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비(藝器碑)
서기 156년 건립 산동성 곡부 공자묘 소장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묘의 비림에는 한위(漢魏)이후 공자와 관련된 여러 석비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을영비(서기153년), 사신비(서기 168년)와 더불어 공묘삼비라 부르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예기비이다.
예기비는 후한 영수 2년, 서기 156년 세워진 비로 한나라 노상인 한래가 공묘를 중수하고 제례에 사용할 예기들을 갖추게 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인데, 서예사에서는 한나라 예서의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팔분예의 정상으로 꼽는다.
팔분예(八分隸)란 청나라 옹방강이 팔자분산이란 표현으로 한나라 예서의 특징을 이전의 전서와 비교해서 표현한 것으로 소전이 장각에 의해 길쭉하게 늘어지는 형태임에 비해 八이라는 글자처럼 좌우로 분산되는 결구를 가진 예서체이다.
예기비 서체의 가장 큰 특징은 파법에 있고, 파책의 마지막에 한껏 힘을 주어 강하게 긋는 필법은 힘차고 상쾌하여 매우 돋보이게 표현되는 데 있다. 더불어 一 二 三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횡획에서 느긋하고 대범한 결구와 기필에서 종필의 파임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운필법은 팔분예 서법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9-3. 조전비(曺全碑)
후한 중평 2년 서기 185년 높이 272CM 너비 95cM
서안 비림박물관 소장
한나라 예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명비로 건립 후 땅속에 파묻혔다가 명대 만력(1573~1619) 초년에 섬서 함양 고성에서 출토되었는데 출토 당시 온전하였으나 지금은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본문은 20행 849자이며, 비음으로 441자가 새겨져 있다.
지금 전하는 탁본은 대부분 비석이 깨진 후의 탁본이며, 출토 당시의 미단본 탁본은 매우 희귀한 가치를 지닌다. 비문은 오랜 세월 매몰되어 있었던 관계로 현재도 글자체가 또렷하며 그 서법은 기예가 능수능란하다. 장봉으로 붓을 기필하여 윤택함을 더하였고, 붓을 가지런히 천천히 펴서 표일한 멋이 나며, 배치를 뚜렷하게 하여 균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있어 우아하고 수려한 서풍은 후한 예서 전성기의 최우수작으로 꼽히며 현존하는 수많은 한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비석의 하나로 꼽힌다. 비문에는 조씨 일가의 가계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고, 특히 후한 말기 농민 봉기에 관한 중대한 역사사건이 적혀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9-4. 장천비(張遷碑)
서기 186년, 후한 영제 중평 3년 건립 높이 285cM 너비 96Cm
동평주학 소장
기원 전 206년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400여 년간 존속해 오다가 서기 220년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나라에 망하고 소설 삼국지의 무대가 전개된다.
석문송(148)에서 출발하는 한예명비 또한 을영비(153), 예기비(156), 사신비(168), 조전비(185)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고 장천비(186)에 와서는 고졸한 서체로 변모하게 된다.
이 비의 제목은 한고곡성장탕음령장군표송이며, 제목이 말해주듯 장천이 곡성장으로 재직 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그의 선덕을 표송하기 위한 것으로 장천이 탕음령으로 전보될 때 건립한 것으로 본다. 비문은 16행 566자, 서체는 한마디로 졸박하고 고직창휘하여 얼핏 무표정하고 평범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결코 단조롭거나 무표정한 서품이 아니며 조전비나 예기비에 비하여 필획이 살찌고 장중하다. 조전이 여성적이고 유려한 서품이라면 장천은 남성적인 졸박의 웅건한 서품으로 경박을 지양하여 미세한 변화를 숨기고 감추어 두텁고 후덕한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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