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입문/서예자료

전국시대 초간과 서예

時丁 2013. 3. 1. 21:50

 

 

戰國時代 楚簡과 書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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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店楚墓竹簡’이란 1993년 10月 18日부터 24日까지 荊州市博物館이 中國 湖北省 荊門市 沙洋區 四方鄕 郭店村에서 발굴한 戰國時代(약 BC 475 -  BC 221)의 楚나라 竹簡을 말한다.

‘郭店楚墓’의 관곽(棺槨) 頭箱에서 竹簡이 804여 매가 발견되었다. 이 죽간은 도굴 때문에 약간  파손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13,000여 자에 이른다. 죽간의 길이는 약 15∼32.4㎝이고, 너비는 약 0.45∼0.65㎝이다. 竹簡의 형태는 평평하게 다듬은 것과 사다리 모양으로 다듬은 것 두 종류가 있다. 竹簡 중간에는 두 곳 혹은 세 곳을 묶은 編線 흔적이 남아있다.《郭店楚墓竹簡》 (경우에 따라서는 《郭店楚簡》으로 간칭 하기로 함)의 내용은 道家와 儒家의 저작들이 주를 이룬다.

출토 당시 編題가 없어 각 내용에 따라 연구자들이 적절한 編名을 첨가 하였다. 이 저작물들은 今本 古籍에 보이지 않거나, 今本에 보이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編章의 結構순서와 내용 등이 상당히 달라 미미함을 보충할 수 있는 귀중한 고적 자료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하석 박원규선생님 초간 작품

 

 이 竹簡이 출토된 후 荊州博物館은 정리팀을 조직하여 《老子· 甲乙丙· 《太一生水》·

《緇衣· 《魯穆公問子思· 《窮達以時· 《五行· 《唐虞之道· 《忠信之道· 《性自命出·

《成之間之· 《尊德義· 《六德· 《語叢 · 一二三四》등 13편의 내용을 정리해 냈다.

 ‘郭店楚墓竹簡’은  하나의 묘 관곽 내에서 발견된 죽간 중 역대 가장 많은 양이다.  ‘郭店楚墓竹簡’은  현재《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上海古籍出版社, 2001부터; 경우에 따라서는 《上博楚簡》으로 간칭하기로 함)과 함께 줄곧 학술계에서 초고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郭店楚墓竹簡’에 관한 연구논문과 전문서적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上海博物館藏 戰國楚竹書

 

 

 《緇衣》편은 《郭店楚簡》과《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중의 한편이다. 上海博物館이 소장하고 있는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는 1994년 상해박물관이 홍콩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하여 2001년에서 2007년까지 각각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一·二·三·四·五·와 六권을 발표하였다. 이《上博楚簡》은 중국 湖北省 江陵 일대에서 출토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모두 133여자 枚이다.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중 

《緇衣》편과  《성정론(性情論)》은 《郭店楚簡》에도 보이고 있다.《性情論》을 《郭店楚簡》은

《性自命出》이라 명명하고 있다. 《上博楚簡》역시 세상에 공포된 후 학계에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이들 초간죽서는 문학, 철학, 역사와 정론(政論)은 물론, 고문자학 연구에 매우 중요하고 광대한 자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예 예술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秦簡이 전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일반적으로 秦簡만을 예서(隸書)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데, 楚簡의 문자 구조와 필획의 특징에서 이미 예서의 초기 형태를 엿볼 수 있으며, 초죽서로 기록한 경서는 춘추전국 각국 간에 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고, 초간백서에서 변화된 문자가 한간(漢簡)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초간백서와 예서의 관계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서의 발상은 진간과 동시에 초간백서도 중요한 역활을 하였고, 붓으로 쓴 현재 발견된 간백서 중 초간백서가 형태나 필세 등으로 미루어 秦簡보다 이른 시기의 隸書의 초기형태이다.

 

 

 

사어당 최남규교수님 작품

 

 《緇衣》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중국 경서 《禮記》중의 한 편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禮記本과

 《上博楚簡》·《郭店楚簡》의 《緇衣》는 내용이 서로 같기 때문에, 이들 셋은 서로 비교 고찰한다면, 초죽간 서체의 특징은 물론, 같은 자를 다르게 쓰는 이체자(異體字)현상, 소리가 서로 같거나 유사하여 빌려쓰는 通假字 등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행하는 예기본의 《緇衣》의 진면목을 알아 낼 수 있다.  

《郭店楚簡》의 《緇衣》는 모두 1156자, 《上博楚簡》《緇衣》는 모두 978자,   《禮記本》《緇衣》는 1549자이다. 《禮記本》《緇衣》는 25장으로 되어 있으나, 《郭店楚簡》《上博楚簡》은 모두 23장으로 되어있다. 《禮記本》의 제1장 · 제16장과  제18장이 《郭店楚簡 》과《上博楚簡》에는 없고 《禮記本》의 제7장과 8장이 《郭店楚簡》과《上博楚簡》에서는 제14장 · 15 · 16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전국시대에는 《緇衣》가 본래 23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전해 내려오면서 한대의 유학자들이 수정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緇衣》는 《詩經》 모두 22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 중 9곳은 《大雅》이고 《小雅》는 8곳, 《國風》은 4곳에서 인용하고 있고, 하나는  逸詩(전해내려오지 않는 시)이다. 《書經》은 모두 10곳에서 인용 하고 있는데, 그 중 8곳은 《今文尙書》에서 인용하였고, 한 곳만이 《古文尙書》에서  인용하였으며, 나머지 한 곳은 逸書(전해 내려오지 않는 책)에 해당된다.

 

 

 자료출처 : 戰國時代楚簡과 書藝 (崔南圭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