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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감성서예 - 이모그래피(emography)란?

時丁 2012. 4. 24. 11:18

 이모그래피(emography) 창시자 무산(茂山) 허회태 작가

 

먹의 번짐과 스밈, 글이 만들어 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이모그래피’(Emography)를 만들어 낸 서예가 무산(茂山)  허회태선생 작품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그림을 뜻하는 그래피(graphy)의 합성어인 이모그래피는 전통서법을 바탕으로 개척한 문자예술이면서 동시에 회화라고 할 수 있다. , 서예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한 울림을 준다.
순천 태생인 그는 지난 1973년 중학생 신분으로 한·캐나다 문화재단주최 국제미술전 서예부문 최고상을 받았으며, 지난 1975년 금호고등학교 2학년 때 광주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어려서부터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수상했고, 국전심사위원과 추천작가를 역임했으며 이모그래피를 유명 가구 디자인과 골프채 광고에 활용하는 등 서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표제: 감성과 상상력의 21세기 예술을 만나다
부제: 이모그래피(emography) 창시자 무산(茂山) 허회태 작가
발문: 서법의 달관과 달필 너머에 이모그래피 세계가 있다. 무의‧무욕‧탈속으로 자신과 우주의 일치를 한 획에 담아 거침없이 쏟아 내는 무산(茂山) 허회태. 그의 붓놀림은 세상 모든 것을 마음으로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해 물질 속성 너머의 참 모습을 극대화 시키는 찰라적 표현으로 완성된다.

이미지 시대의 감성 서예, 이모그래피  
무산(茂山) 허회태 작가는 200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독일 한국문화원 초청 전시회에 작품이 처음으로 소개 돼 주목을 받는다. 대형 화선지에 큰 붓이 힘 있게 지나간 흔적에서 내뿜어지는 동양의 에너지에 독일인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서(書)와 화(畵)의 절묘한 조화가 일필휘지의 움직임 속에 꿈틀대는 이 작품은 허회태 작가가 창시한 이모그래피(emography)이다. 이모그래피(emography)는 감성을 의미하는 Emotion과 그림을 뜻하는 Graphy의 합성어로 작가의 감성이 서예와 그림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유롭게 표현되는 회화작품을 말한다.
서예는 아직까지도 대중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허회태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글씨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가는 이모그래피 작품 앞에서 무한대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47년간 서예를 해왔던 허회태 작가는 지난 2005년부터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확고히 하는 이모그래피를 창시해 이미지 시대에 걸맞는 감성 서예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예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모그래피를 창시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계속 필사(筆師)하는 서예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소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서예가 본질적으로 상형문자에서 시작된 것에 착안해서 이모그래피를 개발하게 됐죠” 문자이기 보다는 그림 같고, 순전한 그림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서법의 흔적을 담고 있는 이모그래피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무산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인 것이다.    

이모그래피가 탄생하기 까지
무산 허회태는 지금의 이모그래피를 창시하기까지 길고 외로운 여정에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고 말한다. 다섯 살 때부터 한학자인 백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며 붓을 잡기 시작한 허회태는 어린시절부터 서예의 매력에 빠져 일찍이 자신의 길을 결정했다. 꿈이 있었던 만큼 언제나 기쁨의 마음으로 붓을 잡았지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넉넉지 않았던 집안 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더 넓은 곳에 가서 서예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순천시로 전학을 간 그는 순천에서 서예로 이름을 날리던 벽강 김호선생의 학원에 찾아가 청소도 하고 먹도 갈며 본격적으로 서예를 공부하기에 이른다. “낮에는 학원 허드렛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잠을 줄이고 새벽에 서예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자 하나만 가르쳐주시면 무조건 쓰는거예요.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때 당시 그 서예학원에 귀한 고첩,비첩 자료가 많아 혼자서 베껴 쓰며 연습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 요령을 터득하고 국전을 목표로 서예 연습에 매진한다. 그 후 순천 삼산중학교를 서예장학생으로 진학하면서 입상과 대상을 휩쓴다.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그에게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서예 십년 공부’라는 타이틀로 각종 매체에 소개되었다. 그는 금호고등학교도 역시 서예장학생으로 진학해 각종 서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그 때 당시 개교한지 얼마 안 된 광주 금호고등학교를 널리 알리는데 한 몫하며 서예특대장학생으로서 교실 한 칸을 쓰며 서예 공부에 매진한다. 자신만의 개인 서예전을 열어야겠다는 목표로 밤을 새가며 서예 연습을 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전남 도전에서 입선을 한다(현재는 학생은 일반부에 출품을 못한다). 그 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유례없이 개인전을 열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붓을 잡고 천자문을 떼기 시작한 유년시절부터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고 거침없이 달려온 한 소년의 열정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후 그는 독학으로 서예 내공을 탄탄히 쌓는다. 열흘에 붓 한 자루가 닳고 한 달이면 20여개의 먹을 썼을 정도로 허회태의 서예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세시간 이상 자지 않고 연습에 매달린 끝에 85년도부터 국전 동아 예술제 입선을 시작으로 92년도에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하고, 95년도에 이르러서는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목간체의 '이옥봉 시'로 대상을 차지한다. 목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서예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허회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서울대학교 중국학과로 진학해 만학도로 대학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상명대에서 ‘서(書)에 근원을 둔 회화의 현대적 표현 연구’ 석사 논문을 내며 끊임없는 연구를 한다. 서예에 관한 모든 것을 두루 섭렵하고 한국화 전공 석사를 해오면서 2004년도부터 자신만의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를 강렬히 느낀다. 그의 이러한 바램은 상명대학교 이종상 교수를 만나면서 더욱 깊어져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모그래피를 검증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일단은 서예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장르 불문이라는 점에서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의 서예의 틀을 고수하고자 하는 보수적인일부 작가들의 비판도 있었다.
  세계적인 미술평론가인 류병학씨는 그의 작업을 “디지털화로 인해 문자보다 이미지를 선호하는 오늘날 문화 현상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작가 정신이 돋보인다”며 “허회태의 작품이 흔히 아시아의 서예 및 철학에서 영향을 받아 작업한 마크토비, 아돌프 고틀립, 프란츠 클라인보다 더 많은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모그래피, 감성과 상상력의 21C 예술
무산(茂山) 허회태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말이 많아진다. 도대체 어떤 글씨인지 무엇을 나타낸 그림인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해독 불가한 그의 작품 앞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옆 사람과 자유롭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허회태는 “제 작품 속에는 굳이 해석해서 풀어야 할 답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감성이 닿는대로 그냥 느끼고 바라보면 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서예 해독의 어려움을 해방시키면서도 필묵자체에 작가의 감성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베어있다.
그의 근작 ‘일체무애’는 이러한 이모그래피의 특징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서법 요체인 중봉, 일과삼절, 팔면출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넓은 화선지 위에 오직 한 획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머릿속이 몽롱하고 아지랑이가 피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나의 호흡과 붓이 하나가 되어 정신없이 획을 긋다 나도 모르게 한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 희열을 느낍니다.” 자신의 혼을 쏟아 단숨에 쏟아내는 그의 작품 속에는 천지인 3재(才)를 실현코자 운필하는 방법으로 3박자의 획을 만들고 있다. 무산은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유구한 천지인(天地人) 3재론을 자신의 우주이자 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하나는 없음에서 시작하고 시작된 하나는 셋으로 쪼개어져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는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을 뜻 삼아 천지인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 ‘천년의 품속’, ‘시원’, ‘요연’ 그리고 근작 ‘일체무애’,‘무이심’,‘상동’에서 보여지고 있는 이모그래피의 시‧서‧화의 통합과 운필법은 한국고유의 태현을 실현하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소통이 된다는데 큰 장점이 있다. “미소와 눈물과 같은 것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통용이 됩니다. 많은 감정이 있지만 한 가지 모습으로 응축해 가장 단순화시킨 그림이자 사실적 축약이 이모그래피죠.”

인터뷰 박스
“진정한 삶은 생활 속에 희망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느끼세요. 예술의 풍요로움을 만끽하세요.”
무산 허회태가 이모그래피 작업을 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방배동의 ‘무산서예’를 들어서면 은은한 먹 내음과 종이향이 마중한다. 그의 얼굴에 머물고 있는 여유롭고 편안한 미소에서는 서예가의 풍모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그의 확고한 말에서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거침없는 열정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일획의 찰나적 순간을 표현하는 힘은 그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강(强)과 유(柔)의 조화로움 때문인 듯 했다.

Q 이모그래피를 보면 서(書)와 화(畵)의 관계성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선생님의 작품에서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다양하고 복잡한 예술의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없지만 '서(書)에 근원을 둔 회화의 현대적 표현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면서 제 작품세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서와 화의 관계성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모그래피는 서를 통한 상형성과 자연물의 규율성에 의해, 그리고 자연물의 접합을 통해 미적 체험을 느끼게 하는 요인을 반영하여 회화 작품화 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제 작품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갑골문에 근거를 둔 상형적 표현의 작품, 표의문자를 토대로 한 작품,자연물의 접합을 통한 형상적인 작품들로 볼 수 있습니다.

 상징성과 회화성이 강한 서예적 필획들을 결합한 작품이라고 보면 될것입니다.

Q 제자들 에게 교육을 시킬 때 주로 무엇에 중점을 두시나요?
A 붓과 운필의 원리를 맨 처음 가르칩니다. 단순히 붓을 쓰는 테크닉이 아닌 자신의 기를 모아 붓으로 흘러 보내는 것을 연습합니다. 머리에서 보낸 기가 다섯 손가락으로 모아져 만가닥의 붓으로 해서 하나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서예의 기,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붓만 잘 쓰면 기능인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성을 운필법과 일치 시켜 하나 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데 주력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산서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Q 앞으로 국내외 전시 계획은?
A 버지니아 주립대 박물관에서 이모그래피 창시자라는 타이틀로 2010년 봄에 대형전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는 2008년 11월4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이모그래피 전시가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개인전과 뉴욕 등 3개 대학에서도 정식으로 초청받았는데 차차 준비해 나가야죠. (삭제) 여력이 된다면 더 많은 곳에서 제 작품을 전시하고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Q 많은 사람들이 서예작품을 접하는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예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A 이모그래피가 서예에 근거를 둔 회화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이보다 더 광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화란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몇천 년동안 해왔기 때문에 쉽게 정의내리지도 못하고 내 것도 맞고 다른 사람 것도 맞는 것입이다. 형식과 틀에 얽매이기보다 그냥 느끼면 됩니다. 진정한 삶은 생활 속에 희망을 조각하는 것입니다. 예술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자마자 느끼십시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세요. 예술의 풍요로움을 맘껏 즐기길 바랍니다.

취재_박종선/이명진 광주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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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惠風 김광희 - 書藝術
글쓴이 : 혜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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