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구려
광개토대왕 능비 고예체
2.백제
사택지적비와 무년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에서는 육조체
3.신라
신라의 서풍은 행서는 왕희지체
4.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주로 해서인 구양순의 필법이 성행
화엄경각서 진흥왕 순수비및 무장사비등의 서적과
최치원의 진감선사비는 구양순과 왕희지의 필법을 겸비한 해서
신라제일 명핑로 칭해지는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백월서 문탑비도 명품서로 꼽힘
5.고려시대
서예는 행서는 왕희지 해서는 구양순의 필법이 일색 석단연이
우리나라 최초로 안진경 필의의 서체를 시도함
후기에는 원나라의 조자앙의 송설체가 유행하여 조선 중기까지 많은 영향미침
서가로는 이암 한수 장단설 이제현
6.조선시대
고려말에 성행된 송설체가 그대로 계승되어 안평대군이 특출
세종조에 이르러서는 왕희지의 서풍도 아울러 널리 쓰이게 되었고
선조조인 중기에는 한석봉이 왕희지 안진경 조자앙의 서체를 배워 한국적 자기 경지를
개척하여 중국에까지 명성과 서적이 유포
후기에는 윤순 이광사등이 한국적인 개성이 풍기는 서풍을 고양시킴
신위는 동기창의 서체를
조광진은 안진경의 서풍을 체득
추사 김정희는 중국을 실제 답래하면서 금석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옛법첩들을 널리 상고탐습하여
한국서예에 빛나는 추사체의 창안으로 불후의 일맥이 구축되고 일가종주를 이루었다.
7.근대(일제 강점 36년 저항파와 타협파의 서예가)
구한말로부터 광복까지는 오세창이 전서를 연구하여 한국최초의 전서 대가가 되었고
김돈희는 황정견과 안진경을 섞어쓰는 해서와 예서에 능하였다
안종원의 각체를 비롯하여 안진경풍의 김태석 오창석풍의 이한복등과
중국서예가들의 특장으르 연구 체득하여 자기 일가를 개척한 해강 김규진이 거목으로 손 꼽힌다.
저항파 서예가
김가진,윤용구,현채,민영환,남궁억,오세창,장지연,이시영,민형식,이승만.김구.안중근
김용진,조소앙,신익희,정인보
친일적 경향의 서예가
김성근 이완용,박제순,민병석,정만조,박영효,정병조,김돈희
일제 강점기의 작가
오세창(1864-1953)
오경석의 아들 만세보 대한민보 사장 3.1운동때 33인중 한사람
전예와 전각이 뚜어남 전각은 김태석과 함께 근대 한국 전각가의 대부
김돈희(1871-1936)
서화협회회장 전.예.해.행.초.각 체에 능하였으며 해행은 안진경 예서는 분방한 필세
당대의 대가이지만 일제때 식민지 문화정책에 적극 참여
이 한복(1877-1940)
한국의 동양화가로는 촤ㅣ초로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일본화과 졸업
그는 회화에서는 민족성이 강한 평자들로부터 왜색화풍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오창석의 전서와 행서풍을 쪼ㅈ아 고격을 이루었다
지창한(1851-1921)
군수를 역임한 문인 서화가
하소기체의 글시와 수묵을 즐겨 개성적인필치 드러냄 용필의 형상이 파격적
민영익(1860-1914)
개화당 일파와 대립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오창석과 교우
난죽과 안진경서법 그는 오창석과의 교우로 서 화 각이 잘 어울린 문인화 신국면 열었으며
오창석의 전각 300여 과를 받은 사실이 유명하다
서병오(1862-1935)
영남의 대표적인 풍류서화가 안진경 서법의 행서와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풍으로 유면
삼절 팔능이었던 그는 1922년 대구에 교남서화연구회 발족 초대 회장 지방 화단의 종장
김규진(1868-1933)
18세중구유학하여 10년간 서화를 연구 귀국후 1896년부터 10년간 영친왕의 사부로서 서법지도
전국의 사찰의 현판에 많은 제호를 남겼음
김용진(1882-1968)
안진경의 서법 오창석의 서와 화풍을 연구
그는 조선시대 마지막 사대부 문인으로 국전 서예부 심사위원(1949-1957)지냈고
서울대 동방연서회 등에서 후진양성
김태석(1875-1953)
위창 오세창의 생질로 일찍이 중국과 일본을 만유하면서 전예와 전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옥새를 새기는등 전서와 전각으로 유명한데 위창과 더불어 근세 한국전각ㄱ계의 상벽으로 군림
전각제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최규상. 정해창.민택기등
8.1945년 8월 15일 광복(광복과 새로운 서예문화의 형성)-현대
해방3일만인 1945년 8월 18일 서울에서 이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조직산하로 미술단체로는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직 45년 10월 20일부터 10일간(해방기념 문화축전전미술전)을 열었다
이무렵 서예인들의 단체가 광복후 처음으로 발족 그것이 소전 손재형의 주도로 1945년 9월에 결성된
(조선서화동연회)였다 회장 손재형 고문으로 오세창 안종원 고희동등이 추대. 당시 일본인이
주로 써오던 (서도)라는 말대신 (서예)라는 말을 쓰자는 주장은 소전이 내어 그후 서예라는 말이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서화동연회는 발족 1년만에 1946년 8월( 해방전람회)라는 이름아래 제 1회 서화동연회전을 현재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