지서랑) : 못 서편에 행랑 짓고
疏理池東樹(소리지동수) : 동쪽의 나무들을 손질했다.
此意人不知(차의인부지) : 이러한 뜻 남들은 몰라
欲爲待月處(욕위대월처) : 달구경하는 곳으로 만들려한다.

주야증내(舟夜贈內)-백거이(白居易)
배에서 밤에 아내에게-
三聲猿後垂鄕淚(삼성원후수향누) : 세 마디 원숭이 울음소리 뒤엔 고향 눈물
一葉舟中載病身(일섭주중재병신) : 일엽편주 속에 병든 이 몸 싣고서
莫凭水窓南北望(막빙수창남배망) : 물가 창에 기대어 남북을 바라보지 말지니
月明月闇總愁人(월명월암총수인) : 달이 밝아도, 어둑해도 사람을 근심케 합니다.

파약(罷藥)-백거이(白居易)
복약을 그만 두며
自學坐禪休服藥(자학좌선휴복약) : 좌선을 배우고부터 복약을 그만두었더니
從他時復病沈沈(종타시복병침침) : 다른 때를 따라 다시 병이 심해진다.
此身不要全强健(차신부요전강건) : 이 몸이 완전히 강건해지기 바라지 않지만
强健多生人我心(강건다생인아심) : 강건함은 남과 나의 마음에서 생기는 법이라오.

백로(白鷺)-백거이(白居易)
人生四十未全衰(인생사십미전쇠) : 인생 사십은 완전히 늙음이 아닌데
我爲愁多白髮垂(아위수다백발수) : 나는 근심이 많아 백발이 드리웠구나.
何故水邊雙白鷺(하고수변쌍백노) : 무슨 까닭으로 물가에 있는 두 마리 백로
無愁頭上亦垂絲(무수두상역수사) : 근심 없는 머리 위에도 흰 실이 드리웠나.

조경(照鏡)-백거이(白居易)
거울에 비취보며
皎皎靑銅鏡(교교청동경) : 밝고 맑은 청동 거울
斑斑白絲鬢(반반백사빈) : 얼룩덜룩 흰 실 같은 귀밑머리.
豈復更藏年(기부경장년) : 어찌해야 고쳐서 나이를 감출까
實年君不信(실년군불신) : 실제 내 나이를 믿지 못하리라.

병가중남정한망(病假中南亭閑望)-백거이(白居易)
병가 중에 남정에서 한가히
欹枕不視事(의침부시사) : 베개 베고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兩日門掩關(량일문엄관) : 이틀간 문짝에 빗장을 걸어두었다.
始知吏役身(시지리역신) : 이제야 알겠느니, 관리생활이 몸을 부려
不病不得閑(부병부득한) : 병이 나지 않고 한가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閑意不在遠(한의부재원) : 한가로운 마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小亭方丈間(소정방장간) : 이 작은 정자, 한 간의 방 안에 있는 것을
西簷竹梢上(서첨죽초상) : 서쪽 처마 밑, 대나무 가지 위를
坐見太白山(좌견태백산) : 태백산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본다.
遙媿峯上雲(요괴봉상운) : 아득히 부끄러워라, 봉우리 위 구름
對此塵中顔(대차진중안) : 구름을 마주보는 세속에 더렵혀진 내 얼굴이여
(白樂天詩集,卷五,閒適一)

감흥이수(感興二首)-백거이(白居易)
느낌이 있어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내유) : 길흉화복은 오는 길이 있어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부요우) : 다만 깊이 알아야지 근심 말라.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 불길이 윤택한 집 태우는 것 보나
不聞風浪覆虛舟(부문풍낭복허주) : 풍랑을 속이 진 배를 엎지 못한다.
名爲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 명예는 공기라, 많이 취하지 말라
利是身災合少求(리시신재합소구) : 이익은 몸의 재앙이라, 적게 함이 좋다.
雖異匏瓜難不食(수리포과난부식) : 표주박과 달라, 굶기가 어려우나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 대강 먹기 충분하면 일찍 쉬어야 한다.

주중만기(舟中晩起)-백거이(白居易)
배 안에서, 저녁에 일어나
日高猶掩水窓眠(일고유엄수창면) : 해가 높이 솟아도 문 가리고 잠자고
枕簟淸涼八月天(침점청량팔월천) : 베개와 잠자리가 맑고 시원하니 팔월이라.
泊處或依沽酒店(박처혹의고주점) : 정박한 곳에서, 혹 술집에 머물러
宿時多伴釣魚船(숙시다반조어선) : 그곳에 묵으면서 자주 고깃배와 친구한다.
退身江海應無用(퇴신강해응무용) : 은퇴한 몸이라 강호에 쓰일 곳 없고
憂國朝廷自有賢(우국조정자유현) : 나랏일 걱정은 조정에 어진 사람 있으리라.
且向錢塘湖上去(차향전당호상거) : 장차 전당호로 올라가서
冷吟閒醉二三年(냉음한취이삼년) : 이삼 년간 냉정히 읊으며 한가히 취해보리라.

이도서문이수2(履道西門二首2)-백거이(白居易)
이도서문에서
履道西門獨掩扉(이도서문독엄비) : 이도 서문에 홀로 문을 가리고
官休病退客來稀(관휴병퇴객내희) : 벼슬 그치고 병들어 물러나니 손님 드물다.
亦知軒冕榮堪戀(역지헌면영감련) : 높은 벼슬 그리워 할 만하다는 것도 알지만
其奈田園老合歸(기나전원노합귀) : 전원이 늙어서 돌아갈 곳임을 어쩌리오.
跋鼈難隨騏驥足(발별난수기기족) : 절뚝이 자라는 천리마의 다리를 따르기 어렵고
傷禽莫趁鳳皇飛(상금막진봉황비) : 상처 난 새는 봉황새의 비상을 쫓아가지 못한다.
世間認得身人少(세간인득신인소) : 세상에는 자기 몸을 얻는 자가 드무니
今我雖愚亦庶幾(금아수우역서기) : 이제 나는 비록 어리석어도 도에 가까우리라.

도중감추(途中感秋)-백거이(白居易)
길 가다 가을은 느껴
節物行搖落(절물항요낙) : 철 따라 만물은 더욱 요락해 가고
年顔坐變衰(연안좌변쇠) : 나이 따라 얼굴빛도 절로 변하여 쇠락한다.
樹初黃葉日(수초황섭일) : 나무에 처음 누런 잎 지는 날
人欲白頭時(인욕백두시) : 사람도 백발이 되어가는 때이로구나.
鄕國程程遠(향국정정원) : 고향 가는 길마다 아득하고
親朋處處辭(친붕처처사) : 친구들은 곳곳에서 떠나가는구나.
唯憐病與老(유련병여노) : 오직 가련한 것은, 병들고 늙어감이
一步不相離(일보부상리) : 한 걸음도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로다.

추모교거서회(秋暮郊居書懷)-백거이(白居易)
늦가을 교외에서 회포를 적다
郊居人事少(교거인사소) : 교외에 다니는 사람 적고
晝臥對林巒(주와대림만) : 낮에는 누워서 숲 가득한 산을 본다.
窮巷厭多雨(궁항염다우) : 궁핍한 골목길에 내리는 비 싫고
貧家愁早寒(빈가수조한) : 가난한 집안에 이른 추위 걱정된다.
葛衣秋未換(갈의추미환) : 갈포 옷을 가을에도 못 바꿔 입고
書卷病仍看(서권병잉간) : 서책은 병들어도 여전히 읽고 있노라.
若問生涯計(야문생애계) : 앞으로의 생애의 대책을 문는다면
前溪一釣竿(전계일조간) : 앞개울에 낚싯줄이나 드리고 살리라.

동초주숙이수1(冬初酒熟二首1)-백거이(白居易)
초겨울, 술은 익어가는데
霜繁脆庭柳(상번취정류) : 서리 자주 내리자 뜰의 버들 시들고
風利剪池荷(풍리전지하) : 바람 매서워지자 연못의 연꽃이 꺾인다.
月色曉彌苦(월색효미고) : 달빛은 새벽이 되니 더욱 괴롭고
鳥聲寒更多(조성한경다) : 새소리는 차가워지니 더욱 시끄럽다.
秋懷久寥落(추회구요낙) : 가을의 마음 늘 서글퍼지는데
冬計又如何(동계우여하) : 겨울 대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一甕新醅酒(일옹신배주) : 한 독에 가득한 새로 빚은 술빛이
萍浮春水波(평부춘수파) : 마름 떠다니는 봄 연못 물결 같구나.

동초주숙이수2(冬初酒熟二首2)-백거이(白居易)
초겨울, 술은 익어 가는데
酒熟無來客(주숙무내객) : 술이 익어도 찾아오는 손님 없어
因成獨酌謠(인성독작요) : 혼자 마시고 노래 부르게 되었구나.
人間老黃綺(인간노황기) : 인간세계 늙어가는 하황공과 기리계
地上散松喬(지상산송교) : 지상에 내려온 적송자와 왕자교이로다.
忽忽醒還醉(홀홀성환취) : 문득문득 깨었다가 다시또 취하고
悠悠暮復朝(유유모복조) : 편안하게 밤에도 낮에도 취하리라.
殘年多少在(잔년다소재) : 남은 인생 얼마간 살아있을 동안을
盡付此中銷(진부차중소) : 술마시고 취하며 모든 날을 삭이리라.
(白樂天詩後集,卷十三,律詩)

야량(夜涼)-백거이(白居易)
밤은 차가운데
露白風淸庭戶涼(노백풍청정호량) : 흰 이슬, 맑은 바람, 싸늘한 뜰
老人先著夾衣裳(노인선저협의상) : 늙은이가 가장 먼저 겹옷 입는다.
舞腰歌袖抛何處(무요가수포하처) : 무희와 가수들 어디에 버려두고
唯對無絃琴一張(유대무현금일장) : 다만 줄 없는 거문과를 바라 본 뿐.

숙죽각(宿竹閣)-백거이(白居易)
죽각에 묵으며
晩坐松檐下(만좌송첨하) : 저녁에 소나무 처마 아래 앉고
宵眠竹閣間(소면죽각간) : 밤에는 죽각 사이에서 잠을 잔다.
淸虛當服藥(청허당복약) : 청허한 마음은 선약을 복용함 같고
幽獨抵歸山(유독저귀산) : 그윽한 기분은 산으로 돌아온 것 같아라.
巧未能勝拙(교미능승졸) : 재치는 졸렬함을 이길 수 없고
忙應不及閒(망응부급한) : 바쁜 것은 한가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無勞別修道(무노별수도) : 따로 도를 닦으려 수고할 필요 없으니v
卽此是玄關(즉차시현관) : 이것에 이르면 곧, 현묘한 경지가 되니라.
(白樂天詩集,卷二十,律詩)

사십오(四十五)-백거이(白居易)
마흔 다섯 살
行年四十五(항년사십오) : 내 나이 이미 마흔 다섯
兩鬢半蒼蒼(량빈반창창) : 두 귀밑머리 반백이 되었다.
淸瘦詩成癖(청수시성벽) : 성격이 말쑥하고 작시가 버릇되어
粗豪酒放狂(조호주방광) : 억세고 거칠어 취하면 광태로다.
老來猶委命(노내유위명) : 늙어서는 오히려 천명에 맡기고
安處卽爲鄕(안처즉위향) : 편안히 처할 곳은 고향이로라.
或擬廬山下(혹의려산하) : 혹 여산 기슭쯤에다가
來春結草堂(내춘결초당) : 봄이면 초당이나 엮어 볼까한다.
(白樂天詩集,卷十六,律詩)

장안조춘려회(長安早春旅懷)-백거이(白居易)
이른 봄날 장안에서 나그네 회포
軒車歌吹喧都邑(헌거가취훤도읍) : 수레와 노랫소리로 장안이 시끄러운데
中有一人向隅立(중유일인향우립) : 그 가운데 구석 향해 서있는 한 사람 있다.
夜深明月卷簾愁(야심명월권렴수) : 깊은 밤, 달은 밝은데 주렴 걷으니 수심 겹고
日暮靑山望鄕泣(일모청산망향읍) : 해 저무는 청산에서 고향 바라보며 눈물 흘린다.
風吹新綠草芽拆(풍취신녹초아탁) : 신록에 바람 부니 풀싹이 트고
雨灑輕黃柳條濕(우쇄경황류조습) : 가볍게 뿌리는 비에 연둣빛 버들가지 물오른다.
此生知負少年春(차생지부소년춘) : 이 몸은 젊의 봄날을 저버린 것을 알았나니
不展愁眉欲三十(부전수미욕삼십) : 근심스런 눈썹 펴지 못한 채로 삼십 년이 되어간다.

강남송북객(江南送北客)-백거이(白居易)
강남에서 북객을 보니며
故園望斷欲何如(고원망단욕하여) : 고향을 바라봐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하나
楚水吳山萬里餘(초수오산만리여) : 초나라 강물과 오나라 산이 만여 리나 막혔도다.
今日因君訪兄弟(금일인군방형제) : 오늘 그대가 내 형제 찾아간다니
數行鄕淚一封書(삭항향누일봉서) : 몇 줄기 흐르는 향수의 눈물로 한 장의 편지를 쓴다.
(白樂天詩集,卷十三,律詩)

연자루삼수3(鷰子樓三首3)-백거이(白居易)
연자루에서
今春有客洛陽回(금춘유객낙양회) : 금년 봄, 낙양에서 돌아온 나그네
曾到尙書墓上來(증도상서묘상내) : 언젠가 장상서의 무덤을 찾아 갔었단다.
見說白楊堪作柱(견설백양감작주) : 무덤의 백양목이 기둥 삼을 만하다 하니
爭敎紅粉不成灰(쟁교홍분부성회) : 아름다운 그 얼굴이 다 시들지 않았으리요.

연자루삼수2(鷰子樓三首2)-백거이(白居易)
연자루에서
鈿暈羅衫色似煙(전훈나삼색사연) : 흐릿한 금비녀와 비단 적삼 색깔이 연기 같아
幾回欲著卽潛然(기회욕저즉잠연) : 몇 번인가 입어보려 하나 곧 눈물만 흘러내린다.
自從不舞霓裳曲(자종부무예상곡) : 예상곡으로 춤추지 않은 채로
疊在空箱十一年(첩재공상십일년) : 빈 옷장에 쌓아둔 지가 이미 십일 년이 되었도다.

연자루삼수1(鷰子樓三首1)-백거이(白居易)
연자루에서
滿窓明月滿簾霜(만창명월만렴상) : 창에 가득 달빛, 주렴에 가득한 서리
被冷燈殘拂臥牀(피냉등잔불와상) : 찬 이불 꺼져가는 등잔, 떨치고 잠에 든다.
燕子樓中霜月夜(연자누중상월야) : 연자루 안에서의 십일월의 밤
秋來只爲一人長(추내지위일인장) : 가을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길기만 하다.

구중유일사이수(丘中有一士二首)-백거이(白居易)
산속에 숨어사는 선비 한 분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守道歲月深(수도세월심) : 도를 지키며 세월이 깊어간다.
行披帶索衣(항피대색의) : 다닐 때는 새끼줄 옷을 입고
坐拍無絃琴(좌박무현금) :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不飮濁泉水(부음탁천수) : 탁한 샘물은 마시지 않고
不息曲木陰(부식곡목음) : 굽은 나무 그늘에는 쉬지 않았다.
所逢苟非義(소봉구비의) : 만나는 일이 진실로 의롭지 않으면
糞土千黃金(분토천황금) : 천량의 황금도 분토같이 여긴다.
鄕人化其風(향인화기풍) : 마을 사람들이 그의 풍교에 감화되고
薰如蘭在林(훈여난재림) : 향기는 난초가 숲에 있는 것 같았다.
智愚與强弱(지우여강약) : 지자와 우자, 강자와 약자가
不忍相欺侵(부인상기침) : 서로 차마 속이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我欲訪其人(아욕방기인) : 내가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여
將行復沈吟(장항복침음) : 길을 나섰다가는 다시 주저하고 망설였다.
何必見其面(하필견기면) : 어찌 반드시 그 얼굴을 보아야 하는가.
但在學其心(단재학기심) : 다만 그이 마음만을 배우는데 있는 것이다.

구중유일사이수(丘中有一士二首)-백거이(白居易)
산속에 숨어사는 선비 한 분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不知其姓名(부지기성명) : 그 성명을 알지 못한다.
面色不憂苦(면색부우고) : 얼굴에 근심과 고통이 없고
血氣常和平(혈기상화평) : 혈기는 항상 화평하였다.
每選隙地居(매선극지거) : 매일 한적한 곳을 가려 살고
不蹋要路行(부답요노항) : 벼슬길은 절대로 밟지 않았다.
擧動無尤悔(거동무우회) : 거동에는 잘못이나 후회가 없고
物莫與之爭(물막여지쟁) : 물질에는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藜藿不充腸(여곽부충장) : 명아주나 콩잎으로도 배를 채우지 않고
布褐不蔽形(포갈부폐형) : 베옷이나 갈포로도 몸을 가리지 못했다.
終歲守窮餓(종세수궁아) : 평생토록 궁핍과 굶주림을 지키고
而無嗟歎聲(이무차탄성) : 탄식하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豈是愛貧賤(개시애빈천) : 어찌 곧 가난과 천함을 좋아해서인가
深知時俗情(심지시속정) : 속세의 정을 깊이 알아서 이리라.
勿矜羅弋巧(물긍나익교) : 그물이나 주살에 익숙하다 자랑마라
鸞鶴在冥冥(난학재명명) : 난새나 학이 넓은 세상을 날고 있단다.

채지황자(采地黃者)-백거이(白居易)
지황을 캐는 사람
麥死春不雨(맥사춘부우) : 봄에 가물어 보리가 죽고
禾損秋早霜(화손추조상) : 가을 이른 서리에 벼농사 망쳤단다.
歲晏無口食(세안무구식) : 세모에 입에 먹을 것이 전혀 없어
田中采地黃(전중채지황) : 밭에서 지황을 캐고 있단다.
采之將何用(채지장하용) : 그것을 캐어서 어디에 쓰느냐 하니
持以易餱糧(지이역후량) : 그것을 가져다 양식과 바꾼단다.
凌晨荷鋤去(능신하서거) : 새벽에 호미 메고 나가서
薄暮不盈筐(박모부영광) : 저녁 되어도 광주리를 못 채운단다.
攜來朱門家(휴내주문가) : 붉은 대문 집에 가지고 가서
賣與白面郎(매여백면낭) : 희멀건 도령에게 팔아버린단다.
與君啖肥馬(여군담비마) : 도령은 살찐 말에게 먹이어
可使照地光(가사조지광) : 땅에 광택이 비치도록 하더란다.
願易馬殘粟(원역마잔속) : 바라기를, 말먹이고 남은 곡식 주어서
救此苦飢腸(구차고기장) : 그렇게 쓰리고 주린 창자를 구해달란다.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송재자제(松齋自題)-백거이(白居易)
송재에 제하여
非老亦非少(비노역비소) : 늙지도 젊지도 않았으니
年過三紀餘(년과삼기여) : 나이가 서른여섯 살이 지났다.
非賤亦非貴(비천역비귀) : 천하지도 귀하지도 않으니
朝登一命初(조등일명초) : 조정에 올라 처음 임명받은 초기
才小分易足(재소분역족) : 재능이 적어 분수에 만족하기 쉽고
心寬體長舒(심관체장서) : 마음이 너그러워 몸이 늘 편하다.
充腸皆美食(충장개미식) : 배만 채우면 모두가 맛있는 음식이요
容膝卽安居(용슬즉안거) : 두릅만 들여놓으면 편안한 거처이다.
況此松齋下(황차송재하) : 하물이 나의 서재인 송재 아래서
一琴數帙書(일금삭질서) : 거문고 하나와 몇 질의 책이 있음에야.
書不求甚解(서부구심해) : 책을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琴聊以自娛(금료이자오) : 거문고도 적당히 스스로 즐긴다.
夜直入君門(야직입군문) : 밤에는 당직서려 대궐에 들고
晩歸臥吾廬(만귀와오려) : 저녁에는 돌아와 내 집에 눕는다.
形骸委順動(형해위순동) : 신체는 섭리에 맡겨 움직이고
方才付空虛(방재부공허) : 마음은 공허한 곳에 붙여놓는다.
持此將過日(지차장과일) : 이러한 태도 지키며 장차 날을 보내면
自然多晏如(자연다안여) : 자연히 마음 편한 날이 많아진다.
昏昏復黙黙(혼혼복묵묵) : 혼미한 듯, 또는 말 못하는 듯 하나
非智亦非愚(비지역비우) : 지혜롭지 않고, 또한 어리석지도 않도다.

출부귀오려(出府歸吾廬)-백거이(白居易)
관청을 나와 내 집에 돌아와
出府歸吾廬(출부귀오려) : 관청을 나와 집에 돌아오니
靜然安且逸(정연안차일) : 고요하여 편안하고 한가롭구나.
更無客干謁(경무객간알) : 게다가 만자자고 오는 손님도 없고
時有僧問疾(시유승문질) : 때로 병문안 오는 승려가 있다.
家僮十餘人(가동십여인) : 사내 종 십여 명이 있고
櫪馬三四匹(력마삼사필) : 마구간에는 서너 필의 말이 있다.
慵發經旬臥(용발경순와) : 게을러지면 열흘을 누워있고
興來連日出(흥내련일출) : 흥겨우면 며칠 동안 나가논다.
出遊愛何處(출유애하처) : 나아가 놀 때면 어느 곳을 좋아하는가.
嵩碧伊瑟瑟(숭벽이슬슬) : 숭산의 푸름이 그렇게 보석 같다.
況有淸和天(황유청화천) : 하물며 맑고도 따뜻한 날씨
正當疎散日(정당소산일) : 마침 한가로운 달이라면 어떠하리오.
身閒自爲貴(신한자위귀) : 몸이 한가하면 절절로 고귀해지니
何必居榮秩(하필거영질) : 어찌 반드시 영화를 누리는 지위에 있어야 할까.
心足卽非貧(심족즉비빈) : 마음이 흡족하면 가난하지 않나니
豈唯金滿室(개유금만실) : 어찌 오직 황금을 집안에 가득히 채워야 할까.
吾觀權勢者(오관권세자) : 내가 권세 있는 자를 살펴보니
苦以身徇物(고이신순물) : 고통스럽게 자신을 물질을 따르게 한다.
炙手外炎炎(자수외염염) : 손에 불 쪼이고 밖으로는 기세가 타오르지만
履冰中慄慄(이빙중률률) : 얼음을 밟은 듯이 마음속으로 떨고 있다.
朝飢口忘味(조기구망미) : 아침에는 배고파도 입맛을 잃었고
夕惕心憂失(석척심우실) : 저녁에는 마음속으로 잃을까 걱정한다.
但有富貴名(단유부귀명) : 다만 부귀의 이름만 있을 뿐이지
而無富貴實(이무부귀실) : 부귀의 실속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대학(代鶴)-백거이(白居易)
학을 대신하여
我本海上鶴(아본해상학) : 나는 본래 바닷가 학이었는데
偶逢江南客(우봉강남객) : 우연히 강남 나그네를 만났다네.
感君一顧恩(감군일고은) : 황제의 한 번 베푼 은혜에 감격하여
同來洛陽陌(동내낙양맥) : 함께 낙양의 거리로 왔었다네.
洛陽寡族類(낙양과족류) : 낙양에는 나와 동류가 드물어
皎皎唯兩翼(교교유량익) : 교교히 두 날개만 가졌을 뿐이었다.
貌是天與高(모시천여고) : 모습은 곧 하늘과 같이 고고하고
色非日浴白(색비일욕백) : 몸은 햇빛을 받지 않아 희기만 하였다.
主人誠可戀(주인성가련) : 주인을 참으로 그리워했지만
其奈軒庭窄(기나헌정착) : 집과 뜰이 좁은 것을 어찌하리오.
飮啄雜雞羣(음탁잡계군) : 먹고 쪼이며 닭의 무리들에 섞여 살다가
年深損標格(년심손표격) : 나이가 많아지며 품격만 손상당하였다.
故鄕渺何處(고향묘하처) : 고향은 아득한 어느 곳인가
雲水重重隔(운수중중격) : 구름과 물가로 겹겹이 막히었도다.
誰念深籠中(수념심농중) :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깊은 조롱 안에서
七換摩天翮(칠환마천핵) : 하늘 나는 날갯죽지 일곱 번이나 바뀔 것을.

양졸(養拙)-백거이(白居易)
바보처럼 살리라
鐵柔不爲劍(철유부위검) : 쇠가 휘면 칼이 될 수 없고
木曲不爲轅(목곡부위원) : 나무가 굽으면 멍에가 될 수 없다.
今我亦如此(금아역여차) : 이제 나도 이와 같으니
愚蒙不及門(우몽부급문) : 어리석고 몽매하여 입문도 못하는구나.
甘心謝名利(감심사명리) : 마음에 달갑게 명예와 이익 버리고
滅跡歸丘園(멸적귀구원) : 자취를 숨겨 전원으로 돌아가리라.
坐臥茅茨中(좌와모자중) : 초가집에 앉았다가 누웠다 하면서
但對琴與樽(단대금여준) : 오로지 거문고와 술을 마주보며 살리라.
身去韁鏁累(신거강쇄누) : 몸은 고삐의 얽음에서 벗어나고
耳辭朝市喧(이사조시훤) : 귀는 조정과 거리의 소란함을 떠났다.
逍遙無所爲(소요무소위) : 자유롭게 거닐며 억지로 하는 일 없이
時窺五千言(시규오천언) : 때때로 노자의 오천 마디 글을 살피며
無憂樂性場(무우낙성장) : 근심 없이 본성의 바탕을 즐기며
寡慾淸心源(과욕청심원) : 욕심을 줄여서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리라.
始知不才者(시지부재자) : 이제야 알았노라, 재주 없는 사람이라야
可以探道根(가이탐도근) : 진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증내(贈內)-백거이(白居易)
아내에게
生爲同室親(생위동실친) : 살아서는 같은 방의 친구 되고
死爲同穴塵(사위동혈진) : 죽어서는 같은 무덤 흙먼지 되겠소.
他人尙而勉(타인상이면) : 남들도 높여주고 노력하거늘
而況我與君(이황아여군) : 하물며 그대와 내에 있어서야
黔婁固窮士(검루고궁사) : 검루는 정말로 궁핍한 선비였으나
妻賢忘其貧(처현망기빈) : 아내는 어질어 그들의 가난을 잊었소.
冀缺一農夫(기결일농부) : 기결은 한 사람의 농부이었으나
妻敬儼如賓(처경엄여빈) : 아내는 공경하여 손님처럼 공손했소.
陶潛不營生(도잠부영생) : 도잠은 생계를 도모하지 못했으나
翟氏自爨薪(적씨자찬신) : 아내 적씨가 스스로 살림을 꾸렸었소.
梁鴻不肯仕(양홍부긍사) : 양홍은 기꺼이 벼슬살이 하지 않았으나
孟光皯布裙(맹광간포군) : 아내 맹광은 무명치마 옷에 만족하였소.
君雖不讀書(군수부독서) : 당신은 비록 책으로 읽지 않았어도
此事耳亦聞(차사이역문) : 이 일들을 또한 귀로는 들었겠지요.
至此千載後(지차천재후) : 천 년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傳是何如人(전시하여인) : 이들이 어떠한 사람으로 전해 졌는가.
人生未死間(인생미사간) : 사람이 태어나 살아있을 동안
不能忘其身(부능망기신) : 자신의 몸을 잊을 수 없을 것이요.
所須者衣食(소수자의식) : 필요한 것은 의복과 음식일 것이니
不過飽與溫(부과포여온) : 배불리고 몸을 따뜻이 할 뿐이라오.
蔬食足充飢(소식족충기) : 채소를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있으니
何必膏粱珍(하필고량진) : 어찌 반드시 고기와 쌀이 기름져야 하리오.
繒絮足禦寒(증서족어한) : 무명 솜으로 추위를 막으면 족하지
何必錦繡文(하필금수문) : 어찌 반드시 비단옷에 무늬에 있어야 하리오.
君家有貽訓(군가유이훈) : 당신 집에 가훈이 있는데
淸白遺子孫(청백유자손) : 청렴과 결백을 자손에게 남기라 하였지요.
我亦貞苦士(아역정고사) : 나도 정절을 지키는 근면한 선비인지라
與君新結婚(여군신결혼) : 당신과 새로 혼인을 맺었었지요.
庶保貧與素(서보빈여소) : 바라건대, 가난과 소박함을 지키어
偕老同欣欣(해노동흔흔) : 해로하며 함께 즐겁게 살았으면 하지요.

효도잠체시3(效陶潛體詩3)-백거이(白居易)
도잠의 시체를 본받아
朝飮一杯酒(조음일배주) : 아침에 술 한 잔 마시니
冥心合元化(명심합원화) : 그윽한 마음이 천지조화에 맞는다.
兀然無所思(올연무소사) : 홀로 우뚝이 하여 다른 생각 없어
日高尙閒臥(일고상한와) : 해가 높이 떠올라도 한가하게 누웠다.
暮讀一卷書(모독일권서) : 저물어 한 권의 책 읽어보니
會意如嘉話(회의여가화) : 기쁜 대화 나누듯 마음이 흡족하다.
欣然有所遇(흔연유소우) : 만날 사람 생긴 듯이 뿌듯하여
夜深猶獨坐(야심유독좌) : 밤이 깊어가도 여전히 홀로 앉았다
又得琴上趣(우득금상취) : 또 거문고의 흥취를 느끼어
按絃有餘暇(안현유여가) : 거문고 줄을 누르니 한가로워라.
復多詩中狂(복다시중광) : 시에 미친 광기가 다시 생기어
下筆不能罷(하필부능파) : 붓 들어 휘갈기니 그칠 줄을 모른다.
唯茲三四事(유자삼사사) : 오직 이러한 서너 가지일
持用度晝夜(지용도주야) : 이 일들로 밤낮을 지내노라.
所以陰雨中(소이음우중) : 그리하여 장맛비 속에서
經旬不出舍(경순부출사) : 십 여일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始悟獨住人(시오독주인) : 이제야 알았네,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心安時亦過(심안시역과) : 마음 편안하게 세월도 지나가는 것임을.

자제사진(自題寫眞)-백거이(白居易)
초상화에 스스로 글을 짓다
我貌不自識(아모부자식) : 내 모습을 내가 모르는데
李放寫我眞(이방사아진) : 이방이 초상화를 그려주었구나.
靜觀神與骨(정관신여골) : 신기와 골격을 가만히 살피니
合是山中人(합시산중인) : 산 속에 사는 사람이 분명하다.
蒲柳質易朽(포류질역후) : 갯버들 체질이라 썩기가 쉽고
麋鹿心難馴(미녹심난순) : 사슴 같은 마음이라 길들이기 어려워.
何事赤墀上(하사적지상) : 무슨 일로 대궐에 올라와
五年爲侍臣(오년위시신) : 오 년간을 황제 모신 신하되었나.
況多剛狷性(황다강견성) : 하물며 고집과 고지식함이 많아
難與世同塵(난여세동진) :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라.
不惟非貴相(부유비귀상) : 귀골의 인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但恐生禍因(단공생화인) : 화를 초래할 원인이 될까 두려워라.
宜當早罷去(의당조파거) : 마땅히 일찍 파직하고 물러나
收取雲泉身(수취운천신) : 산과 물에 사는 처신을 택하여라.

방언(放言)-백거이(白居易)
거리낌 없이 말하다
泰山不要欺毫末(태산부요기호말) : 태산은 털끝만한 것을 속일 필요 없고
顔子無心羨老彭(안자무심선노팽) : 안자는 노팽을 부러워할 마음 전혀 없으리라.
松樹千年終是朽(송수천년종시후) : 소나무는 천 년을 살아도 끝내는 썩어버리고
槿花一日自爲榮(근화일일자위영) : 무궁화는 하루를 피어도 스스로 영화를 누린다.
何須戀世常憂死(하수련세상우사) : 어찌 현세에 연연하여 항상 죽음을 근심하나
亦莫嫌身漫厭生(역막혐신만염생) : 또한 육신을 혐오하여 삶을 함부로 싫어 말라.
生去死來都是幻(생거사내도시환) : 살고 죽고 가고 오는 일 모두가 환상인 것을
幻人哀樂繫何情(환인애낙계하정) : 환상에 사는 인간의 애락이 어떤 마음에 매였나.

남호조춘(南湖早春)-백거이(白居易)
남쪽 호수의 이른 봄
風廻風斷雨初晴(풍회풍단우초청) : 바람 불어 구름 흩어져 비 처음 개이니
返照湖邊暖復明(반조호변난복명) : 반사하는 석양에 호수는 따뜻하고 밝아진다.
亂點碎紅山杏發(난점쇄홍산행발) : 부서진 붉은 잎이 어지러운 곳에 산 살구 피고
平鋪新綠水蘋生(평포고녹수빈생) : 신록이 평평하게 깔린 곳에 마름풀이 자란다.
翅低白雁飛仍重(시저백안비잉중) : 날개 처진 흰 기러기 날기가 무겁고
舌澁黃鸝語未成(설삽황리어미성) : 혀놀림 부자유한 꾀꼬리 말소리가 서투르다.
不道江南春不好(부도강남춘부호) : 강남 봄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으나
年年衰病減心情(년년쇠병감심정) : 해마다 노쇠하고 병들어 흥겨운 마음 줄어든다.

호선녀(胡旋女)-백거이(白居易)
뺑뺑이 춤을 춤추는 오랑캐 여자
胡旋女胡旋女(호선녀호선녀) : 호선녀, 호선녀여
心應絃手應鼓(심응현수응고) : 자유자제로 손 놀리고, 북을 치는구나.
絃鼓一聲雙袖擧(현고일성쌍수거) : 북소리 한 장단에, 두 소매를 펼쳐들고
廻雪飄颻轉蓬舞(회설표요전봉무) : 휘날리는 눈처럼 펄럭이다가, 구르는 다북쑥처럼 춤춘다.
左旋右轉不知疲(좌선우전부지피) : 좌로 돌고 우로 구르면서 피로한 줄도 모르고
千匝萬周無已時(천잡만주무이시) : 천 번 돌고 만 번 돌며 그칠 때를 모른다.
人間物類無可比(인간물류무가비) : 인간 세상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고
奔車輪緩旋風遲(분거륜완선풍지) : 달리는 수레바퀴도 느리고 회오리바람도 오히려 늦다.
曲終再拜謝天子(곡종재배사천자) : 곡이 끝나자 천자께 재배하고 물러나니
天子爲之微啓齒(천자위지미계치) : 천자도 이 때문에 만족하여 입 벌리고 미소 짓는다.
胡旋女出康居(호선녀출강거) : 호선녀는 강거 땅에서 왔지만
徒勞東來萬里餘(도노동내만리여) : 헛되이 동쪽으로 만 리 넘게 왔구나.
中原自有胡旋者(중원자유호선자) : 이곳 중원 땅에도 원래 호선자가 있으니
鬪妙爭能爾不如(투묘쟁능이부여) : 다투는 교묘함과 싸우는 능란함에 너보다 났으리라.
天寶季年時欲變(천보계년시욕변) : 천보 말년에 세상형편이 바뀌려하여
臣妾人人學圓轉(신첩인인학원전) : 신하와 백성들이 교활함만 배웠었다.
中有太眞外祿山(중유태진외녹산) : 대궐 안에는 태진이요, 밖에는 안록산이 있었으니
二人最道能胡旋(이인최도능호선) : 두 사람이 뺑뺑이 춤에 능하다고 가장 많이 일컬어졌다.
梨花園中冊作妃(이화원중책작비) : 이화원 안에서 태진을 귀비로 책봉하고
金雞障下養爲兒(금계장하양위아) : 안녹산을 금계병풍 아래서 길러서 양자로 삼았단다.
祿山胡旋迷君眼(녹산호선미군안) : 안녹산의 뺑뺑이 춤은 황제의 눈을 미혹케 하여
兵過黃河疑未反(병과황하의미반) : 반역의 군사가 황하를 건너도 반란 아닌가 했단다.
貴妃胡旋惑君心(귀비호선혹군심) : 귀비의 뺑뺑이 춤이 황제의 마음 미혹케 하여
死棄馬嵬念更深(사기마외념경심) : 마외에서 죽여 내버렸어도 양귀비 생각 더욱 깊었단다.
從茲地軸天維轉(종자지축천유전) : 이로부터 땅의 축대와 하늘의 줄기가 굴러 기울어져
五十年來制不禁(오십년내제부금) : 오십 년 내로는 바로잡지 못하였다.
胡旋女莫空舞(호선녀막공무) : 호선녀의 헛되이 춤추지 말고
數唱此歌悟明主(삭창차가오명주) : 이 노래 자주 불러 총명한 황제 깨우쳐라.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여궁고(驪宮高)-백거이(白居易)
여궁은 높아라
高高驪山上有宮(고고려산상유궁) : 높고 높은 여산 위에 궁궐이 있어
朱樓紫殿三四重(주누자전삼사중) : 붉은 누각, 자색 전각 삼중 사중 겹쳐있네.
遲遲兮春日(지지혜춘일) : 길고 나른한 봄날이여
玉甃暖兮溫泉溢(옥추난혜온천일) : 옥벽의 돌은 포근하고 온천물은 넘치네.
嫋嫋兮秋風(요뇨혜추풍) : 한들한들 부는 가을바람이여
山蟬鳴兮宮樹紅(산선명혜궁수홍) : 산에 매미 울고, 궁궐에 나무들 단풍드네.
翠華不來歲月久(취화부내세월구) : 비취빛 천자의 깃발 오지 않은 채, 세월은 오래 흘렀네.
牆有衣兮瓦有松(장유의혜와유송) : 담장은 이끼로 옷 입혀지고, 기와지붕은 소나무 나있네
吾君在位已五載(오군재위이오재) : 우리 황제님 재위에 오르신지 이미 오년인데
何不一幸乎其中(하부일행호기중) : 어찌하여 한번도 그 안에 안 오실까
西去都門幾多地(서거도문기다지) : 서쪽으로 서울과 떨어짐이 얼마나 먼 땅이라고
吾君不遊有深意(오군부유유심의) : 우리 황제 유람하지 않음은 깊은 뜻이 있으리라.
一人出兮不容易(일인출혜부용역) : 한 사람 나아감이 쉽지가 않나니
六宮從兮百司備(륙궁종혜백사비) : 육궁이 따라가고 백관이 수행하리라.
八十一車千萬騎(팔십일거천만기) : 팔십 한 량 수레꾼과 천만 명의 기병에게
朝有宴飫暮有賜(조유연어모유사) : 아침 연회에 배불리 먹이고 저녁 하사품 있으리니
中人之産數百家(중인지산삭백가) : 중산층 사람의 재산 수백 가정 분이라도
未足充君一日費(미족충군일일비) : 황제의 하루 비용에도 충분하지 않도다.
吾君修己人不知(오군수기인부지) : 우리 황제 자기 수양을 백성들은 모르리라
不自逸兮不自嬉(부자일혜부자희) : 스스로 안일하지 않고, 스스로 기쁘하지도 않으신다.
吾君愛人人不識(오군애인인부식) : 우리 황제 백성 사랑 백성들은 모르리라
不傷財兮不傷力(부상재혜부상력) : 재물을 손상 않고 인력을 손상하지 않으셨다.
驪宮高兮高入雲(려궁고혜고입운) : 여궁은 높고 높아서 구름 속에 들었도다.
君之來兮爲一身(군지내혜위일신) : 황제가 오심은 자기 한 몸을 위함이요
君之不來兮爲萬人(군지부내혜위만인) : 황제가 오시지 않음은 만 백성을 위함이로다.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염상부(鹽商婦)-백거이(白居易)
소금장수 아낙네
鹽商婦多金帛(염상부다금백) : 소금장수 아내는 금과 비단이 많아
不事田農與蠶績(부사전농여잠적) : 밭농사나 양잠과 길쌈도 하지 않는다.
南北東西不失家(남배동서부실가) : 동서남북 어디에나 집이 있어
風水爲鄕船作宅(풍수위향선작댁) : 바람과 물을 고향 삼고 배를 집으로 삼는다.
本是揚州小家女(본시양주소가녀) : 본래는 양주 고을 천한 집의 딸이었는데
嫁得西江大商客(가득서강대상객) : 강서의 큰 상인에게 시집왔었다.
綠鬟溜去金釵多(녹환류거금채다) : 검푸른 머리는 윤기가 나고 금비녀도 많고
皓腕肥來銀釧窄(호완비내은천착) : 흰 팔뚝에 살이 써서 은팔찌가 좁다.
前呼蒼頭後叱婢(전호창두후질비) : 앞에 늙은 머슴 부르고 뒤에 여종을 꾸짖으니
問爾因何得如此(문이인하득여차) : 당신에게 묻노니,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하니
壻作鹽商十五年(서작염상십오년) : 남편이 소금장수 하여 십오 년이 되었다 한다.
不屬州縣屬天子(부속주현속천자) : 지방 주현에 속하지 않고 천자에게 속하여
每年鹽利入官時(매년염리입관시) : 매년 소금의 이익이 관가로 들어올 때
少入官家多入私(소입관가다입사) : 관가에는 조금 넣고 자기에게 많이 넣었다 한다.
官家利薄私家厚(관가리박사가후) : 관가의 이익이 적으면 사가의 이익이 두터웠으니
鹽鐵尙書遠不知(염철상서원부지) : 소금과 철 관리하는 염철 상서는 멀어서 알지 못한단다.
何況江頭魚米賤(하황강두어미천) : 하물며 강호에는 생선 값과 쌀값이 싸거늘
紅鱠黃橙香稻飯(홍회황등향도반) : 붉은 회, 노란 귤 그리고 향기로운 쌀밥을
飽食濃粧倚柂樓(포식농장의이누) : 포식하고 짙은 화장하고서 조타실에 오르니
兩朶紅顋花欲綻(량타홍시화욕탄) : 두 꽃송이 같은 붉은 뺨이 꽃처럼 터질 것 같았다.
鹽商婦(염상부) : 소금장수 아낙네
有幸嫁鹽商(유행가염상) : 다행히도 소금장수에게 시집가니
終朝美飯食(종조미반식) : 아침 내내 음식을 즐기고
終歲好衣裳(종세호의상) : 일년 내내 옷을 즐긴다.
好衣美食來何處(호의미식내하처) :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이 어디서 나오는가
亦須慚愧桑弘羊(역수참괴상홍양) : 또한 모름지기 전매제도 만든 상홍양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
桑弘羊死已久(상홍양사이구) : 상황양이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거늘
不獨漢時今亦有(부독한시금역유) : 한나라 때만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있단다.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양주각(兩朱閣)-백거이(白居易)
두 채의 붉은 전각
兩朱閣(양주각) : 두 채의 붉은 전각 있어
南北相對起(남배상대기) :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솟아있다.
借問何人家(차문하인가) : 잠간 누구의 집인가 물어보니
貞元雙帝子(정원쌍제자) : 정원 연간의 황제의 두 자식이라 한다.
帝子吹簫雙得仙(제자취소쌍득선) : 황제의 자식이 퉁소불어 두 사람 모두 신선 되어
五雲飄颻飛上天(오운표요비상천) : 오색구름 타고 훨훨 상천으로 날아갔다.
第宅亭臺不將去(제댁정대부장거) : 저택과 누대 가지고 가지 못하여
化爲佛寺在人間(화위불사재인간) : 부처의 집으로 바꾸어 세상에 남겨놓았단다.
粧閣妓樓何寂靜(장각기누하적정) : 화려하게 꾸민 전각, 기녀들 누각이 어찌나 고요한지
柳似舞腰池似鏡(유사무요지사경) : 버들은 무녀의 허리 같고, 연못은 거울 같이 맑도다.
花落黃昏悄悄時(화낙황혼초초시) : 꽃 진 황혼에 근심스러워 질 때
不聞歌吹聞鍾磬(부문가취문종경) : 노랫소리, 퉁소소리 들리지 않고, 종소리 풍경소리 들려온다.
寺門勑牓金字書(사문래방금자서) : 절문에 하사받은 문방에는 금빛 글자 써놓고
尼院佛庭寬有餘(니원불정관유여) : 여승의 암자나 절 뜰은 넓고 한가하기만 하다.
靑苔明月多閑地(청태명월다한지) : 푸른 이끼 밝은 달 아래 한가한 땅이 많고
比屋疲人無處居(비옥피인무처거) : 늘어선 작은 집에는 지친 사람 살 곳도 없구나.
憶昨平陽宅初置(억작평양댁초치) : 지난 평양 공주 처음 지은 집을 기억해보면
呑倂平人幾家地(탄병평인기가지) : 평범한 백성들의 얼마나 많은 집터를 병탄했을까
仙去雙雙作梵宮(선거쌍쌍작범궁) : 신선되어 떠난 두 저택을 절로 만들었으니
漸恐人間盡爲寺(점공인간진위사) : 인간 세상 모두가 절이 될까 점점 두려워 진다.

요릉(繚綾)-백거이(白居易)
요릉비단
繚綾繚綾何所似(요릉요릉능하소사) : 요릉 비단, 요릉 비단 무엇과 같다고 할까
不似羅綃與紈綺(부사나초여환기) : 엷은 색 비단도 흰 깁과 무늬 비단과도 같지 않다.
應似天台山上明月前(응사천태산상명월전) : 응당 천태산 위, 밝은 발 앞
四十五尺瀑布泉(사십오척폭포천) : 사십오 척의 폭포 샘이로다.
中有文章又奇絶(중유문장우기절) : 가운데 무늬 있고 게다가 뛰어나게 절묘하다.
地鋪白烟花簇雪(지포백연화족설) : 땅에서 흰 연기 피어오르고 꽃에서 눈이 쌓인 듯하다
織者何人衣者誰(직자하인의자수) : 짜는 사람 구나이고 입는 사람 누구인가
越溪寒女漢宮姬(월계한녀한궁희) : 월계의 가난한 여인, 한나라 궁궐의 궁녀들이로다.
去年中使宣口勑(거년중사선구래) : 지난 해 궁중의 사신이 구두로 칙령을 알리어
天上取樣人間織(천상취양인간직) : 궁중의 문양 취하여 사람들이 짜게 하였다.
織爲雲外秋雁行(직위운외추안항) : 구름 밖 가을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 짜서 만들고
染作江南春水色(염작강남춘수색) : 강남 봄날의 물빛으로 염색하여 만들었다.
廣裁衫袖長製裙(광재삼수장제군) : 넓게 마른 적삼 소매 길게 만든 치마
金斗熨波刀剪紋(금두위파도전문) : 금으로 만든 인두로 주름 펴고 칼로 무늬를 자른다.
異彩奇文相隱映(리채기문상은영) : 이채롭고 기묘한 무늬가 서로 어울려 은근히 빛나고
轉側看花花不定(전측간화화부정) : 기울여 꽃을 본 듯 꽃 모양이 일정하지 않도다.
昭陽舞人恩正深(소양무인은정심) : 소양전 무녀들이 은총 받음이 깊어서
春衣一對直千金(춘의일대직천금) : 봄옷 한 벌 값이 천금이나 가는구나.
汗沾粉汙不再著(한첨분오부재저) : 땀에 젖고 분에 얼룩지면 다시 입지 않으며
曳土蹼阿無惜心(예토복아무석심) : 땅에 끌리고 흙에 밟혀도 전혀 아까워하는 마음 없도다.
繚綾織成費功績(료능직성비공적) : 요릉 비단 짜니 그 공과 수고를 낭비하니
莫比尋常繒與帛(막비심상증여백) : 보통의 비단과는 비교하지 마라.
絲細繰多女手疼(사세조다녀수동) : 실이 가늘어 켜는 일 많아 여자들 손이 아프고
扎扎千聲不盈尺(찰찰천성부영척) : 찰각찰각 천 번 소리에 한 자도 차지 못한다.
昭陽殿裏歌舞人(소양전리가무인) : 소양전 안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若見織時應也惜(야견직시응야석) : 만약 배 짜는 때를 본다면 반드시 아까워하리라.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행위량(杏爲梁)-백거이(白居易)
살구나무를 대들보로
杏爲梁桂爲柱(행위량계위주) : 살구나무를 대들보로, 계수나무를 기둥으로 만들었으니
何人堂室李開府(하인당실리개부) : 어떤 사람의 바깥채 안채일까, 바로 개부 이이보라네.
碧砌紅軒色未乾(벽체홍헌색미건) : 푸른 섬돌 붉은 처마 색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去年身沒今移主(거년신몰금이주) : 지나간 주인 죽고 이제 또 주인이 바뀌는구나.
高其牆大其門(고기장대기문) : 담장을 높이고 대문을 크게 하였으니
誰家宅第盧將軍(수가댁제노장군) : 어떤 집안 저택일까, 바로 종사 노장군이라네.
素泥朱板光未滅(소니주판광미멸) : 흰 담벼락 붉은 판자, 광채가 다 사라지기도 않았는데
今歲官收別賜人(금세관수별사인) : 올해 관아에서 몰수하여 다른 사람에게 내려주었도다.
開府之堂將軍宅(개부지당장군댁) : 개부지 이임보의 집이나 종사 노장군의 집도
造未成時頭已白(조미성시두이백) : 개조도 미처 못 하고서 머리는 백발이 되었구나.
逆旅重居逆旅中(역려중거역려중) : 집을 집안에 집을 거듭 있게 하나
心是主人身是客(심시주인신시객) : 마음이 곧 주인이고, 몸이 바로 객이로다.
更有愚夫念身後(경유우부념신후) : 게다가 어리석은 남자 있어 죽은 뒤 생각하여
心雖甚長計非久(심수심장계비구) : 마음 비록 심히 길게 행각하나 계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窮奢極麗越規模(궁사극려월규모) : 사치를 다하고 화려함을 지극히 하여 규모를 넘겨
付子傳孫令保守(부자전손령보수) : 자손에게 전하려 간직하게 하려한다.
莫敎門外過客聞(막교문외과객문) : 문 밖의 과객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撫掌廻頭笑殺君(무장회두소살군) : 손뼉치고 머리 돌려 그대를 비웃어 죽이리라.
君不見馬家宅尙猶存(군부견마가댁상유존)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마씨네 집이 남아있어도
宅門題作奉誠園(댁문제작봉성원) : 문에는 봉성원이라 쓰여 있는 것을
君不見魏家宅屬他人(군부견위가댁속타인)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위씨네 집이 남의 집에 속하였다가
詔贖賜還五代孫(조속사환오대손) : 황제가 다시 사서 오대 후손에게 돌려주게 명한 것을
儉存奢失今在目(검존사실금재목) : 검박한 집안은 살아남고 사치한 집안은 망함이 눈앞에 있나니
安用高牆圍大屋(안용고장위대옥) : 어찌하여 담장 높이고 큰 집을 둘러싸려하나.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박융인(縛戎人)-백거이(白居易)
결박당한 오랑캐
縛戎人縛戎人(박융인박융인) : 묶인 오랑캐여, 묶인 오랑캐여
耳穿面破驅入秦(이천면파구입진) : 귀 뚫리고 얼굴 깨어진 채 몰리어 진나라에 오니
天子矜憐不忍殺(천자긍련부인살) : 천자도 불쌍하여 차마 죽일 수 없었다.
詔徙東南吳與越(조사동남오여월) : 동남쪽 오나라와 월나라 땅으로 보내라 명하셨다.
黃衣小使錄姓名(황의소사녹성명) : 누런 옷 입은 아전들이 성명을 적은 뒤
領出長安乘遞行(령출장안승체항) : 거느리고 장안을 빠져나가 역체에서 갈아타고 간다.
身被金瘡面多瘠(신피금창면다척) : 몸에는 무기에 상처 입고 얼굴은 수척하여
扶病徒行日一驛(부병도항일일역) : 병든 몸 붙잡고 맨발로 걸으니 하루에 한 역이라.
朝飡飢渴費盃盤(조손기갈비배반) : 아침저녁 굶주리니 큰 소반 음식을 다 비우고
夜臥腥臊汚床席(야와성조오상석) : 밤에 누우니 누리고 비린내가 잠자리 더럽힌다.
忽逢江水憶交河(홀봉강수억교하) : 문득 양자강 물 만나니 고향 교하가 생각나서
垂手齊聲嗚咽歌(수수제성오인가) : 손 내리고 일제히 소리 내어 오열하며 노래 부른다.
其中一虜語諸虜(기중일노어제노) : 그들 중의 한 포로가 여러 포로들에게 말하기를
爾苦非多我苦多(이고비다아고다) : “너희 고통은 많은 게 아니고 내 고통이 많도다.”하였다.
同伴行人因借問(동반항인인차문) : 동반하여 가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어보니
欲說喉中氣憤憤(욕설후중기분분) : 말하려 하더니, 목 안에 기가 막혀
自云鄕管本涼原(자운향관본양원) : 스스로 이르기를, “본래 고향이 양주 언덕이었으나
大曆年中沒落蕃(대력년중몰낙번) : 대력 연간에 토번에게 흡수되고
一落蕃中四十載(일낙번중사십재) : 토번에 떨어져 사십 년을 지나오며
遣著皮裘繫毛帶(견저피구계모대) : 가죽옷 걸치고 털 허리띠를 둘렀었다.
唯許正朝服漢儀(유허정조복한의) : 다만 설날에 한나라 법식이 허락되어
斂衣整巾潛淚垂(렴의정건잠누수) : 옷 차려입고 건을 바로 쓰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誓心密定歸鄕計(서심밀정귀향계) : 마음에 맹세하고 고향 돌아갈 계책 몰래 결정하고
不使蕃中妻子知(부사번중처자지) : 토번의 처자도 알지 못하게 하였었다.
暗思幸有殘筋力(암사행유잔근력) : 가만히 상각하니, 다행이 근력이 남아있으나
更恐年衰歸不得(경공년쇠귀부득) : 더욱 두려운 것은 나이 쇠하면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蕃候嚴兵鳥不飛(번후엄병조부비) : 토번의 수비병과 엄한 무기에, 새들도 날지 못하는데
脫身冒死奔逃歸(탈신모사분도귀) : 몸 벗어나 죽음을 무릅쓰고 달아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晝伏宵行經大漠(주복소항경대막) :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큰 사막을 지나오니
雲陰月黑風沙惡(운음월흑풍사악) : 구름은 어둑하고 달은 검은데 바람과 모래 심하였다.
驚藏靑塚寒草疏(경장청총한초소) : 놀라 푸른 무덤에 숨기려니 날이 차가워 풀도 드물었다.
偸渡黃河夜冰薄(투도황하야빙박) : 몰래 황하를 건너려니 밤의 얼음은 얇은데
忽聞漢軍鼙鼓聲(홀문한군비고성) : 문득 한나라 군사의 북소리가 들려와
路傍走出再拜迎(노방주출재배영) : 길옆으로 달려 나와 두 번 절하고 환영하였었다.
游騎不聽能漢語(유기부청능한어) : 기마 순라병은 능숙한 한나라 말을 듣지도 않고
將軍遂縛作蕃生(장군수박작번생) : 장군은 마침내 나를 결박하여 토번 출생으로 만들었다.
配向東南卑濕地(배향동남비습지) : 동의 저지대 습기 찬 땅으로 유배당하여도
豈無存卹空防備(기무존술공방비) : 어찌 위로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 없으니 헛되이 방비하리오.
念此呑聲仰訴天(념차탄성앙소천) : 이런 생각하면서 소리를 삼키며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나
若爲辛苦度殘年(야위신고도잔년) : 고생하여 여생을 지나게 될 것 같도다
涼原鄕井不得見(량원향정부득견) : 양주 언덕도 고향 우물도 볼 수 없는데
胡地妻兒虛棄捐(호지처아허기연) : 오랑캐 땅에 처자를 공연히 버리고 왔도다.
沒蕃被囚思漢土(몰번피수사한토) : 토번 땅에 갇히어서는 한나라 땅을 그리워하고
歸漢被劫爲蕃虜(귀한피겁위번노) : 한나라에 돌아와서는 잡히어 토번인 포로 취급을 당하였다.
早知如此悔歸來(조지여차회귀내) : 이런 점을 미리 알았다면 돌아온 것이 후회스러워라
兩地寧如一處苦(량지녕여일처고) : 두 곳에서 고생이라, 차라리 한 곳의 고생만 못하리라
縛戎人(박융인) : 결박당한 오랑캐여
戎人之中我苦辛(융인지중아고신) : 오랑캐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고생하는구나.
自古此寃應未有(자고차원응미유) : 예부터 이러한 원한 결코 있지 않으리니
漢心漢語吐蕃身(한심한어토번신) : 한나라 마음 가지고 한나라 말을 쓰면서 토번 오랑캐 신세로다.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초수습유(初授拾遺)-백거이(白居易)
처음으로 습유의 벼슬을 받고
奉詔登左掖(봉조등좌액) : 조서를 받들고 좌액으로 등청하여
束帶參朝議(속대삼조의) : 속대하고 조회의 의론에 참여하였다.
何言初命卑(하언초명비) : 첫 벼슬이 낮음을 어찌 불평하리오.
且脫風塵吏(차탈풍진리) : 거리의 풍진 속 아전의 신세 면하리라.
杜甫陳子昻(두보진자앙) : 두보와 진자양과 같은 분도
才名括天地(재명괄천지) : 재능과 명성이 천하는 묶었으나
當時非不遇(당시비부우) : 당시에는 불우하여
尙無道斯位(상무도사위) : 오히려 이러한 지위를 넘지 않았으니
況予蹇薄者(황여건박자) : 하물며 나 같은 우둔하고 박덕한 자에게
寵至不自意(총지부자의) : 천자의 총애는 뜻하지 않은 것이다.
驚近白日光(경근백일광) : 햇빛 같은 천자를 가까이 모심에 놀라고
慙非靑雲器(참비청운기) : 청운의 그릇이 못됨을 부끄러워한다.
天子方從諫(천자방종간) : 천자는 지금 간언을 받아주시지만
朝廷無忌諱(조정무기휘) : 조정에 꺼려할 일이 전혀 없으니
豈不思匪躬(개부사비궁) : 어찌 내 몸을 돌보지 않을 생각이 없을까만
適遇時無事(적우시무사) : 마침 아무런 일이 없는 때를 만나서
受命已旬月(수명이순월) : 명을 받은 지 이미 한달이 되었지만
飽食隨班次(포식수반차) : 배불리 먹으면서 차례만 기다린다.
諫紙忽盈箱(간지홀영상) : 간언의 글들이 어느덧 상자에 가득해져
對之終自媿(대지종자괴) : 이것을 보니 끝내 스스로 부끄럽구나.

몽선(夢仙)-백거이(白居易)
신선을 꿈꾸며
人有夢仙者(인유몽선자) : 신선을 꿈꾸는 자 있었으니
夢身升上淸(몽신승상청) : 꿈속에서 몸이 푸른 하늘에 올랐다.
坐乘一白鶴(좌승일백학) : 한 마리 흰 학에 앉아 타니
前引雙紅旌(전인쌍홍정) : 앞에서는 두 개의 붉은 깃발 인도한다.
羽衣忽飄飄(우의홀표표) : 날개옷이 갑자기 펄럭펄럭 날아
玉鸞俄錚錚(옥난아쟁쟁) : 옥으로 만든 난새 방울 쩔렁거린다.
半空直下視(반공직하시) : 반쯤 올라간 공중에서 바로 내려다보니
人世塵冥冥(인세진명명) : 인간세상이 먼지 속에 아득하도다.
漸失鄕國處(점실향국처) : 점점 고향과 나라 땅이 보이지 않고
纔分山水形(재분산수형) : 겨우 산과 물의 형태가 구분될 뿐이었다.
東海一片白(동해일편백) : 동해가 한 조각 흰 것으로 보이고
列岳五點靑(렬악오점청) : 늘어선 큰 산들이 다섯 점으로 푸르게 보인다.
須臾羣仙來(수유군선내) : 잠간 사이에 여러 신선들이 다가와
相引朝玉京(상인조옥경) : 서로 아침의 옥경으로 안내해갔다.
安期羨門輩(안기선문배) : 안기나 선문 같은 신선들이 있어
列侍如公卿(렬시여공경) : 줄지어 모시고 있음이 공경들과 같았다.
仰謁玉皇帝(앙알옥황제) : 옥황상제를 우러러 알현하고
稽首前致誠(계수전치성) : 머리 숙여 앞으로 나가 정성을 바치니
帝言汝仙才(제언여선재) : 선제가 말하기를, 너는 신선의 자질이 있으니
努力勿自輕(노력물자경) : 노력하여 스스로 경솔하지 말라.
却後十五年(각후십오년) : 물러가 오십 년이 되면
期汝不死庭(기여부사정) : 너는 신선의 뜰에서 죽지 않으리라고 하니
再拜受斯言(재배수사언) : 재배하고 이 말을 받아들이는데
旣寤喜且驚(기오희차경) : 이미 깨어나니 기쁘고도 놀라웠다.
袐之不敢泄(필지부감설) : 이를 숨기고 감히 세상에 누설하지 않고
誓志居巖扃(서지거암경) : 뜻을 맹세하고 바위굴 속에 살았다.
恩愛捨骨肉(은애사골육) : 은애로움으로는 골육을 버리고
飮食斷羶腥(음식단전성) : 먹고 마심에는 누린내 비린내 나는 음식은 끊었다.
朝飧雲母散(조손운모산) : 아침에는 운모 산이라는 선약을 먹고
夜吸沆瀣精(야흡항해정) : 저녁에는 항해정이라는 선약을 마셨다.
空山三十載(공산삼십재) : 빈 산에서 삼십 년을 살면서
日望輜軿迎(일망치병영) : 매일 휘장 두른 수레를 맞이할 것을 바랐다.
前期過已久(전기과이구) : 전번 기약이 지나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鸞鶴無來聲(난학무내성) : 난새와 학은 오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齒髮日衰白(치발일쇠백) : 치아와 두발은 날마다 쇠약해지고 희어지고
耳目減聰明(이목감총명) : 귀와 눈은 총명한 기능이 감하였다.
一朝同物化(일조동물화) : 하루아침에 물질과 같이 변하고
身與糞壤幷(신여분양병) : 육체는 똥과 흙과 같이 되어버린다.
神仙信有之(신선신유지) : 신선이 된다는 것, 있을 수도 있겠지만
俗力非可營(속력비가영) : 세상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있음이 아니다.
苟無金骨相(구무금골상) : 진시로 신선의 골상을 없다면
不將丹臺名(부장단대명) : 신선의 단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리라.
徒傳辟穀法(도전벽곡법) : 다만 벽곡법을 전수 받아
虛受燒丹經(허수소단경) : 헛되이 소단경의 가르침을 받았다.
只自取勤苦(지자취근고) : 단지 스스로 노력과 고통을 받았을 뿐
百年終不成(백년종부성) : 백 년이 되어도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悲哉夢仙人(비재몽선인) : 슬프구나, 신선을 꿈꾸는 사람들이여
一夢誤一生(일몽오일생) : 한 번 꿈에 일생을 망치고 있도다.

채시관(采詩官)-백거이(白居易)
시 모으는 관리
采詩官(채시관) : 시를 채집하는 관리가
采詩聽歌導人言(채시청가도인언) : 시를 모의고 노래를 들음은 백성의 말을 끌어들이기 해서다.
言者無罪聞者誡(언자무죄문자계) : 시로 말하는 자 죄가 없고, 듣는 자는 경계하게 되니
下流上通上下泰(하류상통상하태) : 아래로 흐르고 위로 통하여, 상하가 태평하게 된다.
周滅秦興至隋氏(주멸진흥지수씨) : 주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흥하여 수나라가 되도록
十代采詩官不置(십대채시관부치) : 십대까지 채시관을 두지 않았었다.
郊廟登歌讚君美(교묘등가찬군미) : 교제나 종묘제사에 부르는 노래는 임금의 장점을 찬미하고
樂府豔詞悅君意(낙부염사열군의) : 악부의 요염한 노랫말은 임금의 뜻만을 즐겁게 하였다.
若求興諭規刺言(야구흥유규자언) : 풍자하여 깨우치고 규제하여 비판하는 말을 구하여도
萬句千章無一字(만구천장무일자) : 만 구절, 천 문장에서 단 한 글자도 없었다.
不是章句無規刺(부시장구무규자) : 바로잡고 풍자하려는 글자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漸及朝廷絶諷議(점급조정절풍의) : 점차로 조정에서 풍간을 논하는 일이 사라졌다.
諍臣杜口爲冗員(쟁신두구위용원) : 간쟁하는 신하는 입 다물고 쓸모없는 관원이 되고
諫鼓高懸作虛器(간고고현작허기) : 간쟁을 위한 북은 높이 걸려 소용없는 도구만 되었다.
一人負扆常端黙(일인부의상단묵) : 존엄한 한 분은 병풍을 업고 늘 단정하고 침묵하시고
百辟入門兩自媚(백벽입문량자미) : 모든 고관들은 입궐하여 저마다 아첨하고 아부만 한다.
夕郎所賀皆德音(석낭소하개덕음) : 저녁 관리들 경하의 말도 모두 듣기 좋은 말들이다.
春官每奏唯祥瑞(춘관매주유상서) : 예악을 맡은 춘관도 연주할 때마다 상서롭다고만 한다.
君之堂兮千里遠(군지당혜천리원) : 임금의 궁궐은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고
君之門兮九重閟(군지문혜구중비) : 임금의 출입문은 아홉 겹으로 굳게 닫혀있다.
君耳唯聞堂上言(군이유문당상언) : 임금의 귀는 오직 당상관의 말만 들을 뿐이고
君眼不見門前事(군안부견문전사) : 이금의 눈은 대궐 문 앞의 일도 보지 못한다.
貪吏害民無所忌(탐리해민무소기) :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해침에 꺼리는 바가 전혀 없고
奸臣蔽君無所畏(간신폐군무소외) : 간악한 신하들은 임금을 가리고도 두려움이 전혀 없다.
君不見(군부견) : 임금님은 보지 못하시는가.
厲王胡亥之末年(려왕호해지말년) : 주나라 여왕과 진나라 호해의 말년을
羣臣有利君無利(군신유리군무리) : 여러 신하들만 유익하면 임금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君兮君兮願聽此(군혜군혜원청차) :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欲開壅蔽達人情(욕개옹폐달인정) : 막히고 가린 것을 열고 백성의 마음에 이르려면
先向歌詩求諷刺(선향가시구풍자) : 먼저 백성의 노래와 시에서 풍자를 찾으십시오.
흉댁(凶宅)-백거이(白居易)
長安多大宅(장안다대댁) : 장안에는 저택이 많아
列在街西東(렬재가서동) : 큰 길 동서로 벌려있다.
往往朱門內(왕왕주문내) : 가끔씩 붉은 대문 안
房廊相對空(방낭상대공) : 방과 복도가 비어 있다.
梟鳴松桂枝(효명송계지) : 솔과 계피나무에 올빼미 울고
狐藏蘭菊叢(호장난국총) : 난과 국화 떨기에 여우가 산다.
蒼苔黃葉地(창태황섭지) : 땅에는 푸른 이끼와 누런 단풍잎
日暮多旋風(일모다선풍) : 날 저물자 회오리바람 불어댄다.
前主爲將相(전주위장상) : 옛 주인은 모두 장군과 재상이나
得罪竄巴庸(득죄찬파용) : 죄를 얻어 사천과 호남으로 귀양갔다.
後主爲公卿(후주위공경) : 그 뒤의 주인은 공경과 같은 귀족이나
寢疾歿其中(침질몰기중) : 병들어 누웠다 그 안에서 죽었단다.
連延四五主(련연사오주) : 계속하여 네댓 명의 주인이 있었으나
殃禍繼相鍾(앙화계상종) : 앙화가 계속 이어졌단다.
自從十年來(자종십년내) : 십 년 전부터 죽이어서
不利主人翁(부리주인옹) : 주인 늙은이에게 이롭지 못하였단다.
風雨壞簷隙(풍우괴첨극) : 비바람에 무너져 처마에 금이 가고
蛇鼠穿牆墉(사서천장용) : 뱀이나 쥐가 담이나 벽에 구멍을 내었다.
人疑不敢買(인의부감매) : 사람들이 의아하여 감히 사지 않으니
日毁土木功(일훼토목공) : 날마다 흙과 나무 건축물이 무너졌단다.
嗟嗟俗人心(차차속인심) : 답답하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여!
甚矣其愚蒙(심의기우몽) : 심하도다, 그들의 어리석고 몽매함이여!
但恐災將至(단공재장지) : 재앙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할 뿐
不思禍所從(부사화소종) : 재앙의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는구나.
我今題此詩(아금제차시) : 나는 지금 이 시를 지어서
欲悟迷者胸(욕오미자흉) : 미혹한 사람들 마음을 깨우치려 하노라.
凡爲大官人(범위대관인) : 무릇 높은 관리가 된 사람이란
年祿多高崇(년녹다고숭) : 나이와 녹봉이 많고도 높도다.
權重持難久(권중지난구) : 귄세가 중하면 지키기 어렵고
位高勢易窮(위고세역궁) : 지위가 높으면 형세는 다하기 쉽도다.
驕者物之盈(교자물지영) : 교만한 자리는 물질이 가득함이요
老者數之終(노자삭지종) : 장로의 자리는 목숨이 끝나간다는 것.
四者如寇盜(사자여구도) : 권세와 지위, 녹봉과 권위, 이 넷은 도둑과 같아
日夜來相攻(일야내상공) : 밤낮으로 서로 공격해온다.
假使居吉土(가사거길토) : 설사 좋은 집터에 산다고 하여도
孰能保其躬(숙능보기궁) : 누가 능히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因小以明大(인소이명대) : 작은 일을 가지고 큰 도리를 밝히나니
借家可諭邦(차가가유방) : 집의 이야기를 빌어 나라의 일을 깨우칠 수 있도다.
周秦宅崤函(주진댁효함) : 주나라와 진나라는 효관과 함곡관을 택지로 삼아
其宅非不同(기댁비부동) : 그 택지는 같지 아니함이 아니나
一興八百年(일흥팔백년) : 한 쪽은 팔백년 간을 흥성하고
一死望夷宮(일사망이궁) : 다른 한 쪽은 죽어서 이궁만 바라보고 죽었다.
寄語家與國(기어가여국) : 집안이나 국가에 대하여 말을 부치노니
人凶非宅凶(인흉비댁흉) : 사람이 나빠서이지 집터가 나빠서가 아니로다.
한규원(寒閨怨)-백거이(白居易)
차가운 규원의 원망
寒月沈沈洞房靜(한월침침동방정) : 차가운 달빛 침침하고 안방이 고요한데
眞珠簾外梧桐影(진주렴외오동영) : 진주 구슬주렴 밖으로 오동나무 그림자 진다.
秋霜欲下手先知(추상욕하수선지) : 가을 서리 내리려하니 손끝이 먼저 알아
燈底裁縫剪刀冷(등저재봉전도냉) : 등잔 아래 재봉하는데 칼끝이 차기만 하여라.
자각이수2(自覺二首2)-백거이(白居易)
나는 알았네
朝哭心所愛(조곡심소애) : 아침에는 사랑하는 딸을 통곡하고
暮哭心所親(모곡심소친) : 저녁에는 친애하는 어머님 곡하다니.
親愛零落盡(친애령낙진) : 자식과 부모 다 돌아가니
安用身獨存(안용신독존) : 어찌 이 몸만 혼자 살아갈 필요 있나
幾許平生歡(기허평생환) : 평생의 기쁜 일이 얼마인가
無限骨肉恩(무한골육은) : 끝없는 부모님의 은혜이로다.
結爲腸間痛(결위장간통) : 근심을 맺어 속병이 되고
聚作鼻頭辛(취작비두신) : 슬픔을 취하여 코끝이 얼얼하다.
悲來四肢緩(비내사지완) : 슬픔에 사지가 늘어지고
泣盡雙眸昏(읍진쌍모혼) : 눈물이 다함에 두 눈동자 흐려진다.
所以年四十(소이년사십) : 그래서 나이 사십에
心如七十人(심여칠십인) : 마음은 칠십 노인이로다.
我聞浮圖敎(아문부도교) : 내가 들은 불교의 가르침
中有解脫門(중유해탈문) : 그 중에는 해탈의 문이 있었도다.
置心爲止水(치심위지수) : 마음 가지기를 고요한 물처럼 하고
視身如浮雲(시신여부운) : 내 몸 보기를 뜬 구름처럼 해야 한다.
抖擻垢穢衣(두수구예의) : 때 묻은 더러운 옷을 떨어내고
度脫生死輪(도탈생사륜) :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야 한다.
胡爲戀此苦(호위련차고) : 어찌해야 이 고통을 바꿀까
不去猶逡巡(부거유준순) : 떠나지 않으면 꾸물거린다.
回念發弘願(회념발홍원) : 생각을 돌려 큰 소원을 빌어
願此見在身(원차견재신) : 이러한 것이 내 몸에 나타났으면
但受過去報(단수과거보) : 다만 과거의 업보를 받아
不結將來因(부결장내인) : 장래의 인과를 맺지 말았으면
誓以智慧水(서이지혜수) : 맹서하건데, 지혜의 물로
永洗煩惱塵(영세번뇌진) : 번뇌의 흙먼지를 영원히 씻어 내리라.
不將恩愛子(부장은애자) : 은애로운 것을 거느리지 않고
更種悲憂根(경종비우근) : 다시는 슬픔과 근심의 뿌리를 심지 않으리라.
(白樂天詩集,卷十,感傷二)
자각이수1(自覺二首1)-백거이(白居易)
나는 알았네
四十未爲老(사십미위노) : 인생 사십 아직 늙은이도 아닌데
憂傷早衰惡(우상조쇠악) : 걱정과 근심에 늙고 추해졌구나.
前歲二毛生(전세이모생) : 작년에 머리가 희끗히끗하고
今年一齒落(금년일치낙) : 금년엔 이빨이 하나 빠졌구나.
形骸日損耗(형해일손모) : 몸은 날마다 허약해지고
心事同蕭索(심사동소색) : 마음은 같이 쓸쓸해지는구나.
夜寢與朝餐(야침여조찬) : 밤에 자는 밥과 아침에 먹는 밥도
其間味亦薄(기간미역박) : 그 사이 맛도 없어진다.
同歲崔舍人(동세최사인) : 같은 나이인 최사인은
容光方灼灼(용광방작작) : 용모가 한참 건장하구나.
始知年與貌(시지년여모) : 이제야 알겠노라, 나이와 용모도
衰盛隨憂樂(쇠성수우낙) : 근심과 즐거움 따라 성하고 쇠함을.
畏老老轉逼(외노노전핍) : 늙음이 두려우나 늙음은 갈수록 닥쳐오고
憂病病彌縛(우병병미박) : 병나는 것 두려우나 병은 더욱 속박해온다.
不畏復不憂(부외복부우) : 두려워말고, 또 근심하지도 말자
是除老病藥(시제노병약) : 이것이 늙음과 병을 없애는 약이니라.
(白樂天詩集,卷十,感傷二)
감구시권(感舊詩卷)-백거이(白居易)
옛 시집 읽고 감상에 젖어
夜深吟罷一長吁(야심음파일장우) : 밤 깊도록 읽고 길게 한 번 탄식하니
老淚燈前濕白鬚(노누등전습백수) : 등불 아래 늙은이, 눈물이 흰 수염 적신다.
二十年前舊詩卷(이십년전구시권) : 이십 년 전 펴낸 옛 시집
十人酬和九人無(십인수화구인무) : 함께 한, 열사람 중에 아홉 사람이 없구나.
(白樂天詩後集,卷十二,律詩)
대주2(對酒2)-백거이(白居易)
술잔을 앞에 놓고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 부싯돌 속 불빛처럼 빠른 세월에 맡긴 몸.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

대주4(對酒4)-백거이(白居易)
술잔 앞에 놓고
百歲無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 백세를 살아도 건강한 때는 짧고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 봄철인들 몇 날이나 맑고 밝을까.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 서로 만났으니 사양 말고 취하여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 양관의 이별가를 듣고 들어보자꾸나.
대주1(對酒1)-백거이(白居易)
술잔을 앞에 놓고
巧拙賢愚相是非(교졸현우상시비) : 재주가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를 서로 따지지만
何如一醉盡忘機(하여일취진망기) : 한번 취해 모든 간계를 다 잊어봄이 어떠한가.
君知天地中寬搾(군지천지중관착) : 하늘과 땅 사이의 넓고 좁음을 그대는 아는가
鵰鶚鸞皇各自飛(조악난황각자비) : 독수리와 물수리, 난새와 봉황새 저마다 날 수 있는 것을.
대주3(對酒3)-백거이(白居易)
술잔을 앞에 놓고
丹砂見火去無迹(단사견화거무적) : 단사에서 불빛 보듯 가서는 자취 없고
白髮泥人來不休(백발니인내부휴) : 백발이 사람을 썩히려 와서는 쉬지 않네.
賴有酒仙相暖熱(뢰유주선상난열) : 주선의 힘을 입어 서로들 따뜻해져
松喬醉卽到前頭(송교취즉도전두) : 큰 솔에 취하여 누우니 앞머리만 닿았네.
대주5(對酒5)-백거이(白居易)
술잔을 앞에 놓고
百歲無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 백세를 살아도 건강한 때는 짧고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 봄철인들 몇 날이나 맑고 밝을까.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 서로 만났으니 사양 말고 취하여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 양관의 이별가를 듣고 불러보자꾸나.
(白樂天詩後集,卷九,律詩)
영회(詠懷)-백거이(白居易)
내 속 마음을 노래하다-
盡日松下坐(진일송하좌) : 종일토록 소나무 아래 앉아
有時池畔行(유시지반항) : 때로는 못 둑을 거닐기도 한다.
行立與坐臥(항립여좌와) : 가다가 서고 앉았다가 눕는데
中懷淡無營(중회담무영) : 마음속이 담담하니 할 일이 없다.
不覺流年過(부각류년과) : 자신도 모른 채, 흐르는 세월 지나고
亦任白髮生(역임백발생) : 백발 또한 생기는 대로 맡겨둔다.
不爲世所薄(부위세소박) : 세상사람 싫어하는 일, 하지 않으니
安得遂閒情(안득수한정) : 어찌 능히 한가한 마음 얻지 못하리오.
영회(詠懷)-백거이(白居易)
내 마음을 읊다
自從委順任浮沈(자종위순임부침) : 맡기고 순종하여 인간성쇠를 맡기니
漸覺年多功用深(점각년다공용심) : 깨닫는 해가 많아져 수양의 효험 깊어진다.
面上滅除憂喜色(면상멸제우희색) : 얼굴에는 근심과 기쁨의 표정 없어지고
胸中消盡是非心(흉중소진시비심) : 가슴 속에는 시비를 가리는 마음 사라졌다.
妻兒不問唯耽酒(처아부문유탐주) : 처자도 묻지 않고 오직 술만 탐하고
冠帶皆慵只抱琴(관대개용지포금) : 벼슬도 다 귀찮아하고 거문고만 타게 된다.
長笑靈均不知命(장소령균부지명) : 영원히 우습구나, 굴원이 천명도 모르고
江蘺叢畔苦悲唫(강리총반고비금) : 물가 천궁 풀 두둑에서 괴롭게 슬퍼하던 일.
한영(閒詠)-백거이(白居易)
한가히 읊으며
步月憐淸景(보월련청경) : 맑은 빛에 끌려 달 아래 거닐고
眠松愛綠陰(면송애녹음) : 푸른 그늘 좋아서 소나무 아래서 잔다.
早年詩思苦(조년시사고) : 어려서는 시 짓는 생각에 고민하고
晩歲道情深(만세도정심) : 늙어서는 도 닦는 마음에 몰두했었다.
夜學禪多坐(야학선다좌) : 밤에는 참선 학습에 자주 앉아 보내고
秋牽興暫吟(추견흥잠음) : 가을에는 흥에 끌려 잠시 시를 읊었다.
悠然兩事外(유연량사외) : 여유롭고 편안한 두 가지 일 외에는
無處更留心(무처경류심) : 다시 내 마음 둘 곳이 전혀 없어구나.
불출문(不出門)-백거이(白居易)
문밖에 나가지 않고
不出門來又數旬(부출문내우삭순) : 문 밖 출입 하지 않은지 수십 일
將何銷日與誰親(장하소일여수친) : 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친구할까.
鶴籠開處見君子(학농개처견군자) : 학의 조롱 연 곳에 군자가 보이고
書卷展時逢古人(서권전시봉고인) : 책을 펼칠 때에는 옛사람 만나는구나.
自靜其心延壽命(자정기심연수명) : 제 마음을 고요히 하면 더 오래 살고
無求於物長精神(무구어물장정신) : 물질에서 구하지 않으면 정신력도 강하다.
能行便是眞修道(능항편시진수도) :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곧 참된 수도이니
何必降魔調伏身(하필강마조복신) : 어찌 마귀를 이기고 육신을 다스려야만 하나.
정월십오일야월(正月十五日夜月)-백거이(白居易)
정월 보름날 밤에
歲熟人心樂(세숙인심낙) : 풍년이라 사람들 마음 즐거워
朝遊復夜遊(조유복야유) : 아침에도 놀고, 밤에도 놀러 다닌다.
春風來海上(춘풍내해상) : 바다 위로 봄바람 불어오고
明月在江頭(명월재강두) : 강물 위에 밝은 달이 떠 있다.
燈火家家市(등화가가시) : 집집마다 거리마다 등불 밝히고
笙歌處處樓(생가처처누) : 누대마다 피리소리 노랫소리
無妨思帝里(무방사제리) : 서울 생각나는 어찌 할 수 없지만
不合厭杭州(부합염항주) : 항주 고을을 싫다고도 할 수 없구나.
(白樂天詩後集,卷五,律詩)
포중야박(浦中夜泊)-백거이(白居易)
포구에서 밤에 정박하다
暗上江隄還獨立(암상강제환독립) : 어두워 강둑에 올라 둘러 홀로 서니
水風霜氣夜稜稜(수풍상기야능능) : 강바람, 서리 기운이 밤에 더욱 차갑구나.
回看深浦停舟處(회간심포정주처) : 깊은 포구 배 댄 곳을 뒤돌아보니
蘆荻花中一點燈(노적화중일점등) : 갈대꽃 안에 있는 깜박이는 한 점 등불.
(白樂天詩集,卷十五,律詩)
주중독원구시(舟中讀元九詩)-백거이(白居易)
배 안에서 원구의 시를 읽다-
把君詩卷燈前讀(파군시권등전독) : 자네 시를 잡고 등불 앞에서 읽었는데
詩盡燈殘天未明(시진등잔천미명) : 다 읽어도 등불 스러지고 날은 밝지 않는다.
眼痛滅燈猶闇坐(안통멸등유암좌) : 눈이 아파 등불 끄고 여전히 어둠 속에 앉으니
逆風吹浪打船聲(역풍취낭타선성) : 거슬러 부는 바람에 물결이 뱃전을 치는 소리
북정독숙(北亭獨宿)-백거이(白居易)
북정에서 홀로 묵다
悄悄壁下牀(초초벽하상) : 초초한 벽 아래 침상
紗籠耿殘燭(사롱경잔촉) : 비단 초롱에 꺼져가는 불빛.
夜半獨眠覺(야반독면교) : 밤 깊어 홀로 잠 깨어
疑在僧房宿(의재승방숙) : 내가 승방에 자고 있는가.
미우야항(微雨夜行)-백거이(白居易)
보슬비 속을 밤에 가자
漠漠秋雲起(막막추운기) : 어둑한 가을 구름 솟고
悄悄夜寒生(초초야한생) : 초초한 밤 한기 인다.
但覺衣裳濕(단각의상습) : 옷 젖는 줄 알겠으나
無點亦無聲(무점역무성) : 빗방울도 빗소리도 없다.
객중월(客中月)-백거이(白居易)
객지에서 보는 달
客從江南來(객종강남내) : 객은 강남땅에서 왔지요
來時月上弦(내시월상현) : 제가 올 때는 상현달이었어요.
悠悠行旅中(유유항려중) : 한가히 걸으며 여행하면서
三見淸光圓(삼견청광원) : 맑은 보름달을 세 번 보았지요.
曉隨殘月行(효수잔월항) : 아침에 새벽달 따라 걷다가
夕與新月宿(석여신월숙) : 저녁이면 초승달과 함께 묵었지요.
誰謂月無情(수위월무정) : 누가 달이 무정하다 말하시나
千里遠相逐(천리원상축) : 천 리 먼 곳을 서로 쫓아다니지요.
朝發渭水橋(조발위수교) : 아침에 위수교를 떠나서는
暮入長安陌(모입장안맥) : 저녁이면 장안 거리에 들어와요.
不知今夜月(부지금야월) : 모르는 사이에 뜬 오늘 밤의 달
又作誰家客(우작수가객) : 오늘은 또 어느 집 객이 될는지요.
(白樂天詩集,卷十二,感傷四)
한출(閒出)-백거이(白居易)
한가히 나서며
身外無羈束(신외무기속) : 몸밖에 매여 있는 일 전혀 없고
心中少是非(심중소시비) : 마음 속엔 시비를 가리는 일 적다.
被花留便住(피화류편주) : 꽃비를 맞으면 쉬었다 머물고
逢酒醉方歸(봉주취방귀) : 술을 보면 취하야 돌아오노라.
人事行時少(인사항시소) : 사람의 일 보는 것이 때마다 적고
官曹入日稀(관조입일희) : 관청에 출입하는 일도 날마다 드물다.
春寒遊正好(춘한유정호) : 봄날이 차가워도 놀기에는 딱 좋아
穩馬薄綿衣(온마박면의) : 순한 말 타고서 엷은 무명옷 입어본다.
(白樂天詩後集,卷八,律詩)
자탄(自歎)-백거이(白居易)
스스로 탄식하며
宴遊寢食漸無味(연유침식점무미) : 잔치하고 놀아도, 잠자고 먹어도 맛이 없어지고
杯酒管絃徒繞身(배주관현도요신) :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도, 다만 내 몸만 얽어맨다.
賓客歡娛僮僕飽(빈객환오동복포) : 손님은 즐거워하고, 종들은 배불러 하노니
始知官職爲他人(시지관직위타인) : 이제야 알겠다, 관직은 남을 위해 하는 것임을.

숙양가(宿楊家)-백거이(白居易)
양씨 집에서 묵으며
楊氏弟兄俱醉臥(양씨제형구취와) : 양씨 형제는 모두가 취하여 누워있고
披衣獨起下高齋(피의독기하고재) : 옷 풀어헤치고 혼자 일어나 재실을 내려간다.
夜深不語中庭立(야심부어중정립) : 밤은 깊어가는데 말없이 뜰 가운데 서니
月照藤花影上堦(월조등화영상계) : 달이 등나무 비추고 그림자는 섬돌을 오른다.
하규장남도화(下邽莊南桃花)-백거이(白居易)
하규장 남쪽의 복사꽃
村南無限桃花發(촌남무한도화발) : 마을 남쪽에 끝없이 복사꽃 만발하여
唯我多情獨自來(유아다정독자래) : 나만이 다정하여 홀로 찾아왔도다.
日暮風吹紅滿地(일모풍취홍만지) : 해지고 바람 불어 붉은 꽃잎 땅에 가득
無人解惜爲誰開(무인해석위수개) : 애석해 하는 사람 없거늘 누굴 위해 피었나.
곡강유감(曲江有感)-백거이(白居易)
곡강에서 느끼어
曲江西岸又春風(곡강서안우춘풍) : 곡강 서편 언덕에 또 봄바람 부니
萬樹花前一老翁(만수화전일노옹) : 온갖 꽃나무 앞에 선 한 늙은이.
遇酒逢花還且醉(우주봉화환차취) : 술 만나고 꽃 만나면 돌아와 또 취하니
若論惆愴事何窮(약론추창사하궁) : 실망과 슬픔을 논하면 이 일이 어찌 궁한가.
증담객(贈談客)-백거이(白居易)
담소하는 손님에게
上客淸談何亹亹(상객청담하미미) : 손님은 그렇게도 애써 청담을 나누시나
幽人閒思自寥寥(유인한사자료료) : 숨어사는 사람의 한가한 심사는 절로 편안하오.
請君休說長安事(청군휴설장안사) : 청하노니, 서울 장안의 일들일랑 말하지 마오
膝上風淸琴正調(슬상풍청금정조) : 무릎 위에 맑은 바람이 바로 거문고 가락이라오.
신추야우(新秋夜雨)-백거이(白居易)
초가을 밤비
蟋蟀暮啾啾(실솔모추추) : 귀뚜라미 추런거리는 저녁
光陰不少留(광음불소류) : 세월은 잠시도 머물지 않는구나.
松檐半夜雨(송첨반야우) : 소나무 처마에 비 내리는 한밤
風幌滿牀秋(풍황만상추) : 바람 이는 커튼, 침상에 가득한 가을.
曙早燈猶在(서조등유재) : 이른 새벽에도 켜져 있는 등잔불
凉初簞未收(양초단미수) : 서늘한 첫 추위라, 발을 걷지 못한다.
新晴好天氣(신청호천기) : 새로 하늘, 날씨도 좋은데
誰伴老人遊(수반노인유) : 누가 늙은이와 짝이 되어 놀아줄까.
(白樂天詩後集,卷十七,律詩)
춘면(春眠)-백거이(白居易)
봄잠
枕低被暖身安穩(침저피난신안온) : 베개 낮추니 따뜻해져 몸이 편안해
日照房門帳未開(일조방문장미개) : 해가 방문 비춰도 커튼은 열지 않아.
還有少年春氣味(환유소년춘기미) : 여전히 소년은 봄기운 맛보는데
時時暫到睡中來(시시잠도수중래) : 때때로 잠깐 와 보면 잠들어 있었다.
(白樂天詩後集,卷十七,律詩)
자미화(紫薇花)-백거이(白居易)
絲綸閣下文章靜(사륜각하문장정) : 사륜각 아래 문장은 고요하고
鐘鼓樓中刻漏長(종고루중각루장) : 종고루 안 물시계 소리만 길다.
獨坐黃昏誰是伴(독좌황혼수시반) : 홀로 앉는 황혼녘, 곁에 뉘 있나
紫薇花對紫薇郞(자미화대자미랑) : 자미화가 자미랑과 마주본다.
게으름을 노래하다-백거이(白居易)
有官慵不選(유관용부선) : 관직에 있어도 게을러 뽑히지 않고
有田慵不農(유전용부농) : 전답이 있어도 게을러 농사짓지 않는다.
屋穿慵不葺(옥천용부즙) : 지붕이 새도 게을러 이지 않고
衣裂慵不縫(의렬용부봉) : 옷이 찢어져도 게을러 꿰매지 않는다.
有酒慵不酌(유주용부작) : 술이 있어도 게을러 마시지 않아
無異樽長空(무리준장공) : 술잔은 늘 비어 있는 편이다.
有琴慵不彈(유금용부탄) : 거문고가 있어도 게을러서 타지 않아
亦與無絃同(역여무현동) : 또한 악기가 함께 없는 것과 같구나.
家人告飯盡(가인고반진) : 식구가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알려도
欲炊慵不舂(욕취용부용) : 밥을 짓고 싶어도 게을러 벼 찧기가 싫다.
親朋寄書至(친붕기서지) : 친척과 친구들이 보낸 편지 와서
欲讀慵開封(욕독용개봉) : 꺼내어 읽고 싶어도 뜯기가 귀찮구나.
嘗聞嵇叔夜(상문혜숙야) : 일찍이 듣기로는, 혜숙야가
一生在慵中(일생재용중) : 평생 게으름 속에 살았다고 한다.
彈琴復鍛鐵(탄금복단철) : 거문고도 타고 담금질도 했으니,
比我未爲慵(비아미위용) : 나보다는 게으르지는 않았나 보다.
삼년별(三年別)-백거이(白居易)
이별한 삼년
悠悠一別已三年(유유일별이삼년) : 아득한 한번의 이별이, 벌써 삼년
相望相思明月天(상망상사명월천) : 보고 싶고 그리운, 달 밝은 하늘
斷腸靑天望明月(단장청천망명월) : 애타는 맑은 날에, 밝은 달 보니
別來三十六回圓(별래삼십륙회원) : 이별한 후, 서른 여섯 번 째 둥근달
남포별(南浦別)-백거이(白居易)
남포의 이별
南浦凄凄別(남포처처별) : 처연한 남포의 이별
西風嫋嫋秋(서풍뇨뇨추) : 하늘하늘 서풍 부는 가을날
一看腸一斷(일간장일단) : 바라보면, 애간장 끊어지나니
好去莫回頭(호거막회두) : 돌아보지 말고, 그냥 떠나다오
곡공감(哭孔戡)-백거이(白居易)
공감을 곡하다
洛陽誰不死(낙양수부사) : 낙양사람 누가 죽지 않으리오
戡死聞長安(감사문장안) : 공잠의 죽은 소식이 장안에 들린다.
我是知戡者(아시지감자) : 나는 공잠을 아는 사람이라
聞之涕泫然(문지체현연) : 이 소식 들으니 눈물이 흐른다.
戡佐山東軍(감좌산동군) : 공잠은 산동군을 도우고 있었는데
非義不可干(비의부가간) : 의리가 아니면 간여하지 않았었다.
拂衣向西來(불의향서내) : 옷을 떨치고 서쪽 향해 왔으니
其道直如絃(기도직여현) : 그의 도리의 곧음이 악기 줄과 같았다.
從事得如此(종사득여차) : 따라서 섬기고 따름을 이처럼 하였으니
人人以爲難(인인이위난) : 사람들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人言明明代(인언명명대) : 사람들의 좋은 말은 밝은 시대를 밝히고
合置在朝端(합치재조단) : 합당한 조치는 밝아오는 아침녘에 있도다.
或望居諫司(혹망거간사) : 어떤 사람의 기대는 그가 간관의 자리 차지하여
有事戡必言(유사감필언) : 간언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간언할 것이라 생각하고
或望居憲府(혹망거헌부) : 어떤 사람의 기대는 재판관의 자리를 차지하여
有邪戡必彈(유사감필탄) : 사악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탄핵하리라 생각하였다.
惜哉兩不諧(석재량부해) : 아깝도다, 두 가지 일이 모두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沒齒爲閒官(몰치위한관) : 이가 다 빠지도록 늙어서도 한가한 관리로 남아
竟不得一日(경부득일일) : 끝내 하루도 그 자리를 얻지 못하고
謇謇立君前(건건립군전) : 군왕 앞에 절절매며 서있었구나.
形骸隨衆人(형해수중인) : 죽은 몸은 보통사람처럼
斂葬北邙山(렴장배망산) : 걷히어 북망산에 묻히었구나.
平生剛腸內(평생강장내) : 평생 동안 강직한 마음
直氣歸其間(직기귀기간) : 곧은 의기는 그 사이로 돌아갔구나.
賢者爲生民(현자위생민) : 어진 자는 살아있는 백성을 위하고
生死懸在天(생사현재천) : 살고 죽는 문제는 하늘에 맡기는구나.
謂天不愛人(위천부애인) :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胡爲生其賢(호위생기현) : 무엇 때문에 어진 사람들을 낳았겠는가
謂天果愛民(위천과애민) : 하늘이 과연 백성을 사랑한다 말하는가
胡爲奪其年(호위탈기년) : 무엇 때문에 그 생명을 빼앗는가
茫茫元化中(망망원화중) : 망망한 우주에서
誰執如此權(수집여차권) : 누가 이와 같은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일까.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등낙유원망(登樂遊園望)-백거이(白居易)
낙유원 올라 바라보다
獨上樂遊園(독상낙유원) : 혼자 낙유원에 오르니
四望天日曛(사망천일훈) : 사방 하늘에 온통 황혼 빛이라.
東北何靄靄(동배하애애) : 동북쪽은 어찌 자욱한가
宮闕入煙雲(궁궐입연운) : 궁궐에 안개와 구름이 몰려온다.
愛此高處立(애차고처립) : 이런 광경이 좋아서 높은 곳에 서니
忽如遺垢氛(홀여유구분) : 문득 내가 속된 기운을 남긴 듯 하다.
耳目暫淸曠(이목잠청광) : 귀와 눈이 잠시 맑아지고 밝아져도
懷抱鬱不伸(회포울부신) : 마음에 품은 울적함은 펴지지 않는다.
下視十二街(하시십이가) : 아래로 열두 가닥 큰 길을 바라보니
綠樹間紅塵(녹수간홍진) : 푸른 나무들 사이로 흙먼지가 일어난다.
車馬徒滿眼(거마도만안) : 눈에 가득한 것은 다만 수레와 말 뿐
不見心所親(부견심소친) : 마음에 친숙한 것은 보이지 않는구나.
孔生死洛陽(공생사낙양) : 공생는 낙양에서 죽었고
元九謫荊門(원구적형문) : 원구는 형문으로 귀양 갔도다
可憐南北路(가련남배노) : 가련하다, 남북으로 떨어진 길에
高蓋者何人(고개자하인) : 높은 모자 쓴 그 사람이 누구이더냐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숙자각산배촌(宿紫閣山北邨)-백거이(白居易)
자각산 북촌에 묵는데
晨遊紫閣峯(신유자각봉) : 새벽에 자각봉을 유람하다가
暮宿山下邨(모숙산하촌) : 저녁에는 산 아래 고을에서 묵었소.
邨老見予喜(촌노견여희) : 고을 노인이 나를 반갑게 맞아
爲予開一尊(위여개일존) : 나를 위해 한 동이 술통을 열었소.
擧杯未及飮(거배미급음) : 따른 술잔을 들고 마시기지도 전에
暴卒來入門(포졸내입문) : 포악한 군졸들이 찾아 문 열고 들어왔소.
紫衣挾刀斧(자의협도부) : 자색옷에 칼과 도끼를 들고 온
草草十餘人(초초십여인) : 초라한 열 명의 사람들이었소.
奪我席上酒(탈아석상주) : 우리 자리의 술을 빼앗고
掣我盤中飧(체아반중손) : 우리 소반의 저녁밥을 끌어갔다오.
主人退後立(주인퇴후립) : 주인은 물러나 뒤에 서서
斂手反如賓(렴수반여빈) : 손을 모으며 도리어 손님 같았소.
中庭有奇樹(중정유기수) : 뜰 가운데에는 진기한 나무 있었는데
種來三十春(종내삼십춘) : 심은 지가 이미 삼십년은 다 되었다오.
主人惜不得(주인석부득) : 주인은 아까워도 어찌할 수 없었으니
持斧斷其根(지부단기근) : 군졸들은 도끼로 그 뿌리를 끊어버렸소.
口稱采造家(구칭채조가) : 말하기로는 캐어서 집을 짓는다지만
身屬神策軍(신속신책군) : 신분은 황제의 군대에 속해있지요.
主人愼勿語(주인신물어) : 주인은 조심하면서 말 내지 못하게 했으니
中尉正承恩(중위정승은) : 중위는 바로 황제의 은혜를 받은 자라오.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하우(賀雨)-백거이(白居易)
비 내리는 것을 경하하다
皇帝嗣寶曆(황제사보력) : 황제가 황위를 계승한 것은
元和三年冬(원화삼년동) : 원화 삼년 째 되던 겨울이었다.
自冬及春暮(자동급춘모) : 겨울부터 봄이 저물도록
不雨旱爞爞(부우한충충) :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어 더웠다
上心念下民(상심념하민) : 황제는 마음으로 백성을 생각하고
懼歲成災凶(구세성재흉) : 재앙의 한 해가 될까봐 두려워했다.
遂下罪己詔(수하죄기조) : 마침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조서를 내리고
殷勤告萬邦(은근고만방) : 은근히 온 세상에 알리었다.
帝曰予一人(제왈여일인) : 황제가 이르기를, 내가
繼天承祖宗(계천승조종) : 하늘의 뜻을 잇고 조상의 덕을 받들어
憂勤不遑寧(우근부황녕) : 우려하고 근면함에도 편안하지 못하였다.
夙夜心忡忡(숙야심충충) : 아침저녁으로 마음은 근심스럽고
元年誅劉闢(원년주유벽) : 즉위 원년에는 유벽을 베어버리고
一擧靖巴邛(일거정파공) : 일거에 파공을 편안히 다스렸었다.
二年戮李錡(이년륙리기) : 즉위 이년에는 이기를 도륙하여
不戰安江東(부전안강동) : 싸우지 않고도 강동 지방을 편안해 했었다.
顧惟眇眇德(고유묘묘덕) : 돌아보건대, 보잘 것 없는 덕으로
遽有巍巍功(거유외외공) : 갑자기 커다란 공을 이루었는지라
或者天降沴(혹자천강려) : 어쩌면 하늘이 가뭄을 내린 것이니
無乃儆予躬(무내경여궁) : 어찌 내 몸을 삼가지 않겠는가.
上思答天戒(상사답천계) : 위로는 하늘의 경계에 답할 것을 생각하고
下思致時邕(하사치시옹) : 아래로는 시절의 조화를 이루지를 생각하노라
莫如率其身(막여률기신) :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데는
慈和與儉恭(자화여검공) : 자애와 온화, 검소와 공손보다 나은 것이 없도다.
乃命罷進獻(내명파진헌) : 이에 공물을 진상하는 것을 그치게 하고
乃命賑飢窮(내명진기궁) :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진휼하게 하였다
宥死降五刑(유사강오형) : 사형 죄를 용서하여 오형으로 내리고
已責寬三農(이책관삼농) : 질책함을 그치고 삼농의 조세를 관대히 하였다.
宮女出宣徽(궁녀출선휘) : 궁녀는 선휘원에서 나가게 하고
廐馬減飛龍(구마감비룡) : 마구간의 말은 날랜 말들을 줄였다.
庶政靡不擧(서정미부거) :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皆出自宸衷(개출자신충) : 모두가 황제의 충정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었다.
奔騰道路人(분등도노인) : 분주한 길 위의 사람들
傴僂田野翁(구루전야옹) : 구부정한 들판 논밭의 늙은이들.
歡呼相告報(환호상고보) : 환호하며 서로가 알려주니
感泣涕沾胸(감읍체첨흉) : 감격하여 울어, 눈물이 가슴을 적시었다.
順人人心悅(순인인심열) : 백성에게 순응하니 백성들 마음이 기쁘고
先天天意從(선천천의종) : 하늘을 앞세우니 하늘의 뜻도 따른다.
詔下纔七日(조하재칠일) : 조서를 내린지 겨우 칠일
和氣生沖融(화기생충융) : 온화한 기운이 가득 찬 곳에서 생겨나
凝爲油油雲(응위유유운) : 엉기어 부드러운 구름으로 되었고
散作習習風(산작습습풍) : 흩어져 솔솔 부는 바람으로 되었도다.
晝夜三日雨(주야삼일우) : 밤낮 삼일 동안 비가 내리니
淒淒復濛濛(처처복몽몽) : 초목은 우거지고 다시 날은 자욱해졌다.
萬心春熙熙(만심춘희희) : 만물의 마음은 봄처럼 밝아지고
百穀靑芃芃(백곡청봉봉) : 온갖 곡식은 푸름이 짙어져간다.
人變愁爲喜(인변수위희) : 사람도 변하여 수심이 기쁨이 되고
歲易儉爲豐(세역검위풍) : 한 해도 변하여 매우 검소해졌도다.
乃知王者心(내지왕자심) : 알겠노라, 왕의 마음은
憂樂與衆同(우낙여중동) : 근심과 즐거움을 백성들로 함께하고
皇天與后土(황천여후토) : 하늘과 땅의 신
所感無不通(소감무부통) : 서로 느끼는 것이 통하지 않음이 없도다.
冠珮何鏘鏘(관패하장장) : 관에 붙은 패물이 어찌 그렇게도 쟁쟁한가.
將相及王公(장상급왕공) : 장군과 재상 그리고 왕공들
蹈舞呼萬歲(도무호만세) : 뛰며 춤추며 만세를 부른다.
列賀明庭中(렬하명정중) : 밝은 대궐 뜰에서 줄지어 하례하오니
小臣誠愚陋(소신성우누) : 저는 정말로 우둔하고 고루한 신하인지라
職忝金鑾宮(직첨금란궁) : 한림원의 직책으로 금란궁을 욕되게 하였으니
稽首再三拜(계수재삼배) : 머리를 조아려 두세 번 절하며
一言獻天聰(일언헌천총) : 한번 말로써 황제의 총명에 바치오니
君以明爲聖(군이명위성) : 임금은 총명으로써 성군이 되시고
臣以直爲忠(신이직위충) : 신하는 곧음으로써 충신이 되나니
敢賀有其始(감하유기시) : 감히 그 시작함이 있음을 경하 드리며
亦願有其終(역원유기종) : 또한 그 끝마침이 있을 것을 바라옵니다.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상우(傷友)-백거이(白居易)
벗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陋巷孤寒士(루항고한사) : 골목의 외롭고 빈한한 선비
出門苦恓恓(출문고서서) : 문 나서면 너무나 고통스럽다.
雖云志氣高(수운지기고) : 비록 그 기개가 높다 하더라도
豈免顔色低(기면안색저) : 어찌 쓸쓸한 얼굴빛 없으랴.
平生同門友(평생동문우) : 평생동안 같은 문하의 친구는
通籍在金閨(통적재김규) : 명패가 금마문에 걸려있구나.
囊者膠漆契(낭자교칠계) : 옛날에는 돈독한 사이였으나
邇來雲雨睽(이래운우규) : 지금은 서로의 벽이 생겼구나.
正逢下朝歸(정봉하조귀) : 마침 대궐에서 퇴근하던 길에
軒騎五門西(헌기오문서) : 오문의 서쪽에서 마차를 만났다.
是時天久陰(시시천구음) : 이때 날씨는 오랫동안 흐리고
三日雨凄凄(삼일우처처) : 삼일동안 비가 처랑하게 내렸다.
蹇驢避路立(건려피로립) : 절름발이 당나귀는 길 피해 서 있는데
肥馬當風嘶(비마당풍시) : 살찐 말은 바람 맞아 소리 내어 우는구나.
廻頭忘相識(회두망상식) : 머리 돌려 모르는 채 하고
占道上沙堤(점도상사제) : 길을 차지하고 모래 언덕 위를 지나간다.
昔年洛陽社(석년락양사) : 그 옛적 낙양사에서는
貧賤相提攜(빈천상제휴) : 가난하고 비천한 것을 서로 도왔는데
今日長安道(금일장안도) : 오늘날 장안의 길에서는
對面隔雲泥(대면격운니) : 얼굴을 맞대고도 아주 외면해 버린다.
近日多如此(근일다여차) : 요즈음 이런 일이 많으니
非君獨慘悽(비군독참처) : 그대만의 처참함이 아니로다.
死生不變者(사생부변자) : 생사의 길에서도 변치 않은 자는
唯聞任與黍(유문임여서) : 오로지 임공숙과 여봉일 뿐이라 한다.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중부(重賦)-백거이(白居易)
무거운 세금
厚地植桑麻(후지식상마) : 두터운 대지에 뽕나무 심음은
所要濟生民(소요제생민) : 백성들 구제함에 중하기 때문이요
生民理布帛(생민리포백) : 백성이 삼베와 비단을 짬은
所求活一身(소구활일신) : 한 몸을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라
身外充征賦(신외충정부) : 먹고 남는 것은 세금으로 바쳐서
上以奉君親(상이봉군친) : 위로는 임금님을 봉양한다.
國家定兩稅(국가정량세) : 나라에서 양세법을 정함은
本意在愛人(본의재애인) : 본뜻은 백성 사랑에 있었도다.
厥初防其淫(궐초방기음) : 애초에 문란함을 막으려
明敕內外臣(명칙내외신) : 안팎의 신하에게 명백히 칙서 내렸다.
稅外加一物(세외가일물) : 세금 외에 하나라도 더 거두면
皆以枉法論(개이왕법론) : 모두 위법으로 논죄한다 했도다.
奈何歲月久(내하세월구) : 어찌하여 세월이 오래되니
貪吏得因循(탐리득인순) : 탐욕스런 관리들 악습을 답습하는구나.
浚我以求寵(준아이구총) : 우리를 짜내어 은총을 구하려
斂索無冬春(렴색무동춘) : 세금 거둠에 봄도 겨울도 없도다.
織絹未成匹(직견미성필) : 비단이 채 한 필도 못되고
繅絲未盈斤(소사미영근) : 고치 켠 실 한 근도 안 된다.
里胥迫我納(리서박아납) : 아전은 바치라고 독촉하여
不許蹔逡巡(부허잠준순) : 잠시도 지체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歲暮天地閉(세모천지폐) : 세모가 다되어서 천지가 막히고
陰風生破村(음풍생파촌) : 음산한 바람 황폐한 고을에 불어온다.
夜深煙火盡(야심연화진) : 깊은 밤에는 불씨마저 꺼지고
霰雪白紛紛(산설백분분) : 싸락눈도 하얗게 날리는구나.
幼者形不蔽(유자형부폐) : 어린 것은 몸 하나 가리지 못하고
老者體無溫(로자체무온) : 늙은이는 몸에 온기조차 없구나.
悲喘與寒氣(비천여한기) : 슬픈 숨이 한기와 함께
倂入鼻中辛(병입비중신) : 콧속으로 쓰리도록 들어온다.
昨日輸殘稅(작일수잔세) : 어제는 남은 세금 바치며
因窺官庫門(인규관고문) : 우연히 관청의 창고 속 엿보았다.
繒帛如山積(증백여산적) : 비단은 산처럼 쌓여 있고
絲絮似雲屯(사서사운둔) : 실과 솜은 구름처럼 모아두었다.
號爲羨餘物(호위선여물) : 이름 붙여 남은 물건이라 하여
隨月獻至尊(수월헌지존) : 달마다 천자에게 바쳤다더구나.
奪我身上暖(탈아신상난) : 우리들 몸의 따스함을 빼앗아
買爾眼前恩(매이안전은) : 너희 눈앞의 은총을 샀었구나.
進入瓊林庫(진입경림고) : 천자의 경림고에 들어가면
歲久化爲塵(세구화위진) : 오래되어서는 먼지로 될 것이거늘.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지상이절[二](池上二絶)-백거이(白居易)
연못 위에서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 소녀가 작은 배를 저어가며
偸採白蓮回(투채백연회) : 흰 연꽃 몰래 캐어 돌아간다.
不解藏蹤迹(불해장종적) : 그 캔 자취를 감출 줄 몰라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 부평초 한 가닥 길을 남겨놓았다.

지상이절[一](池上二絶)-백거이(白居易)
못 위에서
山僧對棊坐(산승대기좌) : 스님은 바둑 대하여 앉아있고
局上竹陰淸(국상죽음청) : 바둑판 위에는 대나무 그늘이 맑다.
映竹無人見(영죽무인견) : 대나무 햇빛 들어 사람은 뵈지 않는데
時聞下子聲(시문하자성) : 때때로 바둑알 두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식야(寒食夜)-백거이(白居易)
한식날 밤에
四十九年身老日(사십구년신노일) : 마흔아홉 나이, 몸 늙어가는 나날
一百五夜月明天(일백오야월명천) : 일백 오 일 밤, 달 밝은 날이었다
抱膝思量何事在(포슬사량하사재) : 무슨 일 있었는지 무릎 안고 생각하니
癡男騃女喚鞦韆(치남애녀환추천) : 어리숙한 남자와 여자 불러 그네를 탄다
삼월삼일(三月三日)-백거이(白居易)
삼월 삼짓날
暮春風景初三日(모춘풍경초삼일) : 저문 어느 봄날, 풍경은 초 사흘
流世光陰半百年(류세광음반백년) : 흐르는 세월, 반백년이 다 되었다
欲作閒遊無好伴(욕작한유무호반) : 한가한 시간 가지려도 친구 없어
半江惆悵却回船(반강추창각회선) : 반쯤 온 강에서 서러워 배를 되돌린다
제악양누(題岳陽樓)-백거이(白居易)
악양루에 제하여
岳陽城下水漫漫(악양성하수만만) : 악양성 아래로 물결은 출렁거리는데
獨上危樓凭曲欄(독상위누빙곡난) :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둥근 난간에 기대어본다
春岸綠時連夢澤(춘안녹시련몽택) : 봄 언덕 풀빛 짙어지는 시절, 몽택이 닿아있고
夕波紅處近長安(석파홍처근장안) : 저녁 물결 붉어지는 곳, 장안이 가깝구나
猿攀樹立啼何苦(원반수립제하고) : 나무에 올라선 원숭이, 울음 어찌나 괴로운지
雁點湖飛渡亦難(안점호비도역난) : 기러기 호숫물 치며 날아, 건너지도 어렵구나
此地唯堪畫圖障(차지유감화도장) : 이 곳 누각 가림벽에 오직 글 새길만 만하니
華堂張與貴人看(화당장여귀인간) : 화려한 당 안에 시를 적은 후, 귀인과 함께 보노라
숙서림사(宿西林寺)-백거이(白居易)
서림사에 묵으며-
木落天晴山翠開(목낙천청산취개) : 나뭇잎 지니 하늘 개고 산빛은 푸르러
愛山騎馬入山來(애산기마입산내) : 산이 좋아 말을 타고 산에 들어 왔노라
心知不及柴桑令(심지부급시상령) : 시상령에게 가지 못할까 생각되어
一宿西林便却回(일숙서림편각회) : 서림사에 하루 묵고 곧 다시 돌아가노라
유루효망(庾樓曉望)-백거이(白居易)
유루에서 새벽에 바라보다
獨憑朱檻立凌晨(독빙주함립능신) : 새벽녘에 서서 붉은 난간에 기대니
山色初明水色新(산색초명수색신) : 산색이 밝아오고 물빛이 신선하여라
竹霧曉籠銜嶺月(죽무효농함령월) : 대숲 새벽 안개 고개 위 달을 머금고
蘋風煖送過江春(빈풍난송과강춘) : 가래풀에 인 따뜻한 바람, 봄강을 지난다
子城陰處猶殘雪(자성음처유잔설) : 자성 그늘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衙鼓聲前未有塵(아고성전미유진) : 관아의 북소리, 아직 흙먼지 일지 않는다
三百年來庾樓上(삼백년내유누상) : 삼백년 동안 유루 위에서
曾經多少望鄕人(증경다소망향인) : 지금껏 고향 그리던 사람 얼마나 많았까
강주( 强酒)-백거이(白居易)
억지로 권하는 술
若不坐禪銷妄想(야부좌선소망상) : 좌선하며 망상을 삭이지 못하면
卽須吟醉放狂歌(즉수음취방광가) : 취하여 시 읆으며, 미친 듯 노래한다
不然秋月春風夜(부연추월춘풍야) : 가을 달, 봄바람이 부는 밤이 아니면
爭那閒思往事何(쟁나한사왕사하) : 어찌 지난 일을 한가히 생각이나 할까
답권주(答勸酒)-백거이(白居易)
술을 권하시니
莫怪近來都不飮(막괴근내도부음) : 근래에 도무지 마시지 않는 것 이상타 마오
幾回因醉却沾巾(기회인취각첨건) : 취하여 두건을 적신 일 몇 번이나 되었던가
誰料平生狂酒客(수료평생광주객) : 평생을 술에 미친 나그네 신세 누가 알리오
如今變作酒悲人(여금변작주비인) : 지금은 술에 취한 비참한 인간이 다 되었다오
소원외기신촉다( 蕭員外寄新蜀茶)-백거이(白居易)
소원외가 신선한 촉차를 부쳐오다
蜀茶寄到但驚新(촉다기도단경신) : 촉차를 부쳐오니 신선함이 놀라워라
渭水煎來始覺珍(위수전내시각진) : 위수의 물로 달여내니 귀한 맛 알겠다
滿甌似乳堪持翫(만구사유감지완) : 젖빛 주발에 가득채워 천천히 맛보나니
況是春深酒渴人(황시춘심주갈인) : 이렇게 짙은 봄날, 술 고픈 사람에게야
과천문가( 過天門街)-백거이(白居易)
천문가를 지나며
雪盡終南又欲春(설진종남우욕춘) : 눈 다 녹은 종남 땅에, 봄이 오는데
遙憐翠色對紅塵(요련취색대홍진) : 멀리 아름다운 비취 빛이 홍진과 맞닿았다
千車萬馬九衢上(천거만마구구상) : 큰 거리마다 가득한 수레와 말들
廻首看山無一人(회수간산무일인) : 머리 돌려 산을 보아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세장(時世粧)-백거이(白居易)
유행 화장
時世粧時世粧(시세장시세장) : 지금 유행하는 화장은, 지금 유행하는 화장은
出自城中傳四方(출자성중전사방) : 장안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時世流行無遠近(시세류항무원근) : 지금 멀고 가까운 곳 어디서나 유행하는데
顋不施朱面無粉(시부시주면무분) : 뺨에는 연지도 바르지 않고, 얼굴에는 분도 바르지 않는다.
烏膏注唇唇似泥(오고주진진사니) : 검정 기름 입술에 발라, 입술은 마치 진흙 같고
雙眉畫作道八字低(쌍미화작팔자저) : 두 눈썹은 여덟팔자 낮추어 그리는구나.
姸蚩黑白失本態(연치흑백실본태) : 곱거나 추하거나 검거나 희어서 본래 모습 잃고
粧成盡似含悲啼(장성진사함비제) : 화장을 마치면 모두가 슬픔을 머금고 우는 모습이다.
圓鬟無鬢椎髻樣(원환무빈추계양) : 둥글게 쪽지어서 살적도 보이 않은 망치머리
斜紅不暈赭面狀(사홍부훈자면장) : 둥그렇게 바르지 않은 비스듬한 진흙 빛 얼굴
昔聞被髮伊川中(석문피발이천중) : 이천에 머리 뒤집어쓴 사람 나타났다 하더니
辛有見之知有戎(신유견지지유융) : 신유가 이를 보고 오랑캐의 침입 있음을 알았도다.
元和粧梳君記取(원화장소군기취) : 원화연간에 이런 화장술 유행하니, 그대는 기억하라
髻椎面赭非華風(계추면자비화풍) : 망치머리와 붉은 얼굴 화장은 중국의 풍속 아닌 것을
팔월십오일야금중독직대월억원구 (八月十五日夜禁中獨直對月憶元九)-백거이(白居易)
팔월십오일 밤에 홀로 번을 서며 달을 보고 원구를 생각하다
銀臺金闕夕沈沈(은대금궐석침침) : 화려한 누각과 궁궐에 밤은 어두워지는데
獨宿相思在翰林(독숙상사재한림) : 한림원에서 혼자 당직하니 서로 그리워진다.
三五夜中新月色(삼오야중신월색) : 깊은 밤, 새로 떠오른 달빛은
二千里外故人心(이천리외고인심) : 이천 리 밖에 떨어진 친구 그리는 마음이라.
渚宮東面煙波冷(저궁동면연파냉) : 저궁의 동편에는 안개가 차가옵고
浴殿西頭鍾漏深(욕전서두종누심) : 욕전의 서편 언저리에는 종루가 깊숙하다
猶恐淸光不同見(유공청광부동견) : 두렵거니, 맑은 달빛 함께 보지 못하고
江陵卑濕足秋陰(강능비습족추음) : 강릉 땅은 낮고 습하여, 가을날이 어둑한 것을
제야(除夜)-백거이(白居易)
섣달 그믐날 밤에
病眼少眠非守歲(병안소면비수세) : 아픈 눈 잠이 적어, 묵은 해도 못 지켰는데
老心多感又臨春(노심다감우림춘) : 다감한 늙은이 마음, 또다시 봄을 맞는구나.
火銷燈盡天明後(화소등진천명후) : 불 사그라지고 등불마저 꺼지고, 날 이미 밝은데
便是平頭六十人(편시평두륙십인) : 평범한 이 백성, 나이 벌써 예순 여덟이라오.
부서지(府西池)-백거이(白居易)
관아 서편 연못에서
柳無氣力枝先動(류무기력지선동) : 가녀린 버드나무, 가지 먼저 흔들리고
池有波紋冰盡開(지유파문빙진개) : 얼음 풀려 흐른 못물에 파문이 이는구나.
今日不知誰計會(금일부지수계회) : 누가 일 꾸몄는지 오늘은 모르지만
春風春水一時來(춘풍춘수일시내) : 봄바람, 봄물결이 일시에 찾아왔구나.

강루월(江樓月)-백거이(白居易)
강변 누각의 달
嘉陵江曲曲江池(가릉강곡곡강지) : 가릉의 강굽이에 곡강의 연못 있어
明月雖同人別離(명월수동인별리) : 밝은 달은 같은데 사람들만 이별했구나.
一宵光景潛相憶(일소광경잠상억) : 하룻저녁 광경을 잊었다가 기억하니
兩地陰晴遠不知(양지음청원부지) : 두 곳의 흐리고 맑음을 멀어서 모르겠다.
誰料江邊懷我夜(수료강변회아야) : 누가 생각이나 하랴, 나를 생각하는 밤
正當池畔望君時(정당지반망군시) : 그 밤이 못가에서 그대 그리는 바로 이 시간임.
今朝共語方同悔(금조공어방동회) : 오늘 아침 함께 나눈 말들, 후회스러우니
不解多情先寄詩(부해다정선기시) : 다정을 몰라서 내가 먼저 시를 지어 부쳐버렸소.
강상적(江上笛)-백거이(白居易)
강 가의 피리소리
江上何人夜吹笛(강상하인야취적) : 강가에 어떤 사람, 밤에 피리 부니
聲聲似憶故園春(성성사억고원춘) : 소리마다 고향의 옛 봄날을 그리는 듯.
此時聞者堪頭白(차시문자감두백) : 이 시간 듣는 사람, 늙음도 잊으리니
況是多愁少睡人(황시다수소수인) : 근심 많고 잠적은 사람이야 어떠할까.

야심행(夜深行)-백거이(白居易)
깊은 밤, 길 걸으며
百牢關外夜行客(백뇌관외야항객) : 관 외의 모든 집을 밤길 걷는 사람
三殿角頭宵直人(삼전각두소직인) : 삼 전각 꼭대기에서 한밤에 번 서는 사람.
莫道近臣勝遠使(막도근신승원사) : 근신이 원신보다 낫다고 하지 말라
其如同是不閒身(기여동시부한신) : 그들도 이처럼 한가하지 않은 몸이라오.

강안이화(江岸梨花)-백거이(白居易)
강언덕 배꽃
梨花有意綠和葉(이화유의녹화섭) : 배꽃에 정감 있어 푸르기가 나뭇잎 같아
一樹江頭惱殺君(일수강두뇌살군) : 강 가의 배나나무가 그대를 뇌살하는구나.
最似孀閨少年婦(최사상규소년부) : 과부 방, 젊은 아낙과 꼭 같나니
白粧素袖碧紗裙(백장소수벽사군) : 흰 분칠, 흰 소매 그리고 푸른 비단 차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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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원구(憶元九)-백거이(白居易)
원씨네 아홉째 아들을 생각하며
渺渺江陵道(묘묘강능도) : 아득하다, 강릉가는 길
相思遠不知(상사원부지) : 그리워도 멀어서 알지 못한다.
近來文卷裏(근내문권리) : 근래의 글들 중에서
半是憶君詩(반시억군시) : 절반은 그대 그리는 시로구나.

병기(病氣)-백거이(白居易)
병 증세
自知氣發每因情(자지기발매인정) : 정 때문에 병나는 것, 나는 알아
情在何由氣得平(정재하유기득평) : 정이 어디 있어야, 병세가 나아지나.
若問病根深與淺(야문병근심여천) : 병 뿌리의 깊음과 엷음 묻는다면
此身應與病齊生(차신응여병제생) : 이 몸은 반드시 병과 함께 살고 싶어라.

야좌(夜坐)-백거이(白居易)
밤에 혼자 앉아
庭前盡日立到夜(정전진일립도야) : 종일토록 뜰 앞에 선채 밤이 되니
燈下有時坐徹明(등하유시좌철명) : 등잔 아래에서 때로는 앉은 채로 날이 밝는다.
此情不語何人會(차정부어하인회) : 이런 내 마음을 말하지 않으니 누가 찾아올까
時復長吁一兩聲(시복장우일량성) : 가끔씩 다시 길게 나오는 한 두 번의 탄식소리.

주와(晝臥)-백거이(白居易)
대낮에 혼자 누워
抱枕無言語(포침무언어) : 말없이 베개를 안고 누우니
空房獨悄然(공방독초연) : 홀로 있는 빈 방이라 처연하구나.
誰知盡日臥(수지진일와) : 누가 알겠는가, 종일 혼자 누워있어도
非病亦非眠(비병역비면) : 병든 것도, 잠자는 것도 아닌 것임을.

유감(有感)-백거이(白居易)
유감스러워
絶絃與斷絲(절현여단사) : 백아의 의리와 맹모의 교훈
猶有却續時(유유각속시) : 여전히 시대를 이어가야 하나.
唯有衷腸斷(유유충장단) : 오직 단장의 슬픔만 있을 뿐
無應續得期(무응속득기) : 이어야 하지만 기약할 수 없구나.

답우문(答友問)-백거이(白居易)
친구의 물음에 답하여
似玉童顔盡(사옥동안진) : 옥 같았던 아이 얼굴 다하고
如霜病鬢新(여상병빈신) : 서리 같은, 병들고 희어진 귀밑머리 .
莫驚身頓老(막경신돈노) : 놀라지 말라, 몸 갑자기 늙었다고
心更老於身(심경노어신) : 마음은 몸보다 더욱 쉽게 늙어 가리라.

문충(聞蟲)-백거이(白居易)
벌레소리 들으며
闇蟲喞喞夜緜緜(암충즐즐야면면) : 어디선가 벌레소리, 밤마다 끝없는데
況是秋陰欲雨天(황시추음욕우천) : 어둑한 가을구름에 비 내릴 듯한 날에야.
猶恐愁人暫得睡(유공수인잠득수) : 두려워라, 수심 겨운 사람 잠시 잠들다
聲聲移近臥床前(성성이근와상전) : 벌레소리 가까워 지져, 침상 앞에 눕는다.

한식야유회(寒食夜有懷)-백거이(白居易)
한식날 밤, 감회에 젖어-
寒食非長非短夜(한식비장비단야) : 한식날,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밤
春風不熱不寒天(춘풍부열부한천) : 봄바람은 덥지도 춥지도 않도다.
可憐時節堪相憶(가련시절감상억) : 가련하다, 서로가 그리운지 이 시간
何況無燈各早眠(하황무등각조면) : 어찌 등불도 없이 일찍 잠들 수 있나.

야좌(夜坐)-백거이(白居易)
밤에 혼자 앉아
斜月入前楹(사월입전영) : 지는 달빛은 앞 기둥으로 드는데
迢迢夜坐情(초초야좌정) : 아련해지는 밤, 홀로 앉은 내 마음이여.
梧桐上階影(오동상계영) : 오동나무는 섬돌 위로 그림자 지우고
蟋蟀近牀聲(실솔근상성) : 귀뚜라미 다가와 침상 가까이 우는구나.
曙傍窓間至(서방창간지) : 새벽빛 창문 사이로 들어오고
秋從簟上生(추종점상생) : 가을은 대자리 위를 따라 오는구나.
感時因憶事(감시인억사) : 계절을 느끼니 온갖 일들 생각나
不寢到雞鳴(부침도계명) : 잠 들지 못한 채로 새벽닭이 우는구나.

촌거1(村居1)-백거이(白居易)
시골에 살며
田園莽蒼經春早(전원망창경춘조) : 짙푸른 교외, 봄은 일찍 가고
籬落蕭條盡日風(이낙소조진일풍) : 쓸쓸한 울타리에 좋일토록 바람만 분다.
若問經過談笑者(야문경과담소자) : 지나며 담소하는 사람이 물으면
不過田舍白頭翁(부과전사백두옹) : 다만 시골집 사는 백발 늙은이랍니다.

촌거2(村居2)-백거이(白居易)
시골에 살며
門閉仍逢雪(문폐잉봉설) : 문이 닫히면 바로 날리는 눈 맞고
廚寒未起煙(주한미기연) : 차가운 부엌에는 불도 피우지 못한다.
貧家重寥落(빈가중요낙) : 가난한 집안살림 더욱 요락해져서
半爲日高眠(반위일고면) : 반나절이 다 되도록 잠만 자고 있다.

조춘(早春)-백거이(白居易)
이른 봄날
雪散因和氣(설산인화기) : 따뜻한 기운으로 차가운 눈 흩어져
氷開得暖光(빙개득난광) : 얼음이 풀리니 따뜻한 봄빛 비친다.
春銷不得處(춘소부득처) : 봄에 다 녹으면 얻을 곳 없지만
唯有鬢邊霜(유유빈변상) : 오직 귀밑머리에 서리 있을 뿐이어라.

왕소군1(王昭君1)-白居易(백거이)
滿面胡沙滿鬢風(만면호사만빈풍) : 얼굴에 가득 오랑캐 모래, 귀밑머리 바람 가득
眉銷殘黛臉銷紅(미소잔대검소홍) : 눈썹에 먹자국, 뺌에는 빨간 연지자국 남았구나.
愁苦辛勤憔悴盡(수고신근초췌진) : 근심과 고통, 고난에 초췌하고 말라버린 몸
如今却似畫圖中(여금각사화도중) : 지금의 모습이, 잘못 그린 그림 속 얼굴 같구나.

왕소군2(王昭君2)-白居易(백거이)
漢使却廻憑寄語(한사각회빙기어) : 한나라 사신 돌아와 부치는 말
黃金何時贖蛾眉(황금하시속아미) : 황금으로 어느 때에 미인의 눈썹 되살까.
君王若問妾顔色(군왕야문첩안색) : 임금님 만약 내 안색 물으시면
莫道不如宮裏時(막도부여궁리시) : 대궐에 있을 때보다 못하다 하지 마세요.

야설(夜雪)-백거이(白居易)
밤에 내린 눈
已訝衾枕冷(이아금침랭) : 춥다고 여겼더니 이부자리 차가워
復見窓戶明(부견창호명) : 창문이 밝아옴을 이제 다시 보는구나.
夜深知雪重(야심지설중) : 밤이 깊어 눈 많이 내린 것 알겠으니
時聞折竹聲(시문절죽성) : 때때로 대나무 꺾어지는 소리 들린다.

억강남1(憶江南1)-백거이(白居易)
강남을 기억하며
江南好(강남호) : 강남이 좋았더라
風景舊曾諳(풍경구증암) : 그 옛날 풍경 눈에 선하다.
日出江花紅火(일출강화승화) : 일출의 강꽃은 불보다 더 붉고
春來江水綠如藍(춘래강수록여람) : 봄의 강물은 쪽빛 같았더라
能不憶江南(능불억강남) : 어찌 강남 땅을 기억하지 않겠는가.

모별자(母別子)-백거이(白居易)
어머니가 자식을 이별하며
母別子(모별자) : 어미는 자식을 이별하고
子別母(자별모) : 자식은 어머니와 이별하니
白日無光哭聲苦(백일무광곡성고) : 태양도 빛을 잃고 울음소리 처절하다.
關西驃騎大將軍(관서표기대장군) : 관서의 표기 대장군
去年破虜新策勳(거년파로신책훈) : 작년에 오랑캐 격파하고 새로 공을 세워
勅賜金錢二百萬(칙사김전이백만) : 이 백만 량 상금 받아
洛陽迎得如花人(낙양영득여화인) : 낙양에서 꽃 같은 미인을 맞았도다.
新人迎來舊人棄(신인영래구인기) : 새댁을 맞아들이고 옛 아내를 내버리니
掌上蓮花眼中刺(장상연화안중자) : 새댁은 손안의 연꽃, 옛 사람은 눈 안의 가시
迎新棄舊未足悲(영신기구미족비) : 새 각시 얻고서 조강지처 버린 일은 슬프지 않으나
悲在君家留兩兒(비재군가유양아) : 그대 집에 남겨 둔, 두 아들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一始扶行一初坐(일시부행일초좌) : 한 놈은 이제 걸음마하고, 한 놈은 겨우 혼자 앉는데
坐啼行哭牽人衣(좌제행곡견인의) : 두 아이 울며불며 옷자락에 매달린다
以汝夫婦新婉(이여부부신완) : 그대들 부부 되어 새로 사랑함이
使我母子生別離(사아모자생별리) : 우리 모자를 생이별 시켰도다
不如林中烏與鵲(부여임중오여작) : 우리 신세 숲 속의 까마귀와 까치만도 못하구나.
母不失雛雄伴雌(모부실추웅반자) : 어미 새도 새끼 잃지 않고 암수가 짝을 짓거늘
應似園中桃李樹(응사원중도이수) : 우리 모자는 뜰 안의 복숭아와 오얏 같아
花落隨風子在枝(화락수풍자재지) : 바람에 꽃잎 지고, 열매만 가지에 남았구나.
新人新人聽我語(신인신인청아어) : 새댁이여, 새댁이여! 내 말 좀 들어보소.
洛陽無限紅樓女(낙양무한홍루여) : 낙양 많은 홍루에 미인도 많아
但願將軍重立功(단원장군중입공) : 장군이 다시 한번 무공 세우신다면
更有新人勝於汝(갱유신인승어여) : 다시 너보다 더 예쁜 새댁을 맞으리라

상양인(上陽人)-백거이(白居易)
상양 사람
上陽人上陽人(상양인상양인) : 상양궁의 궁녀여
紅顔暗老白髮新(홍안암노백발신) : 홍안은 이미 늙고 백발만 새로워
綠衣監使守宮門(녹의감사수궁문) : 푸른 옷의 궁지기가 궁문을 지킨다.
一閉上陽多少春(일폐상양다소춘) : 상양궁에 갇힌 세월 그 얼마이던가
玄宗末歲初選入(현종말세초선입) : 현종 말년에 처음 뽑힘에 들어
入時十六今六十(입시십육금육십) : 열여섯에 입궐하여 지금은 육십이라
同時采擇百餘人(동시채택백여인) : 같은 때, 뽑힌 궁녀 백여 명이었으나
零落年深殘此身(영락년심잔차신) : 시들고 늙어 죽어 이 몸만 남았구나.
憶昔呑悲別親族(억석탄비별친족) : 지난 슬픔 삼키며 친척과 이별할 때
扶入車中不敎哭(부입차중부교곡) : 수레에 오르는 나를 잡아주며 울음 달래며
皆云入內便承恩(개운입내편승은) : 입궐하면 임금의 총애 받으리라 사람들은 말이었다.
臉似芙蓉胸似玉(검사부용흉사옥) : 얼굴은 부용 같고, 젖가슴 옥과 같았는데
未容君王得見面(미용군왕득견면) : 미처 황제의 눈에 들기도 전에
已被楊妃遙側目(이피양비요측목) : 이미 양귀비의 눈 흘김 질투를 받았다
妬令潛配上陽宮(투령잠배상양궁) : 그녀의 질투로 상양궁에 갇히어서
一生遂向空房宿(일생수향공방숙) : 일생을 독수공방으로 지냈었다
宿空房秋夜長(숙공방추야장) : 독수공방하니 가을밤은 길기만 했다
夜長無寐天不明(야장무매천부명) : 밤은 길어 못 이루는 데, 날마저 더디 새었다
耿耿殘燈背壁影(경경잔등배벽영) : 가물거리는 새벽 등잔에 비쳐진 그림자
蕭蕭暗雨打窓聲(소소암우타창성) : 쓸쓸한 밤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春日遲(춘일지) : 봄날은 지루하고 길기도 하다
日遲獨坐天難暮(일지독좌천난모) : 지루하게 홀로 앉은 채로, 날은 저물지 않았다
宮鶯百囀愁厭聞(궁앵백전수염문) : 궁궐 안 꾀꼬리 소리, 수심 겨워 듣기 싫고
梁燕雙栖老休妬(양연쌍서노휴투) : 들보의 짝지은 제비, 늙어서 질투도 않았도다.
鶯歸燕去長悄然(앵귀연거장초연) : 꾀꼬리와 제비가 돌아가니, 오래도록 외로웠고
春往秋來不記年(춘왕추래부기년) : 봄 가고 가을 와도 세월을 기억 못하였다.
唯向深宮望明月(유향심궁망명월) : 오직 깊은 궁궐에서 밝은 달만 바라보며
東西四五百廻圓(동서사오백회원) : 보름달 뜨고 지고, 사 오백 번은 되었었다
今日宮中年最老(금일궁중년최장) : 이제는 궁궐 안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大家遙賜尙書號(대가요사상서호) : 천자께서 상서의 호칭을 내리셨다.
小頭鞋履窄衣裳(소두혜이착의상) : 신발 끝이 뾰쪽하고 옷은 좁으며
靑黛點眉眉細長(청대점미미세장) : 푸른 먹으로 그린 눈썹은 가늘고 길어서
外人不見見應笑(외인부견견응소) : 궁궐 밖의 사람이 보면 반드시 웃으리라
天寶末年時世粧(천보말년시세장) : 촌스런 천보 말년의 세태라고이라고 말이요
上陽人苦最多(상양인고최다) : 상양궁의 인생이여, 고생이 너무 심하구나.
少亦苦老亦苦(소역고노역고) : 젊어서도 고생, 늙어서도 고생이로다.
少苦老苦兩如何(소고노고양여하) : 젊어서 고생, 늙어서 고생 이 두 고생을 어찌하나
君不見昔時呂尙美人賦(군부견석시여향미인부) : 그대는 못 보았는가, 옛날 여향의 미인부를
又不見今日上陽宮人白髮歌(우부견금일상양궁인백발가) : 또한 못 보았는가, 오늘날 상양궁인의 백발가를 말일세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모란방(牡丹芳)-백거이(白居易)
모란의 향기
牡丹芳牡丹芳(모단방모단방) : 모란꽃 향기여, 모란꽃 향기여
黃金蘂綻紅玉房(황금예탄홍옥방) : 황금꽃술이 붉은 옥방을 터뜨리니
千片赤英霞爛爛(천편적영하란란) : 천 조각 꽃부리에 노을이 찬란하여라
百枝絳焰燈煌煌(백지강점등황황) : 백 개의 가지에 붉은 점이 등불처럼 찬란하니
照地初開錦繡段(조지초개금수단) : 땅에 비치니 금빛 비단 여러 단이 열리는구나.
當風不結蘭麝囊(당풍불결란사낭) : 바람에 묶지 않은 난초 사향 주머니 같고
仙人琪樹白無色(선인기수백무색) : 신선의 옥나무 깨끗하고 아무 색깔도 없으니
王母桃花小不香(왕모도화소불향) : 서왕모의 복사꽃은 작고도 향기 없도다.
宿露輕盈泛紫艶(숙로경영범자염) : 밤이슬이 가벼이 채서 자주 빛 요염함 넘치고
朝陽照耀生紅光(조양조요생홍광) : 아침 햇빛 비추니 붉은 빛을 내는구나.
紅紫二色間深淺(홍자이색간심천) : 붉음과 자줏빛 깊고 얕음에 차이를 두니
向背萬態隨低昻(향배만태수저앙) : 등을 돌리니 온갖 교태가 아래 위를 따른다.
映葉多情隱羞面(영엽다정은수면) : 잎에 비친 다정함은 부끄러운 얼굴 가리고
臥叢無力含醉粧(와총무력함취장) : 힘없는 듯 누운 꽃떨기 취한 화장을 머금었다
低嬌笑容疑掩口(저교소용의엄구) : 애교 띤 웃는 얼굴 내려 입이 가릴까 하노니
凝思怨人如斷腸(응사원인여단장) : 사람 원망하는 생각이 짙어지니 마음은 애끊는 듯
濃姿貴彩信奇絶(농자귀채신기절) : 농염한 자태와 고귀한 빛이 참으로 기이하니
雜卉亂花無比方(잡훼란화무비방) : 잡된 풀과 어지러운 꽃이 비교할 방법이 없도다.
石竹金錢何細碎(석죽금전하세쇄) : 석죽과 금전화는 어찌하여 가늘게 부서지나
芙蓉芍藥苦尋常(부용작약고심상) : 부용꽃과 작약꽃은 언제나 괴롭구나.
遂使王公與卿相(수사왕공여경상) : 마침내 왕공들과 경사들을 부리어서
游花冠蓋日相望(유화관개일상망) : 기생과 관리들이 매일 서로 바라보겠구나.
痺車軟輿貴公主(비차연여귀공주) : 메추라기 털 수레와 부드러운 수레에 귀족 여자들
香衫細馬豪家郞(향삼세마호가랑) : 향기 나는 소매, 날씬한 말은 부호의 아들들이로다.
衛公宅靜閉東院(위공댁정폐동원) : 위공 댁은 고요하여 동쪽 집을 닫았고
西明寺深開北廊(서명사심개북랑) : 서명사 절은 깊어서 북쪽 곁채를 열었도다.
戱蝶雙舞看人久(희접쌍무간인구) : 노는 나비의 쌍쌍춤을 사람들이 본지 오래고
殘鶯一聲春日長(잔앵일성춘일장) : 남은 꾀꼬리 한 소리에 봄날은 길기만 하다
共愁日照芳難駐(공수일조방난주) : 모두가 걱정하는 비춰드는 햇빛에 향기 머물기 어려워
仍張帷幕垂陰凉(잉장유막수음량) : 이에 휘장을 펴서 그늘의 서늘함을 드리운다.
花開花落二十日(화개화락이십일) : 꽃 피고 꽃 떨어지기 이십 일이 되니
一城之人皆若狂(일성지인개약광) : 온 성안 사람들 모두가 미친 듯 행동한다.
三代以還文勝質(삼대이환문승질) : 삼대이래로 도리어 꾸미는 일을 내용보다 좋게 여기니
人心重華不重實(인심중화불중실) : 인심은 화려함 중히 여기고, 내용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重華直至牡丹芳(중화직지모단방) : 화려함을 중요하게 여김은 바로 모란꽃 향기이니
其來有漸非今日(기래유점비금일) : 그것이 내게 천천히 옴은 오늘날의 일이 아니로다.
元和天子憂農桑(원화천자우농상) : 원화 천자는 농사와 뽕나무 일을 걱정하고
恤下動天天降祥(휼하동천천강상) : 아래 사람을 근심하니 하늘을 움직여 상서로움 내리도다.
去歲嘉禾生九穗(거세가화생구수) : 지난해에는 좋은 볍씨가 한 줄기에 아홉 이삭 생산해도
田中寂寞無人至(전중적막무인지) : 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 들판의 밭 속에 적막하였다
今年瑞麥分兩岐(금년서맥분량기) : 금년에도 상서로운 보리가 양쪽으로 나누어지니
君心獨喜無人知(군심독희무인지) : 군왕이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함을 아무도 모른다.
無人知可歎息(무인지가탄식) :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니 가히 탄식하리로다.
我願暫求造化力(아원잠구조화력) : 나는 원컨대, 조화옹의 힘을 구하여
減却牡丹妖艶色(감각모단요염색) : 문득 모란의 요염한 색을 줄이고
少廻卿士愛花心(소회경사애화심) : 높은 벼슬아치들의 꽃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 돌려서
同似吾君憂稼穡(동사오군우가색) : 우리 임금님처럼 곡식 심고 추수하는 근심을 함께 하였으면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동파종화1(東坡種花1)-백거이(白居易)
동파에 꽃을 심으며
持錢買花樹(지전매화수) : 돈을 가지고 가서 꽃나무 사와
城東坡上栽(성동파상재) : 성의 동쪽 언덕에 위에 심었다.
但購有花者(단구유화자) : 꽃 피는 나무만을 구입했으나
不限桃杏梅(부한행묘매) : 복사꽃, 살구꽃, 매화꽃에 정하지 않았다.
百果參雜種(백과삼잡종) : 온갖 과실수를 참작하여 심으니
千枝次第開(천지차제개) : 수많은 가지들이 차례로 벌어진다.
天時有早晩(천시유조만) : 자연의 시기는 이르고 늦음이 있고
地力無高低(지력무고저) : 토지의 힘에는 높고 낮음이 있도다.
紅者霞豔豔(홍자하염염) : 붉은 것은 노을처럼 아름답고
白者雪皚皚(백자설애애) : 흰 것은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
遊蜂逐不去(유봉축부거) : 날아다니는 벌 떼는 쫓아도 달아나지 않고
好鳥亦來栖(호조역내서) : 기뻐하는 새들도 날아와 둥지에 깃든다.
前有長流水(전유장류수) : 앞에는 긴 강이 흐르고
下有小平臺(하유소평대) : 아래에는 작고 평평한 누대가 있다.
時拂臺上石(시불대상석) : 때때로 누대 위의 돌을 들어내고
一擧風前杯(일거풍전배) : 한번씩 바람 앞의 술잔을 들어올린다.
花枝蔭我頭(화지음아두) : 꽃가지는 나의 머리를 덮고
花蕊落我懷(화예낙아회) : 꽃술은 나의 품속에 떨어진다.
獨酌復獨詠(독작복독영) : 혼자 술을 마시고 다시 혼자 시를 읊으니
不覺日平西(부각일평서) : 모르는 사이에 해가 떠서 서쪽에 나란하다.
巴俗不愛花(파속부애화) : 파현의 풍속은 꽃을 좋아하지 않아
竟春無人來(경춘무인내) : 봄이 다하도록 찾아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
唯此醉太守(유차취태수) : 오직 이 몸, 술 취한 태수만이
盡日不能廻(진일부능회) : 종일토록 돌아갈 줄을 모르는구나.
(白樂天詩集,卷十一,感傷三)

동파종화2(東坡種花2)-백거이(白居易)
동파에 꽃을 심으며
東坡春向暮(동파춘향모) : 동파에는 봄이 저무는데
樹木今何如(수목금하여) : 나무들은 지금 어떠할까
漠漠花落盡(막막화낙진) : 막막하게 꽃은 다 지고
翳翳葉生初(예예섭생초) : 짙은 잎이 막 생기는 때라
每日領童僕(매일령동복) : 날마다 종아이 거느리고
荷鉏仍決渠(하서잉결거) : 호미 메고 가서 도랑을 턴다.
剗土壅其本(잔토옹기본) : 흙을 긁어 뿌리를 덮어주고
引泉漑其枯(인천개기고) : 샘물 끌어들어 그 마른 곳에 대었다
小樹低數尺(소수저삭척) : 작은 나무도 낮은 것은 몇 자나 되고
大樹長丈餘(대수장장여) : 큰 나무는 긴 것은 한 길도 넘었다
封植來幾時(봉식내기시) : 북돋우고 심고 돌아온 지가 얼마인가
高下齊扶疎(고하제부소) : 높고 낮은 잎이 서로 받쳐 나란하다
養樹旣如此(양수기여차) : 수목 기르기도 이처럼 하거늘
養民亦何殊(양민역하수) : 백성을 위함에도 어찌 다르겠는가.
將欲茂枝葉(장욕무지섭) :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려면
必先救根株(필선구근주) : 반드시 먼저 뿌리와 둥치를 보호하라
云何救根株(운하구근주) : 무엇을 일러서 뿌리와 둥치를 보호한다고 하는가.
勸農均賦租(권농균부조) : 농사를 권장함에는 세금을 균둥히 해야 한다
云何茂枝葉(운하무지섭) : 무엇을 일러서 가지와 잎을 무성히 한다고 하는가.
省事寬刑書(생사관형서) : 번잡한 일을 간단히 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해야 한다
移此爲郡政(이차위군정) : 이것을 그대로 옮겨 고을 행정을 베풀면
庶幾甿俗蘇(서기맹속소) : 백성과 풍속이 살아나는 것을 바랄 수 있으리라
(白樂天詩集,卷十一,感傷三)

제심양루(題潯陽樓)-백거이(白居易)
심양루에 제하여
常愛陶彭澤(상애도팽택) : 항상 평택령 도연명을 좋아하나니
文思何高玄(문사하고현) : 문장과 생각은 어찌 그리도 높고 깊은가.
又怪韋江州(우괴위강주) : 또한 위강주도 특별하니
詩情亦淸閑(시정역청한) : 그가 지은 시의 정취도 맑고 한가하다.
今朝登此樓(금조등차누) : 오늘 아침 이곳 누각에 올라보니
有以知其然(유이지기연) :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大江寒見底(대강한견저) : 큰 강은 차가운 계절에는 바닥이 드러나며
匡山靑倚天(광산청의천) : 광산은 푸르게도 하늘에 높이 솟았구나.
深夜湓浦月(심야분포월) : 심야에는 포구의 물에는 달이 떠오르고
平旦鑪峯煙(평단로봉연) : 평탄한 향로봉에는 안개가 자욱하도다.
淸輝與靈氣(청휘여령기) : 맑은 빛과 신령한 기운이
日夕供文篇(일석공문편) : 밤낮으로 그들의 글을 짓게 했구나.
我無二人才(아무이인재) : 나에게는 이런 두 사람의 재주가 전혀 없으니
孰爲來其間(숙위내기간) : 누가 그들 사이에 이를 수 있게 하리오.
因高偶成句(인고우성구) : 높은 곳에 올라 우연히 글귀를 지었으니
俯仰愧江山(부앙괴강산) : 하늘을 보고 땅을 보아도니 강산에 부끄럽다.
(白樂天詩集,卷七,閒適三)

증원진(贈元稹)-백거이(白居易)
원진에게
自我從宦遊(자아종환유) : 내가 관리로 다닐 때부터
七年在長安(칠년재장안) : 칠년 동안을 장안에 있었다.
所得惟元君(소득유원군) : 얻은 것은 다만 원진이라는 친구
乃知定交難(내지정교난) : 친구를 선택하는 어려움을 알겠다.
豈無山上苗(개무산상묘) : 어찌 산 위에 묘목이 없겠는가
徑寸無歲寒(경촌무세한) : 산길이 좁아 차가운 해가 없었다.
豈無要津水(개무요진수) : 어찌 긴요한 나루터의 물이 없으랴
咫尺有波瀾(지척유파란) : 가까이에 물결이 있는 것이다.
之子異於是(지자리어시) : 원진은 이러한 사람들과 다르며
久要誓不諼(구요서부훤) : 오랜 세월 동안 맹세코 거짓되지 않았다.
無波古井水(무파고정수) : 파랑이 일지 않는 옛 우물의 물이요
有節秋竹竿(유절추죽간) : 마디처럼 절개 있는 가을 대나무 줄기였다.
一爲同心友(일위동심우) : 한번 마음 같이하는 친구 되니
三及芳歲蘭(삼급방세난) : 삼년이나 향기로운 친구가 되었도다.
花下鞍馬遊(화하안마유) : 꽃나무 아래에서 말 타고 놀며
雪中杯酒歡(설중배주환) : 눈 속에서 잔술을 나누며 기뻐했었다.
衡門相逢迎(형문상봉영) : 형문에서 서로 만나서
不具帶與冠(부구대여관) : 혁대와 의관을 갖추지 않고 허물없었다.
春風日高睡(춘풍일고수) : 봄바람에 해는 높이 떠 잠들고
秋月夜深看(추월야심간) : 가을 달을 밤이 깊어가도록 바라본다.
不爲同登科(부위동등과) : 과거에 같이 등용되지 않았고
不爲同署官(부위동서관) : 같은 관청에서 일하지도 않았었다.
所合在方寸(소합재방촌) : 단합하는 것은 작은 마음속에 있나니
心源無異端(심원무리단) : 마음 속 근원에는 다른 마음 전혀 없도다.

관예맥(觀刈麥)-백거이(白居易)
보리 베기를 보고
田家少閑月(전가소한월) : 농가에 한가한 달은 드물어
五月人倍忙(오월인배망) : 오월에는 사람들이 곱절이나 바쁘다.
夜來南風起(야내남풍기) : 밤이 되면 남풍이 불어오고
小麥覆隴黃(소맥복롱황) : 언덕을 덮고 있는 소맥은 황금빛이라.
婦姑荷簞食(부고하단식) :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음식을 이고
童稚攜壺漿(동치휴호장) : 아이들은 간장병 손에 들고 와서는
相隨餉田去(상수향전거) : 서로 따라와 배불리 먹이고 밭을 떠난다.
丁壯在南岡(정장재남강) : 장정들은 남쪽 언덕에 있고
足蒸暑土氣(족증서토기) : 밭은 뜨거운 흙의 열기에 익어가고
背灼炎天光(배작염천광) : 등은 불꽃같은 햇빛에 타들어 간다.
力盡不知熱(역진부지열) : 힘이 다해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但惜夏日長(단석하일장) : 여름해가 길어도 아쉽기만 하구나.
復有貧婦人(복유빈부인) : 또 어떤 가난한 부인 있는데
抱子在其傍(포자재기방) : 어린 아이 안고서 그 곁에 있다.
右手秉遺穗(우수병유수) : 오른손으로는 떨어진 이삭을 잡고
左臂懸弊筐(좌비현폐광) : 왼쪽 팔뚝에는 헤어진 바구니를 걸치고 있다.
聽其相顧言(청기상고언) : 돌아가서 그들이 나누는 말 들으니
聞者爲悲傷(문자위비상) : 듣는 사람은 슬프고 마음이 상한다.
家田輸稅盡(가전수세진) : 농가에서는 세금으로 실어가 다 없어지고
拾此充飢腸(습차충기장) : 이런 것을 주워서 주린 창자를 채운다 한다.
今我何功德(금아하공덕) : 나는 지금 무슨 공덕이 있어
曾不事農桑(증부사농상) : 농사짓고 누에치지 않았는데도
吏祿三百石(이녹삼백석) : 관리 봉록으로 삼백 석을 받아
歲晏有餘糧(세안유여량) : 한 해가 다 늦도록 남은 곡식이 있구나.
念此私自媿(념차사자괴) : 이런 생각을 하면 스스로 부끄러우니
盡日不能忘(진일부능망) : 종일토록 그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구나.

관가(觀稼)-백거이(白居易)
논밭의 벼를 바라보며
世役不我牽(세역부아견) : 세상 일에 나는 이끌리지 않아
身心常自若(신심상자야) : 몸과 마음이 항상 자유로웠도다.
晩出看田畝(만출간전무) : 저녁에 나아가 밭을 보고
閑行旁村落(한항방촌낙) : 촌락 사이를 한가히 걸어보았다.
纍纍繞場稼(유류요장가) : 층층이 쌓인 마당을 둘러 싼 볏단
嘖嘖羣飛雀(책책군비작) : 짹짹거리며 모여서 날아다니는 참새들.
年豐豈獨人(년풍개독인) : 풍년이 어찌 사람들에게만 있겠는가.
禽鳥聲亦樂(금조성역낙) : 새들 소리도 또한 즐겁도다.
田翁逢我喜(전옹봉아희) : 늙은 농부는 나를 만나 기뻐하며
黙起具杯杓(묵기구배표) : 말없이 일어나 함께 술을 마셨다.
斂手笑相延(염수소상연) : 손짓하며 웃으며 서로 불러대며
社酒有殘酌(사주유잔작) : 제삿술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媿茲勤且敬(괴자근차경) : 이러한 부지런함과 공손함에 부끄러워
藜杖爲淹泊(염장위엄박) : 명아주 지팡이 짚고 머뭇거린다.
言動任天眞(언동임천진) : 그의 말과 행동이 천진난만 하여
未覺農人惡(미각농인악) : 농민의 고통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停杯問生事(정배문생사) : 술잔을 멈추고 생활상을 물어보니
夫種妻兒穫(부종처아확) : 남편은 씨 뿌리고 처자는 추수한다.
筋力苦疲勞(근력고피노) : 근력은 고통스럽고 피곤하고
衣食常單薄(의식상단박) :
의식은 항상 간단하고 초라하다.
自慙祿仕者(자참녹사자) : 벼슬하는 것이 저절로 부끄럽나니
曾不營農作(증부영농작) : 농사를 한번도 지어보지 않고
飽食無所勞(포식무소노) : 일 한 것 없으면서 포식하였으니
何殊衛人鶴(하수위인학) : 어찌 일하지 않고 녹만 받은 위인학과 다를까.

조발초성역(早發楚城驛)-백거이(白居易)
초성역을 일찍 떠나며
過雨塵埃滅(과우진애멸) : 지나간 비에 흙먼지 없어지고
沿江道徑平(연강도경평) : 강 따라 난 길은 평탄하기만 하다.
月乘殘夜出(월승잔야출) : 새벽녘 달은 아직 떠있고
人趁早涼行(인진조량항) : 사람은 아침 차가움을 쫓아 걷는다.
寂歷閒唫動(적력한금동) : 적막함이 지나고 한가함이 움직여
冥濛闇思生(명몽암사생) : 고요하고 어둑하여 생각이 떠오른다.
荷塘翻露氣(하당번노기) : 연꽃 핀 연못에 이슬 기운 날아들고
稻壟瀉泉聲(도농사천성) : 논두렁에는 샘물 솟는 소리 들려온다.
宿犬聞鈴起(숙견문령기) : 잠자던 개가 방울소리 듣고 일어나고
栖禽見火驚(서금견화경) : 둥지에 깃던 새는 등불을 보고 놀란다.
曨曨煙樹色(농롱연수색) : 안개에 싸인 나무의 빛이 몽롱하여
十里始天明(십리시천명) : 십리쯤 가서야 비로소 하늘이 밝아온다.
(白樂天詩集,卷十六,律詩)
호정만망잔수(湖亭晩望殘水)-백거이(白居易)
호숫가 정자에서, 마른 물을 바라보며
種樹當前軒(종수당전헌) : 심은 나무가 앞 건물에 닿아
樹高柯葉繁(수고가섭번) : 나무는 높고 가지의 잎은 무성하다.
惜哉遠山色(석재원산색) : 아쉽구나, 먼 산의 산빛이여
隱此蒙籠間(은차몽농간) : 몽롱한 사이에 이를 감추고 있구나.
一朝持斧斤(일조지부근) : 어느 날 아침, 도끼를 들고
手自截其端(수자절기단) : 손으로 그 끝을 잘라내었다.
萬葉落頭上(만섭낙두상) : 수많은 잎이 머리 위에 떨어지고
千峯來面前(천봉내면전) : 천 개의 산봉우리 얼굴 앞에 다가온다.
忽似決雲霧(홀사결운무) : 훤하게 푸른 하늘이 바라보인다.
又如所念人(우여소념인) : 또 그리워하는 사람 같고
久別一欸顔(구별일애안) : 오랫동안 이별하였다가 만나는 얼굴 같았다.
始有淸風至(시유청풍지) : 비로소 맑은 바람은 불어오고
稍見飛鳥還(초견비조환) : 날아가는 새가 돌아오는 것이 조금 보였다.
開懷東南望(개회동남망) : 마음을 열고 동남쪽을 바라보니
目遠心遼然(목원심료연) : 시야는 멀고, 마음은 요연해진다.
人各有偏好(인각유편호) :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치우친 호감이 있어
物莫能兩全(물막능량전) : 사물은 양자를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豈不愛柔條(개부애유조) : 어찌 나무를 좋아하지 않을까 마는
不如見靑山(부여견청산) : 청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만 못하니라.
(白樂天詩集,卷七,閒適三)

절수(截樹)-백거이(白居易)
나뭇가지를 치며
種樹當前軒(종수당전헌) : 심은 나무가 앞 건물에 닿아
樹高柯葉繁(수고가섭번) : 나무는 높고 가지의 잎은 무성하다.
惜哉遠山色(석재원산색) : 아쉽구나, 먼 산의 산빛이여
隱此蒙籠間(은차몽농간) : 몽룡한 사이에 이를 감추고 있구나.
一朝持斧斤(일조지부근) : 어느 날 아침, 도끼를 들고
手自截其端(수자절기단) : 손으로 그 끝을 잘라내었다.
萬葉落頭上(만섭낙두상) : 수많은 잎이 머리 위에 떨어지고
千峯來面前(천봉내면전) : 천 개의 산봉우리 얼굴 앞에 다가온다.
忽似決雲霧(홀사결운무) :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흩어지는 듯
豁達覩靑天(활달도청천) : 훤하게 푸른 하늘이 바라보인다.
又如所念人(우여소념인) : 또 그리워하는 사람 같고
久別一欸顔(구별일애안) : 오랫동안 이별하였다가 만나는 얼굴 같았다.
始有淸風至(시유청풍지) : 비로소 맑은 바람은 불어오고
稍見飛鳥還(초견비조환) : 날아가는 새가 돌아오는 것이 조금 보였다.
開懷東南望(개회동남망) : 마음을 열고 동남쪽을 바라보니
目遠心遼然(목원심료연) : 시야는 멀고, 마음은 요연해진다.
人各有偏好(인각유편호) :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치우친 호감이 있어
物莫能兩全(물막능량전) : 사물은 양자를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豈不愛柔條(개부애유조) : 어찌 나무를 좋아하지 않는가 마는
不如見靑山(부여견청산) : 청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만 못하니라.

유석문간(遊石門澗)-백거이(白居易)
석문간에서 놀다
石門無舊徑(석문무구경) : 석문에는 묵은 길 없어
披榛訪遺跡(피진방유적) : 덤불을 헤치며 유적을 방문한다.
時逢山水秋(시봉산수추) : 시절은 마침 산수의 가을 만나니
淸輝如古昔(청휘여고석) : 맑은 빛이 옛날과 같았다.
嘗聞慧遠輩(상문혜원배) : 일찍이 들었노라, 혜원의 무리들이
題詩此巖壁(제시차암벽) : 이 암벽에 시를 적어두었다는 말을.
雲覆莓苔封(운복매태봉) : 구름은 해태를 봉하여서
蒼然無處覓(창연무처멱) : 창연하여 장소를 찾을 수 없도다.
蕭疎野生竹(소소야생죽) : 소연히도 들판에 대나무 나있는데
崩剝多年石(붕박다년석) : 무너지고 깎여 오래된 돌이 많았다.
自從東晉後(자종동진후) : 동진 시대 이후부터
無復人遊歷(무복인유력) : 또 다시 돌아보며 구경하는 사람들 없다.
獨有秋澗聲(독유추간성) : 다만 가을 골짝의 물소리만 들리어
潺湲空旦夕(잔원공단석) : 잔잔하게 흐르는 소리 아침저녁 쓸쓸하다.

보동파(步東坡)-백거이(白居易)
동파 언덕을 밟으며
朝上東坡步(조상동파보) : 아침에 동파 언덕에 올라 보고
夕上東坡步(석상동파보) : 저녁에는 동파에 올라 걸었다.
東坡何所愛(동파하소애) : 동파에서 좋은 것이 무엇일까
愛此新成樹(애차신성수) : 이러한 새로 심은 나무를 좋아한다.
種植當歲初(종식당세초) : 마땅히 그해 초엽에 심은 것이라
滋榮及春暮(자영급춘모) : 크지는 번성이 봄날 저녁까지 미친다.
信意取次栽(신의취차재) : 마음대로 가져다 차려로 심었더니
無行亦無數(무항역무삭) : 줄 무수하고 또 숫자도 무수해졌다.
綠陰斜景轉(녹음사경전) : 푸른 그늘은 비탈진 광경으로 바뀌고
芳氣微風度(방기미풍도) : 향기로운 기운은 미풍에 날아 건너간다.
新葉鳥下來(신섭조하내) : 새로 돋은 잎사귀에는 새들이 내려오고
萎花蝶飛去(위화접비거) : 시든 꽃에는 나비가 날아간다.
閑攜斑竹杖(한휴반죽장) : 때때로 얼룩진 지팡이를 짚고
徐曳黃麻屨(서예황마구) : 누런 삼으로 만든 신을 신고 천천히 걷는다.
欲識往來頻(욕식왕내빈) : 얼마나 오고갔는지 알아보려니
靑苔成白路(청태성백노) : 푸른 이끼가 흰 길이 다 되었구나.

촌거고한(村居苦寒)-백거이(白居易)
시골 생활의 고통
八年十二月(팔년십이월) : 팔년 십이월
五日雪紛紛(오일설분분) : 초닷새 날, 눈이 펄펄 내린다.
竹柏皆凍死(죽백개동사) : 대나무 잣나무 모두 얼어 죽었는데
況彼無衣民(황피무의민) : 하물며, 저 옷 하나 없는 백성들이야.
廻觀村閭間(회관촌려간) : 시골 마을의 집들을 돌아보면
十室八九貧(십실팔구빈) : 십중팔구는 빈곤하구나.
北風利如劍(배풍리여검) : 차가운 북풍은 칼과 같은데
布絮不蔽身(포서부폐신) : 솜옷으로 몸도 가리지 못한다.
唯燒蒿棘火(유소호극화) : 오직 잡초와 잡목을 불사를 뿐
愁坐夜待晨(수좌야대신) : 쓸쓸히 앉아서 밤이 새도록 기다린다.
乃知大寒歲(내지대한세) : 대한이 있는 해임을 알았는데
農者猶苦辛(농자유고신) : 농민들은 여전히 고생이 심하였다.
顧我當此日(고아당차일) : 나를 돌아보면, 이러한 날에는
草堂深掩門(초당심엄문) : 초가집은 깊이 문을 닫아놓고서
裼裘覆絁被(석구복시피) : 갓 옷을 입고 깁 이불을 덮었다.
坐臥有餘溫(좌와유여온) : 앉거나 누워도 온기가 있었고
幸免飢凍苦(행면기동고) : 다행히도 굶어 얼어 죽는 고생을 면하였다.
又無壟畝勤(우무롱무근) : 또 밭에 나가 일도 하지 않았으니
念彼深可愧(념피심가괴) : 그들 농민을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워
自問是何人(자문시하인) : 스스로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어본다.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한석(閒夕)-백거이(白居易)
한가한 저녁에
一聲早蟬發(일성조선발) : 한 가닥 철 이른 매미 소리 들리고
數點新螢度(삭점신형도) : 파란 반딧불 몇 마리가 날아서 지나간다.
蘭釭耿無煙(난강경무연) : 아름다운 등불은 맑아서 연기 하나 없고
筠簟淸有露(균점청유노) : 맑은 대나무 멍석에는 이슬이 맺혀있다.
未歸後房寢(미귀후방침) : 아직 뒷방에 잠자려 돌아가지 못하고
且下前軒步(차하전헌보) : 잠시 동안을 앞마당에 내려가 걸어본다.
斜月入低廊(사월입저낭) : 기우는 달은 행랑 아래로 들고
涼風滿高樹(양풍만고수) : 서늘한 바람은 높은 나무에 가득하다.
放懷常自適(방회상자적) : 회포를 풀어버리니 언제나 여유롭고
遇境多成趣(우경다성취) : 경치를 보면 운치를 느끼는 일이 많도다.
何法使之然(하법사지연) : 어떠한 법이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가
心中無細故(심중무세고) : 마음속에 자잘한 일이 없는 까닭이리라.
(白樂天詩後集,卷二,格詩)

계중조춘(溪中早春)-백거이(白居易)
개울 속에 이른 봄
南山雪未盡(남산설미진) : 남산에는 아직 눈 녹지 않고
陰嶺留殘白(음령류잔백) : 그늘진 고개에는 흰 눈이 남았다.
西澗冰已消(서간빙이소) : 서쪽 개울 얼음은 이미 녹아
春溜含新碧(춘류함신벽) : 봄날의 여울은 새 푸름을 머금었다.
東風來幾日(동풍내기일) : 봄바람은 불어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
蟄動萌草拆(칩동맹초탁) : 겨울잠 자는 동물 움직이고 풀은 돋아난다.
潛知陽和功(잠지양화공) : 따뜻한 햇볕의 공덕을 알 수 있나니
一日不虛擲(일일부허척) : 하루도 헛되이 비춰지지 않는구나.
愛此天氣暖(애차천기난) : 이러한 날씨의 따뜻함을 즐기려
來拂溪邊石(내불계변석) : 개울가의 바위 찾아 자리를 털어본다.
一坐欲忘歸(일좌욕망귀) : 한 번 앉아보니 돌아갈 생각 잊는데
暮禽聲嘖嘖(모금성책책) : 석양에 새들은 시끄러이 소리 내어 운다.
蓬蒿隔桑棗(봉호격상조) : 뽕나무와 대추나무 사이에 무성한 쑥
隱映煙火夕(은영연화석) : 저녁에는 연기와 불빛이 은은히 보인다.
歸來問夜飡(귀내문야손) : 집으로 돌아와 야찬이 있는가 물어보니
家人烹薺麥(가인팽제맥) : 집사람은 냉이와 보리를 삶은 것이라 한다.
(白樂天詩集,卷十,感傷二)

증내(贈內)-백거이(白居易)
아내에게
漠漠闇苔新雨地(막막암태신우지) : 새로 비 내린 땅, 막막히 이끼 짙어지고
微微凉露欲秋天(미미량로욕추천) : 차갑고 잔잔한 이슬이 가을을 재촉한다오.
莫對月明思往事(막대월명사왕사) : 밝은 달 바라보며, 지나간 일 생각하면
損君顔色減君年(손군안색감군년) : 당신 얼굴 축나고, 당신의 목숨만 단축된다오.

모립(暮立)-백거이(白居易)
저물녘에
黃昏獨立佛堂前(황혼독립불당전) : 황혼녘에, 불당 앞에 홀로 서니
滿地槐花滿樹蟬(만지괴화만수선) : 땅에 가득한 홰나무꽃, 나무 가득 매미소리.
大抵四時心總苦(대저사시심총고) : 무릇, 사시사철 마음은 괴로운 법
就中腸斷是秋天(취중장단시추천) : 마음 속 단장의 아픔, 이것이 가을이로구나.
(白樂天詩集,卷十四,律詩)

달재락천항(達哉樂天行)-백거이(白居易)
진리를 통달한 백락천의 노래
達哉達哉白樂天(달재달재백낙천) : 진실에 깨달았다, 나 백락천은
分司東都十三年(분사동도십삼년) : 동도인 낙양에 파견 된지 13년이구나.
七旬纔滿冠已挂(칠순재만관이괘) : 칠순이 되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半祿未及車先懸(반녹미급거선현) : 봉록이 반감되기 전에 벼슬을 그만두었다.
或伴遊客春行樂(혹반유객춘항낙) : 놀이꾼과 짝이 되어 봄에는 행락하고
或隨山僧夜坐禪(혹수산승야좌선) : 혹은 산승 따라 밤에는 좌선 하며
二年忘却問家事(이년망각문가사) : 이년 동안 가정 살림걱정도 잊어버렸다.
門庭多草廚少煙(문정다초주소연) : 뜰에는 잡초 무성하고 부엌에는 불기도 없어
庖童朝告鹽米盡(포동조고염미진) : 머슴아이는 아침에 쌀과 소금 떨어졌다 하고
侍婢暮訴衣裳穿(시비모소의상천) : 저녁에는 계집종이 옷이 떨어졌다 말하는구나.
妻孥不悅甥姪悶(처노부열생질민) : 처자도 좋아하지 않고 조카들도 근심하나
而我醉臥方陶然(이아취와방도연) : 나는 취하여 기분 좋게 누었도다.
起來與爾畫生計(기내여이화생계) : 일어나 그들과 생계대책을 의논하여
薄産處置有後先(박산처치유후선) :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의 선후를 가려 처분한다.
先賣南坊十畝園(선매남방십무원) : 먼저 남쪽의 십 무의 밭을 팔고
次賣東郭五頃田(차매동곽오경전) : 다음에 동곽의 오경 밭을 팔려고 한다.
然後兼賣所居宅(연후겸매소거댁) : 그런 뒤에는 살고 있는 집을 판다면
髣髴獲緡二三千(방불획민이삼천) : 아마도 이삼천 금의 돈이 들어올 것이다.
半與爾充衣食費(반여이충의식비) : 절반은 너희들이 의식비로 충당하고
半與吾供酒肉錢(반여오공주육전) : 나머지 반은 술과 안주 값으로 쓰려고 한다.
吾今已年七十一(오금이년칠십일) : 나는 이미 칠십의 나이가 되었으니
眼昏鬚石頭風眩(안혼수석두풍현) : 눈은 어둡고, 수염은 희고, 정신은 흐리다.
但恐此錢用不盡(단공차전용부진) : 다만 두려운 것은, 이 돈 다 쓰지 못하고
卽先朝露歸夜泉(즉선조노귀야천) : 아침 이슬보다 더 빨리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未歸且住亦不惡(미귀차주역부악) : 죽지 않고 좀더 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니
飢餐樂飮安穩眠(기찬낙음안온면) : 배고프면 먹고, 즐거우면 마시며, 편히 잠 들 수 있다.
死生無可無不可(사생무가무부가) : 죽고 사는 것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라
達哉達哉白樂天(달재달재백낙천) : 진리에 달통 하였구나, 달통하였구나, 백락천이여
(白樂天詩後集,卷四,格詩)

장상사(長相思)-백거이(白居易)
끝없는 그리움이여
九月西風興(구월서풍흥) : 구월에 서풍은 불어오고
月冷霜華凝(월냉상화응) : 달빛이 차가워 서리 희게 엉킨다.
思君秋夜長(사군추야장) : 그대 생각에 가을밤은 길기도 하여
一夜魂九升(일야혼구승) : 넋은 하룻밤에도 아홉 번이나 올라본다.
二月東風來(이월동풍내) : 이월 동풍이 불어오니
草拆花心開(초탁화심개) : 풀은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난다.
思君春日遲(사군춘일지) : 그대 생각에 봄날은 더디 가고
一夜腸九廻(일야장구회) : 하로 밤에 애간장 아홉 번이나 뒤집힌다.
妾住洛橋北(첩주낙교배) : 저는 낙교의 북쪽에 살았고
君住洛橋南(군주낙교남) : 당신은 낙교 남쪽에 살았었지요.
十五卽相識(십오즉상식) : 열다섯 나이에 서로 알게 되어
今年二十三(금년이십삼) : 금년에 스물세 살이 되었지요.
有如女蘿草(유여녀나초) : 마치 담쟁이덩굴 같은 처지 되어
生在松之側(생재송지측) : 소나무에 기대어 사는 것 같습니다.
蔓短枝苦高(만단지고고) : 줄기가 짧아 가지는 높이 자라기 힘들고
縈廻上不得(영회상부득) : 아무리 타고 오르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人言人有願(인언인유원) : 사람들의 말에 사람에게 소원이 있으면
願至天必成(원지천필성) : 소원이 지극하면 하늘도 반드시 이루어준다지요.
願作遠方獸(원작원방수) : 원하기는, 먼 곳의 비견수가 되어
步步出肩行(보보출견항) : 걸음마다 나란히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願作深山木(원작심산목) : 또 원하기는, 깊은 산에 나무가 되어
枝枝連理生(지지련리생) : 가지마다 이어져 서로 닿아 살 수 있으면 해요.

권주(勸酒)-백거이(白居易)
술을 권하며
勸君一杯君莫辭(권군일배군막사) : 한 잔 술을 권하거니, 사양 말게나
勸君兩杯君莫疑(권군양배군막의) : 두잔 술을 권하니, 그대는 의심하지 말게나.
勸君三杯君始知(권군삼배군시지) : 석잔 권하노니, 그대가 비로소 내 마음 알았구나.
面上今日老昨日(면상금일노작일) : 사람의 얼굴은 오늘도 내일도 늙어가고
心中醉時勝醒時(심중취시승성시) : 취한 때 마음속이 깨어 있을 때보다 좋구나.
天地迢迢自長久(천지초초자장구) : 천지는 아득하고 원래부터 장구하고
白ꟙ赤烏相趁走(백토적오상진주) : 흰 토끼 붉은 까마귀 서로 쫓듯 달려간다.
身後堆金拄北斗(신후퇴금주배두) : 죽은 뒤에 북두칠성에 닿을 정도로 황금을 쌓아도
不如生前一樽酒(부여생전일준주) : 살아서 한 통의 술을 마심만 못하리라.
君不見(군부견) :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春明門外天欲明(춘명문외천욕명) : 궁성 춘명문 밖의 동 틀 무렵에
喧喧歌哭半死生(훤훤가곡반사생) : 시끄럽게 노래하고 곡하며 나고 죽음이 절반인 것을.
遊人駐馬出不得(유인주마출부득) :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 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으니
白輿素車爭路行(백여소거쟁노항) : 흰 색 장의차가 다투어 길을 나가는구나.
歸去來(귀거내) : 돌아가세
頭已白(두이백) : 이미 머리 희어졌으니
典錢將用買酒喫(전전장용매주끽) : 전당포에 돈 빌려서 술을 사서 마셔 버리자꾸나.
(白樂天詩後集,卷一,格詩)

연자루(鷰子樓)-백거이(白居易)
연자루에서
滿窗明月滿簾霜(만창명월만렴상) : 창에 가득 밝은 달빛, 주렴에 가득한 서리
被冷燈殘拂臥牀(피냉등잔불와상) : 찬 이불, 희미한 등잔불빛 떨치고 잠자리에 든다.
燕子樓中霜月夜(연자누중상월야) : 서리 내린 달밤, 연자루 안
秋來只爲一人長(추내지위일인장) : 이 가을밤, 홀로 있는 사람에게는 길기만 하다.

위상우조(渭上偶釣)-백거이(白居易)
위수가에서 낚시하며
渭水如鏡色(위수여경색) : 위수의 물은 거울 같아
中有鯉與魴(중유리여방) : 그 속에 잉어와 방어가 산다.
偶持一竿竹(우지일간죽) : 우연히 낚싯대 하나 들고
懸釣在其傍(현조재기방) : 그 강 곁에다 낚시를 놓는다.
微風吹釣絲(미풍취조사) : 바람은 살랑살랑 낚싯줄에 불고
嫋嫋十尺長(뇨뇨십척장) : 열자 긴 낚싯줄은 바람에 하늘거린다.
身雖對魚坐(신수대어좌) : 몸은 비록 고기를 향해 앉았으나
心在無何鄕(심재무하향) : 마음은 무아지경에 놀고 있어라.
昔有白頭人(석유백두인) : 그 옛날에 백발노인 있어
亦釣此渭陽(역조차위양) : 또한 위수의 북쪽에서 낚시하였다.
釣人不釣魚(조인부조어) : 낚시꾼은 고기를 낚지 않았고
七十得文王(칠십득문왕) : 칠십에 문왕을 만났었다.
況我垂釣意(황아수조의) : 하물며 내가 낚시하는 뜻은
人魚亦兼忘(인어역겸망) : 사람도 고기도 다 잊는 것이다.
無機兩不得(무기량부득) : 노리지 않으니 둘 다 잡지 못하고
但弄秋水光(단농추수광) : 다만 가을의 강 빛만 즐기노라.
興盡釣亦罷(흥진조역파) : 흥이 다되면 낚시 마치고
歸來飮我觴(귀내음아상) : 돌아와서 나의 술잔 들이키노라.

해만만(海漫漫)-백거이(白居易)
바다는 출렁이고
海漫漫(해만만) : 바다는 출렁이는데
直下無底旁無邊(직하무저방무변) : 아래는 밑이 없고 사방에는 끝이 없다.
雲濤煙浪最深處(운도연낭최심처) : 구름 낀 파도, 안개 덮인 물결의 가장 깊은 곳
人傳中有三神山(인전중유삼신산) : 사람은 그 속에 삼신산이 있고
山上多生不死藥(산상다생부사약) : 산위에는 불사약이 많이 나는데
服之羽化爲天仙(복지우화위천선) : 먹으면 날개 돋아 하늘 나는 신선이 된다 하네.
秦皇漢武信此語(진황한무신차어) : 진시황과 한무제가 이 말을 믿고
方士年年采藥去(방사년년채약거) : 방사에 명을 내려 해마다 약 캐러 보냈도다.
蓬萊今古但聞名(봉래금고단문명) : 봉래산은 예나 지금이나 이름만 들릴 뿐
烟水茫茫無覓處(연수망망무멱처) : 자욱하고 아득하여 물길 속에 찾을 곳이 없도다.
海漫漫風浩浩(해만만풍호호) : 바다는 출렁이고 바람은 넓게도 부는구나.
眼穿不見蓬萊島(안천부견봉래도) : 눈이 뚫어지게 보아도 봉래섬은 보이지 않고
不見蓬萊不敢歸(부견봉래부감귀) : 봉래섬 찾지 못하면 감히 돌아 올수도 없는데
童男丱女舟中老(동남관녀주중노) : 데려간 소년 소녀도 뱃속에서 늙어버렸다.
徐福文成多誑誕(서복문성다광탄) : 방사인 서복과 문성은 거짓말도 많아
上元太一虛祈禱(상원태일허기도) : 상원부인과 태일성에 드린 기도해도 효과가 없도다.
君看驪山頂上茂陵頭(군간려산정상무능두) : 그대들 보게나, 여산의 꼭대기와 무릉의 머리에
畢竟悲風吹蔓草(필경비풍취만초) : 끝내는 슬픈 바람이 무성한 풀숲에 불어오는구나.
何況玄元聖祖五千言(하황현원성조오천언) : 하물며 어찌한단 말인가, 현원성조 노자의 오천 마디 말에는
不言藥不言仙(부언약부언선) : 선약을 말하지 않았고 신선에 대해도 말하지 않았고
不言白日昇靑天(부언백일승청천) : 밝은 해가 푸른 하늘에 오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네.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병가중남정한망(病假中南亭閑望)-백거이(白居易)
병가 중에 남정에서 한가히 바라보다
欹枕不視事(의침부시사) : 베개 베고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兩日門掩關(량일문엄관) : 이틀간 문짝에 빗장을 걸었두었다.
始知吏役身(시지리역신) : 이제야 알겠느니, 관리생활이 몸을 부려
不病不得閑(부병부득한) : 병이 나지 않고 한가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閑意不在遠(한의부재원) : 한가로운 마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小亭方丈間(소정방장간) : 이 작은 정자, 한 간의 방 안에 있는 것을
西簷竹梢上(서첨죽초상) : 서쪽 처마 밑, 대나무 가지 위를
坐見太白山(좌견태백산) : 태백산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본다.
遙媿峯上雲(요괴봉상운) : 아득히 부끄러워라, 봉우리 위 구름
對此塵中顔(대차진중안) : 구름을 마주보는 세속에 더렵혀진 내 얼굴이여

자강릉지서주노상작기형제(自江陵之徐州路上作寄兄弟)-백거이(白居易)
강릉의 서주 노상에서 형제들에게 부치다
岐路南將北(기노남장배) : 남과 북으로 갈리는 길에서
離憂弟與兄(리우제여형) : 형제는 해어지는 슬픔을 나누었다.
關河千里別(관하천리별) : 국경과 강 건너 천리 먼 길을
風雪一身行(풍설일신항) : 눈바람 속에서 나 홀로 걸어간다.
夕宿勞鄕夢(석숙노향몽) : 밤잠자리에서는 애써 고향 꿈꾸고
晨裝慘旅情(신장참려정) : 아침 행장에 여행의 고달픔 비참하다
家貧憂後事(가빈우후사) : 집마저 가난해서 뒷일도 걱정스럽고
日短念前程(일단념전정) : 앞길을 생각하니 해는 짧구나.
煙雁翻寒渚(연안번한저) : 안개 속에 기러기는 차가운 물가를 날고
霜烏聚古城(상오취고성) : 서리 맞은 까마귀는 옛 성으로 모여드는구나.
誰憐陟岡者(수련척강자) : 누가 가련하다 하리오, 언덕에 오르는 자가
西楚望南荊(서초망남형) : 서초 땅에서 남형 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강남송북객인빙기서주형제서 (江南送北客因憑寄徐州兄弟書)-백거이(白居易)
강남에서 북으로 가는 손님을 전송하며 서주 형제에게 글을 부치다
故園望斷欲何如(고원망단욕하여) : 고향 바라봐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할까
楚水吳山萬里餘(초수오산만리여) : 초나라 강과 오나라 산이 만 리나 되는 것을
今日因君訪兄弟(금일인군방형제) : 오늘 그대로 인하여 형제 찾아보리니
數行鄕淚一封書(삭항향누일봉서) : 몇 줄기 고향 찾는 눈물을 한 통의 편지 속에 봉한다.

춘제호상(春題湖上)-백거이(白居易)
봄날 호수 위에서 짓다
湖上春來似畫圖(호상춘내사화도) : 호수 위에 봄이 오니 그림 같은데
亂峯圍繞水平鋪(난봉위요수평포) : 여러 봉우리들 둘러있고 수면은 잔잔하다.
松排山面千里翠(송배산면천리취) : 산에는 소나무, 천리까지 멀리 푸르고
月點波心一顆珠(월점파심일과주) : 물 속에는 달이 한 알의 구슬처럼 떠있다.
碧毯線頭抽早稻(벽담선두추조도) : 푸른 담요 실마리처럼 이삭패는 조생벼
靑羅裙帶展新蒲(청나군대전신포) : 파란 비단 치마 띠 처럼 새로 늘어나는 부들.
未能抛得杭州去(미능포득항주거) : 내가 아직 이곳 항주를 떠나지 못함은
一半勾留是此湖(일반구류시차호) : 반쯤은 이 호수가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여래음주칠수[7](不如來飮酒七首[7]) 백거이(白居易)
와서 술마시는 게 더 좋아라
莫入紅塵去(막입홍진거) : 혼탁한 세속에 들지 말라
令人心力勞(영인심력노) : 마음과 정력을 수고롭게 한다.
相爭兩蝸角(상쟁양와각) : 달팽이 두 뿔 위에서 싸운들
所得一牛毛(소득일우모) : 얻는 것은 한 가닥 소털 뿐.
且滅嗔中火(차멸진중화) : 잠시 마음 속 불길 걷고
休磨笑裏刀(휴마소리도) : 웃음 뒤에 칼 갈지 말라.
不如來飮酒(부여래음주) : 함께 와서 술이나 마시며
穩臥醉陶陶(온와취도도) : 편안히 누워 흥건히 취해보자.
(白樂天詩後集,卷十,律詩)

소요영(逍遙詠)-백거이(白居易)
자유로운 삶을 노래함
亦莫戀此身(역막연차신) : 이 육신을 연연하지 말고
亦莫厭此身(역막염차신) : 또한 이 육신을 싫어 말라.
此身可足戀(차신가족련) : 이 몸도 연연할 만하나
萬劫煩惱根(만겁번뇌근) : 만겁 번뇌의 뿌리이다.
此身可足厭(차신가족염) : 이 몸도 싫어할 만하나니
一聚虛空塵(일취허공진) : 한 번 모인 허공의 흙먼지일 뿐.
無戀赤無厭(무연적무염) : 그리움도 싫어함도 없어야
始是逍遙人(시시소요인) : 비로소 곧 자유인이 될 것이니라.
(白樂天詩集,卷十一,感傷三)

감흥(感興)-백거이(白居易)
마음에 느껴진 것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래유) : 길흉과 화복은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부요우) : 깊이 살필지언정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 불길이 부유한 집을 태우는 것을 보아도
不聞風浪覆虛舟(부문풍랑복허주) : 풍랑은 빈 배를 뒤집었다는 소리 듣지 못했소.
名爲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 명예는 사회의 공기인지라 많이 취하지 말고
利是身災合少求(이시신재합소구) : 이익은 몸의 재앙거리니 조금만 탐해야 한다.
雖異匏瓜難不食(수이포과난부식) : 사람은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어야 살지만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 적당히 배부르면 일찍 적당히 쉬어야 한다.
(白樂天詩後集,卷十三,律詩)

鶴(학)-白居易(백거이)
人各有所好(인각유소호) :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바가 있지만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 만물에는 항상 올바르다는 것은 없다.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 누가 네가 춤 잘 춘다고 말하는가
不如閒立時(부여한립시) : 한가히 서있는 때의 네 모습만 못하다.
(白樂天詩後集,卷一,格詩)

비재행(悲哉行)-백거이(白居易)
슬픔의 노래
悲哉爲儒者(비재위유자) : 슬프구나, 선비 된 자여
力學不知疲(력학부지피) : 피로도 모른 채, 힘써 배웠고
讀書眼欲暗(독서안욕암) : 눈이 침침해지도록 책 읽고
秉筆手生胝(병필수생지) : 손에 굳은 살 지도록 붓을 잡아도
十上方一第(십상방일제) : 열 번 응시해야 간신히 급제한다.
成名常苦遲(성명상고지) : 이름 얻기가 항상 고생스럽고 늦으며
縱有宦達者(종유환달자) : 비록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라도
兩鬢已成絲(량빈이성사) : 양 귀밑머리는 벌써 백발이 된다.
可憐少壯日(가련소장일) : 가련하다, 젊은 날들이여
適在窮賤時(적재궁천시) : 공핍하고 천한 때를 살다가
丈夫老且病(장부노차병) : 장부가 되어서는 늙고 병들어 버리니
焉用富貴爲(언용부귀위) :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데 무슨 소용이리오.
沈沈朱門宅(침침주문댁) : 깊고 깊은 권문세가 집
中有乳臭兒(중유유취아) : 그 안에 젖비린내 나는 아이
狀貌如婦人(장모여부인) : 외모는 여자들 같이 여리고
光明膏粱肌(광명고량기) : 기름진 음식에 살결은 밝고 빛난다.
手不把書卷(수부파서권) : 손에는 책도 잡아보지 않고
身不擐戎衣(신부환융의) : 몸에는 군복 한번도 입어보지 않았다.
二十襲封爵(이십습봉작) : 나이 이십에 봉록을 세습 받으니
門承勳戚資(문승훈척자) : 가문에서 공훈과 위세를 이어받기 때문이다.
春來日日出(춘내일일출) : 봄이 되면 날마다 나가는데
服御何輕肥(복어하경비) : 복장과 말은 어찌 그리도 가볍고 기름진가.
朝從博徒飮(조종박도음) : 아침에는 노름꾼들과 술 마시고
暮有娼樓期(모유창누기) : 저녁이면 기생집에서 사랑을 나눈다.
平封還酒債(평봉환주채) : 봉토의 수입으로 술 외상 갚아주고
堆金選蛾眉(퇴금선아미) : 황금을 쌓아놓고 미인들을 고른다.
聲色狗馬外(성색구마외) : 노래와 주색잡기 외에는
其餘一無知(기여일무지) : 그 외의 아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山苗與澗松(산묘여간송) : 산 위의 작은 나무, 골짜기의 소나무
地勢隨高卑(지세수고비) : 지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古來無奈何(고내무나하) : 예부터 어찌할 수 없었거늘
非獨君傷悲(비독군상비) : 오직 그대만이 상처받아 슬퍼하는가.
(白樂天詩集,卷一,諷諭一)

태행로-백거이(白居易)
太行之路能摧車(태항지노능최거) : 태행산 험한 길이 수레를 부수어도
若比人心是坦途(야비인심시탄도) : 사람의 마음에 견주면 이것은 평탄한 길
巫峽之水能覆舟(무협지수능복주) : 무협의 험한 물길 배를 뒤집어도
若比人心是安流(야비인심시안류) : 사람의 마음에 견주면 이것은 편안한 물길
人心好惡苦不常(인심호악고부상) : 사람이 좋아함과 미워함은 일정치 않음이 고민이니
好生毛羽惡生瘡(호생모우악생창) : 좋으면 깃털처럼 감싸주고 미우면 긁어 부스럼내는구나
與君結髮未五載(여군결발미오재) : 그대와 혼인한지 채 오년도 못되었는데
豈期牛女爲參商(개기우녀위삼상) : 견우직녀가 참성과 상성처럼 되기를 바랐겠는가
古稱色衰相棄背(고칭색쇠상기배) : 옛사람 이르기를, “늙어 시들어지면 버림받는다” 했는데
當時美人猶怨悔(당시미인유원회) : 당시의 미인들도 오히려 원망하고 후회했거늘
何況如今鸞鏡中(하황여금난경중) : 하물며 지금처럼 거울 속
妾顔未改君心改(첩안미개군심개) : 내 얼굴 아직도 변치 않았느데 그대 마음 변했는가
爲君薰衣裳(위군훈의상) : 그대 위해 의상에 향수쳐도
君聞蘭麝不馨香(군문난사부형향) : 그대는 난초나 사향의 향내 맡고도 향기롭다하지 않도다
爲君盛容飾(위군성용식) : 그대 위해 화장해도
君看金翠無顔色(군간금취무안색) : 그대는 금이나 비취를 보고도 아무 표정도 없도다
行路難(항노난) : 인생길 어렵도다
難重陳(난중진) : 어렵다고 다시 말하기도 어려워라
人生莫作婦人身(인생막작부인신) : 사 람으로 태어나서 남의 부인 신세 되지 말라
百年苦樂由他人(백년고낙유타인) : 백년고락이 남에게 달렸도다
行路難(항노난) : 인생길 어렵도다
難於山(난어산) : 산길보다 어렵고
險於水(험어수) : 물길보다 험하구나
不獨人間夫與妻(부독인간부여처) : 다만 인간의 부부간에만 그런 것 아니도다
近代君臣亦如此(근대군신역여차) : 근대의 임금과 신하도 이와 같도다
君不見(군부견)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左納言(좌납언) : 좌 납언
右內史(우내사) : 우 내사 같은 분들이
朝承恩暮賜死(조승은모사사) : 아침에 임금님 은혜 받았다가 저녁에 사약을 받은 것을
行路難(항노난) : 인생길 어려움이
不在水(부재수) : 물길에 있지 않고
不在山(부재산) : 산길에 있지 않으니
只在人情反覆間(지재인정반복간) : 다만 인덩의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사이에 있도다

자오야제(慈烏夜啼)-백거이(白居易)
자비한 까마귀 밤에 우네
慈烏失其母(자오실기모) : 자애로운 까마귀 어미를 잃고
啞啞吐哀音(아아토애음) :
깍악까악, 슬픈 소리를 토해낸다.
晝夜不飛去(주야부비거) : 밤낮으로 날아 떠나지 않고
經年守故林(경년수고림) : 한 해가 다하도록 옛 숲을 지킨다.
夜夜夜半啼(야야야반제) : 밤마다 밤 깊도록 울음 우니
聞者爲沾襟(문자위첨금) : 듣는 사람은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聲中如告訴(성중여고소) : 울음소리가 호소하는 것 같음은
未盡反哺心(미진반포심) : 부모은혜 다 갚지 못한 마음 때문이라.
百鳥豈無母(백조개무모) : 모든 새에게 어찌 어머니 없을까마는
爾獨哀怨深(이독애원심) : 너만 홀로 슬퍼하고 원통함이 깊구나.
應是母慈重(응시모자중) : 자애롭고 소중한 건 어머니 사랑이라
使爾悲不任(사이비부임) : 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게 하였구나.
昔有吳起者(석유오기자) : 옛날 오기라는 장수 있었는데
母歿喪不臨(모몰상부림) : 제 어미가 죽어도 장례에 오지 않았다.
嗟哉斯徒輩(차재사도배) : 슬프도다! 이런 불효한 무리들이여
其心不如禽(기심부여금) : 그 마음 씀이 새만도 못하구나.
慈烏彼慈烏(자오피자오) : 자비한 까마귀, 저 까마귀여
烏中之曾參(오중지증삼) : 새 중에서도 증참 같은 효자로구나.

절비옹(折臂翁)-백거이(白居易)
팔뚝 부러진 노인
新豐老翁八十八(신풍노옹팔십팔) : 신풍의 늙은이, 나이는 여든 여덟 살
頭鬢眉鬚皆似雪(두빈미수개사설) : 머리털, 눈썹, 수염이 모두 눈처럼 희다.
玄孫扶向店前行(현손부향점전항) : 현손이 부축하여 점포 앞으로 나가는데
左臂憑肩右臂折(좌비빙견우비절) : 왼팔 어깨에 달려있고 오른팔은 꺾여있다.
問翁臂折來幾年(문옹비절내기년) : 팔 부러진 지 몇 년 되는가를 묻고
兼問致折何因緣(겸문치절하인연) : 겸하여 무슨 일로 부러진 것인지도 물었다.
翁云貫屬新豐縣(옹운관속신풍현) : 노인이 이르기를, “나는 본래 신풍 사람인데
生逢聖代無征戰(생봉성대무정전) : 태평성대에 태어나 전쟁이란 없었지요.
慣聽梨園歌管聲(관청리원가관성) : 이원의 자제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만 들어와
不識旗槍與弓箭(부식기창여궁전) : 깃발과 창 그리고 활과 살은 알지도 못했었다.
無何天寶大徵兵(무하천보대징병) : 난데없이 천보연간에 크게 징집령이 있어
戶有三丁點一丁(호유삼정점일정) : 집집마다 장정이 셋이면 한 명씩을 뽑았지요.
點得驅將何處去(점득구장하처거) : 뽑은 장정을 몰아다가 어디로 떠나보냈는가.
五月萬里雲南行(오월만리운남항) : 오월에 만 리 먼 운남 땅으로 갔다오.
聞道雲南有瀘水(문도운남유로수) : 운남 땅에는 노수라는 강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椒花落時瘴烟起(초화낙시장연기) : 산초꽃이 떨어질 철에는 풍토병이 있다고 하였소.
大軍徒涉水如湯(대군도섭수여탕) : 대군이 맨발로 열탕 같은 물을 건너는데
未過十人二三死(미과십인이삼사) : 다 건너지도 못해서 열이면 두 세 명은 죽었다오.
村南村北哭聲哀(촌남촌배곡성애) : 남촌 북촌에 통곡소리가 너무나 애절했으니
兒別爺娘夫別妻(아별야낭부별처) : 아이는 부모와 헤어지고 남편은 아내와 이별했었소.
皆云前後征蠻者(개운전후정만자) : 모두들 말하기를, 전후하여 남만 땅으로 전쟁 간 사람
千萬人行無一廻(천만인항무일회) : 천만 명이 나갔으나 돌아온 사람 하나 없다고 하였소.
是時翁年二十四(시시옹년이십사) : 당시에 노인의 나이는 스물넷 살 청년이었다오.
兵部牒中有名字(병부첩중유명자) : 병부의 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
夜深不敢使人知(야심부감사인지) : 밤이 깊어지자 감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고서는
偸將大石鎚折臂(투장대석추절비) : 몰래 큰 돌을 가지고 내 팔뚝을 쳐서 꺾어버렸다오
張弓簸旗俱不堪(장궁파기구부감) : 활 당기고 깃발 흔드는 일을 모두 못하여
從茲始免征雲南(종자시면정운남) : 이때부터 비로소 운남 땅으로 원정 가는 일을 면하였소.
骨碎筋傷非不苦(골쇄근상비부고) :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상하여 고통스럽지 않으리오 마는
且圖揀退歸鄕土(차도간퇴귀향토) : 장차 고향으로 물러나 돌아갈 길을 찾아야만 했었다오.
此臂折來六十年(차비절래륙십년) : 팔 부러진 지 이제 예순 한해
一肢雖廢一身全(일지수폐일신전) : 한 팔은 병신이지만 이 한 몸 살아 있소
至今風雨陰寒夜(지금풍우음한야) : 지금까지 비바람 치는 차가운 밤에는
直到天明痛不眠(직도천명통부면) : 날 새도록 아파서 잠들지 못한다오.
痛不眠終不悔(통부면종부회) : 아파서 잠들지 못해도 끝내 후회하는 않는다오.
且喜老身今獨在(차희노신금독재) : 또한 늙도록 혼자 살아남았으니 기쁘다오.
不然當時瀘水頭(부연당시로수두) :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에 노수 머리에서
身死魂孤骨不收(신사혼고골불수) : 몸은 죽고 혼백은 흩날리고 뼈는 뒹굴어
應作雲南望鄕鬼(응작운남망향귀) : 틀림없이 운남의 망향귀신 되어
萬人塚上哭呦呦(만인총상곡유유) : 만인총 무덤 위에서 훌쩍훌쩍 통곡하고 있었으리라
老人言君聽取(노인언군청취) : 노인의 말을 그대는 들어라
君不聞開元宰相宋開府(군부문개원재상송개부) :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개원의 재상 송개부는
不賞邊功防黷武(부상변공방독무) : 변방의 공을 상주지 않고 욕된 전쟁을 막은 것을
又不聞天寶宰相楊國忠(우부문천보재상양국충) : 또 듣지 못했는가, 천보의 재상 양국충이
欲求恩幸立邊功(욕구은행립변공) : 황제의 은총을 얻으려하여 변방의 공을 세웠다는 것을
邊功未立生人怨(변공미립생인원) : 변방의 공을 세우기도 전에 백성의 원망이 생긴 것을
請問新豐折臂翁(청문신풍절비옹) : 신풍의 팔 부러진 노인에게 물어 보았으면 하노라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증내(贈內)-백거이(白居易)
아내에게 드린다-
生爲同室親(생위동실친) : 살아서는 한 방에서 사랑하고
死爲同穴塵(사위동혈진) : 죽어서는 한 무덤에 흙이 되리라.
他人尙想勉(타인상상면) : 남들도 그리워하고 노력하거늘
而況我與君(이황아여군) : 하물며 나와 그대는 어떠했겠소.
黔婁固窮士(검루고궁사) : 검루는 정말 가난한 선비였지만
妻賢忘其貧(처현망기빈) : 어진 아내는 그들의 가난함을 잊었고
冀缺一農夫(기결일농부) : 기결은 한낱 농부였으나
妻敬儼如賓(처경엄여빈) : 처는 그를 엄연히 손님처럼 공경했고
陶潛不營生(도잠부영생) : 도연명은 생계도 못 꾸렸으나
翟氏自爨薪(적씨자찬신) : 부인 적씨는 스스로 살림을 꾸렸었고
梁鴻不肯仕(양홍부긍사) : 양홍은 벼슬살이 물리쳤으나
孟光甘布裙(맹광감포군) : 그의 아내 맹광은 베옷에 만족하였소.
君雖不讀書(군수부독서) : 그대 비록 책은 읽지 못해도
此事耳亦聞(차사이역문) : 이런 이야기 귀로 들어 알고 있겠지요.
至此千載後(지차천재후) : 천년 지나 지금에 이르러도
傳是何如人(전시하여인) : 이분들이 어떠한 사람인지 전해졌지요.
人生未死間(인생미사간) : 사람으로 태어나 죽지 않은 한
不能忘其身(부능망기신) : 육신의 존재를 잊을 수는 없겠지요.
所須者衣食(소수자의식) : 쓰이는 것이란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니
不過飽與溫(부과포여온) : 배불리 먹고 따뜻한 옷 입는 것에 지나지 않소.
蔬食足充饑(소식족충기) : 거친 나물밥으로 주린 배 채우면 족하지
何必膏梁珍(하필고량진) : 어찌 반드시 기름진 음식이어야 하겠소.
繒絮足禦寒(증서족어한) : 거친 솜옷으로 추위만 막으면 그만이지
何必錦繡文(하필금수문) : 어찌 반드시 비단에 수놓은 옷이 필요하겠소.
君家有貽訓(군가유이훈) : 그대 집안에 내려오는 가르침에도
淸白遺子孫(청백유자손) : 청렴결백을 자손에게 전하라 하였다지요.
我亦貞苦士(아역정고사) : 나 또한 고지식한 선비로서
與君新結婚(여군신결혼) : 그대와 결혼하여 새로 부부 되었소.
庶保貧與素(서보빈여소) : 가난과 소박함을 지켜나가기를 바라며
偕老同欣欣(해로동흔흔) : 같이 늙어가년서 함께 기쁨을 누리려하오.

촌야(村夜)-백거이(白居易)
시골의 어느날 밤
霜草蒼蒼蟲切切(상초창창충절절) : 서리 맞은 풀 무성하고, 벌레소리 절절한데
村南村北行人絶(촌남촌북행인절) : 마을의 남쪽과 북쪽에 사람의 발길 끊어졌다.
獨出門前望野田(독출문전망야전) : 홀로 문 앞에 나와, 멀리 들밭을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월명교맥화여설) : 달빛이 밝아서 메밀밭 메밀꽃이 눈처럼 희다.

지상(池上)-백거이(白居易)
연못 위에서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 소녀가 작은 배를 저어
偸採白蓮回(투채백연회) : 흰 연꽃 몰래 꺾어 돌아간다
不解藏蹤迹(불해장종적) : 그 자취를 감출 것을 잊어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 부평초가 한 길을 남겨놓아버렸구나

한단동지야사가(邯鄲冬至夜思家)-백거이(白居易)
한단에서 동짓날 밤에, 집 생각하며
邯鄲驛裏逢冬至(감단역리봉동지) : 한단역에서 동짓날을 맞아
抱膝燈前影伴身(포슬등전영반신) : 등불 앞에 앉으니 그림자와 짝이 된다.
想得家中夜深坐(상득가중야심좌) : 생각나노니, 고향집에선 밤 깊도록 앉아
還應說著遠行人(환응설착원행인) : 필시 먼 길 떠난 내 이야기 하고 있으리라.

초폄관과망진령(初貶官過望秦嶺)-백거이(白居易)
처음 좌천되어 망진령 고개를 지나며
草草辭家憂後事(초초사가우후사) : 초조히 집 떠나 뒷일을 걱정하며
遲遲去國問前途(지지거국문전도) : 느릿느릿 고향땅 떠나, 갈 길을 물어본다.
望秦嶺上回頭立(망진령상회두립) : 망진령 고개 위에서 머리 돌려 서있으니
無限秋風吹白鬚(무한추풍취백수) : 끝없는 가을바람이 내 흰 수염에 불어온다.

동이십일취억원구(同李十一醉憶元九)-백거이(白居易)
이씨집 열한 번째 아들과 같이 취하여, 원구를 생각하다
花時同醉破春愁(화시동취파춘수) : 꽃필 때에 같이 취하여, 봄날 시름 떨치고
醉折花枝當酒籌(취절화지당주주) : 취한채로 꽃가지 꺾어 술잔을 헤아려본다.
忽憶故人天際去(홀억고인천제거) : 갑자기 먼 길 떠난 친구가 생각나서
計程今日到梁州(계정금일도양주) : 여정을 헤아려보노니, 오늘은 양주에 닿았을까.
(白樂天詩集,卷十四,律詩)

낙화(落花)-백거이(白居易)
떨어지는 꽃잎을 노래하다
留春春不在(유춘춘부재) : 붙들어도 봄은 머물지 않고
春歸人寂寞(춘귀인적막) : 봄이 돌아가니 사람은 적막하여라.
厭風風不定(염풍풍부정) : 싫어도 바람은 그치지 않고
風起花蕭索(풍기화소삭) : 바람이 불면 꽃잎은 쓸쓸하여라.

유애사(遺愛寺)-백거이(白居易)
유애사에서
弄石臨溪坐(농석임계좌) : 수석을 즐겨 개울가에 앉았다가
尋花繞寺行(심화요사행) : 다시 꽃을 찾아 절을 돌아다닌다.
時時聞鳥語(시시문조어) : 때때로 새 우는 소리 들리고
處處是泉聲(처처시천성) : 여기저기 어디나 샘물소리 들려온다.

봉구(逢舊)-백거이(白居易)
옛 벗을 만나다
久別偶相逢(구별우상봉) : 오랫동안 떠나있다 우연히 서로 만나
俱疑是夢中(구의시몽중) : 이것이 꿈이라 모두가 의심했노라.
卽今歡樂事(즉금환락사) : 지금은 이렇게 즐거운 일이지만
放盞又成空(방잔우성공) : 술잔 놓으면 다시 허무한 일이 되는 것을.

추사(秋思)-백거이(白居易)
가을 심사
夕照紅於燒(석조홍어소) : 석양은 타는 불빛보다 붉고
晴空碧勝籃(청공벽승람) : 맑은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다.
獸形雲不一(수형운불일) : 짐승모양 구름은 일정하지 않고
弓勢月初三(궁세월초삼) : 굽은 모양이 초승달과 같구나.
雁思來天北(안사래천북) : 기러기 그리움은 하늘 북쪽으로 오고
砧愁滿水南(침수만수남) : 다듬잇돌 수심은 강 남쪽에 가득하다
蕭條秋氣味(소조추기미) : 이러한 쓸쓸한 가을 기분을
未老已深諳(미로이심암) : 늙지도 않아 이미 깊이 알았도다.

욕여원팔복린선유시증(欲與元八卜隣先有是贈)-백거이(白居易)
平生心迹最相親(평생심적최상친) : 평생 마음 쓴 자취로는 가장 서로 친하니
欲隱墻東不爲身(욕은장동불위신) : 동쪽에 은거하기 바라지만, 내 세우진 않았다.
明月好同三徑夜(명월호동삼경야) : 밝은 달이 좋은, 세 줄기 시골 밤 길
綠楊宜作兩家春(녹양의작양가춘) : 푸른 버들 돋아나면, 두 집의 봄을 즐기었다.
每因暫出猶思伴(매인잠출유사반) : 매번 잠시 길 나서도, 친구 생각 간절한데
豈得安居不擇隣(기득안거불택린) : 편안히 살 집 찾았으니 친구 택하지 않겠는가.
何獨終身數相見(하독종신수상견) : 어찌 다만 죽을 때까지 자주 서로 보면서
子孫長作隔墻人(자손장작격장인) : 자손만대 오래도록, 이웃 사람 될 수 있을까.
(白樂天詩集,卷十五,律詩)

신제포구(新製布裘)-백거이(白居易)
새로 지은 옷
桂布白似雪(계포백사설) : 계림의 무명베는 눈처럼 희고
吳綿軟於雲(오면연어운) : 오나라 솜은 구름보다 부드럽다.
布重綿且厚(포중면차후) : 겹으로 펴고 촘촘하고 두터워
爲裘有餘溫(위구유여온) : 옷을 만드니 따뜻한 기운 넘친다.
朝擁坐至暮(조옹좌지모) : 아침에 입어 저녁까지 앉아있고
夜覆眠達晨(야복면달신) : 밤에 덮으면 새벽까지 잠이 든다.
誰知嚴冬月(수지엄동월) : 심한 겨울 추위를 누가 알겠으며
肢體暖如春(지체난여춘) : 몸이 봄날처럼 따뜻하구나.
中夕忽有念(중석홀유념) : 한밤에 문득 생각나면
撫裘起浚巡(무구기준순) : 옷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돌아다닌다.
丈夫貴兼濟(장부귀겸제) : 장부는 남을 구제함을 귀하게 여기니
豈獨善一身(기독선일신) : 어찌 내 한 몸만을 좋게 하리오.
安得萬里裘(안득만리구) : 어찌 만 리 먼 곳까지 옷 구하여
蓋裹周四垠(개과주사은) : 사방 이웃을 감싸지 주지 않겠는가.
穩暖皆如我(온난개여아) : 모든 사람 나처럼 따뜻이 하여서
天下無寒人(천하무한인) : 세상에 추위로 떠는 사람 없게 하리라.

전당호춘행(錢塘湖春行)-백거이(白居易)
전당호로 봄 나들이 가다
孤山寺北賈亭西(고산사북고정서) : 고산사 북쪽, 가정의 서편에는
水面初平雲脚低(수면초평운각저) : 수면이 잔잔해지자 구름이 낮게 깔린다.
幾處早鶯爭暖樹(기처조앵쟁난수) : 몇 곳엔 철 이른 꾀꼬리는 양지쪽 나무 다투고
誰家新燕啄春泥(수가신연탁춘니) : 누구네 집 새 제비인가, 봄 진흙을 쪼는구나.
亂花漸欲迷人眼(난화점욕미인안) : 어지러운 꽃은 점점 사람의 눈을 미혹하려는데
淺草纔能沒馬蹄(천초재능몰마제) : 막 돋아난 풀은 겨우 말발굽을 묻는 정도로 자랐다.
最愛湖東行不足(최애호동행부족) : 가장 좋은 호수 동쪽은 아무리 다녀도 부족하고
綠楊陰裡白沙堤(녹양음리백사제) : 푸른 버드나무 그늘 아래엔 흰 모래 언덕이 뻗혀있다.
(白樂天詩後集,卷五,律詩)

금다(琴茶)-백거이(白居易)
거문고와 차
兀兀寄形群動內(올올기형군동내) : 도도히 내 몸을 군상들 속에서 살아도
陶陶任性一生間(도도임성일생간) : 일생을 만족하며 천성에 맡겨 살아가리라.
自抛官後春多醉(자포관후춘다취) : 스스로 관직을 그만 둔 뒤, 봄이면 자주 취해
不讀書來老更閑(부독서래노갱한) : 책을 읽지 않아 늙어서는 더욱 한가롭구나.
琴裏知聞唯淥水(금리지문유록수) : 거문고 곡조에서는 <녹수가>만 알아들을 뿐이고
茶中故舊是蒙山(차중고구시몽산) : 마시는 차로는 예부터 <몽산차>가 친숙하다.
窮通行止長相伴(궁통행지장상반) : 궁하고 통하며, 행하고 쉬는 일들과 길이 친구하니
誰道吾今無往還(수도오금무왕환) : 누가 말하는가, 지금의 나에게 왕래하는 일 없다고.

모강음(暮江吟)-백거이(白居易)
저문 강가에서
一道殘陽鋪水中(일도잔양포수중) : 한 줄기 석양빛, 물 속으로 퍼지고
半江瑟瑟半江紅(반강슬슬반강홍) : 강물의 반은 바람소리, 또 반은 붉은빛.
可憐九月初三夜(가련구월초삼야) : 구월 초사흘 밤은 아름다워라
露似珍珠月似弓(노사진주월사궁) : 구슬 같은 이슬, 활처럼 굽은 달이여.

석목단화이수[1](惜牧丹花二首[1])-백거이(白居易)
모란꽃을 아쉬워하다
惆愴階前紅牡丹(추창계전홍모란) : 섬돌 앞 붉은 모란을 아쉬워하노니
晩來唯有兩枝殘(만래유유양지잔) : 해지는 저녁에는, 오직 두 가지만 남았구나.
明朝風起應吹盡(명조풍기응취진) : 내일 아침 바람 일면 모두가 불어 날리리니
夜惜衰紅把火看(야석쇠홍파화간) : 지는 꽃잎 아쉬워, 이 밤 불 밝히고 바라본다.

문유십구(問劉十九)-백거이(白居易)
유 십구에게 묻노니
綠螘新醅酒(녹의신배주) : 부글부글 새로 익어가는 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 작은 화로에 숯불이 벌겋구나.
晩來天欲雪(만래천욕설) : 저녁에 눈 내릴 것 같은데
能飮一杯無(능음일배무) : 우리 술 한 잔 할 수 없을까.

강남우천보악수(江南遇天寶樂叟)-백거이(白居易)
강남에서 천보 연간에 악공을 하던 노인을 만나
白頭病叟泣且言(백두병수읍차언) : 머리 희고 병든 늙은이가 울면서 말하기를
祿山未亂入梨園(록산미란입리원) : 안록산이 난리 전에 이원에 들어가 있었다.
能彈琵琶和法曲(능탄비파화법곡) : 비파를 잘 타고 법곡도 잘 익히어
多在華清隨至尊(다재화청수지존) : 여러 번 화청궁에 있으면서 천자를 모셨다.
是時天下太平久(시시천하태평구) : 이 시절은 태평한 천하가 오래 지속되어
年年十月坐朝元(년년십월좌조원) : 해마다 시월이면 조원각에서 잔치에 갔었다.
千官起居環佩合(천관기거환패합) : 문무백관이 일어서고 앉으면 패옥 소리 나고
萬國會同車馬奔(만국회동차마분) : 온 나라의 사절들이 모여들어 수레와 말이 분주했다.
金鈿照耀石甕寺(금전조요석옹사) : 석옹사엔 여인의 비녀가 번쩍이고
蘭麝薰煮溫湯源(란사훈자온탕원) : 온탕원에 난초향과 사슴향이 피워졌다.
貴妃宛轉侍君側(귀비완전시군측) : 양귀비는 우아하게 움직이며 임금님 모시는데
體弱不勝珠翠繁(체약불승주취번) : 가녀린 몸매는 구슬과 비취의 무게도 감당치 못했다.
冬雪飄搖錦袍暖(동설표요금포난) : 겨울눈이 흩날릴 때는 따뜻한 비단 옷 입고
春風蕩漾霓裳翻(춘풍탕양예상번) : 봄바람 살랑이면 비단 치마폭도 펄럭였다.
歡娛未足燕寇至(환오미족연구지) : 환락에 물리도 않았는데 연 땅의 도둑 떼가 쳐들어와
弓勁馬肥胡語喧(궁경마비호어훤) : 강한 활, 쌀찐 말에 오랑캐의 말들이 소란하다.
豳土人遷避夷狄(빈토인천피이적) : 서울 백성들은 오랑캐 피하여 달아나고
鼎湖龍去哭軒轅(정호룡거곡헌원) : 황제가 서울을 달아나니 헌원황제를 울리었다.
從此漂淪落南土(종차표륜락남토) : 이 때부터 떠돌다가 남쪽 땅에 떨어져
萬人死盡一身存(만인사진일신존) : 만인이 모두 죽고 한 몸만 살아남았다.
秋風江上浪無限(추풍강상랑무한) : 가을바람 부는 강가에는 끝없이 물결만 일고
暮雨舟中酒一樽(모우주중주일준) : 비 내리는 배 안에는 술 한 동이 있었도다.
涸魚久失風波勢(학어구실풍파세) : 마른 못의 물고기는 오랫동안 풍파의 기세를 잃었고
枯草曾沾雨露恩(고초증첨우로은) : 마른 풀도 일찍이 비와 이슬의 은택을 적시었다.
我自秦來君莫問(아자진래군막문) : 내가 서울 장안에서 왔다고 그대는 묻지 말라.
驪山渭水如荒村(려산위수여황촌) : 여산과 위수는 황폐한 마을처럼 되어버렸다오.
新豐樹老籠明月(신풍수로롱명월) : 신풍의 나무는 늙어 밝은 달을 둘러싸고
長生殿闇鎖黃雲(장생전암쇄황운) : 황혼의 구름에 막히어 장생전 닫힌 문 어둑해진다.
紅葉紛紛蓋欹瓦(홍엽분분개의와) : 붉은 나뭇잎은 어지러이 기울어진 기왓장을 덮고
綠苔重重封壞垣(록태중중봉괴원) : 푸른 이끼 겹겹이 무너진 담을 묻어버렸다.
唯有中官作宮使(유유중관작궁사) : 오직 내시인 중관이 궁지기가 되어서
每年寒食一開門(매년한식일개문) : 매년 한식날에 한 번만 문을 열어준다오.

칠덕무(七德舞)-백거이(白居易)
七德舞七德歌(칠덕무칠덕가) : 칠덕무와 칠덕가
傳自武德至元和(전자무덕지원화) : 무덕연간부터 전하여 원화연간에 이르렀다.
元和小臣白居易(원화소신백거역) : 원화연간의 미천한 신하 백거이가
觀舞聽歌知樂意(관무청가지악의) : 춤을 보고 노래를 들어보고 음악의 뜻을 알았고
樂終稽首陳其事(악종계수진기사) : 음악이 끝나자 머리를 조아려 그 일을 진술한다.
太宗十八舉義兵(태종십팔거의병) : 태종 십팔 년 의병을 일으키시어
白旄黃鉞定兩京(백모황월정량경) : 흰 쇠꼬리 깃발과 황금 도끼를 들고 두 서울을 평정하고
擒充戮竇四海清(금충륙두사해청) : 왕세충을 사로잡고 두건충을 죽이니, 온 세상이 깨끗해졌다
二十有四功業成(이십유사공업성) : 이십사 세에, 공업을 이루시고
二十有九即帝位(이십유구즉제위) : 이십구 세에, 황제에 오르시고
三十有五致太平(삼십유오치태평) : 삼십오 세에 태평성대 이루셨다.
功成理定何神速(공성리정하신속) : 공업을 이루고 다스림의 안정이 어찌 이렇게 신처럼 빠른가.
速在推心置人腹(속재추심치인복) : 그 신속함은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뱃속에 넣어주고
亡卒遺骸散帛收(망졸유해산백수) : 죽은 병사들의 유해를 비단을 나누어주어 수습하게 하고
饑人賣子分金贖(기인매자분금속) : 굶주린 자들이 자식을 팔아버리니, 금을 나누어 주어 되사게 하였다.
魏徵夢見子夜泣(위징몽견자야읍) : 위징을 꿈에서 보고, 자시에 깨어나 눈물을 흘리시고
張謹哀聞辰日哭(장근애문진일곡) : 장근의 죽음을 애처로이 듣자 진일에도 통곡하셨다.
怨女三千放出宮(원녀삼천방출궁) : 원망하는 삼천 명을 놓아주시어 출궁시키고
死囚四百來歸獄(사수사백래귀옥) : 사형수 사백 명을 보내어 감옥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剪鬚燒藥賜功臣(전수소약사공신) : 자신의 수염을 잘라 태워, 약을 만들어 공신에게 내려주니
李勣嗚咽思殺身(리적오인사살신) : 이적이라는 사람은 오열하면서 나라에 몸 받칠 것을 생각했다.
含血吮瘡撫戰士(함혈연창무전사) : 피를 머금고 종기를 빨아주시며 전사를 어루만져주니
思摩奮呼乞效死(사마분호걸효사) : 이 사마는 흥분하여 소리치며 죽기를 원했다.
不獨善戰善乘時(불독선전선승시) : 이러한 즉 알았노라, 그는 다만 전쟁을 잘하고 때를 잘 탔을 뿐만 아니라
以心感人人心歸(이심감인인심귀) : 마음으로 사람을 감복시켜 마음을 돌아오게 했음을 말이다.
爾來一百九十載(이래일백구십재) : 그 이후로 일백구십 년이 되어
天下至今歌舞之(천하지금가무지) : 천하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를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
歌七德舞七德(가칠덕무칠덕) : 칠덕을 노래하고, 칠덕을 춤추어보니
聖人有作垂無極(성인유작수무극) : 성인이 지은 것이 있어 전해져 끝이 없도다.
豈徒耀神武(기도요신무) : 어찌 다만 신묘한 무덕만을 빛내고
豈徒夸聖文(기도과성문) : 어찌 한갓 성스러운 글만 과장하려는 것이겠는가.
太宗意在陳王業(태종의재진왕업) : 태종의 뜻은 왕업을 진술하여
王業艱難示子孫(왕업간난시자손) : 왕업의 어려움을 자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태행로(太行路)-백거이(白居易)
太行之路能摧車(태항지노능최거) : 태행산 험한 길이 수레를 부수어도
若比人心是坦途(야비인심시탄도) : 사람의 마음에 견주면 평탄한 길이어라.
巫峽之水能覆舟(무협지수능복주) : 무협의 험한 물길이 배를 뒤집어도
若比人心是安流(야비인심시안류) : 사람의 마음에 견주면 편안한 물길이어라.
人心好惡苦不常(인심호악고부상) : 사람 마음의 좋아함과 싫어함이 일정치 않음이 고민이니
好生毛羽惡生瘡(호생모우악생창) : 좋으면 깃털처럼 감싸주고 싫으면 부스럼 낸다.
與君結髮未五載(여군결발미오재) : 그대와 혼인한지 오년도 못되었는데
豈期牛女爲參商(개기우녀위삼상) : 어찌 견우직녀가 참성과 상성처럼 되기를 바랐겠는가.
古稱色衰相棄背(고칭색쇠상기배) : 옛사람이, “늙고 시들면 버림받는다. 고 했고
當時美人猶怨悔(당시미인유원회) : 당시의 미인들도 여전히 원망하고 후회했었다.
何況如今鸞鏡中(하황여금난경중) : 하물며 지금처럼 거울 속
妾顔未改君心改(첩안미개군심개) : 내 얼굴 아직 변치 않았는데, 당신 마음은 변했다.
爲君薰衣裳(위군훈의상) : 그대 위해 의상에 향수를 뿌렸는데
君聞蘭麝不馨香(군문난사부형향) : 당신은 난초나 사향의 향기를 맡고도 향기롭다 하지 않는다.
爲君盛容飾(위군성용식) : 당신을 위해 화장하였는데도
君看珠翠無顔色(군간주취무안색) : 당신은 금이나 비취를 보고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
行路難(항노난) : 인생길 어렵다.
難重陳(난중진) : 어렵다고 다시 말하기도 어려워라
人生莫作婦人身(인생막작부인신) :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의 아내 되지 마라.
百年苦樂由他人(백년고낙유타인) : 백년고락이 남에게 달렸도다.
行路難(항로난) : 인생길 어렵도다.
難於山(난어산) : 산길보다 어렵고
險於水(험어수) : 물길보다 험하도다.
不獨人家夫與妻(부독인간부여처) : 다만 인간의 부부 사이만 그런 것이 아니도다.
近代君臣亦如此(근대군신역여차) : 근대의 임금과 신하의 사이도 이와 같도다
君不見(군부견)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左納言右納史(좌납언우납사) : 좌 납언, 우 내사 같은 분들이
朝承恩暮賜死(조승은모사사) : 아침에 임금님 은혜 받다가 저녁에 사약을 받는 것을
行路難(항노난) : 인생길의 어려움이
不在水(부재수) : 물길에 있지 않고
不在山(부재산) : 산길에 있지 않으니
只在人情反覆間(지재인정반복간) : 다만 인정의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사이에 있도다.
(白樂天詩集,卷三,諷諭三)

적의이수1(適意二首1)-백거이(白居易)
기꺼워서
十年為旅客(십년위려객) : 십년을 떠돈 나그네 신세
常有饑寒愁(상유기한수) : 항상 배고프고 춥고 근심스러웠지요.
三年作諫官(삼년작간관) : 삼년간의 간관 노릇
複多尸素羞(복다시소수) : 놀고먹어 부끄러움이 많았지요.
有酒不暇飲(유주불가음) : 술이 생겨도 마실 여가 없고
有山不得游(유산불득유) : 산이 있어도 놀 수도 없었지요.
豈無平生志(기무평생지) : 어찌 평생에 품은 뜻 없으리오 만
拘牽不自由(구견불자유) : 벼슬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지요.
一朝歸渭上(일조귀위상) : 하루아침에 위수가로 돌아와
泛如不繫舟(범여불계주) : 매이지 않은 배처럼 떠다녔지요.
置心世事外(치심세사외) : 마음을 세상 밖 일에 두어
無喜亦無憂(무희역무우) : 기쁜 일도 없었고, 슬픈 일도 없었지요.
終日一蔬食(종일일소식) : 종일토록 나물밥 한 가지에
終年一布裘(종년일포구) : 일년이 끝나도록 베옷만 입었었지요.
寒來彌懶放(한래미라방) : 추위가 오면 더욱 나태해지고
數日一梳頭(수일일소두) : 몇 일만에야 하번 빗질 했었지요.
朝睡足始起(조수족시기) : 아침까지 실컷 자고야 일어나고
夜酌醉即休(야작취즉휴) : 밤에는 취하도록 마셔야 그만 두었지요.
人心不過適(인심불과적) : 사람의 마음은 편한 게 최고인데
適外複何求(적외복하구) : 마음 편한 것 외에 또 무엇을 바라겠어요.

하일(夏日)-백거이(白居易)
어느 여름날
東窗晚無熱(동창만무열) : 동쪽 창문은 저녁이라 덥지 않고
北戶涼有風(북호량유풍) : 북쪽 문에는 써늘히 바람이 불어온다.
盡日坐複臥(진일좌복와) : 종일토록 앉았다가 다시 누워서
不離一室中(불리일실중) : 방 안을 떠나지 않았다.
中心本無繫(중심본무계) :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얽매임이 없어
亦與出門同(역여출문동) : 또한 함께 문 밖으로 나와 친구 되었소.
(白樂天詩集,卷六,閒適二)

송성(松聲)-백거이(白居易)
솔바람 소리
月好好讀坐(월호호독좌) : 달빛이 독서하기 좋아 앉았더니
雙松在前軒(쌍송재전헌) : 마루 앞에 소나무 한 쌍 있었다.
西南微風來(서남미풍래) : 서남쪽에서 산들바람 불어와
潛入枝葉間(잠입지엽간) : 솔가지 사이로 살며시 불어든다.
蕭寥發為聲(소요발위성) : 쓸쓸하게 소리를 내니
半夜明月前(반야명월전) : 한밤 밝은 달이 눈앞에 나타난다.
寒山颯颯雨(한산삽삽우) : 차가운 산에 삽상하게 내리니
秋琴泠泠弦(추금령령현) : 가을 거문고의 냉랭한 줄 퉁기는 소리.
一聞滌炎暑(일문척염서) : 한번 들으니 무더위가 씻기고
再聽破昏煩(재청파혼번) : 다시 들으니 번뇌가 스러지는구나.
竟夕遂不寐(경석수불매) : 저녁이 다하도록 잠들지 못해도
心體俱翛然(심체구소연) : 마음과 몸이 모두 날아갈 듯 가볍다.
南陌車馬動(남맥차마동) : 남쪽 길가에 수레소리 말소리 들리고
西鄰歌吹繁(서린가취번) : 서쪽 마을은 소래와 음악 소리로 시끄럽다.
誰知茲檐下(수지자첨하) : 누가 알리오, 이 처마 아래서는
滿耳不為喧(만이불위훤) : 소리 귀에 가득해도 시끄럽지 않은 것을.
(白樂天詩集,卷五,閒適一)

매탄옹(賣炭翁)-백거이(白居易)
숯 파는 노인
賣炭翁(매탄옹) : 숯 파는 노인이여
伐薪燒炭南山中(벌신소탄남산중) : 남산 안에 땔나무 캐어서 숲을 굽는다.
滿面塵灰煙火色(만면진회연화색) : 얼굴에 재가 가득, 연기에 그은 얼굴빛
兩鬢蒼蒼十指黑(량빈창창십지흑) : 두 귀밑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열 두 손가락은 숯검덩이로다
賣炭得錢何所營(매탄득전하소영) : 숯 팔아 벌은 돈 쓰는 곳이 어디일까
身上衣裳口中食(신상의상구중식) : 몸에 걸치는 옷, 입에 먹는 식량일세.
可憐身上衣正單(가련신상의정단) : 가련하구나, 몸에 걸친 옷은 홑옷뿐이라네
心憂炭賤願天寒(심우탄천원천한) : 마음 속으로 숯값 내릴까 걱정하여 날씨 추워지기를 바란다네.
夜來城外一尺雪(야래성외일척설) : 밤에 성 밖에는 눈이 한 자나 내려
曉駕炭車輾冰轍(효가탄차전빙철) : 새벽에 숯 수레 끌고 얼음으로 간 바퀴자국
牛困人饑日已高(우곤인기일이고) : 해는 이미 높이 올라 소는 지치고 사람도 배가 고파
市南門外泥中歇(시남문외니중헐) : 시장 남문 밖 진흙 구덩이에세 쉬고 있다네.
翩翩兩騎來是誰(편편량기래시수) : 펄렁펄렁 두 말 타고 오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黃衣使者白衫兒(황의사자백삼아) : 노란 옷 입은 환관과, 흰옷 입은 소년이구나.
手把文書口稱敕(수파문서구칭칙) : 문서를 손에 들고 입으로 칙령이다 일컬으며
廻車叱牛牽向北(회차질우견향북) : 수레를 돌리고 소를 채찍질하여 북쪽으로 끌고 간다.
一車炭(일차탄) : 한 수레에 가득한 숯
重千余斤(천여근) : 무게가 천여 근이나 되는 데
官使驅將惜不得(관사구장석불득) : 관리들이 몰아가니 장차 아까워도 어찌하지 못하네.
半匹紅紗一丈綾(반필홍사일장릉) : 반 필 붉은 비단과 열자의 능필을
系向牛頭充炭直(계향우두충탄직) : 소머리에 걸어주고 숯 값으로 친다네.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두릉수(杜陵叟)-백거이(白居易)
두릉의 노인
杜陵叟(두릉수) : 두릉의 노인은
杜陵居(두릉거) : 두름에 산다네.
歲種薄田一頃余(세종박전일경여) : 해마다 척박한 밭 일경 남짓에 씨를 뿌린다네
三月無雨旱風起(삼월무우한풍기) : 삼월에는 비 아내리고 이른 바람 불어오니
麥苗不秀多黃死(맥묘불수다황사) : 보리 묘목 패지 않고 누렇게 죽은 것 많다네.
九月降霜秋早寒(구월강상추조한) : 구월에 서리내려 가을날씨 일찍 추워지더니
禾穗未熟皆青干(화수미숙개청간) : 벼 이삭 익지 않고 모두파랗게 말랐다네.
長吏明知不申破(장리명지불신파) : 장리는 잘 알고 있지만 벼 농사 망친 것 알리지 않고
急斂暴徵求考課(급렴폭징구고과) : 심하게 세금 거두어 고과 성적만 올리네.
典桑賣地納官租(전상매지납관조) : 뽕나무 잡히고 땅을 팔아 세금을 물어서
明年衣食將何如(명년의식장하여) : 내년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剝我身上帛(박아신상백) : 내 몸의 비단 옷 벗기고
奪我口中粟(탈아구중속) : 내 입 속의 밤까지 빼앗아 가네.
虐人害物即豺狼(학인해물즉시랑) :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 해치는 것은 승냥이와 이리니
何必鉤爪鋸牙食人肉(하필구조거아식인육) : 어찌 반드시 갈고리 발톱과 톱같은 이빨로만 사람 고기를 먹을까
不知何人奏皇帝(불지하인주황제) : 누가 왕제에게 알렸는지 몰라도
帝心惻隱知人弊(제심측은지인폐) : 황제의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벡성의 피해를 아셨다네.
白麻紙上書德音(백마지상서덕음) : 백마지 위에 후덕한 말씀 적으셔서
京畿盡放今年稅(경기진방금년세) : 경기 지방 금년 세금은 탕감한다 하셨다네.
昨日裡胥方到門(작일리서방도문) : 어제야 아전들이 문 앞에 당도하여
手持敕牒榜鄉村(수지칙첩방향촌) : 칙첩을 손에 들고 고을에 방을 부쳤다네.
十家租稅九家畢(십가조세구가필) : 열 집 조세에 아홉 집이 이미 다 바쳤으니
虛受吾君蠲免恩(허수오군견면은) : 우리 임금 면제의 은혜 헛되이 받았다네.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서량기(西涼伎)-백거이(白居易)
서량 땅의 광대
西涼伎(서량기) : 서량 놀이
假面胡人假獅子(가면호인가사자) : 가면 쓴 오랑캐, 가면 쓴 사나이
刻木為頭絲作尾(각목위두사작미) : 나무 깎아 머리 삼고, 실로 꼬리 만들었네.
金鍍眼睛銀貼齒(금도안정은첩치) : 금으로 눈알 칠하고 은으로 이빨 붙이고
奮迅毛衣擺雙耳(분신모의파쌍이) : 털옷을 빨리 털고 두 귀를 흔들어대네.
如從流沙來萬裡(여종류사래만리) : 마치 유사지방에서 만리나 멀리서 온 듯이
紫髯深目兩胡兒(자염심목량호아) : 자주빛 수염에 깊은 눈알을 한 두 오랑캐 놈
鼓舞跳粱前致辭(고무도량전치사) : 북치며 날뛰듯 춤추고서 앞으로 나와 말하네,
應似涼州未陷日(응사량주미함일) : 아주 꼭 같도다, 양주가 함락되기 전 날
安西都護進來時(안서도호진래시) : 안서 도호가 진상하던 때와 같아요.
須臾운得新消息(수유운득신소식) : 잠시 후에 새소식을 전하기를
安西路絕歸不得(안서로절귀불득) : 안서 길은 끊어져 돌아가지 못한다네요 하니
泣向獅子涕雙垂(읍향사자체쌍수) : 울면서 사자를 향하는데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네.
涼州陷沒知不知(량주함몰지불지) : 양주가 함락된 것 아느냐 모르느냐
獅子回頭向西望(사자회두향서망) : 사자는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며
哀吼一聲觀者悲(애후일성관자비) : 서럽게 한 소리로 울부짖으니 보는 사람도 슬퍼하네.
貞元邊將愛此曲(정원변장애차곡) : 정원 연간 국경의 장군들은 이 노래를 좋아하여
醉坐笑看看不足(취좌소간간불족) : 취하여 앉아 웃으면서 보고 또 보고 하였다네.
享賓犒士宴三軍(향빈호사연삼군) : 손님과 군사를 청하여 삼군에게 잔치를 벌이니
獅子胡兒長在目(사자호아장재목) : 사자와 오량캐 언제나 눈 앞에 보인다네.
有一征夫年七十(유일정부년칠십) : 나이 칠십 된 늙고 병사 나타나
見弄涼州低面泣(견롱량주저면읍) : 서량놀이를 보고 얼굴을 숙이고 울었다네.
泣罷斂手白將軍(읍파렴수백장군) : 울고 나서 손을 잡고 장군에게 이뢰기를
主憂臣辱昔所聞(주우신욕석소문) : 임금의 근심은 신하의 치욕이라 전에 저는 들었습니다.
自從天寶兵戈起(자종천보병과기) : 천보연간부터 전쟁이 일어나
犬戎日夜吞西鄙(견융일야탄서비) : 오량캐들이 밤낮으로 서부 구석진 곳을 병탄하여
涼州陷來四十年(량주함래사십년) : 양주가 함락된 지 이미 사십 년이고
河隴侵將七千裡(하롱침장칠천리) : 하롱이 침략당한 것이 칠천 리나 됩니다.
平時安西萬裡疆(평시안서만리강) : 평화롭던 시절 안서는 만 리나 되는 우리의 영토
今日邊防在鳳翔(금일변방재봉상) : 지금은 국경지바이 봉상이 되어있습니다
緣邊空屯十萬卒(연변공둔십만졸) : 변경에 헛되이 주둔한 십만 병사들
飽食溫衣閒過日(포식온의한과일) : 배불리 머고 따뜻이 입으며 한가로이 세월만 보냅니다.
遺民腸斷在涼州(유민장단재량주) : 단장의 고통 받는 백성은 지금 양주에 버려져 있는데도
將卒相看無意收(장졸상간무의수) : 장군과 병사들은 보기만 하고 수복할 뜻이 없습니다
天子每思長痛惜(천자매사장통석) : 천자께서 생각 때마다 오랫동안 괴롭고 안타깝게 여기시니
將軍欲說合慚羞(장군욕설합참수) : 장군께서 말씀 오리고 싶으나 부끄러울 것입니다
奈何仍看西涼伎(내하잉간서량기) : 어찌하여 그냥 서량의 놀이만 구경하시면서
取笑資歡無所愧(취소자환무소괴) : 웃고 기뻐하기만 하시니 부끄러움도 없습니까.
縱無智力未能收(종무지력미능수) : 설령 지혜와 능력이 없어 수복하지 못하시더라도
忍取西涼弄為戲(인취서량롱위희) : 차마 서량놀이를 하여 장난삼아 놀이로 할 수 있습니까.
(白樂天詩集,卷四,諷諭四)

買花(매화)-白居易(백거이)
꽃을 사는구나
帝城春欲暮(제성춘욕모) : 장안에 봄 저물어 가는데
喧喧車馬度(훤훤차마도) : 마차들이 요란하게 지나간다.
共道牡丹時(공도모단시) : 모란이 철이라고 이야기하며
相隨買花去(상수매화거) : 줄지어 모란꽃을 사가지고 간다.
貴賤無常價(귀천무상가) : 품질에 따라 정해진 가격 없고
酬直看花數(수직간화수) : 꽃송이 수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
灼灼百朶紅(작작백타홍) : 불타는 듯 붉은 꽃 백송이
戔戔五束素(전전오속소) : 자잘한 다섯 묶음 꽃다발들
上張幄幕庇(상장악막비) : 위에는 천막을 펴 꽃 가려주고
旁織笆籬護(방직파리호) : 옆에는 울타리로 막는구나.
水灑復泥封(수쇄부니봉) : 물을 뿌리고, 흙으로 북돋우어
移來色如故(이래색여고) : 옮겨와 심어도 빛깔은 그대로다.
家家習爲俗(가가습위속) : 집집마다 유행하는 풍속이 되어서
人人迷不悟(인인미부오) : 사람마다 정신없이 깨닫지 못한다.
有一田舍翁(유일전사옹) : 어떤 시골 늙은이
偶來買花處(우래매화처) : 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
低頭獨長歎(저두독장탄) : 고개 숙여 혼자 길게 탄식하니
此歎無人喩(차탄무인유) : 이러한 탄식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一叢深色花(일총심색화) : 한 떨기 짙은 꽃송이
十戶中人賦(십호중인부) : 열가구 중농가의 세금과 같음을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立碑(입비)-白居易(백거이)
비석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勳德旣下衰(훈덕기하쇠) : 공적과 덕행이 미미하면
文章亦陵夷(문장역릉이) : 그것을 기록한 글도 그것에 맞아야지.
但見山中石(단견산중석) : 산속에 있는 돌덩이로 보았던 것을
立作路旁碑(립작로방비) : 길가에 비석으로 세운단다.
銘勳悉太公(명훈실태공) : 새긴 공적은 모두가 태공처럼 높고
敍德皆仲尼(서덕개중니) : 적은 내용은 공자 같은 덕행이란다.
復以多爲貴(부이다위귀) : 또 글자가 많아야 좋다고 여기고
千言直萬貲(천언직만자) : 많은 돈을 들여서 일천자를 새긴단다.
爲文彼何人(위문피하인) : 비문을 지은 자는 누구일까
想見下筆時(상견하필시) : 생각해 보니, 비문을 지을 때
但欲愚者悅(단욕우자열) : 어리석은 자들의 기쁨만 생각해 지었단다.
不思賢者嗤(부사현자치) : 현자들의 비웃음은 생각지 못했으니
豈獨賢者嗤(기독현자치) : 어찌 현자들만 비웃으리오.
仍傳後代疑(잉전후대의) : 후대까지 전해지며 의심을 사리라
古石蒼苔字(고석창태자) : 오래된 돌에 푸른 이끼 낀 글자들이
安知是愧詞(안지시괴사) : 어찌 부끄러운 말뜻을 알겠는가.
我聞望江縣(아문망강현) : 내가 들으니, 망강현의 현령은
麴令撫惸嫠(국령무경리) : 외로운 백성들을 위로하였단다.
在官有仁政(재관유인정) : 관리로 있을 때에 어진 정치 베풀었으나
名不聞京師(명부문경사) : 그 명성이 서울에는 들리지 않았단다.
身歿欲歸葬(신몰욕귀장) : 죽은 후 고향에 장사지내려 했으나
百姓遮路岐(백성차로기) : 백성들이 그 길을 가로막았단다.
攀轅不得歸(반원부득귀) : 수레 끌채를 잡고 가지 못하게 만류하니
留葬此江湄(류장차강미) : 망강 강변에 그를 장사지냈단다.
至今道其名(지금도기명) :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부르면
男女涕皆垂(남녀체개수) : 남자와 여자들 모두가 눈물 흘린다.
無人立碑碣(무인립비갈) : 비석을 세운 사람 아무도 없어도
唯有邑人知(유유읍인지) : 고을 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다 알고 있단다.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江南旱(강남한)-白居易(백거이)
강남의 가뭄
意氣驕滿路(의기교만로) : 기세는 교만하게 길가에 넘치고
鞍馬光照塵(안마광조진) : 눈부신 말안장은 먼지조차 비추는구나
借問何爲者(차문하위자) : 저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니
人稱是內臣(인칭시내신) : 황제의 측근이라 대답하네
朱紱皆大夫(주불개대부) : 붉은 인끈을 한 자는 대부이고
紫綏或將軍(자수혹장군) : 자주색 인끈을 한 자는 혹 장군이겠지
誇赴軍中宴(과부군중연) : 으시대며 군중 연회 가면서
走馬去如雲(주마거여운) : 말을 타고 구름처럼 간다
罇罍溢九醞(준뢰일구온) : 술잔엔 숙성된 좋은 술이 넘치고
水陸羅八珍(수륙라팔진) : 상에는 팔 진마가 가득하구나
果擘洞庭橘(과벽동정귤) : 동정호의 귤을 차리고
膾切天池鱗(회절천지린) : 천지의 회를 썰어놓았구나
食飽心自若(식포심자약) : 배불리 먹고나니 마음 편해지고
酒酣氣益振(주감기익진) : 취기가 오르니 기세가 더해지는구나
是歲江南旱(시세강남한) : 올해도 강남에는 가뭄이 들어
衢州人食人(구주인식인) : 구주에서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데

貧家女(빈가녀)-白居易(백거이)
가난한 집안의 여자
天下無正聲(천하무정성) : 천하에 바른 음악 없으니
悅耳卽爲娛(열이즉위오) : 듣기 좋으면 기쁜다 여긴다네
人間無正色(인간무정색) : 세상에 바른 용모 없으니
悅目卽爲姝(열목즉위주) : 보기 좋으면 예쁜다 여긴다네
顔色非相遠(안색비상원) : 용모는 별 차이 없지만
貧富則有殊(빈부칙유수) : 빈부는 차이가 있다네
貧爲時所棄(빈위시소기) : 가난하면 세상에 버림 받고
富爲時所趨(부위시소추) : 부유하면 세상이 따르게 된다네
紅樓富家女(홍루부가녀) : 붉은 누각의 부잣집 딸
金縷繡羅襦(김루수라유) : 금실로 수놓은 옷 입는다네
見人不斂手(견인부렴수) : 사람을 보고도 못 본척
嬌癡二八初(교치이팔초) : 순진한 열여섯 어린 나이인데도
母兄未開口(모형미개구) : 오빠가 말 꺼내지 않아도
已嫁不須臾(이가부수유) : 시집가는 건 문제 없으리라
綠窗貧家女(록창빈가녀) : 무색 창가의 가난한 집 딸
寂寞二十餘(적막이십여) : 쓸쓸히 보낸지 이십여년이구나
荊釵不直錢(형채부직전) : 가시나무 비녀는 일푼도 안되고
衣上無直珠(의상무직주) : 옷에는 값진 구슬 하나도 없도다
幾廻人欲聘(기회인욕빙) : 몇 번이고 폐백을 보내려도
臨日又蜘躕(림일우지주) : 기일이 되면 또다시 머뭇거리고
主人會良媒(주인회량매) : 주인은 중매장이 불러놓고
置酒滿玉壺(치주만옥호) : 옥호리병에 술을 가득 채운다
四座且勿飮(사좌차물음) : 사람들아 잠시 마시지 말고서
聽我歌兩途(청아가량도) : 나의 노래 두 가지 들어보소서
富家女易嫁(부가녀역가) : 부잣집 딸은 시집가기 쉬워
嫁早輕其夫(가조경기부) : 일찍 시집가도 남편 무시하고
貧家女難嫁(빈가녀난가) : 가난한집 딸은 시집가기 어려워
嫁晩孝於姑(가만효어고) : 늦게 가도 시부모께 효도한다오
聞君欲娶婦(문군욕취부) : 그대 장가가려 한다는데
娶婦意何如(취부의하여) : 어떤 아내를 얻고 싶은지

議婚(의혼)-白居易(백거이)
혼인을 의논하다
天下無正聲(천하무정성) : 세상에 바른 음악 없어
悅耳卽爲娛(열이즉위오) : 듣기만 좋으면 즐겁다 하네.
人間無正色(인간무정색) : 세상에 바른 용모 없어
悅目卽爲姝(열목즉위주) : 보기만 좋으면 예쁘다 하네.
顔色非相遠(안색비상원) : 얼굴 모양 별 차이 없지만
貧富則有殊(빈부칙유수) : 가난하고 부유함에 차이 있다네.
貧爲時所棄(빈위시소기) : 가난하면 세상사람에게 버림받고
富爲時所趨(부위시소추) : 부유하면 세상사람들이 따르게 된다네.
紅樓富家女(홍루부가녀) : 붉은 누각 있는 부잣집 딸
金縷繡羅襦(김루수라유) : 금실로 수놓은 옷만 입는다네.
見人不斂手(견인부렴수) : 사람을 보고도 인사도 하지 않고
嬌癡二八初(교치이팔초) : 순진한 열여섯 어린 나이인데도
母兄未開口(모형미개구) : 엄마와 오빠는 말도 꺼내지 않아
已嫁不須臾(이가부수유) : 시집가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綠窗貧家女(록창빈가녀) : 녹색 창가의 가난한 집 딸
寂寞二十餘(적막이십여) : 쓸쓸히 보낸 지 이십여 년이지만
荊釵不直錢(형채부직전) : 가시나무 비녀는 값도 안나가고
衣上無直珠(의상무직주) : 옷에는 값진 보석 하나도 없도다.
幾廻人欲聘(기회인욕빙) : 몇 번이고 폐백을 보내려 해도
臨日又蜘躕(림일우지주) : 기일이 되면 또다시 머뭇거린다네.
主人會良媒(주인회량매) : 주인은 중매장이 불러놓고
置酒滿玉壺(치주만옥호) : 옥호리병에 술을 가득 채운다네.
四座且勿飮(사좌차물음) : 사람들아 잠깐 마시기 중지하고
聽我歌兩途(청아가량도) : 나의 노래 두 가지 들어보소서.
富家女易嫁(부가녀역가) : 부잣집 딸은 시집가기 쉽고
嫁早輕其夫(가조경기부) : 일찍 시집가도 남편 무시하고
貧家女難嫁(빈가녀난가) : 가난한집 딸은 시집가기 어렵지만
嫁晩孝於姑(가만효어고) : 늦게 가도 시부모께 효도한다오.
聞君欲娶婦(문군욕취부) : 그대에 묻노니 장가들 때엔
娶婦意何如(취부의하여) : 신부를 구할 때, 어떤 신부 생각하는가.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輕肥(경비)-白居易(백거이)
가벼운 옷과 살찐 말들
意氣驕滿路(의기교만로) : 기세의 교만함, 길에 가득하고
鞍馬光照塵(안마광조진) : 말안장의 광채, 먼지조차 훤하게 비춘다.
借問何爲者(차문하위자) : 잠시 저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니
人稱是內臣(인칭시내신) : 사람들 그들은 황제의 측근이라 대답하였네.
朱紱皆大夫(주불개대부) : 붉은 인끈을 한 자는 모두가 대부이고
紫綏或將軍(자수혹장군) : 자주색 인끈을 한 자는 아마도 장군이겠지.
誇赴軍中宴(과부군중연) : 자랑하며 군중 연회 찾아다니며
走馬去如雲(주마거여운) : 말을 달려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罇罍溢九醞(준뢰일구온) : 술잔엔 잘 익은 좋은 술이 넘치고
水陸羅八珍(수륙라팔진) : 바다에도 땅에도 팔진미 늘려있구나.
果擘洞庭橘(과벽동정귤) : 과일로는 동정호의 귤을 차리고
膾切天池鱗(회절천지린) : 천지의 회감을 썰어놓았구나.
食飽心自若(식포심자약) : 배불리 먹고 나니 마음 절로 편해지고
酒酣氣益振(주감기익진) : 술기운 오르니 기세가 더해지는구나.
是歲江南旱(시세강남한) : 올해도 강남에는 가뭄이 들어
衢州人食人(구주인식인) : 구주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데.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傷宅(상택)-白居易(백거이)
저택을 보고 마음상하다
誰家起甲第(수가기갑제) : 누구 집이 저렇게도 좋은가
朱門大道邊(주문대도변) : 붉고 큰 대문은 대로변에 있다
豊屋中櫛比(풍옥중즐비) : 우람한 지붕은 안으로 즐비하고
高牆外廻環(고장외회환) : 높은 담장은 밖으로 둘러싸있구나
纍纍六七堂(류류육칠당) : 겹겹이 솟아있는 예닐곱 채 집들
棟宇相連延(동우상련연) : 마룻대와 처마는 줄줄이 이어있다
一堂費百萬(일당비백만) : 집 한 채에 백만금이나 되고
鬱鬱起靑煙(울울기청연) : 가득히 푸른 연기 피어오른다.
洞房溫且淸(동방온차청) : 안방은 따뜻하고도 시원하고
寒暑不能干(한서부능간) : 추위나 더위가 침범하지 못한다.
高堂虛且逈(고당허차형) : 높은 집은 넓고도 앞이 탁 트여
坐臥見南山(좌와견남산) : 앉아도 누워도 남산이 다 보인다.
繞廊紫藤架(요랑자등가) : 행랑을 두른 자주색 등나무 시렁 있고
夾砌紅藥欄(협체홍약란) : 섬돌을 끼고 있는 작약 울타리도 보인다.
攀枝摘櫻桃(반지적앵도) : 가지를 휘어잡고 앵두를 따고
帶花移牡丹(대화이모단) : 꽃 있는채로 이식된 모란꽃도 보인다.
主人此中坐(주인차중좌) : 주인은 이 안에 앉아 있는데
十載爲大官(십재위대관) : 십년동안 대관고작을 지냈다네.
廚有臭敗肉(주유취패육) : 부엌에는 썩어 냄새 나는 고기가 있고
庫有貫朽錢(고유관후전) : 창고에는 녹슨 돈이 가득하다네.
誰能將我語(수능장아어) : 누가 자기 말로 말할 수 있겠는가
問爾骨肉間(문이골육간) : 묻노니, 너희 가까운 친척 중에서도
豈無窮賤者(기무궁천자) : 어찌 곤궁한 자들이 없겠으며
忍不救饑寒(인부구기한) : 가난과 추위를 어찌 구제해주지 않겠는가.
如何奉一身(여하봉일신) : 어찌하여 네 한 몸만 봉양하고
直欲保千年(직욕보천년) : 천년토록 누리려고 하는가.
不見馬家宅(부견마가택)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마씨 일가가
今作奉誠園(금작봉성원) : 지금은 봉성원으로 되어 있는 것을.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五絃(오현)-白居易(백거이)
淸歌且罷唱(청가차파창) : 맑은 노랫소리 잠시 멈추고
紅袂亦停舞(홍몌역정무) : 붉은 소맷자락 춤도 멈추어라.
趙叟抱五絃(조수포오현) : 늙은 어르신 조옹이 오현금 가져와
宛轉當胸撫(완전당흉무) : 둥그렇게 가슴에 안고 연주한다.
大聲麤若散(대성추약산) : 강한 음은 흩어질 듯 거칠고
颯颯風和雨(삽삽풍화우) : 쓸쓸히 부는 바람 비바람 소리 같구나.
小聲細欲絶(소성세욕절) : 약한 소리은 끊어질 듯 가늘고
切切鬼神語(절절귀신어) : 애절한 귀신의 속삭임 같구나.
又如鵲報喜(우여작보희) : 또 까치의 기쁜 소리 같다가도
轉作猿啼苦(전작원제고) : 원숭이의 고통 소리로 바뀌는 것 같아라.
十指無定音(십지무정음) : 열손가락에 정해진 음 없고
顚倒宮徵羽(전도궁치우) : 음률이 어지럽게 뒤바뀌는구나.
坐客聞此聲(좌객문차성) : 초대받은 손님들 이 소리 듣고
形神若無主(형신약무주) : 넋은 주인을 잃어 버린 듯 하다.
行客聞此聲(행객문차성) : 길 가는 나그네 그 소리를 듣고
駐足不能擧(주족불능거) : 능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구나.
嗟嗟俗人耳(차차속인이) : 아아, 세상 속된 사람의 귀는
好今不好古(호금불호고) : 옛것은 좋아하지 않고 지금 것만 좋아하니
所以綠窗琴(소이녹창금) : 그래서 녹색 창가의 오현금에는
日日生塵土(일일생진토) : 날마다 말마다 흙먼지만 쌓이는구나.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歌舞(가무)-白居易(백거이)
그들만의 노래, 그들만의 춤
秦城歲云暮(진성세운모) : 서울에 해 저문다 하는데
大雪滿皇州(대설만황주) : 성 안에는 큰 눈이 내린다.
雪中退朝者(설중퇴조자) : 눈 내리는데 퇴궐하는 사람들
朱紫盡公侯(주자진공후) : 홍색 자주색 옷, 모두가 고관들
貴有風雪興(귀유풍설흥) : 귀족에게는 눈과 바람에도 흥취 있고
富無饑寒憂(부무기한우) : 부자들은 춥고 배고픔일 전혀 없구나.
所營唯第宅(소영유제택) : 하는 일이란 오로지 저택에 사는 것
所務在追遊(소무재추유) : 힘쓰는 일이란 향락을 구하는 일이다.
朱門車馬客(주문거마객) : 붉은 대문에는 마차 탄 손님들
紅燭歌舞樓(홍촉가무루) : 등불 밝혀놓고 노래하고 춤추는 누각
歡酣促密坐(환감촉밀좌) : 환락에 도취되어 가까이 다가앉고
醉暖脫重裘(취난탈중구) : 취기 오르자, 열기에 겹 가죽옷 벗어버린다.
秋官爲主人(추관위주인) : 추관이 주인인데
廷尉居上頭(정위거상두) : 정위가 상좌에 앉았다
日中爲樂飮(일중위락음) : 대낮부터 음주를 즐기어
夜半不能休(야반불능휴) : 밤이 깊어도 그칠줄 모른다.
豈知閿鄕獄(기지문향옥) : 어찌 알까, 문향 감옥의 일들
中有凍死囚(중유동사수) : 그 곳에서 얼어 죽는 죄수가 있음을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不致仕(불치사)-白居易(백거이)
물러나지 않는 관리들
七十而致仕(칠십이치사) : 일흔이면 관직에서 물러나라
禮法有明文(례법유명문) : 예법에 분명히 적혀 있도다.
何乃貪榮者(하내탐영자) : 어찌하여 영화를 탐하는 자들은
斯言如不聞(사언여불문) : 이 말을 못 들은 척 하는구나.
可憐八九十(가련팔구십) : 가련하다, 팔구십 살이 다 되어
齒墮雙眸昏(치타쌍모혼) : 이 빠지고 두 눈동자 흐려져도
朝露貪名利(조로탐명리) : 아침 이슬 처지로도 명예와 이익 탐하고
夕陽憂子孫(석양우자손) : 지는 해 처지에서 자손을 근심하는구나.
掛冠顧翠緌(괘관고취유) : 걸어둔 관끈을 돌아보고
懸車惜朱輪(현거석주륜) : 매어둔 수레 바퀴 아까워한다.
金章腰不勝(금장요불승) : 허리에 찬, 금 인장 무게도 감당 못하여
傴僂入宮門(구루입군문) : 곱사등이 모습으로 입궐한다네.
誰不愛富貴(수불애부귀) : 누가 부귀를 싫어하고
誰不戀君恩(수불련군은) : 임금의 은총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年高須告老(년고수고로) : 늙으면 마땅히 늙음을 고하고
名遂合退身(명수합퇴신) : 명예를 얻었으면 물러나야 마땅하네.
少時共嗤誚(소시공치초) : 젊을 때는 같이 비웃어 놓고
晩歲多因循(만세다인순) : 늙어서는 대부분 악습을 따른다.
賢哉漢二疏(현재한이소) : 어질구나, 한의 소광과 소수여
彼獨是何人(피독시하인) : 그들은 곧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寂寞東門路(적막동문로) : 적막하다, 동문 밖 길이여
無人繼去塵(무인계거진) : 아무도 속된 풍속 없애지 못하다니
(白樂天詩集,卷二,諷諭二)

早秋獨夜(조추독야)-白居易(백거이)
초가을 외로운 밤에
井梧凉葉動(정오량엽동) : 우물가 오동나무, 서늘한 잎 나부끼고
隣杵秋聲發(인저추성발) : 이웃집 다듬질은 가을 소리를 낸다.
獨向簷下眠(독향첨하면) : 홀로 처마 향해 잠들어 있다가
覺來半牀月(각래반상월) : 깨어보니 평상에는 달빛이 반쯤 들었다.

商山路有感(상산로유감)-白居易(백거이)
상산 가는 길에
萬里路長在(만리로장재) : 만 리 먼 길은 언제나 있었지만
六年今身歸(육년금시귀) : 육년 지나 이제야 이몸 돌아왔구나.
所經多舊館(소경다구관) : 지나는 곳마다 옛 여관 많았지만
太半主人非(태반주인비) : 거의 태반이 옛 주인들이 아니었다.

비파행(琵琶行)-백거이(白居易)
潯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 심양강 어구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려니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 단풍잎, 갈대꽃 흔들리는 가을이 쓸쓸하다.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에 오르며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 술잔 마시려니 음악이 없다.
酒不成歡慘將別(주불성환참장별) : 취기가 오르지도 않았는데 슬픈 이별하려니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 이별의 시간, 망망한 강에 달빛이 젖어든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 문득 강 위로 들리는 비파소리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 주인은 돌아갈 생각 잊고 손은 떠나지 못한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 소리를 찾아 비파 타는 사람 누구인지 물어도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 비파소리는 그쳤는데 말을 하려니 말소리 더디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 배를 옮겨 가까이 다가가 서로 마주 보고
添酒回燈重開宴(첨주회등중개연) : 술을 더하고 등불을 밝혀 다시 술자리를 열었다.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 천만 번을 불러서야 비로소 나왔는데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 여전히 얼굴 반쯤 가린 채로 비파를 끼고 있었다.
轉軸撥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 축을 조이고 현을 퉁겨 두세 번 소리 내고는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 곡조도 타기 전에 정이 먼저 이는구나.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 줄을 누르고 퉁길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 평생 이루지 못한 정을 하소연하는 듯.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 고개 숙이고 손끝을 따라 이어지는 연주
說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 가슴 속에 서린 끝없는 사연을 털어놓은 듯.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부도) : 가볍게 누르고 살짝 비틀었다 다시 퉁긴다.
初爲霓裳後六絃(초위예상후육현) : 먼저 예상곡을 연주하고 뒤에 육요를 연주한다.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 큰 줄에서는 소나기처럼 세찬 소리 나고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 작은 현에서는 절절한 속삭임 같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 세차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한 온갖 소리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 크고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閑關鶯語花底滑(한관앵어화저활) : 한가한 대문 안 꾀꼬리 소리 꽃가지 아래 매끄럽고
幽咽泉流水下灘(유열천류수하탄) : 흐느끼듯 흐르는 샘물이 여울로 떨어진다.
水泉冷澁絃凝絶(수성냉삽현응절) : 물줄기 얼어붙듯이 현이 얼어붙으며 소리는 끊어지고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 얼어붙은 듯 끊어진 소리, 점점 사라진다.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 따로 그윽한 슬픔, 남모르는 한이 되살아나는듯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 이러한 때는 비파소리 울릴 때보다 더 좋았다.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 은병이 깨어져 물중기가 치솟듯
鐵騎突出刀鎗鳴(철기돌출도쟁명) : 철마가 뛰어오르고 칼과 창이 부딪치듯.
曲終收撥當心畫(곡종수발당심화) : 곡이 끝나자 채를 뽑아 비파중심을 획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 비단이 찢어지듯 네 현에서 한꺼번에 소리를 낸다.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 동쪽 배, 서쪽 배 사람들 모두 할 말을 잊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 강 가운데서 밝은 가을 달만 바라 볼 뿐이다.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 침울하게 채를 거두어 줄에 꽃고
整頓衣裳起劍容(정돈의상기검용) : 옷차람을 정돈하고 일어나 얼굴을 가다듬었다.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장안 여자로
家在蝦蟇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 하마릉 아래에 살았었는데
十三學得琵琶成(십삼학득비파성) : 열세 살에 비파를 익혔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 저의 이름은 교방의 제1부에 속해 있었습니다.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 한 곡조 타면 스승들도 탄복하고
粧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낭투) : 몸치장하면 기녀들의 질투도 받았습니다.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 오릉의 청년들이 다투어 찾아왔고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붉은 비단 셀 수 없이 받았습니다.
鈿頭銀蓖擊節粹(전두은비격절수) : 자개 박은 은비녀 장단 맞추다 다 부러지고
血色羅裙飜酒汚(혈색나군번주오) : 붉은 색 비단 치마 술에 얼룩졌습니다.
今年觀笑復明年(금년관소부명년) : 올해도 기뻐서 웃고, 이듬해도 기뻐 웃으며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 가을 달, 봄바람 한가롭게 보냈습니다.
弟走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 남동생 싸움터로 가고 양모도 죽고 나니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 저녁 가고 아침 오면 얼굴빛도 시들어 갔소.
門前冷落鞍馬稀(문전냉락안마희) : 대문 앞은 말 타고 찾아오는 이 없어 쓸쓸해지고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 늙은 이몸 장사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 장사치는 이속에만 밝고 이별은 가볍게 여기는지라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떠났습니다.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 강나루 오가며 빈 배만 지키는데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 뱃전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가워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 깊은 밤에 홀연히 어린 시절을 꿈에서 보니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난간) : 꿈속에서도 서러워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 이미 비파소리에 탄식하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즐즐) : 다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거듭거듭 탄식이 나온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 그대와 나 같은 하늘 아래 떠도는 몸으로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 이렇게 서로 만나는데 어찌 본디 아는 사이어야 하는가.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 이 몸은 지난해 장안을 떠나
謫居臥病瀋陽城(적거와병심양성) : 심양으로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瀋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 심양은 외진 땅이라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 일 년이 다 가도록 음악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오.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 사는 곳이 가까운 분강 땅이라, 땅이 낮고 습하여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 누런 갈대와 마른 대나무만이 집 둘레에 우거져다오.
其間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 여기서 아침저녁 무엇을 듣겠는가.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 피 토하는 두견새와 애절한 원숭이 울음 소리뿐.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야) : 강가의 꽃이 피는 봄날 아침, 달 뜨는 가을밤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 때때로 술가져와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 어찌 산촌에 노랫소리, 피리소리 없으련만
嘔啞嘲哳難爲聽(구아조찰난위청) : 벙어리 말 배우고 새 웃음 짓듯 알아듣기 어려워라.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악이잠명) : 신선의 음악 듣는 듯 귀가 밝아진다.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주시면
爲君飜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 난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感我此言良久立(감아차언양구립) : 내 말에 감격하여 한참 서 있더니
却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 다시 앉아 현을 고르고 급히 비파를 탄다.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 전보다 더 처연히진 소리에
滿座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 좌중 사람들이 듣고서 모두가 눈을 가리고 운다.
座中泣下誰最多(좌중읍하수최다) : 그중에 누가 자장 많이 눈물 흘렸던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 푸른 적삼 눈물에 다 젖은 강주 사마였더라.

연시시유수(燕詩示劉叟)-백거이(白去易)
제비른 노래한 시를 유노인에게 보이l며
梁上有雙燕(양상유쌍연) : 들보 위에 한 쌍의 제비 있어
翩翩雄與雄(편편웅여웅) : 펄럭펄럭 암수가 함께 나는구나.
銜泥兩椽間(함니양연간) : 흙 물어다 두 서까래 사이에 집 지어
一巢生四兄(일소생사형) : 한 둥지에 네 형제가 살았다.
四兒日夜長(사아일야장) : 네 마리 새끼 밤낮으로 자라는데
索食聲孜孜(색식성자자) : 먹이 달라고 서로가 짹짹거린다.
靑蟲不易捕(청충불이포) : 푸른 벌레 쉽게 잡을 수 없어
黃口無飽期(황구무포기) : 새끼들은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다.
嘴爪雖欲弊(취조수욕폐) :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져도
心力不知疲(심력부지피) : 마음의 힘으로 피곤한 줄 몰랐다.
須臾十來往(수유십래왕) : 잠깐 동안에도 열 번을 왕래하는 것은
猶恐巢中饑(유공소중기) : 둥지의 새끼가 굶주릴까 걱정되어서라.
辛勤三十日(신근삼십일) : 고생하고 부지런히 보낸 삼십 일에
母瘦雛漸肥(모수추점비) : 어미는 야위고 새끼는 저점 비대해졌다.
喃喃敎言語(남남교언어) : 지저귀며 말을 가르쳐주고
一一刷毛衣(일일쇄모의) : 하나하나 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一旦羽翼成(일단우익성) : 어느 날 아침에 날개가 생기니
引上庭樹枝(인상정수지) : 뜰의 나무의 가지 위로 끌어 올렸다.
擧翅不回顧(거시불회고) : 날개를 펴고 돌아보지도 않고.
隨風四散飛(수풍사산비) : 바람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雌雄空中鳴(자웅공중명) : 암수 한 쌍의 어미 새가 공중에서 울면서
聲盡呼不歸(성진호불귀) : 소리가 다하도록 불러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卻入空巢裏(각입공소리) : 문득 빈 둥지 속에 들어와
啁啾終夜悲(조추종야비) : 찍찍 짹짹 밤새도록 슬피 울었다.
燕燕爾勿悲(연연이물비) : 제비여, 제비여, 슬퍼 말아라.
爾當返自思(이당반자사) : 너희들도 마땅히 돌이켜 스스로 생각 봐라.
思爾爲雛目(사이위추목) : 너희를 생각해보면, 너희도 새끼 되어서
高飛背母時(고비배모시) : 공중 높이 날아가 버리고 어버이를 때를
當時父母念(당시부모념) : 당시의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今日爾應知(금일이응지) : 오늘에야 너희도 반드시 알 것이니라.

초당초성우제동벽(草堂初成偶題東壁)-백거이(白居易)
초당이 처음 지어져 동쪽 벽에 쓰다
日高眠足猶慵起(일고면족유용기) : 해 높이 돋도록 잠자도 늦어 일어나고
小閣重衾不怕寒(소각중금불파한) : 초당의 두꺼운 이불로 추위를 몰랐다.
遺愛寺鐘欹枕聽(유애사종의침청) : 유애사 종소리, 베개머리에서 듣고
香爐蜂雪撥簾看(향로봉설발렴간) : 향로봉 눈, 발 걷고 바라본다.
匡廬便是逃名地(광여편시도명지) : 광려 땅은 곧 숨어살기 좋은 곳
司馬仍爲送老官(사마잉위송노관) : 사마의 벼슬이 내 노년 벼슬살이로다.
心泰身寧是歸處(심태신녕시귀처) : 마음과 몸 편안하면 내 살 곳인데
故鄕何獨在長安(고향하독재장안) : 고향이 어찌 서울에만 있어야 하는가.

부득고원초송별(賦得高原草送別)
백거이(白居易;772-846)
고원의 풀을 시로 읊어 송별하다
離離原上草(이리원상초) : 무성한 언덕 위의 들풀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 한 해에 한 번씩 나고 시든다.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 들불에 타도 다 하지 않고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 봄바람이 불면 또 자라난다.
遠芳侵古道(원방침고도) : 멀리 뻗힌 풀은 오래된 길을 덮고
晴翠接荒城(청취접황성) : 맑은 풀빛은 거친 옛 성터에 어린다.
又送王孫去(우송왕손거) : 다시 그대를 보내어 전송하니
萋萋滿別情(처처만별정) :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마음 가득하다.

숙장정역(宿樟亭驛)-백거이(白居易)
장정역에 묵으며
夜半樟亭驛(야반장정역) : 밤 깊은 장정역에는
愁人起望鄕(수인기망향) : 수심 겨운 사람 일어나 고향 바라본다.
月明何所見(월명하소견) : 밝은 달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湖水白茫茫(호수백망망) : 호수에 가득한 물은 희고도 망망하구나.

야우(夜雨)-백거이(白居易)
밤비
早蛩啼復歇(조공제복헐) : 철 이른 귀뚜라미 울다 그치고
殘燈滅又明(잔등멸우명) :
아물거리는 등불 꺼졌다 밝아진다.
隔窓知夜雨(격창지야우) : 창 너머로 밤비가 내렸는가
芭蕉先有聲(파초선유성) : 파초에 먼저 듣는 소리 들려온다.

지창(池窓)-백거이(白居易)
못가 창문에서
池晩蓮芳謝(지만연방사) : 연꽃 향기 이우는 연못가의 저녁
窓秋竹意深(창추죽의심) : 창밖은 가을이라, 대나무도 유정하다
更無人作伴(갱무인작반) : 친구 삼을 사람도 다시 아무도 없어
唯對一彈琴(유대일탄금) : 오직 거문고 하나만을 마주하고 있다.

속고시십수[2](續古詩十首[2])-백거이(白居易)
掩淚別鄕里(엄누별향리) : 눈물을 가리고 고향을 떠나
飄颻將遠行(표요장원항) : 쓸쓸히 장차 먼 곳으로 가려네
茫茫綠野中(망망녹야중) : 아득하고 푸른 들판 속
春盡孤客情(춘진고객정) : 봄도 다 지난 외로운 나그네 심정
驅馬上丘隴(구마상구롱) : 말을 몰아 언덕을 오르니
高低路不平(고저노부평) : 높고 낮아 길은 평탄치 않도다
風吹棠梨花(풍취당리화) : 바람이 해당화와 배꽃에 불고
啼鳥時一聲(제조시일성) : 때때로 새들도 울어댄다
古墓何代人(고묘하대인) : 이 옛무덤은 어느 시대 사람의 무덤인지
不知姓與名(부지성여명) : 그 성명도 알지 못 하겠네
化作路傍土(화작노방토) : 길가의 한 줌 흙으로 변하여
年年春草生(년년춘초생) : 해마다 봄풀만 돋아나는구나
感彼忽自悟(감피홀자오) : 이에 느껴워 문득 저절로 생각나네
今我何營營(금아하영영) :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만망(晩望)-백거이(白居易)
저물녘에
江城寒角動(강성한각동) : 강 언덕에 차가운 피리소리 들려오고
沙州夕鳥還(사주석조환) : 모래섬에 저녁 새 둥지 찾아 돌아온다.
獨在高亭上(독재고정상) : 나 혼자 높은 정자에 올라
西南望遠山(서남망원산) : 서남쪽으로 아득히 먼 산을 바라본다.

상산노유감(商山路有感)-백거이(白居易)
상산가는 길에
萬里路長在(만리로장재) : 만 리 먼 길은 언제나 있었지만
六年今身歸(육년금시귀) : 육년 지나 이제야 이 몸 돌아왔구나.
所經多舊館(소경다구관) : 지나는 곳마다 옛 여관 많았지만
太半主人非(태반주인비) : 거의 태반이 옛 주인들이 아니었다.
(白樂天詩集,卷十八,律詩)

商山路有感(상산노유감)-白居易(백거이)
상산 길을 걸으며
萬里路長在(만리로장재) : 만 리 먼 길 언제나 있었지만
六年今始歸(육년금시귀) : 육년 만에 이제야 비로소 돌아온다
所經多舊館(소경다구관) : 지나는 곳마다 옛 여관이 많았지만
太半主人非(태반주인비) : 태반이 옛 주인이 아니라니

지상2(池上2)-백거이(白居易)
연못에서
小娃撑小艇(소왜탱소정) : 소 녀가 작은 배를 저어가며
偸採白蓮廻(투채백연회) : 흰 연꽃 몰래 캐어 돌아간다.
不解藏蹤迹(불해장종적) : 그 캔 자취를 감출 줄 몰라
浮萍一道開(부평일도개) : 부평초 한 가닥 길을 남겨놓았다.

지상1(池上1)-백거이(白居易)
연못에서
山僧對棋坐(산승대기좌) : 산에서 스님이 바둑판에 앉아있고
局上竹陰淸(국상죽음청) : 바둑판 위로 대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映竹無人見(영죽무인견) : 대나무 그림자 비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時聞下子聲(시문하자성) : 때때로 바둑 두는 소리만 들린다

白樂天勸學文(백낙천권학문)-白居易(백거이)
有田不耕倉廩虛(유전불경창름허) : 밭이 있어도 경작하지 않으면 창고가 비고
有書不敎子孫愚(유서불교자손우) :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다.
倉廩虛兮歲月乏(창름허혜세월핍) : 창고가 비면 세월이 궁핍해지고
子孫愚兮禮義疎(자손우혜예의소) : 자손이 어리석으면 예의가 소홀해진다.
若惟不耕與不敎(약유불경여불교) : 만약에 다만 경작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으면
是乃父兄之過歟(시내부형지과여) : 이것은 바로 부형의 잘못인 것이리라.
(古文眞寶,前集,一卷)

여몽득고주한음차약후기 (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백거이(白居易)
몽득과 술 사 마시며 후일을 기약하며
少時猶不憂生計(소시유불우생계) : 젊어서도 생계에 마음 두지 않았거늘
老後誰能惜酒錢(노후수능석주전) : 늙어서 누가 능히 술값을 아끼랴.
共把十千沽一斗(공파십천고일두) : 우리 일만 전으로 술 한 말 사서
相看七十缺三年(상간칠십결삼년) : 돌아보면 우리 나이 일흔에 세살 모자란다네.
閑微雅令窮經史(한미아령궁경사) : 한가로이 경전과 역사책 뒤져서
醉聽淸吟勝管絃(취청청음승관현) : 취하여 듣는 그대 노래 관현악보다 좋구나.
更待菊黃家醞熟(갱대국황가온숙) : 게다가 국화꽃 노래지고 국화주는 익는데
共君一醉一陶然(공군일취일도연) : 그대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여보자.

춘제호상(春題湖上)-백거이(白居易)
호수에서 봄날 시를 짓다
湖上春來似圖畵(호상춘래사도화) : 호수 위에 봄 그림인듯하고
亂峰園繞水平鋪(난봉원요수평포) : 여기저기 봉우리 에워싸고 물은 잔잔하다
松排山面千重翠(송배산면천중취) : 소나무는 산면에 늘어서 천 겹 비취색을 이루고
月點波心一顆珠(월점파심일과주) : 달은 물결 속, 한 알 구슬로 박혀 있네
碧毯線頭抽早稻(벽담선두추조도) : 파란 담요 같은 논가엔 뽑아 놓은 듯한 벼
靑羅裙帶展新蒲(청라군대전신포) : 푸른 비단 허리띠 같은 것은 새로 돋은 창포라네
未能抛得杭州去(미능포득항주거) : 나는 아직 항주를 버리고 떠날 수 없으니
一半勾留是此湖(일반구류시차호) : 반쯤은 이 호수가 나를 붙잡은 것이라네

후궁사(後宮詞)-백거이(白居易)
淚濕羅巾夢不成(누습나건몽불성) : 비단 수건 눈물 젖고 잠은 오지 않고
夜深前殿按歌聲(야심전전안가성) : 깊은 밤, 앞 궁궐에서 박자 맞춘 노랫소리.
紅顔未老恩先斷(홍안미노은선단) : 늙지 않은 홍안에 임금 사랑 끊어져
斜倚薰籠坐到明(사의훈농좌도명) : 향료 상자에 기대어 날 새도록 앉아있다.
(白樂天詩集,卷十八,律詩)

학(鶴)-백거이(白居易)
人有各所好(인유각소호) :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바가 있고
物固無常宜(물고무상의) : 사물에는 원래 항상 옳은 것은 없느니라
誰謂爾能舞(수위이능무) : 누가 학 너를 춤 잘 춘다고 했나
不如閑立時(불여한입시) : 한가롭게 서 있는 때만 못한 것을

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백거이(白居易)
대림사 복숭꽃
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 : 인간세상 4월은 꽃다운 풀이 다 지는데
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 : 산사의 복숭아꽃은 이제야 활짝 피었구나.
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 : 가버린 봄 찾을 곳 없어 길이 탄식했는데
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내) :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다니다가 이곳에 왔소.

문류십구(問劉十九)-백거이(白居易;772-846)
유십구에게 물어본다
綠蟻新배酒,(녹의신배주), 거품 부글부글 이는 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노). 작은 화로에 붉게 단 뚝배기
晩來天欲雪,(만내천욕설), 저녁이 되어 눈 내리려는데
能飮一杯無?(능음일배무) 능히 술 한 잔 나눌 이 없는가

장한가(長恨歌)-백거이(白居易)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 황제 미색을 귀히 여겨 미인을 생각했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 천하를 다스린 지 몇 년 지나도 찾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 양씨 집안에 딸이 있어, 이제 막 성숙하여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 깊숙한 안방에 있어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 타고난 아름다운 본능을 스스로 어쩌지 못해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 하루아침에 뽑히어 임금 곁에 있게 되었다.
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 눈동자 굴리며 한번 웃으면 온갖 교태 생겨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 육궁의 화장한 미녀들이 얼굴빛을 잃었다.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 봄 날씨 쌀쌀하여 화청지에서 목욕하는데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골세응지) : 온천물이 미끄러워 살에 낀 기름을 씻는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 예쁘고 가련하여 무력하여 시녀들이 부축하여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 이 때에 바로 새로 임금님 은혜를 받게 된다네.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 구름머리, 꽃 얼굴, 걸으면 흔들리는 금장식물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 연꽃 장식 휘장 속에서 따뜻한 봄밤을 보낸다.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이미 높이 솟으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 이 때부터 임금님은 아침 조회에 가지 않았다.
承歡侍宴無閑暇(승환시연무한가) : 기뻐 잔치를 벌임에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春從春游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 봄에는 봄 따라 놀고 밤에는 새도록 놀았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 후궁에 미녀가 삼천 명이나 되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 삼천 미녀의 총애가 오직 한 몸에 머물렀다.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 금빛 궁궐에서 화장하고 교태로 황제 모시는 밤
玉樓宴罷醉和春(옥누연파취화춘) : 옥루의 연회가 마치자 취하여 봄날처럼 따뜻했다.
姊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렬토) : 형제자매가 모두 봉토를 나누어 받았으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 부러워라, 광채가 가문에 생생하였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 마침내 세상의 부모 된 사람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 아들 낳는 일보다 딸 낳은 일을 귀하게 여겼다.
驪宮高處入靑雲(려궁고처입청운) : 여궁의 높은 곳으로 푸른 구름 모여들고
仙樂風飄處處聞(선낙풍표처처문) : 신선의 음악이 바람에 날려 곳곳에서 들려온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 느린 노래, 느린 춤이 악기에 어울려 행해지니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 종일토록 보아도 황제는 다시 보고 싶어 했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내) : 어양 땅에서는 전쟁의 북소리가 땅을 울리니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 그 놀라움에 예상우의곡도 소리가 끊기었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 구궁궁궐에서 전쟁의 연기와 먼지 일어나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항) : 수천수만 수레와 말들이 서남으로 피해갔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항복지) : 화려한 깃발 흔들거리며 가다가 다시 서며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 서쪽으로 대궐문을 나와 백여 리를 나갔다.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나하) : 모든 군대가 움직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나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 아름다운 양귀비가 임금 말 앞에 죽는데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 꽃비녀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 없었다.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 취교와 금작과 옥소두 같은 장신구도 버려졌도다.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 임금은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어쩔 수가 없어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누상화류) : 돌아보니, 피눈물이 서로 엉기어 흘러내렸다.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 누런 흙먼지 흩어져 자욱하고 바람은 스산한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 구불구불한 잔도를 지나가서 등검각에 올랐다.
峨嵋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항) : 아미산 아래에는 다니는 사람 드물고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 깃발들은 빛을 잃고 햇빛도 엷어졌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 촉 땅의 물빛은 보석 같고 산은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 임금에게는 아침마다 저무는 마음이었다.
行宮見月傷心色(항궁견월상심색) : 행궁에서 보는 달도 상처받은 양귀비 얼굴빛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도 애간장 끊는 소리였다.
天旋地轉廻龍馭(천선지전회용어) : 난리가 평정되어 임금님 수레 돌아오는데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부능거) : 여기에 이르러서는 머뭇머뭇 차마 떠나지 못한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 땅 속에서도
不見玉顔空死處(부견옥안공사처) : 옥 같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쓸쓸하다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 임금과 신하 서로 돌아보니 눈물이 옷을 적시고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 동쪽으로 여러 대궐문 바라보며 말 가는 대로 돌아간다.
歸來池苑皆依舊(귀내지원개의구) : 돌아오니 연못과 동산은 옛날과 같고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 태액의 부용, 미앙궁의 버드나무도 그대로였다.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 연꽃을 봐도 양귀비 얼굴, 버들을 봐도 양귀비 눈썹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부누수) : 이런 정경보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날이요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섭낙시) : 가을비에 오동나무 잎 떨어지는 때이로다.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 서궁 남쪽 안에는 가을 풀이 무성하고
落葉滿階紅不掃(낙섭만계홍부소) : 낙엽이 계단에 붉게 가득 쌓여도 쓸지 않는다.
梨園子弟白發新(이원자제백발신) : 이원의 자제들 이미 늙어 백발이 새롭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 초방의 태감도 젊은 궁녀도 모두가 늙었구나.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나니 양귀비 생각 처량하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 외로운 등불 돋운 심지가 타버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遲遲鐘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 느리고 느린 종소리를 처음으로 길게 느낀 밤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 밝고 밝은 별과 은하수, 하늘이 밝아오는구나.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 원앙새 장식 기와가 차가워 서리꽃은 더욱 짙고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 비취빛 찬 이불을 누구와 함께 하나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 아득한 생사의 이별은 해가 지나가도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 그 혼백은 아직 돌아와서 꿈에도 들지 않는다.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 임공의 도사로서 도성에 머무는 길손 있어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하는구나.
爲感君王展轉思(위감군왕전전사) : 황제의 잠 못 드는 처지가 가련하여
遂敎方士慇懃覓(수교방사은근멱) : 마침내 방사를 시켜서 은근히 찾아보게 하였다.
排空馭氣奔如電(배공어기분여전) : 구름에 올라 공기를 타니 빠르기가 번개 같아
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 하늘에 오르고 땅을 들며 두루 찾아보았다.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낙하황천) : 위로는 하늘 끝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 찾았으나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부견) : 두 곳이 너무 넓어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다는 말 들었으나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 아득한 사이에 산은 텅 비어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누각령롱오운기) : 영롱한 누각에 오색구름 피어나고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 그 안은 아름다운데 선녀들이 많이 있었다.
中有一人字太眞(중유일인자태진) : 그 중에 한 사람 있었으니 이름은 태진인데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삼차시) : 눈 같이 흰 피부, 꽃 같이 고운 얼굴이 양귀비 같았다.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 황금 대궐 서쪽 행랑에서 옥대문을 두드려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 여종인 소옥에게 전하여 쌍성에게 알려주었다.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 한나라 황제의 사신이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裏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 아홉 겹의 깊은 휘장 속에서 잠자던 혼이 놀랐다.
攬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 옷을 잡고 베개 밀어 제치고 일어나 배회하다가
珠箔銀屛迤邐開(주박은병이리개) : 주렴과 은병풍이 스르르 열리더니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교) : 구름 같은 머리 반쯤 기운채로 막 잠이 깨어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내) : 화관도 정제하지 못한 채로 방에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 바람이 부니 신녀의 소맷자락이 날리어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 예상우의곡으로 춤추는 듯 하였다.
玉容寂寞淚闌干(옥용적막누란간) : 옥 같은 얼굴에 고독이 깃들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 배꽃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이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 정을 품고 눈물을 머금고 황제께 감사하였다.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량묘망) : 한번 이별 뒤에 아련해진 황제의 음성과 얼굴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 소양전각 안에서의 임금의 은혜 끊어진 뒤로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 봉래궁전 안에서의 세월은 길기만 하였습니다.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 고개 돌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不見長安見塵霧(부견장안견진무) : 장안은 보이지 않고 티끌과 안개만 자욱합니다.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 오직 지난날 쓰던 물건 가져다 나의 깊은 정 보이려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 자개함과 금비녀를 부쳐 보내려합니다.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 비녀 한 개와 함 한 쪽을 증거로 남기려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 비녀는 황금을 쪼개고 상자는 자개를 나누었다.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 우리의 마음을 금비녀와 금상 자처럼 굳게 가져서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 천상과 인간세상에서 서로 만나보려 합니다.
臨別殷勤重寄詞(림별은근중기사) : 떠나려 함에 은근히 거듭 부탁의 말을 하니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량심지) : 말 가운에 서약함이 있으니 마음으로 알리라.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 어느 칠월 칠석 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 사람 아무도 없는 깊은 밤에 사사로이 나눈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었기를 원하였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 높은 하늘도 장구한 땅도 다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 이들의 한은 이어져서 끊어질 때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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