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은 예술분야 중에서 하나의 독특한 풍격을 지닌 예술이다. 전각은 서예ㆍ회화의 원리 원칙과 서로 통하며 아울러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으며 더욱이 서예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반천수선생은「인장에 사용하는 문자는 전서를 위주로 하고 간간이 예서ㆍ해서를 사용하기도 하므로 인장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마땅히 먼저 문자학과 전ㆍ예ㆍ해ㆍ초서를 연구해야만 한다. 그 다음으로 분주포백(分朱布白)과 자체가 종횡으로 교착되는 이치를 연구해서 익혀야 한다. 세째로 자르고 새기고 두드리고 깍는 효능을 익혀야 하는데 마치 포정이 소를 가르듯이 막힘없이 여유있게 칼을 놀려야 한다. 네째로 인면에 기세가 돌도록 해야 한다. 표정이 소박하고 풍부하며 풍격이 높고 아름다운 것 등은 서예나 회화의 원리 원칙과 완전히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전각예술은 회화ㆍ조각예술의 특색 외에 주로 서예를 기초로 하여 왕성하게 발전되었다.

중국의 문자는 계서(契書)가 있는데 '계'는 바로 '새기다'는 뜻이다. 세상에 전해지는 갑골ㆍ종정ㆍ비갈ㆍ와당 등을 살펴보면 서법이 정미로울 뿐만 아니라 조각 예술도 뛰어나다. 이것은 서예술의 경지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인장예술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열어 주었다. 그래서 서예ㆍ회화ㆍ전각 할 것 없이 이러한 연원으로부터 발전하지 아니 한 것이 없다. 비록 그것들이 각각의 길을 나아갔지만 그 예술 규율은 결국 서로 통하고 서로 융화되어 일맥상통한 것이다.
전각예술은 칼을 사용하는 것이 마치 글을 쓸 때 붓을 사용하는 것과 같아 보통 「칼을 잡는 것은 붓을 잡는 것과 같다」,「칼을 놀리는 것은 붓을 놀리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일컬어진다. 또한 서예술은「필정묵취」(筆精墨趣 ; 붓과 먹으로 표현되는 정취)를 강구하듯 전각예술도 마찬가지로「도정석취」(刀精石趣 ; 칼과 돌에서 표현되는 정취)의 완미와 숙련을 추구한다. 이것도 바꾸어 말하면 전각에서 표현되는「도미」(刀味 ; 칼의 맛),「석미」(石味 ; 돌의 맛)는 바로 서예에서 말하는「필미」(筆味 ; 붓의 맛),「정취(精趣)」와 마찬가지이다.
그 인면은 지면과 마찬가지로「도봉」에서「필봉」의 정취를 얻어서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게 하고 침착 통쾌하게 하며, 예스런 맛과 강경함, 필치가 웅장하고 굳셈, 단정하고 전아함, 수려하고 갖가지 모양을 나타냄, 완약하고 아름다움, 호방함 등에 이르게 하며, 또한 갖가지 아름답게 표현된 칼날의 흔적은 또 서예의 붓맛을 잃지 않게 한다.

서예의 용필은 마땅히 필법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어야 하며 전각의 용도도 반드시 도법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어야 한다. 그러나 작품상에 있어서는「서예는 금석의 맛이 있어야 하고 금석에는 서예의 맛이 있어야 한다」는 진일보된 경지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서예와 전각은 서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밀접한 연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전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견실한 서예의 기초를 갖고 있어야 비로소「운도여필」할 수 있어서 우뚝 일가를 이루게 된다. 인면은 비록 아주 좁은 공간이지만 지면 상의 서예의 장법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같은 것을 피하고 달리 표현해야 하고 갖가지의 자태로 잘 변화해야 정취가 있고 생동가있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확실히 재능이 있는 전각가는 인문의 분위기ㆍ기운 가운데서 사구와 시의 느낌을 음미하여 재창조하고, 인장을 마치 봄날의 새가 춤추며 날듯이 흐르게 하기도 하고, 겨울산에 쌓인 눈같이 응결되기도 하며, 어떤 것은 가벼운 구름같이 표일하게도 하고, 푸른 소나무같이 굳세게도 하여 한폭마다 생동감이 다른 정취을 구성하게 한다.
성명인중에서도 또한 새긴 사람의 성격 기질과 예술적 소양을 볼 수 있다. 역대의 몇몇 뛰어난 전각가는 서예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회화ㆍ시문에 대해서도 비교적 높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면에서「지반」을 확대하여「대담하게 칼을 댈」수 있었고 전각예술에서 진선진미의 경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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