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세상에 떠도는 뜬 소문.

[동]道聽道說(도청도설),街談巷語 (가담항어) [출전] 『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 [내용1]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道聽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논어) [내용2]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한서) [내용3]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순자) [원문]街談巷說 必有可采.-- 『文選』與楊修書 / 小說家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語 道聽塗說者之所造也 -- 『漢書』藝文志 [참고] 稗官文學(패관문학)--패관(稗官; 지난날, 임금이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기 위하여 가담항설을 모아 기록하게 하던 벼슬아치)이 수집한 소문과 풍설에 패관의 창의와 윤색이 가미되어 민간의 가담과 항설 등을 주제로 한 일종의 문학 형태를 갖추게 된 설화 문학. 소설이란 말도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고려 중 후기에 성행하였음. 이규보의 『백운소설』,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따위 [註]**巷間, 村間, 俗間, 民間, 坊間, 閭港, 世俗, 風間. ** 街 : 곧고 넓은 길. 巷: 좁고 구불구불한 길.

[예문1]그라운드에 유령 같은 가담항설(街談巷說)들이 떠돌고 있다. 어찌보면 해괴망측하다. 하지만 찬찬히 곱씹어보면 이만큼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도 없다. 기아가 예상을 뒤엎고 선두를 질주하자 생겨난 우스갯소리다. 기아의 전신 해태 단장을 역임한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빗댄 말. 지난해 박용오 KBO 총재가 구단주를 지낸 두산이 우승했으니 올해는 이상국 사무총장이 거친 기아 차례라는 이른바 음모론(?)이다. 많은 야구인들이 입에 올리는 농담이지만 특별한 악의는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기아가 두산을 따돌리고 1위를 계속 달리자 “총재 구단이 총장 구단을 못 당한다”는 속편도 나왔다.<스포츠 투데이> [예문2]브라질 현지에서 대한축구협회의 이름을 팔아먹는 유학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기자 역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근거 없이 떠도는 가담항설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브라질 현지 축구학교와 대한축구협회 담당자에게 확인한 바로는 아직까지 축구협회와 연계해 브라질유학을 실시하고 있는 유학업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 한 곳도 없다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들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 **斂出(出斂-->추렴)./갹출(醵出).--돈이나 재물을 거두어 냄
[원문]苛斂: 憲宗擢皇甫 爲相, 苛斂剝下人, 皆咎之, 以至譴逐. -"舊唐書", '穆宗紀'/ 誅求: 誅는 責. 以 邑 小, 介於大國, 誅求無時, 是以不敢寧居. -"左氏傳" 三十一
[유]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내용]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날 공자가 태산의 곁을 지날때, 부인이 묘지에서 곡하며 슬퍼하거늘, 공자가 엄숙히 이를 들으시고, 子路로 하여금 그에게 물어 말하되“그대의 곡성은 한결같이 거듭 근심이 있는 것 같으니라.” 이에 말하기를“그러합니다. 옛적에 나의 시아버지도 호랑이한테 죽고, 나의 남편도 또 그것에게 죽고, 이제 나의 아들이 또 그것에게 죽었습니다.”공자가 말씀하시되“어찌 이곳을 떠나지 않았습니까?”하니“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공자가 말씀하시되“제자들아 이를 들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것 이니라.” [원문]孔子가 過泰山側할새, 有婦人이 哭於墓者而哀어늘 夫子가 式聽之하시고 使子路로 問之曰 “子之哭也는 壹似重有憂者로다.”而曰“然하다 昔者에 吾舅死於虎하고 吾夫又死焉하고 今에吾子又死焉이니라.” 夫子曰“何爲不去也오.”曰“無苛政也니라.”夫子曰“小子아 聽之하라 苛政이 猛於虎야로다.” **過지날 과/哭울 곡/哀슬플 애/聽들을 청/舅시아비 구 [예문1]부래설화[浮來說話]에는 절이 나 궤짝·바위·산 등이 떠내려오거나 이동한 이야기가 있는데 산의 이동을 주로 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강원도 지역의 특색이다. 산악이 유달리 많은 지리적 환경이 가져온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부래설화의 주제의식은 지배층의 가렴주구를 비판한 민중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근원도 모르는 부래자 때문에 민중이 겪는 고초를 극복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를 입증한다 [예문2]이 후로 길동이 호(自號) 활빈당이라여 됴션 팔도로 단지며, 각읍 슈령(守令)이 불의로 물이 이시면 탈취허고, 혹 지빈무의(至貧舞衣)이시면 구졔하며, 셩을 침범치 아니하고, 나라의 쇽물은 츄호도 범치 아니하니, 이러므로 졔적이 그 의취(意趣) 탄복하더라.- 『허균-홍길동전(洪吉童傳)』 중에서 [예문3]조선시대 서거정의 패관문학 중 ‘돼지가 삼킨 폭포’라는 작품이 있다.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한 수령이 한 승려에게 “너의 절의 폭포가 좋다더구나”라고 말했다. 폭포가 무슨 물건인지 모르는 승려는 그것마저 또 빼앗으려 하는가 두려워 “저의 절의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버렸습니다(猪喫瀑布)”라고 답했다.
[예문4]"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天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漏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글 뜻 은,"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인의 피요, 옥소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춘향전)
[예문5] 영주(永州) 땅에는 기이한 뱀이 나오는데 검은 색 바탕에 흰색무늬로 그 뱀이 초목에 닿기만 하면 초목이 모조리 말라 죽었고, 사람이 물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이 죽어야 했는데, 이렇게 독한 까닭에 심한 중풍이나 팔다리가 굽는 병, 악성종양 등을 치료하는데 쓰일 수 있었다. 그래서 왕명에 의하여 이 뱀을 잡도록 하였고, 이 뱀을 1년에 두 마리를 바치는 사람에게는 조세를 감면해 주었다. 그만큼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목숨을 걸고 해야 할만큼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그럼에도 영주사람들은 앞다투어 그 뱀을 잡아 드렸다. 이 마을에 장씨(蔣氏)라는 자가 있었는데 삼대에 걸쳐 이 일에 종사하여 왔다고 했다. 그런데 꽤나 슬퍼 보여서 그 까닭을 물으니 "제 조부도 그 뱀 때문에 죽었고, 부친도 그러하였으며, 저도 몇 번이나 죽을 뻔하였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에 "그럼 세금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지요"하니 "이전부터 뱀 잡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오래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저희 가문이 이곳에 산지 삼대(三代)가 되었지만 이웃 사람들의 생활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날로 궁핍해졌습니다. 또 이리 저리 나라에서 거둬가는 것들이 많아 먹고 살 길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다가 굶주림에 쓰러지기도 하고, 추위에 얼어 죽고, 전염병에 걸려 죽어서 지금은 열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혹독한 관리가 마을에 와서 소란을 피우면 마을 사람들은 물론 개나 닭까지도 모두들 잔뜩 놀라 움츠리며 눈치를 보고 있지만, 저는 1년에 두 번 뱀을 바칠때만 바치고 나면 평소에는 그러한 시달림은 받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러니 대체로 1년중 죽음을 무릅쓰는 때는 두어 번이고, 나머지는 편히 지낼 수 있는 것이지요. 비록 제가 이일을 하다가 죽더라도 이웃사람들보다는 늦게 죽는 것이니 어찌 제가 이일을 마다하겠습니까?"『고문진보 古文眞寶』유종원(柳宗元)의〈포사자설 捕蛇者說〉 [예문6]푸짐한 상차림은 참혹한 비극 호남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예전의 읍자리 부근에 유난히 비석이 많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만히 다가가 풍진에 희미해진 글자를 한자 한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확인해보면 대개는 ‘전 현감 ○○ 영세불망비’니 ‘전 부사 ×× 송덕비’니 하는 것들이다. 10여년 전 광주에서 나주를 지나 목포를 가게 되었는데, 광주에서 목포 가는 구도로를 따라 예의 그 선정비와 송덕비가 촘촘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서 나는 이 ‘선정비’들이 봉건시대에 호남 민중들이 얼마나 가렴주구를 당해왔는가를 확인해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했다.<2003.6 한겨레21>
☞집에서 온 반갑고 소중한 편지는 만금의 가치가 있다.
[출전] 詩聖인 唐나라 杜甫(712∼770, 字 : 子美, 號 : 少陵) 『春望 』 [원문] 國破山河在,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고, 春城草木深.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感時和賤淚,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烽火連三月,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家書抵萬金.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白頭搔更短,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渾欲不勝簪.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 深(깊을 심) 淚(누물 루) 烽(봉화 봉) 抵(해당할 저) 搔(긁을 소) 渾(온통 혼) 簪(비녀 잠)
[참고]杜詩諺解두시언해
 ▶두보의 나이 46세 때 안록산의 난으로 함락된 장안(長安)에서 지은 작품이다. 오언 율시로 각 2행씩이 모여서 하나의 연을 이룬다. 두련(頭聯)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구절로, 나라가 망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풀과 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세사(世事)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새가 울어도 헤어진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놀란다고 한 함련(稟聯)은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으로, 난리통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두보의 간절한 심회를 잘 표현하고 있다. 경련(痙聯)에서는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을 노래하고, 미련(尾聯)에서는 타향에서 덧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동] 紅顔薄命(홍안박명). 美人薄命(미인박명) [속담]미인은 팔자가 사납다. [출전] 蘇軾(字 : 子瞻, 號 : 東波)의 시 『薄命佳人』’ [내용]
두 뺨은 엉긴 우유빛, 머리엔 옻을 발랐는데 눈빛은 발로 들어와 구슬처럼 또렷하구나 원래 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만들고 붉은 연지로 타고난 바탕을 더럽히지 못한다 오나라 말소리는 귀엽고 부드러워 아직 어린데 한없는 인간의 근심은 전혀 알지 못한다 예로부터 가인은 대부분 박명이라 하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면 버들꽃도 지고 말겠구나
[원문] 雙頰凝수髮抹漆, 쌍협응수발말칠
眼光入簾珠的白樂. 안광입렴주적백락 故將白練作仙衣 고장백련작선의,
不許紅膏汗天質 불허홍고한천질. 吳音嬌軟帶兒癡 오음교연대아치,
無限間愁總未知 무한간수총미지. 自古佳人多命薄 자고가인다박명,
閉門春盡楊花落 폐문춘진양화락. - 蘇軾, 薄命佳人
[해설] 작자가 항주(杭州), 양주(楊州) 등의 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간에서 나이 삼십이 넘었다는 어여쁜 여승(女僧)을 보고 그녀의 아리따웠을 소녀 시절과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미인의 운수가 기박함을 쓴 것이다. 요즘 이 말은 미인단명(美人短命)의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나 '박명'이란 반드시 수명의 짧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도 보이는 것같이 무언가 순탄치 못하고 불행해지기 쉽다는 것이 원래의 뜻이다. 수명의 장단(長短)과는 관계없이 평탄치 못한 인생 행로를 가리킨 말이라고 보아야 하겠다.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 중에 군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 당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가인박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있다. [예문]중국 역사를 살펴봤을 때, 이쪽 여성들의 미모가 출중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하나인 양귀비(楊貴妃)의 고향이 샨시성 화인(華陰)이고, 역시 4대 미인 가운데 하나인 초선(貂蟬)의 고향도 성은 다르지만 거리상 그다지 멀지 않은 산시(山西)성 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의 여성들이 아름다운 것은 역사적 근원이 있다. 하지만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성어를 증명하듯 이곳 출신의 미녀들도 항상 슬픈 운명을 품고 있었다. 또 이 성어와 더불어 같이 따라다니는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이게하는 여자)도 그다지 그른 말이 아니라고 중국 역사는 증명한다. <2002.11 오마이뉴스>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뼈에까지 사무쳐 잊혀지지 아니함.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 어떤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둠.
[참고]좌우명(座右銘)--늘 자리옆에 적어놓고 경계로 삼는 글귀(motto) [예문1]조실 옆에 필요 없이 전등이 켜 있는 것을 보시고 시자에게 "끄라." 하신 후 말씀하셨다. "나에게 아무 관계 없는 것이라고 해서 아껴 쓸 줄을 모르는 자는 허공에 큰 빚을 지는 것이니 너희들은 각골 명심하여 저런 전력을 헛되이 소모하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쓸 자리에 쓸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원불교 설교문>중에서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
[예문1]KNCC는 이미 가칭 '남북기독교연맹'의 창설에 의견을 접근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19일 금강산에서 남북한 교회대표자들이 합동예배를 갖기로 하는 등 한기총에 비해 한층 더 발빠른 움직임이다. 이와 관련, 한기총과 KNCC가 8.15에 맞춘 이벤트나 북한 포교의 선점 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교회일치' 없이 '각자도생'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크리스천 시사 클리핑]
[예문2]현덕은 서울 삼청동의 한 별장에서 태어났다. 이는 구한말 궁궐의 수비대장으로서 종2품에까지 오른 그의 조부 현흥택(玄興澤, 1858-1924)의 위세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의 부친 현동철(玄東轍)은 금광에 손을 대다 가산을 탕진하고 밖으로 나돌았으며, 식구들은 각자도생으로 친적 집들을 돌며 살았다[현덕문학의 재조명] [예문3]진실로 흥서가 오묵골 노마네 집 논에 생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해마다 흉풍이 없이 양석 가까이 소출이 나는 근처서는 골답으로 꼽는 닷 마지기 논이다. 그러지 않아도 농토라는 게 남의 소작이 겨우 서너 마지기 천둥지기가 있어 농사 짓는 흉내나 낼 뿐, 그 모자라는 벌충은 식구가 각자 도생으로 여자는 여자대로 시오 리 밖까지 바다 물줄기를 따라나가 조개를 캐다는 밤새 까서 이튿날 새벽에 안팍 오십 리 길을 걸어 항구로 팔러 나간다[경칩]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하지는 못한다.
[내용]모든 생물은 장점(長點)과 단점(短點), 강점(强點)과 약점(弱點)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작고 힘도 약한 토끼지만 잘 듣는 귀와 잘 뛰는 다리 그리고 한 번에 많은 수의 새끼를 낳는다. 뿔이 있는 놈(角者)은 이빨이 없다(無齒)는 얘기는 장점만 가지고 있는 생물은 없고 단점만 가진 생물도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저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말로,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뻔하다는 뜻.
[출전]『左氏傳 』 [내용]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하고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두산백과>
☞배에 새기어 칼을 찾음. 시대의 변천을 모르고 융통성이 없이 어리석음.
[유]守柱待兎수주대토 / 미생지신尾生之信 / 膠柱鼓瑟교주고슬 / 墨城之守묵성지수 [속담] 제 털 뽑아 제 구멍 박기./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출전]『呂氏春秋 』 [내용]초나라 사람중에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그의 칼이 배에서 물속으로 떨어지니 갑자기 그 배에 표시를 하고 말하기를 이 곳은 내 칼이 따라 떨어진 곳이다. 하고 배가 멈추자 그가 새긴 곳으로부터 물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으려고 했다. 배는 이미 지나왔는데 칼은 지나지 않았으니 칼을 찾는 것이 이와 같다면 또한 미혹되지 아니한가? 옛날의 법으로써 그 나라를 다스리면 이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때는 이미 지났으나 법은 바뀌지 않았으니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呂氏春秋 』 [원문]楚人有涉江者, 其劍自舟中墜於水, 遽刻其舟, 曰: "是, 吾劍之所從墜." 舟止, 從其所刻者, 入水求之, 舟已行矣, 而劍不行, 求劍若此, 不亦惑乎. 以古法爲其國, 與此同. 時己徙矣, 以法不徙, 以此爲治, 豈不難哉?-『呂氏春秋』 **涉건널 섭/墜떨어질 추/遽문득 거/刻새길 각/豈어찌 기/哉어조사 재 [예문]옛날, 어느 시골의 늙은이가 그의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사위감을 고르려고 노나무 궤를 만들고, 거기에 쌀 쉰다섯 말을 담아 두었다. 그런데 그의 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바보 장사치에게 그것을 몰래 알려 주었고, 그 바보는 늙은이의 사위가 되었다. 나중에 그 노인이 사위더러 소의 상(相)을 보라고 하자, 사위는 '노나무 궤'라고 외쳤다.
☞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란 뜻으로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
[출전]『史記』 [내용]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나라의 요충지인 함양(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원문]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 [예문]마이너리그'는 한국사회의 '비주류'를 일컫는 상징적 표현이다.지식인들은 언제나 자기의 시대를 위기라고 말해왔다. 그들처럼 간뇌도지(肝腦塗地)를 부르짖으며 간과 뇌수로 바닥을 칠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 아니다. 그래서 잘못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늘고길게 살고자 했던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해 분해 할뿐이다.' <2001.4 한국일보>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귄다.
[출전]『柳子厚墓誌銘』 [내용]唐나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字 : 子厚)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 되었는데 그의 친구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파주는 몹시 궁벽한 변방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님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죽은 후 한유(韓愈)가 그 우정에 감복하여 유종원의 묘지명을 썼는데‘[ 韓愈柳子厚墓誌銘에 握手出肝膽하여 相示라하다. 韓(나라이름 한) 愈(나을 유) 厚(두터울 후) 誌(기록할 지) 銘(새길 명) 握(잡을 악)]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肝膽)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라고 하였다. [원문]其召至京師, 而復爲刺史也. 中山劉夢得禹錫, 亦在遣中, 當詣播州. 子厚泣曰: "播州, 非人所居, 而夢得親在堂, 吾不忍夢得之窮, 無辭以白其大人, 且萬無母子俱往理, 請於朝, 將拜疏願以柳易播, 雖重得罪死, 不恨. 遇有以夢得事, 白上者. 夢得, 於時, 改刺連州. 嗚呼. 士窮, 乃見節義. 今夫平居里巷相慕悅, 酒食遊戱相徵逐,(言+羽)(言+羽)强笑語, 以相取下,握手出肝肺相示, 指天日涕泣, 誓生死不相背負, 眞若可信. 一旦, 臨小利害, 僅如毛髮比, 反眼若不相識, 落陷穽,不一引手救, 反(手+齊)之, 又下石焉者, 皆是也. 此宜禽獸夷狄, 所不忍爲, 而其人自視以爲得計, 聞子厚之風, 亦可以少愧矣-- 韓愈,『柳子厚墓誌銘』
[예문1]지주사는 이렇게 겸사하면서도 이 어린 청년과 주객이 肝膽相照하게 된 것을 그리고 틈이 벌어가고 한 모퉁이가 이그러져 가는 이집을 바로 붙드는데 자기가 한 몫 거들어야 하게 된 것에 깊은 감격과 자랑을 느끼는 것이었다.『廉想涉, 三代』 [예문2]기미년 삼일운동 때 감옥살이로 서울에 끌려왔을 뿐, 조선이 망한 이후 한 번 도 자의로는 총독부가 생긴 서울엔 오기를 피한 이다. 창씨를 안하고 견디는 것은 물론, 감옥에서 나오는 날부터 다시 상투요 갓이었다. 현과는 워낙 수십년 연장(年長)인데다 현이 한문이 부치어(할 일에 힘이 모자라다)그분이 지은 시를 알지 못하고 그분이 신문학에 무심하여 현대문학을 논담하지 못하는 것이 서로 유감일 뿐 불행한 족속으로서 억천 암흑 속에 일루의 광명을 향해 남몰래 더듬는 그 간곡한 심정의 촉수만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굳게 합하고도 남아 한두 번 만남으로 서로 간담을 비추는 사이가 되었다--이태준 『해방전후』중에서
☞간과 쓸개가 때로는 초와 월처럼 멀게 느껴지고 서로 다른 것도 동일하게 느껴짐
[출전]『논어』 [내용]노(魯)나라에 왕태라는 者가 있었다. 형벌을 받아 발이 잘렸지만 덕망이 높아 문하생이 많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죄를 지은 자인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많고, 그 명성은 마치 선생님과 노나라를 둘로 나눈 형세입니다. 그는 별로 가르치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의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를 찾아갔던 사람은 반드시 흡족해서 돌아갑니다. 무언의 가르침이 있는 모양입니다. 몸은 비록 불구일지라도 덕이 넘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아니다. 그는 성인이다. 한번 찾아가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 나는 그를 스승으로 우러르고 싶을 정도이다. 노나라만이 아니라 천하를 이끌고 함께 따르고 싶을 만큼 존경하고 있다." "그럼 그분은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일까요?""그는 사생(死生)을 초월하고 있다. 비록 천지가 무너지더라도 함께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고, 물(物)과 도(道)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物과 함께 움직이지 않을 만큼 변화로부터도 초월해 있다. 게다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이에 거스르지 않고, 道의 근본을 잘 지키고 있다.""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마음을 달리하는 자의 눈으로 보면 간담(肝膽)도 초월(楚越)이며, 마음을 같이 하는 자의 눈으로 보면 만물(萬物)은 하나다. 그 사람은 귀나 눈으로 외물(外物)을 좇지 않고 마음을 덕의 화합에 두고 있다. 사물의 같음을 보고 다름을 보지 않으며, 사생을 하나로 보고 있다. 비록 발을 잘렸지만 그것을 흙에 떨어뜨린 것처럼 조금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니 정말 훌륭한 인물이다." [내용]자기이자시지 간담초월야 자기이자시지 간담초월야 자기동자시지 만물개일야 자기동자시지 만물개일야 그 다르다는 점으로 보자면 간과 쓸개의 사이가 아득히 멀지만, 그 같다는 점으 로 보자면 만물이 다 하나이다.<200.5한국경제>
☞제나라와 초나라에 사이하다.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의 사이에 끼어 괴로움을 받음.
[속담]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동] 경전하사 [ 鯨戰鰕死] [출전]『맹자』 [내용]전국시대에 강국이었던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약한 등나라가 있었고, 등나라는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오랫동안 모진 고초를 당했다. 맹자(孟子)가 등나라에 갔을 때 등문공 (등文公)과 나눈 대화에서 등문공이 말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로, 제나라 초나라 사이에 끼여 있으니[등國間於齊楚], 제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초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이 계책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어이 말하라고 하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성 밑에 연못을 깊게 파고 성을 높이 쌓은 후 백성과 더불어 지키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지킨다면 굳게 지키십시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맹자는 등문공에게 두 나라의 눈치를 보며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베풀어 백성들이 죽음으로써 지켜준다면 끝까지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라고 했던 것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을 때 맹자의 말을 기억하고 당당히 겨루든지, 미련을 버리고 떠나야지, 눈치만 보며 비굴하게 살아서는 안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문]인근 주민들은 한강농조와 시와의 보상가격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낮에는 해충의 활동이 뜸하지만 저녁이면 이들 해충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 다녀 밤이면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라며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고인물이라도 퍼내든가 방역 작업이라도 실시해야 한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한다.
[동]臨渴掘井임갈굴정(임할 림,팔 굴)
[반]견토방구 見兎放狗--토끼를 본후에 사냥개를 풀어도 늦지 않다.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대처함 [속담]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갑갑한 놈이 송사(訟事)한다. [예문1]버티고 볼 양이면 종수가 징역을 가야 하니 체면상 차마 못할 노릇일 뿐만 아니라 더우기 바라고 바라던 군수가 영영 떠내려 가겠은즉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더라고 짜나 다나 그 뒤치닥거리를 다 하곤 했던 것입니다.『 蔡萬植, 太平天下』 [예문2]농업용 소규모 댐의 경우도 현재 건설중인 것이 10여개로 일본의 340여개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댐건설이 여의치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정부의 치수(治水)정책이 지나치게 안이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니 이 것이야말로 갈이천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뭄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책임은 현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뭄대책으로서 가장 중요한 댐이나 수로 건설은 오랜 시일이 걸리므로 현재 가뭄에 대처할 수 있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거 정권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2001.6 매일경제>
☞연못을 말려 고기를 얻는다는 말로,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장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내용]진(晋)나라 문공(文公)은 성복이라는 곳에서 초나라와 일대 접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나라의 병사의 수가 아군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승리할 방법이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호언(狐偃)에게 물었다.
"초나라의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소?" 호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사람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잠시 후, 문공은 또 다시 이옹(李壅)의 생각을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이옹의 비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마음 속의 느낌이 한이 없음.
[예문1]김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백화원 영빈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상견례를 겸한 이날 회담은 인사말을 주고받고 큰틀에서 남북분제 현안을 나누는 그런모습이었다. 백화원 영빈관 접견실에서 김대통령은 먼저 감개무량하다고 인사하자 김위원장은 "섭섭치 않게 해줄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데 2박3일동안 대답을 해줘야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paxnet> [예문2] 일본 우익계열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3일 자신들이 편집한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데 대해 성명을 내고 '단체를 설립한지 4년여가 경과한 오늘 하나의 확실한 결실을 보게돼 심히 감개무량하다'고 주장했다. `새 교과서...모임'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 아사히(朝日)신문의 공격 등을 장황하게 열거하면서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항해 우리는 시종일관 이성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그래서 교과서가 무사히 검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또 '이번 검정과정에서 참을 수 없는 수정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당초 설립당시의 취지가 그대로 반영된 교과서가 탄생하게 됐다'면서 '우리 교과서는 학습지도요령과 역사분야의 목표에 매우 충실한 교과서임을 표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모임은 이와함께 책임있는 교과서 채택이 가능하도록 전국단위의 교육위원회를 통한 채택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 다음 목표가 교과서 시장확보에 있음을 노골화했다.
☞달콤한 말과 이로운 말.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으로 꾀는 말.
[예문1]맑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거믜쥴 테를 들고 개川(천)으로 往來(왕래)하며, 밝가숭아 밝아숭아 져리 가면 쥭느니라, 이리오면 사느니라, 부로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世上(세상)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이정봉의 사설시조]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테를 들고 개천을 왕내하며, "발가숭아,발가숭아 저리가면 죽고, 이리오면 산다."고 부르는 것이 발까숭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런 것인가 하노라.어린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으려고 하면서 잠자리가 자기들에게 와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적 상황이다. 잠자리가 살기 위해서는 아이들로부터 멀리 도망쳐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일이 모두 이와 같다는 소박한 표현 속에 깊은 생활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예문2]한나라 이강두의원 삼애인더스 주가 띄우기 주장 국회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 의원은 23일 지앤지(G&G)그룹 이용호(李容湖) 회장이 계열사인 삼애인더스 주가를 띄우기 위해 이회장과 절친한 사이인 ‘H에셋’ 대표 김모씨가 적극적인 투자 권유와 홍보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씨는 비교적 거액을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을 ‘VIP고객’으로 대접하면서 내부정보 수신용 호출기까지 지급한 뒤 각종 허위 정보를 문자 메시지로 보냈으며, 투자 설명회를 열어 갖은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는 것.<동아일보> [예문3]주로 노인들을 꼬여서 가짜 몸보신 약을 파는 약장사들의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 지고 지능화 돼가고 있습니다. 마치 국가 기관이 초청하는 것처럼 눈가림을 해서 노인들을 불러 모은 뒤에 감언이설로 가짜 녹용을 파는 사기꾼 일당들을 카메라 출동팀이 추적 취재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중에서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덕으로 생각한다. 대단히 고맙게 여긴다.
[예문1]어린시절의 봄은 입맛 타령을 하며 음식을 끼적거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짓이었다. `이런 춘궁기에…'하는 어머님의 말씀 한마디면 이것도 감지덕지하다는 감동스런 표정으로 밥상을 마주해야했기 때문이다.<스포츠조선>
[예문2]뉴밀레니엄과 직업혁명= 톰 피터스 "10년후 화이트칼러 90% 사라진다"
얼마전 워싱턴의 한 기업인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다. 낯선 목소리의 여비서와 통화가 이뤄져 용건을 남기고 전화를 끊은 뒤 한 시간쯤 지나 그로부터 회신이 왔다. 비서가 바뀌었느냐고 묻자 그는 뜻밖에도 자신의 새로운 비서는 `인도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힌다. 그동안 고용해 왔던 여비서가 결근이 잦을 뿐 아니라 급여도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중 주변의 권유로 `아웃소싱'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그의 묘안은 알고 보면 간단했다. 인터넷시대에 워싱턴에서만 사람을 찾을게 아니라 문호를 전 세계로 개방한 것. 이렇게 해서 채용된 새 비서는 인도의 일류대학을 졸업한,따라서 고급영어와 매너를 구사하는 재원이었다. 수백달러에 불과한 월급에도 감지덕지 하며 전화응대에서부터 서류정리와 일정관리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하는 비결 역시 인터넷에 있었다. 그에게 걸었던 전화는 인터넷폰을 타고 머나먼 인도로 자동연결 되었고 여비서는 메시지를 가공해 그의 오거나이저 이메일에 넣고 미팅 일정을 잡아 두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기자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경험은 그러나 지금 미국의 직업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변화에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보통신혁명과 함께 게놈프로젝트로 상징되는 바이오혁명이 직업지도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유리하면 하고 불리하면 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태도.
[출전]『耳談續纂』 [예문]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떨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가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이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 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
[유]張三李四(장삼이사).匹夫匹婦(필부필부).樵童汲婦(초동급부).善男善女(선남선녀)愚夫愚婦 (우부우부) [참고]선남선녀(善男善女):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을 줄여서 하는 말. 원어는 쿨라푸트라(Kula-putra), 쿨라 두히트리(Kula-duhi ). 직역하면 출생이 좋은 올바른 아들, 딸의 뜻이다. 선남선녀는 선인(善因)의 결과 전생에서 지은 선사공덕(善事功德)이 현세에 나타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는 이, 현세에서 불법을 믿고 선을 닦는 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염불하는 남자와 여자라는 뜻. 죄악이 많은 자라도 마음을 돌이켜서 참회하고 염불하면 선남자 선여인이 된다고 한다. 이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승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집역· 진제역 및 범본(梵本)에 있는 것이고, 유지역· 급다역· 현장역 및 의정역에는 선남자 선여인이 없으며, 보살이 대승 가운데에서 보리심을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경 가운데서는 선남자 선여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는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승에 나아간다고 하는 나집역이 본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금강경 중에서]-->이 것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여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으며 넓은 의미로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예문1]김씨가 펼쳐보이는 갑남을녀는 예외없이 홀로 남을 낙원보다는 아담과 이브가 함께 하는 실락원을 선택한 `보통사랑'의 실천자들<스포츠조선> [예문2]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孤高)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仙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恍惚)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이양하 신록예찬 중에서> [예문3]명색이 언론이라면, 제2건국위가 어떤 부당한 방법으로 방패막이를 해왔는지, 제2의건국 추진위원들이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잣거리 갑남을녀들도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매도'를 일삼지 않습니다. 제2건국위가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사회적인 문제 집단인 것처럼 비난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2003.3 오마이뉴스>
☞강구는 사통오달의 큰 길로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연월은 연기가 나고 달빛이 비친다.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
[동]고복격양(鼓腹擊壤)./태평연월(太平烟月)/함포고복(含哺鼓腹)/격양지가(擊壤之歌)/당우천지(唐虞天地)/당우성세(唐虞盛世)/요순시절(堯舜時節) /태평성대(太平聖代)*唐--堯이 세운 나라 虞--舜이 세운 나라
[예문1]
五百年(오백 년) 都邑地(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도라드니. 山川(산천)은 依舊(의구)하되 人傑(인걸)은 간 듸 업다.
어즈버 太平烟月(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의 시조> -->오백 년이나 이어온 고려의 옛 서울(松都-開城)에 한 필의 말을 타고 들어가니, 산천의 모습은 예나 다름없으나, 인걸은 간 데 없다. 아, 슬프다. 고려의 태평한 시절이 한낱 꿈처럼 허무하도다. 고려 유신(遺臣)으로서의 망국의 한을 노래한 회고가(懷古歌)로, 초, 중장의 구상적 표현과 종장의 추상적인 표현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필마'에는 벼슬하지 않은 외로 운 신세, '태평 연월'에는 고려조의 흥성했던 시절, '꿈이런가'에는 무상감이 비유적으로 나타나 있다.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하고 만다는 의미.
[출전]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내용]전한시대(前漢時代) 한고조(韓高祖)는 흉노를 정벌코자 출전했다가 오히려 흉노에게 포휘되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이때 진평(陳平)이란 신하가 묘안을 내어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고조는 흉노족과 화천의 약속을 믿고 매년 선물 등을 보내었다. 그러나 흉노의 왕 선우는 약속을 어기고 무례한 행동을 하기가 일쑤였다.
이윽고 무제(武帝)시대에 이르러 한(韓)나라는 흉노족을 무력으로 응징하기로 하고 대신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어사대부(御史臺夫) 한안국(韓安國)은 흉노를 공격하는 원정계획을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찬 화살에서 튕겨 나간 화살도 마지막에는 비단조차 뚫기 어렵습니다 (强弩之末)."
☞얼굴이 강한 여자. 수치심을 모르는 여자

[주]강안(强顔)=후안(厚顔), [동]철면피(鐵面皮)/면장우피(面帳牛皮)/후안무치(厚顔無恥).
[출전]『잡사(雜事)』 [내용]제나라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추녀였으므로, 사람들은 '무염녀(無鹽女;無鹽은 지명)'라고 불렀다. 그녀의 모양새는 이러했다. 절구 머리에 퀭하니 들어간 눈, 남자같은 골격, 들창코, 성년 남자처럼 목젖이 나와 있는 두꺼운 목, 적은 머리털, 허리는 굽고 가슴은 돌출되었으며, 피부는 돌출되었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것과 같았다.
그녀는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내로 사가는 사람이 없어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짧은 갈 옷을 입고 직접 선왕(宣王)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한번 만나보기를 원하여 알자(謁者)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나라에서 팔리지 않는 여자입니다. 군왕의 성스러운 덕에 대해 들었습니다. 원컨대 후궁으로 들어가 사마 문(司馬門) 밖에 있도록 해주십시오. 왕께서는 허락하실 것입니다."
알자는 그녀의 이 말을 선왕에게 보고했다. 선왕은 마침 첨태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왕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선왕은 좌우를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자는 천하에서 가장 뻔뻔스런 여자이다."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옳은 길로 든다.
[註]遷(옮길 천)---變遷(변천).遷都(천도).俄館播遷(아관파천)[출전]『晉書』 [내용]진(晋)나라 혜재 때 양흠(楊羨) 지방에 주처(周處)라고 하는 괴걸(怪傑)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주방(周紡)은 동오(東吳) 파양 태수를 지냈으나 불행히도 주처가 젖먹이일 때 세상을 떠났다.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보살핌에서 벗어난 뒤부터 점점 망나니로 변해 하루종일 빈둥거리거나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런데다가 남달리 몸이 강인하고 힘도 보통 사람이 도무지 따르지 못할 정도여서 걸핏하면 남을 두들겨 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와 마주치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나 철이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치어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痛改前非 重新做人)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주처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사람들의 그에 대한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든 고향을 등지고 동오에 가서 대학자 육기(陸機)와 육운(陸雲) 두 형제를 만나보고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전에 저는 나쁜 짓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뜻을 세워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어 두렵습니다.
"자네는 나이가 아직 젊네! 절대 늦지 않았으니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지난 허물을 고쳐 새로이 착한 사람이 된다면 자네의 앞길은 무한한 것일세."하고 육운이 격려를 했다. 이 때부터 주처는 뜻을 세워 동오에서 글을 배웠다. 이후 10여년 동안 품덕(品德)과 학문 을 닦고 익혀 마침내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다
[예문1]부패행위는 법과 규정만으로 근절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 양식과 의지를 바꿔야 한다. 전시적 개혁은 잃는 게 더 많다. "10계명"의 경직된 운용보다는 현실에 맞고 신축성 있게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 전시행정은 과감히 짓밟아 버리고 개과천선 해야 할 때다. [예문2]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작년 4월께 1년반여 머물던 여수의 전셋집이 기한을 맞자 훌쩍 춘천 외곽으로 집을 옮겼다.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 여수로 들어갔던 그는 이곳에서도 얼마나 더 머물지 스스로도 모른다고 했다.
"마흔이 됐다고 어느날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것도 아니고..사람은 미혹 속에 헤매다 가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마흔의 나이에 여행을 가게됐는데 우리나라가 알고보니 참 넓더라구요. 평생 돌아봐도 되겠어요.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살갗이 닿는 그런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책을 읽으면 유익하다는 뜻으로 독서를 권장하는 말
[출전]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 [내용]송(宋)나라 태종(太宗)은 독서를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역사책 읽는 것을 즐겼다. 서적이 매우 많아 쉽사리 다 읽어 낼 것 같지 않은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태종은 학자 이방(李昉) 등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여, 7년 가까이 사서 편찬에 몰두했다.
그 결과 1천 권, 먼저 간행된 유서(類書) 등에 의해 모은 인용서(引用書) 1690종을 55개 부문으로 분류한 학술적으로도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서가 완성되었다. 태평 연간(太平年間)에 편찬되었으므로 그 연호를 따서 태평총류 (太平聰類) 라고 이름 붙였다.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매일을 하루같이 탐독했다. 책 이름도 태평어람(太平御覽) 이라 고치고, 스스로 매일 세 권씩 읽도록 규칙을 정했다. 정무에 시달렸기 때문에 계획대로 읽지 못했을 때는 틈틈이 이를 보충했다. 이를 본 측근의 신하가 건강을 염려하자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다. 나는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
[주]태종:재위 976~997년. 송(宋)나라의 제2대왕. 오월(吳越).북한(北漢)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 함. 문치주의에 따른 중앙집권제를 확립함.
☞좋도록 고치고 올바로 잡음.
[예문]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靡(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 상태)를 改善匡正(개선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한 正經大原(정경 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 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巨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기미독립선언서中]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이 되다. 사물의 大小, 輕重, 前後을 뒤바꿈.
[동]주객전도(主客顚倒) [예문1]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이 국내의 기지를 사용하고, 군대를 배치하는 권리를 부여(grant)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있어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이에 따라 미군당국은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대한민국내의 시설과 구역에 대한 무상의 배타적 사용권을 행사할 수 있다..<주한미군 범죄근절 운동본부>
[예문2]親日명단 ‘추가 16명’ 신경전… 功過논란 팽팽한 입씨름 의원모임측은 “친일파 명단 발표는 누구를 설득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자료를 통해 입증된 객관적 사실 그대로를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며,친일파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내리는 것이지 광복회가 독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의원모임 회장인 김희선 의원은 “광복회에서 이런 저런 사람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국회의원들이 주저하고 빼는 것이 정상인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라며 “광복회가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국민일보>
☞머리와 꼬리를 잘라 버린다. 요점만 남기고 앞뒤의 사설을 빼버린다.
[예문1] 하드록과 전기기타의 떨림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각종 컨벤션이 펼쳐지는 '사무라이 픽션'은 거두절미한 폭소를 동반하는 이른바 '로큰롤 사무라이 필름'이다. 비디오숍에서 자라난 '타란티노'가 영화유산을 재구성하여 '펄프픽션'을 만든것처럼 비내리는 사무라이 영화와 닌자시리즈를 섭렵한 영화광 '나카노 히로유키'의 데뷰작 '사무라이 픽션'은 '픽션'이라는 키취와 패러디의 연결고리를 가져옴으로써 '타란티노'와 감독 자신을 동일선상에 세우려는 야심찬 의도를 명백하게 느끼게 한다...<영화소개>
[예문2] 野, DJ '국군의 날' 발언 비난 한나라당은 2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6.25 사변은 세번째 통일 시도”라고 말한 데 대해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통령은 28일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 이 두 번은 성공했다 . 하지만 세 번째인 6.25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다. 네 번째 통일 시도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을 통일 시도로 평가하다니 호국영령들은 통일 시도를 막은 반통일세력이라는 말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대통령 말씀은 무력통일시도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며 “한나라당은 대통령 말씀을 거두절미해 공연한 시비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한국일보]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유]有備無患.(유비무환) /鳥久止(조구지)면 必帶矢(필대시)라.(새도 오래 앉아있으면 반드시 화살을 맞는다-久安則必危也라(오랫동안 편안하면 반드시 화살을 맞는다) /人無遠慮면 必有近憂니라.(사람이 멀리 생각하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논어』 [내용]춘추시대 송나라·제나라·진(晋)나라·위나라 등 12개 나라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정나라는 당황하여 12개 나라 중에서 제일 큰 나라인 진나라에 화해를 구하였다. 진나라가 이에 동의를 표시하자 기타 11개 나라도 공격을 중지하였다. 정나라는 진나라에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많은 예물과 저명한 악사 3명, 갑사까지 딸린 전차(戰車)와 가타 전거 100승, 가녀 16명, 그리고 종경 등 악기를 보내어 주었다. 진왕은 예물을 보자 매우 기뻐하며 가녀의 절반을 그의 공신 위강에게 주면서, "그대가 이 몇 년 동안 나를 위하여 계책을 내고 많은 일들을 순조롭게 처리하여 마치 음악과 같이 잘 어울리고 절주가 맞았으니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오. 지금 우리 둘이 함께 한바탕 즐겨 보기로 하오." 그러나 위강은 진왕이 나누어 주는 것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빌려 진왕에게 한 차례의 충간을 올렸다. 이때 위강이 한 말은 '좌전' 양공 11년에 기록되어 있는데,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우리 나라의 일들이 순리롭게 처리된 것은 우선 대왕의 공로이고 다음은 동료들이 일심 협력했기 때문인데 소신 같은 개인이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안락을 누릴 때 국가의 많은 일들을 아직도 계속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 주십시오. '서경'에 이르기를 '편안할 때 위험함을 생각해야 하나니, 생각하면 준비가 있게 되고 준비가 있으면 후환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소신이 감히 대왕에게 드립니다." [예문]지난 50년동안 이 나라는 농경시대를 거쳐 산업화사회,정보화사회로 치달으며 발전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정신적 계발은 뒤따르지 못했다. 잊고 살았던 아쉬운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닐 듯싶다. 순국선열에 대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며,거안사위(居安思危) 잊지 말자. 순국선열들이시여 명복을 빕니다.<2003.6한국경제>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존경함.
[출전]『양홍전』 [내용]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으로써 내외가 서로 신뢰를 쌓고 가정을 화목하게 함을 이르는 교훈의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에 보인다. 후한 때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만은 꿋꿋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뜻하는 바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란 처녀가 나이 서른이 넘는 처지에서도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자 양홍은 그 처녀의 뜻이 기특해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곧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양홍이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라고 하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아내가 화장도 않고 산골 농부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농사일의 틈틈히 친구들에게 시를 지어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몇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이에 환멸을 느낀 양홍은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로 있으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양홍전〉의 한 구절에,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바쳤다.)’라는 말이 보인다. 또 고백통은 이 부부의 사람됨을 예사롭지 않게 여겨 여러 면에서 도와주어 양홍이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내외가 반듯한 인생을 완성한 것이다. [원문]梁鴻字伯 扶風平陵人也 家貧而尙節介 同縣孟氏有女 肥醜而黑 力擧石臼 擇對不嫁 曰欲得賢如梁伯者 鴻聞而聘之 字之曰德曜 名孟光 至吳爲人賃 每歸 妻爲具食 不敢於鴻前 仰視 擧案齊眉 [예문]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은 아이의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을 떠맡고, 남성은 가족 구성원들의 보호와 부양을 담당하는, 남녀간의 역할과 의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세에 맞서 '거안제미'에 맛붙인 우리네 남성들은 어떻해야 하나? 그런 남성들에게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정동년 광주남구청장의 말이 대세를 헤쳐나갈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사 노동분담이란 획일적인 일 나누기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해야할 일이 어떤것인지 금방 알게 되지요" <2002.1굿데이>
☞죽은 사람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사라진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출전]『문선(文選)』잡시(雜詩) [내용]중국 육조(六朝)시대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문선(文選)』잡시(雜詩)에 수록된 지은이 불명의 고시(古詩) 19수(首)는 감성(感性) 표출의 아름다움에 있어 비견할 수 없는 시들이 모아져 있는데, 많은 고시 중에서도 가장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제14수의 첫머리가 다음의 두 구절로 시작되어 있다. 헤어져 가는 사람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去者日以疎] 와서 접하는 사람은 날로 친숙해지네. [來者日以親] 하고 읊은 시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마을 밖 성문을 나와 교외로 눈을 돌리면 [出郭門直視] 오직 보이느니 언덕과 무덤. [但見丘與墳] 옛무덤은 갈어엎어 밭이 되고 [古墓여爲田] 송백(松柏)은 잘리어 땔감이 되네. [松柏최爲薪] 백양(白楊)에 부는 구슬픈 바람소리 [白楊多悲風] 몸에 스며들어 마음에 사무치게 하네. [蕭蕭愁殺人] 머나먼 고향길 찾아가고 싶어도 [思還故里閭] 돌아갈 수 없는 네 신세 어이할까. [欲歸道無因] 성문 밖 묘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감개를 읊은 시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가슴에 와 닿게 한다. 특히 앞의 두 구절은 인생의 또 하나의 진리를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구절만을 단독으로 이(以)자를 생략하여 '거자일소'로 쓰이는 일이 많은데,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멀어지면 정이 적어진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와 죽은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잊혀지기 쉬운 법이라 하여 감개와 잊고 있었던 마음을 되돌아보고 죄송함을 느끼는 반성을 담아 쓰이는 경우가 있다.
☞천지가 온통 같은 빛깔임.
[예문1] -이양하, '조그만 기쁨' 중에서
|
와우산(蝸牛山)에 첫눈이 왔다. 하늘에는 달이 있고, 엷은 구름이 있다. 촌설(寸雪)도 못 되는 적은 눈이나 눈이 몹시 부시다. 강 건너 사장(沙場) 위에도 눈이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관악(冠岳)에도 눈이다. 하늘을 반나마 차지한 엷은 구름도 달빛을 받아 눈길이 희다. 온 하늘에 눈이 오고 땅에 눈이 왔다.
|
[예문2]정철-'思美人曲'中에서.. 건곤(乾坤)이 폐색(閉塞)하야 백셜(白雪)이 한 빗친 제 사람은 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쇼샹남반(瀟湘南畔)도 치오미 이러커든 옥누고쳐(玉樓高處)야 더옥 닐너 므슴하리 (천지가 겨울의 추위로 얼어 생기가 막혀 흰눈이 일색으로 덮혀 있을 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아다니는 새의 움직임도 끊어져 있구나 소상강 남쪽 둔덕과 같이 따뜻한 이곳도 이처럼 추운데 북쪽의 임이 계신 곳은 말해 무엇하리.) [예문3]어느 벌목 노동자의 귀순 일기산은 내 고향 묘향산이 이 세상 누가 뭐래도 제일이었다. 가을이면 산자수명(山紫水明) 그대로요 눈 오면 기기봉봉(奇奇峰峰)인 것이 태고의 적막 건곤일색(乾坤一色)이다. 그 산 정기를 받고서 태어난다는 것은 아무나 아닌 하늘의 선택이요 축복이다.<2002.11오마이뉴스>
☞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한다.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나 성패를 겨룬다. 또는 오직 이 한번에 흥망성쇠가 걸려있는 일.
[참고]건곤감리-태극의 4궤 **投擲(투척) [유]在此一擧(재차일거) : 이 한번으로 단판을 짓다. 즉,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낸다.[속담] 도 아니면 모. [출전] 韓愈(768∼824, 字 :退之, 號 : 昌黎)의‘過鴻溝’의 詩 [내용]
龍疲虎困割川原하니, 용과 범이 지쳐 이 강의 언덕으로 분할하니, 億萬蒼生性命存이라. 억만창생의 생명이 살아있도다. 誰勸君王回馬首라,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眞成一擲賭乾坤이라. 진정 한번 던져 하늘이냐 땅이냐로 도전한다.
** 鴻(기러기 홍) 溝(도랑 구) 誰(누구 수) 勸(권할 권) 賭(걸 도)
[해설] 홍구는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秦이 망하고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을 때 楚의 項羽와 漢의 劉邦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초가 서쪽은 한이 차지하기로 협약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 張良과 陣平이 유방에게 진언하기를,“漢은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지만, 楚는 군사가 피로하고 시량도 없습니다. 이때야 말로 하늘이 초를 멸하려 하는 것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하였다. 유방은 마침내 초를 해하(垓下)에서 승리하였다. 한유는 이때의 싸움을 천하를 건 일대 도박으로 보고 회고시를 쓴 것. [예문1]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법률 앞에서 평등하게 되었으며 낡은 신분의 특권은 폐기되었다. 그 대신 소요권이 모든 것의 가치 척도가 되는 마력을 현시(顯示), 그것만 있으면 특권 이상의 안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인간들의 목숨을 건 乾坤一擲 투기장이 되었다. 따라서 정치가, 고급 관리, 은행가, 대상인, 저널리스트, 방탕아, 사기꾼 등이 방종 무궤(放縱無軌)로 날뛰는 현실은 발자크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악몽이요, 死者들이 춤추는 행렬처럼 생각되었다. [예문2]올 인.’ 박찬호(30ㆍ텍사스 레인저스)가 운명을 건 한판승부를 펼친다. 방어율 15.88 시즌 2패. 최악의 투구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박찬호가 12일(한국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경기에 시즌 3번째 로 선발등판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진다.<2003.4 한국일보>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 내려한다. 엉뚱한 곳에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려 한다.
■ 걸해골 乞骸骨[빌 걸/뼈 해/뼈 골]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늙은 재상(宰相)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 나 오지 못하게 될 때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주청(奏請)함을 이루는 말
[출전]『史記』, 항우본기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내용]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지난해(B.C. 203)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 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초나라 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하남성(河南省) 내] 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자 항우에게 휴 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 (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陣中)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과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 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이 간책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은 장량(張良) 등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 이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 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 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원문]項王欲聽之. 歷陽侯范增曰 "漢易與耳, 今釋弗取, 後必悔之." 項王乃與范增急圍滎陽. 漢王患之, 乃用陳平計閒項王. 項王使者來, 爲太牢具, 擧欲進之. 見使者, 詳驚愕曰 : "吾以爲亞父使者, 乃反項王使者." 更持去, 以惡食食項王使者. 使者歸報項王, 項王乃疑范增與漢有私, 稍奪之權. 范增大怒, 曰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賜骸骨歸卒伍." 項王許之. 行未至彭城, 疽發背而死.
[註] 소찬(素饌) : ① 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②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의 겸양의 말. 등창[背瘡] : 한의학에서, 등에 나는 큰 부스럼을 일컫는 말.
■ 검려지기 黔驢之技 [검을 검/당나귀 려/어조사 지/재주 기]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
[내용]옛날 중국 검주(黔州; 구이저우성의 별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나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이 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랐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수(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슬슬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나귀가 갑자기 소리 높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아무래도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였다. 호랑이는 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는 당나귀의 본성(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려 보았다. 그러자 당나귀는 화가 나서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다. 기술기능이 졸렬함을 비유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가 보잘것없음을 모르고 나서거나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비유한 우화(寓話)로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 실려 있다.<두산백과>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
[출전]『大學』
[원문]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在格物하니라 [내용] 朱子는‘格物致知’에서‘格’은‘이르다(至),‘物’은‘사물, 만물’,‘致知’는 ‘앎을 이루다’는 말로,“만물은 무릇 한 그루의 나무, 한 잎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다. 이 이치를 하나하나 캐어 들어가면, 어느 땐가 한번 활연(豁然;환하게 터진 모양)히 만물의 표리정리(表裏精粗;겉과 속, 자세함과 거칠음)를 밝힐 수가 있다. ”이에 王陽明은 의문을 제기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 하였다.‘格物’의‘物’은‘事’이다. 事라는 것은 어버이를 섬긴다(事) 든가, 임금을 섬긴다든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事라고 하면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 외에는 物도 없고 理도 없다. 그러므로‘格物’의‘格’은‘正’으로,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事를 바르게 함’곧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格物’이다. 또한, 악을 떠나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良知를 밝힐 수 있으며 이것이‘知’를 이루는‘致’곧‘致知’이다. 또한 大學은 그 서문에 나타나 있듯이‘옛날 태학(太學)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책’인데,“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수신(修身), 즉 일신의 수양을 근본으로 여겨야 함.(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을 강조하여 밝히고 있는데, 주자는 이를‘대인의 학문(大人의 學問)’이라고도 밝히고 있다. 팔조목에서 格物, 致知, 誠意, 正心은 인간의 내적성장에 관한 것을 나타내고, 齊家, 治國, 平天下는 인간의 외적성장과 외적확산의 과정을 나타내는데, 이와같은 내적성장과 외적확산의 2대 과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역시 인간이므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갈고 닦는 것, 즉 수신을 하고 자신의 생활을 계발(啓發)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적심화와 외적확산의 과정이 조화되어야 개인의 인격함양이나 성장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적발달이 없는 상태에서 외적확산만 하는 사람은 개인의 힘과 세력이 피상적이고 일방적인 확산에 그치게 되고, 반대로 외적확산 없이 내적심화만을 하는 사람은 보람있는 사회활동에의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되어‘고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예문]개인의 인격이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적성장이 계속됨에 따라 각종 사회적 관계가 더 폭넓게 되는 등의 외적성장도 아울러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내적성장과 외적성장이 상호보완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듯을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하여 읽어 오고 일거 가되, 의문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의문이 새기면 반복해서 참고하고 연구해야 한다. (중략) 이와 같이 하기를 끊이지 않고 계속하면 통하지 못할 것이 거의 없고, 설사 통하지 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먼저 이처럼 궁구하고 탬색한 다음에 남에게 물으면 마침내 말이 떨어 지기가 무섭게 깨달을 수가 있다.(매헌에게 주는 글)
☞신을 신은 위로 가려운 곳을 긁는다. 어떤 일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여 매우 안타까운 상태. 또는, 답답하여 안타까움.

[동]격화파양( 隔靴爬痒)*긁을 파/격혜소양(隔鞋搔痒)·*신 혜**間隔(간격).隔離(격리) [출전]『속전등록(續傳燈錄)』 [내용] 당에 올라 비를 잡고 침상을 두드리니, 신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같다.신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을 긁어 보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뜻에서, 무슨 일을 애써 하기는 하나 요긴한 곳에 미치지 못하는 감질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원문]上堂更或
敲牀 大似
靴搔痒 (상당갱혹점소고상 대사격화소양) [예문1]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 18일에 발표한 "금융시장 불안요인 해소대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도 바로 격화소양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11월금융대란설"이 확산될 정도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IMF위기로 빠질 때 안되는 쪽으로만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된 것처럼 이번에도 그런 마가 낀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실정이다. [예문2]정부가 경기부양대책을 내놓은후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제한적 경기조절이란 말이 그것이다. 내용은 분명히 부양, 활성화인데 자칫하면 이게 우리경제의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인 구조조정 의지의 퇴색으로 비쳐질까봐애써 이런 말을 피한 것일게다. 현재의 경제상황과 해법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지금 시점에서 부양책이 옳으냐 그르냐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부양책이 구조조정을 무산시키는 '독약'이라는 주장도, 반대로 효율적으로추진하게 만드는 '영양제'라는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왕 부양책을 쓰기로 했다면 방향을 잘 잡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부양책의 큰 줄기를 이루는 건설부문을 보면 격화소양(隔靴搔瘍)식 대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문3]문제의 4억불의 경우 현대상선에 대출될 당시 산업은행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나 어려웠냐면 99년 12월 28일, 산업은행에 6000억원의 출자가 진행되고, 2000년 2월 25일에는 국가예산에서 산업은행에 1000억원이 지원될 정도였다. 이같은 재무상태에서 4900억원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정경제부 장관이나 경제수석의 힘으로도 되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안 된다고 본다.
또 청와대에서 이에 대한 대책회의를 한 것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격화소양'이다. 이에 대해 이기호 경제특보는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2002.9 오마이뉴스>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이치에 맞추려고 우겨댐.
[유]아전인수 我田引水/수석침류 漱石枕流 /영서연설 落書燕說 ,추주어륙[推舟於陸] **牽 : 牽引(견인).牽引車(견인차).附着(부착)
[예문1]이들의 지적이 아니라도 후계구도를 둘러싼 소동에 이어 현대투신의 자본잠식분 1조2천억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현대그룹 `새끼총수'의 사재출연, 법원의 삼성에스디에스 신주발행금지 결정을 계기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의 편법상속 등 정작 개혁의 걸림돌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를 질타하며 경제위기를 앞장서 외치던 일부 언론은 막상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포퓰리즘에 편승한 재벌 팔목 비틀기'(중앙 5, 13일치 사설)라고 거듭 강변하고 있으니 굳이 위기를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언론의 이런 견강부회가 아닐까. <인터넷 한겨레> [예문2]'주경야독(晝耕夜讀)'은 말 그대로 농경시대의 평생학습자 상(像)이다. 소를 부리고 쟁기를 다루려면 나이가 차고 힘깨나 써야한다. 그래서 '주경야독'이라는 말에는 아동교육보다는 성인교육의 모습이 담겨 있다. 흔히들 '주경야독'하면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채근과 함께 농경시대 평생학습의 모습을 목가적으로 연상할 것이다. 이 때 주경야독하는 모습에서 목가적인 풍경을 넘어 그 시대와 형편을 읽는다면 이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주경야독'에는 농경시대의 사대부 집 자제보다는 보통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이 투영되어 있다. <사설 중에서>
[예문3]전통적인 자본주의 개념에서 볼때 루스벨트의 정책은 가히 사회 주의적 혁명이다. 자유방임주의, 당시까지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원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아 루스 벨트는 국가가 무엇이고 정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극단적 으로 말해 굶어죽든 잘 먹고 잘살든, 그때까지는 개인의 문제에 속한 삶의 문제를 국가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으 로 바꿔 놓은 것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를 루스벨트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견강부회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비슷한 점을 찾자면 좌우의 샌드위치 신세라는 점이다. <2003문화일보>
[참고]영서연설 [ 落書燕說 ]落땅 이름 영/書 쓸 서/燕 제비 연/說 말씀 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초(楚)나라의 도읍 영에서 온 편지에 대하여 연(燕)나라 측에서 해석한 것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외저편(外儲篇)>에 의하면 편지를 쓴 사람이 날이 어두워 하인에게 등촉을 들라고 명령한 다음, 자신도 편지에 ‘거촉(擧燭)’이라 쓰고 말았다. 이것을 읽은 연나라의 대신은 거촉을 명철함을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현자(賢者)를 많이 등용하여 치적을 올렸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견강부회와 통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풀이되며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을 뜻함
[출전]『용재총화(傭齋叢話)』 [내용]최 영 장군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항상 그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최영은 항상 이 네 자로 띠에 새겨놓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서 잃지를 않았다 [원문]崔鐵城瑩 少時 其父 常戒之曰 見金如石, 瑩 常以四字 書諸紳 終身服膺而勿失 雖秉國政 威行中外 而一毫 不取於人 家才足食而已
☞이익되는 것을 보면 먼저 義理에 합당한가를 생각함.
[원]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반]견리망의[見利忘義] [출전]『논어』 [예문1]먼저, 강력한 소명의식이나 윤리의식이 없이 온갖 탈법과 부정을 자행하며 '부를 위한 부'만을 추구해온 한국의 재벌과 기업가는 과연 유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이들의 '성취욕'을 추동한 것은 유교적 이념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부'의 축적에 대한 '맹목적 욕망'이었는가? 유교에서는 의주리종(義主利從)과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이야기한다. 공자는 "이익을 좆아서 행위하면 원망이 많게 된다"(放於利而行,多怨)고 하여 이익보다는 도의가 소중함을 말하였고, 맹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君子喩於義,小人喩於利)고 하여 이익에만 전념하는 사람을 소인으로 경멸했다. 도의와 원칙을 앞세우기는커녕, 천박한 공리주의와 원칙없는 타협으로 정실과 부패를 남발한 한국자본주의는 "올바름을 바르게 지키고,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正其宜不謀其利)는 유교정신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또한 권위주의 정권과 결탁하여 온갖 특혜를 받고, 이렇게 얻어낸 특혜금융으로 건전한 생산활동보다는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리며, 조세포탈과 임금착취를 통하여 부당한 부를 축적해온 영혼없는 경제인들은 유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반유교적이다.<원광대 열린정신포럼> [예문2]월드컵-부산亞경기 함께 홍보를 지난 세기 한국은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을 잇달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민족의 가슴에 크나큰 자부심을 안을 수 있었다. 두 대회를 통해 국민은 안으로는 민족의 위대성을 재발견하였고 밖으로는 뻗어가는 국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수 있었다. 두 대회가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국력신장의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탈정치화된 순수 스포츠제전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막이 5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심기일전하지 않는다면 36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는커녕 국내적으로도 상처만 남기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견리사의(見利思義)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물러나 대회의 성공을 위해 힘과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동아 여론 마당>
☞남에게 자기 나이를 낮추어 겸손하게 이르는 말.
[동]犬馬之齒(견마지치) / 犬馬之齡(견마지령)
☞개나 말의 수고로움. 정성껏 수고를 다하는 노력. 또는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서 일컫는 말.
[동]汗馬之勞 한마지로,
[유]견마지심(犬馬之心) 구마지심(狗馬之心),분골쇄신(粉骨碎身), 진충갈력(盡忠竭力), 구치(驅馳) [출전]『史記』 [예문1]수양은 나쁜 방면을 모름이 아니로되 그의 쉽지 않은 지혜를 높이 보아서 그를 긴히 쓰고자 함이었다.‘대감의 지혜와 지식 ― 국가를 다스림에 없지 못할 것이외다. 대감과 힘을 아울러 우리 전하를 도웁시다.’‘나으리 앞에서 견마의 노를 다 하오리라’수양은 인지의 손을 잡은 채 입을 닫았다.[金東仁, 首陽大君]
[예문2]한광옥'강연정치' 맛들였나 한광옥(韓光玉) 대통령 비서실장의 '강연 정치'가 활발하다.한 실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쇄도하는 강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으나 최근들어 한 달에 두 번 정도 강연에 나서고 있다. 4월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희대 NGO대학원에서 강연했고 2일 동국대사회과학연구원 초청 강연에 이어 18일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강단에 선다. 6월에도 제주대 최고경영자 과정(2일),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8일) 등의강연 일정이 잡혀 있다.한 실장은 '강연 정치'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환란 극복, 지식정보화, 남북 화해협력,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서 이룩한 업적이 큰 데도 너무 저평가돼있다"면서 "이를 제대로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기 위해 강연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실장은 이날 동국대 강연에서도 현 정부의 업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김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고말했다. <한국일보> [예문3]신뢰가는 정책제시 아쉬워 상대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래서는 시장에서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현재 가장 화급한 부분은 정책제시와 관련, 할 수 있는 최대규모의 ‘신뢰조성’이라는 공적자금을 시장에 쏟아붓는 일이다. 정말 보고싶은 것은 문제해결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는 당국자의 모습이다. <2003파이낸셜뉴스>
■ 견마지양 犬馬之養 [개 견/말 마/어조사 지/기를 양]
☞개나 말의 봉양. 부모를 봉양만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음.--개나 말을 기를 때에도 먹이기는 한다. 부모를 모시는 데 먹는 것이나 돌보고 만다면 개와 말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부모를 소홀히 대접하고 공경하지 않음을 뜻함
[출전]『논어』 [참고] 견마지심 犬馬之心--임금이나 부모에게 바치는 충성, 효성(=狗馬之心, 『史記』)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
[유]割鷄焉用牛刀--닭잡는데 어찌 소칼을 쓰리오『논어』/ 노승발검(怒蠅拔劍): 파리를 보고 화를 내어 칼을 빼어들고 쫓는다는 말로, 사소한 일에 화를 잘 냄 [예문1]자신이 의도하는 문화 활동의 생산성은 문화 산업의 상업성으로 둔갑하게 된다.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문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출판업 종사자가 열을 올리는 일에 필자가 알게 모르게 맞장구치는 사태가 빚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에 대한 미학적 경험을 중시하는 자율 지성은 딛고 설 땅이 없다. 하하하. 웃어서 죄송합니다만, 자꾸 웃음이 나오는군요. 제가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만,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고나 할까요? 모기 보고 칼을 뺀다 이런 말씀입니다 <인물과 사상>강준만 [예문2]신사고와 NMD사이NMD는 속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북한.이라크 같은 '테러국' 들을 위협대상으로 내세운다. 그 중에서도 일본 넘어 태평양으로 대포동1호를 한방 날린 북한이 가장 가시적인 '위협의 증거' 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국 첩보로도 핵폭탄을 1~2개 가지고 있을지 말지 하고 미사일 정확도는 형편없는데 대포동2호가 개발되면 애리조나의 피닉스와 위스콘신의 메디슨이 사정거리에 들어간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럼즈펠드 보고서)은 견문발검(見蚊拔劍), 즉 모기 보고 칼 빼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과장됐든 어쨌든 미국은 막무가내로 이런 테러위협을 핑계로 NMD를 풀스피드로 추진하겠다(파월 국무장관)는 것이다.<중앙일보 김영배 칼럼>
[예문3]과외신고 제도는 무리다 미신고 고액과외 교습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나 모기 보고 칼을 빼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감이 있다. 국가의 조세권이 징벌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무조사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세금 내기를 두렵게 만드는 부작용이 따른다<2001동아일보>
■ 견물생심 見物生心 [볼 견/만물 물/날 생/마음 심]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임.
[동]이목지욕 耳目之慾--귀로 듣고 눈으로 봄으로써 생기는 물욕 / 온갖 종류의 욕망, 감각적 욕망『文選』
[예문1]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이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지라 인근 사람들안 나물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라 아무리 부처님 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즈음 한 스님 이 찾아와 몰락한 이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에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 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도 더욱 적어지고 거찰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럴때 어느 날 도승 한분이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말했다. 주지스님은"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하고 물었다.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잇던 거북바위가 절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두동강으로 내 혈맥은 끊어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을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구(九)에서 거북구(龜)자를 쓴 구룡사로 쓰기로 했다 한다.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 있는 구룡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년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 됐다<여행일기>에서 [예문2][작품속으로]한정희 '유리집'한정희는 탐욕의 작가이다. 늘상 문자 그대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의 고된 경지에서 떠돈다. 견(見)하면 반드시 생(生)하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집요한 인식욕과 소유욕으로, 그녀의 손은 남보다 더 길다. 무형물이든 유형물이든 심지어 슬픔까지도, 그녀는 자신의 오관의 그물에 와 닿는 것은 모두 그 긴 손으로 나꾸어채서 품에 넣는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서는 고통조차도 일종의 소유물처럼 보인다.<동아닷컴>
☞是를 非라 하고 非를 是라 하며 同을 異라 하고 異를 同이라 하는 것과 같은 억지논리.궤변
[출전]『史記』
[내용] 전국시대 조나라의 학자 공손룡이 "단단한 흰 돌을 눈으로 보아서는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며,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는 그 단단한 것을 알 뿐 빛이 흰지는 모르므로 단단한 돌과 흰돌과는 동일물이 아니다"라고 억지 논리를 폈다
[참고]상리근의 제자들과 오후의 무리들과 남방의 묵가인 고획, 기치, 등릉자의 무리들은 모두 묵자의 경전을 잃고 외웠지만, 서로 어긋나 주장이 같지 않고 서로 묵자와 다르다고 공격을 했다. 견백동이(堅白同異)의 궤변으로 서로 욕하고, 혹은 남과 어울리기도 하고, 혹은 자기 홀로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로써 서로 대응했다. 그리고 자기 파벌의 스승을 성인이라 하며, 모두가 묵자의 종주가 되어 후세에 묵가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는 상태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묵적과 금활리의 생각이 옳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 후세의 묵가들로 하여금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힘으로써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기는 해도 다스려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했다. 올바른 도를 구하여 얻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깡마르게 되는 한이 있다 해도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재사임에는 틀림이 없다.(相里勤之弟子, 五侯之徒, 南方之墨子苦獲, 己齒, 鄧陵子之屬, 俱誦墨經, 而倍譎不同, 相謂別墨. 以堅白同異之辯相자, 以기偶, 不오之辭相應, 以巨子爲聖人, 皆願爲之尸, 冀得爲其後世, 至今不決.墨翟.禽滑釐之意則是, 其行則非也. 將使後世之墨者, 必自苦以비无발脛无毛, 相進而已矣. 亂之上也, 治之下也. 雖然, 墨子眞天下之好也, 將求之不得也, 雖枯槁不舍也, 才士也夫)
<장자>
☞(나라가)위태로움을 당하면 (나라에)목숨을 바침[=見危致命]
[출전]『논어』제14편 헌문(憲問)편 [내용] 자로(子路)가 인간완성에 대해 묻자 공자가" 지혜,청렴,무욕,용감, 예능을 두루 갖추고 예약으로 교양을 높여야 한다.그러나 오늘에는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고(見危授命),오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久要不忘平生之言) 역시 인간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답한 구절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글귀는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감함이 아니다'는 뜻을담고 있다.
|
見 利 思 義 見 危 授 命
견 리 사 의 견 위 수 명
-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안중근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뤼순 감옥에서 쓴 것. 현재 동아 대학교간직되어 있다. 보물 제 569-6호. | |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
[예문1]산림청에서는 새 천년을 여는 2000년 1월의 나무로 민족의 상징인 소나무를 선정하였으며, 소나무는 절개, 인내, 당당함 및 겸손의 상징으로 우리 민족의 문학, 예술, 생활 그리고 정신속에 살아있는 나무이다.“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반만년 역사속에 거센 외세의 풍설에도 이겨낸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 바로 이것이 우리 민족혼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소나무 같은 기개라 할 수 있다.<경기도 양평군 홈페이지>에서 [예문2]올해 북한의 최대 화제는 정성옥의 세계여자마라톤 제패였다. "정성옥 선수처럼 견인불발의 투지로 싸워 나가는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가 돼야 한다" 며 '정성옥 따라배우기' (노동신문 9월 4일) 의 거센 바람이 불었다. 북한은 그러나 자본주의 바람에는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중앙일보>
■ 견토지쟁 犬兎之爭 [개 견/ 토끼 토/어조사 지/다툴 쟁]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 곧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利)를 봄에 비유. 횡재(橫財)함의 비유, 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동] 전부지공(田父之功). 방휼지쟁(蚌鷸之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 『戰國策 齊策』 [내용]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淳于)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 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 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세객 :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 (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 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 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맺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그 일을 끝맺음.
[출전]『순오지』[원문]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예문1] 이리로 생각하고 저리로 생각하니 널로하여 생겼든지 널로하야 못살겠다 널로하여 죽게 되니 절로는 살길없다 暫見復望이오 結者解之라니 다 썩고 남은 간장 고칠 길이 전혀 없다.(歌詞, 相思陳情夢歌)
[예문2]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 출연을 둘러싼 엇갈린 평가가 눈길을 끌었다. 중앙일보는 3면 '거액 사재 내놓은 결자해지' 기사에서 보듯 이 회장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설에서도 "다른 처리의 대안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소승적 이해를 뛰어넘은 결자해지의 용단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보>에서
[예문3]이회창총재 "겉은 재벌해체 속은 정경유착""재벌 해체도 잘못된 발상이고 정경유착도 잘못이다.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22일 건국대 행정대학원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현대 사태는 현 정권의 잘못된 정책 탓인 만큼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임기 내에 해결하라" 고 요구했다. 李총재는 이날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 이념이 흔들리고 있다" 며 현대 문제.재벌 정책 등 경제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쏟아냈다.<중앙일보> [예문4]과학 기술자는 물질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바도 크지 만, 그에 못지 않게 환경 오염 문제를 유발한 책임도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존층의 파괴, 지구 온난화 문제 등 환 경 오염의 구체적인 실상을 밝혀 낸 것도, 그리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과학 기술 자이다. (현대과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 ② 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겠다.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유] 刻骨難忘(각골난망)./ 難忘之恩(난망지은)/. 銘心不忘(명심불망)/白骨難忘(백골난망) [속담]머리털 베어 신을 삼는다. /털을 뽑아 신을 삼겠다. /개 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친다.
[출전]『左傳 』 [내용] 晉나라의 大夫 위무(魏武)가 妾이 있었는데 병으로 앓게 되자, 그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하되“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내가 죽으면)죽여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과가 말하되“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秦과 晉의 싸움에 이르러 위과가 노인이 풀을 묶는 것을 보고서 두회(杜回)에게 대항했는데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지니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다. 후에 위과의 꿈에 노인이 이르기를“나는 개가를 시켜 준 부인의 아버지니라. 네가 너의 아버지의 정신이 있을 때의 유언을 좇아서 내 딸을 개가를 시켜 주어서 내가 이로써 너에게 갚는 것이다.”
[원문]魏武有妾이러니 武子病이어늘 謂其子顆曰“我死어늘 嫁此妾하라”病極이어늘 又曰“殺爲殉하라”及死에 顆曰“寧從治時命而嫁之리라”及秦晉之戰하여 魏顆가 見老人結草하여 以抗杜回하여 回跌而顚하고 遂獲之하니라. 後에 顆夢에 老人이 云“我而所嫁婦人之父也라 爾從治命이라. 余是以報니라.”--『春秋左氏傳』
** 嫁(시집보낼 가) 殉(따라죽을 순) 抗(막을 항) 杜(막을 두) 顚(엎어질 전)
[예문1]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마르사 전일의 정의를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엿비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結草報恩하리이다.(薔花紅蓮傳) [예문2]어소, 이 사람아. 연실이라는 말이 당치않네. 강남 미인 들이 초야반병 날 맑을 적에 죄다 따 버렸는데 제까짓 놈 이 어찌 연실을 물어 와? 뉘 박 심은 데서 놀다가 물고 온 놈이제. 옛날 수란이가 배암 한 마리를 살려, 그 은혜 갚느라고 구실을 물어 왔다더니마는, 그 물고 오는 게 고 마운께 우리 이놈 심세 (흥보가) [예문3]일본에서 활약하는 '호크 아이' 최경주(29·슈페리어)가 모처럼 가족과 함께 고향인 완도를 찾았다. 22일 중국에서 열리는 스킨스게임을 앞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고향길에 오른 것. 그런데 막상 가자고 마음 먹으니 옛날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가장 힘들었던 학창시절. 집안이 어려워 역도를 시작했고 결국 고향동네에 하나밖에 없었던 골프연습장(당시 5타석)에서 볼을 주으며 고학을 해야 했다.<스포츠투데이> [예문4]소액투자가들의 증자참여와 증시활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현대투신 부실로 촉발된 현대그룹 자금난이증시의 목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심정으로 증시회생에 앞장서야한다는 설명이다. 사재출연이 어렵다면 제3자배정방식을 통한 출자를 적극 검토할 수 있다.<매일경제>
[예문5]'한국의 히바우두' 설기현(23·벨기에 안더레흐트)이 히딩크 감독에게 천금 같은 동점골로 은혜에 보답했다.
18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2-1 승)에서 후반 43분 1-1 동점골로 '결초보은'한 설기현은 이날 밤 그동안의 부담과 시름을 씻어버리고 모처럼 깊은잠에 들 수 있었다.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허리부상이 다행히도 잠잠해 몸 컨디션은 정상인데도 골이 터지지 않았다. 설기현은 계속 선발 출전의 기회를 주는 히딩크 감독에게 미안했다. 미국전(1-1 무), 포르투갈전(1-0 승)에서 매번 2∼3차례 골찬스를 무위로 날려버리자 팬들의 원성도 높았다. <스포츠투데이>
[참고] 再嫁·改嫁 : 일반적으로 시집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구분하여, 再嫁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시(再)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것을 설명한 말이고, 改嫁는 남편이 죽은 다음에 다른 남자에게 고쳐(改) 시집간 것을 지칭한 말이다.(팔자를 고쳐 새롭게 시작)
☞혼자서 능히 몇 사람을 당해 낼 만한 용기.
[출전]『논어(論語) 』 선진편(先進篇) [원문]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내용]공자가 '구(求:공자의 제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격려해 주었고,유(由:공자의 제자)는 두 몫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겸손하도록 가르쳐 주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겸인지용(兼人之勇)이라고 하면 혼자서 두 사람 몫을 겸하는 빼어난 용기를 뜻한다. [예문]남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망연(茫然)히 오래 있다가 말하기를, “오늘 이지정(李之楨)의 집에 가서 서로 바둑을 두다가 인하여 말하기를, ‘북방에 일이 있으면 나라에서 반드시 나를 장수로 삼을 것인데 누가 부장(部將)을 맡을 만한가?’ 하니, 이지정이 말하기를, ‘민서(閔여)·김견수(金堅壽)·장효손(張孝孫)이 모두 겸인지용(兼人之勇)이 있으나, 장효손은 외방에 있고 김견수는 이미 현용(顯用)되었고 또 외방에 있으니, 오직 민서가 좋다.’고 하였습니다.<최정안의 한국중세사 강의실>에서.
■ 경거망동 輕擧妄動 [가벼울 경/들 거/망령될 망/움직일 동]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함.
[반] 은인자중 隱忍自重 [예문1]경거망동을 삼가라 개구리가 뛰면 올챙이도 뛴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는 말이 있듯이 분수 모르고 날뛰는 사람들이 있다. 큰 일이다. 경제마인드가 없이 무작정 계획성 없이 소비하는 것이 문제다. 문제는 문제를 낳듯이 소비는 과소비를 낳는다. 결국 과소비는 무절제에서 온다. 무절제는 무계획에서 온다. 무계획은 결국 습관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된다.<이홍렬교수 공간>에서 [예문2]북한군 총참모장, 부시 행정부에 "침략책동 말라" 경고 김영춘(金英春) 북한군 총참모장은 24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제국주의 호전분자들은 역사를 망각하고 현실을 오판하면서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동아일보>
☞나라를 기우릴 만한 여자.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동] 傾城之美(경성지미)/ 萬古絶色(만고절색)/ 絶世(代)美(佳)人(절세가인)/一顧傾城(일고경성) / 丹脣皓齒(단순호치)-붉은 입술 흰 이/明眸皓齒(명모호치)-맑은 눈동자와 흰 이/花容月態.(화용월태)-꽃같은 용모와 달빛같은 자태/雪膚花容(설부화용)-눈같이 흰 피부와 꽃같은 용모/羞花閉月(수화폐월)--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숨을 만큼 아름다운 미인『장자』/ 沈魚落雁[침어낙안]--물고기가 숨고 기러기가 떨어지다/ 國香(국향), 國色(국색) [반] 薄色(박색) : 매우 못생긴 여자. [출전]『漢書』[내용] 漢나라의 武帝 때 음악에 재능이 있고 춤이 뛰어난 이연년(李延年)이 어느 날 무제 앞에서“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견줄 만한 것 없이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도 기우네. [北方有佳人한대, 絶世而獨立이네. 一顧傾人城하고, 再顧傾人國이네.--, '李夫人傳']”라고 노래 하였다. 무제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빗댄 노래임을 알고 그녀를 불렀다. 과연 절세 미인이엇고 춤도 잘 추어 그 미모에 빠졌다. 傾國의 본뜻은‘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다. 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고조(高祖)가 항우에게 부모 처자를 포로로 빼앗겨 괴로와하고 있을 때, 후공(候公)이 그의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찾아왓다. 이때 고조는“이는 천하의 변사(辯士)로다. 그가 있는 곳이면 나라도 기울게 하리라.”한 것이 본 뜻이다.
▷ 絶(끊을 절) 薄(엷을 박) 獨(홀로 독) 顧(돌아볼 고) 再(다시 재)
[참고]玉樹後庭花(옥수후정화)-- 남북조 시대에 陳(진)나라의 마지막 왕 후주가 사치하고 놀기를 좋아 하여 항상 연회를 베풀고 빈객을 청하여 궁녀(양귀비)들과 함께 불렀던 음란한 노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악학궤범》에 후전(後殿)·후정화(後庭花),북전 [北殿]이라하여 고려 충혜왕(忠惠王)이 뒤뜰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세종 때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어 성종 때 성현(成俔)이 왕명에 의하여 악가(樂歌)를 개산(改刪)할 때, 조선창업을 송축한 가사로 개작하였다. 《악학궤범》에 실려 있는 1절은 다음과 같다. "山河千里北에 宮殿에 五雲高 ㅣ로다니/瑞日굽 輝輝明璃陛어 騎騎香煙굽繞袞袍ㅣ로다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향악공(鄕樂工)을 뽑을 때 시험곡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麗宇芳林對高閣 新粧艶質本傾城 여우방림대고각이요 신장염질본경성을 映戶凝嬌乍不進 出유含態送相迎 영호응교사부진하니 출유함태송상영을 妖姬瞼似花含露 玉樹流光照後庭 요희검사화함로하니 옥수유관조후정을 화려한 집 꽃숲은 높은 누각을 대하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운 몸매는 성을 기 우릴 지경이로다. 문을 비친 엉긴 교태에 짐짓 움직이지 않으니 휘장을 나와 먹음은 교태는 보내며 서로 맞이하네. 아름다운 여인의 뺨은 꽃이 이슬을 머금음과 같고 아름다운 나무는 빛을 흘리어 뒤 정원을 비추네.
[예문1] “당신 같은 팔자 어디 있어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모아 놓고 밤 깊도록 노시다가 갑갑하실 때 쯤 때를 맞춰서 바람이나 쏘이시라고 나같은 모던 미인이 자동차까지 가지고 등대를 하고…하하…”경애는 야죽야죽 놀린다.(廉想涉, 三代) [예문2]'미인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더라, 천하에 어떤 경국지색도 덕성기품을 당하지는 못해.'최명희 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대화 한토막이다. 일제치하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겪는 매안 이씨 양반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사대부가 연인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표현된 풍속소설이다 <매일경제> [예문3] 중국 역사에서 ‘경국지색’으로 악명을 높인 첫 여인은 아마도 은(殷 BC1600~BC 1046)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달기’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빠진 주왕(紂王)을 휘둘러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락을 즐기는 한편 비간(比干)을 주살시키게 해 은나라가 주(周) 무왕에게 무너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은나라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서주(西周)가 무너진 것은 달기와 같은 ‘경국지색’ 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2.11 오마이뉴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준말 : 經濟)

[예문1]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실존인물 조조(曹操)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 속에서는 음흉한 간웅(奸雄)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주가 많고 간특한 사람을 '조조같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실제 조조는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실천한 선국적 인물로서 '조조 전문가' 이재하교수는 재조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조조 시문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 경성대교수이다. 현재까지 전하는 조조의 글중 각종 법령과 서한, 시등을 통해서 보면 그의 경세제민 사상은 재평가받아야 마땅할 인물이다. [예문2]정통 유가 사상에서는 대체로 선비들이 성인의 도에 달하기 위하여 體, 用, 文 세가지 방면에 조화있게 매진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 체란 것은 군신, 부자 등 사이의 인륜과 인의, 예악 등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용이란 것은 이러한 수양을 통해 어떻게 정치 사회질서를 수립해 나가는가 하는 문제 즉 「경세제민」의 분야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문이란 것은 경, 사, 우, 집 등의 각종 문헌의 해석과 처리 등에 관한 폭 넓은 지식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 세가지 목표는 앞에서 언급 했듯이 조화있게 추구 해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최종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안동대 신문>
[예문3]아랫사람을 너그러이 대하면 백성으로 순종치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윗사람이 되어 너그럽지 아니하고 예(禮)를 차리는데 공경하지 아니하면, 내가 무엇으로써 볼 것인가.' 하였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하였다. 사람들이 항용(恒用) 말하기를 '벼슬살이에 위맹(威猛)함을 숭상하는 것이 제일이다.' 하는데 이는 속된 말이다. 먼저 맹(猛)이라는 한 글자를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 그 심중에 간직한 것이 이미 스스로도 좋지 않을 터이니 어찌 되겠는가. (.중략) 후세 사람들이 옛 사람들만 못할지라도, 역시 유가(柔嘉: 柔는 安의 뜻이며, 嘉는 善의 뜻이다. 그러므로 편안히 하기를 잘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한 자는 반드시 높이 오르고 많은 사람을 얻되, 그 울울불락하고 사나운 자는 많이들 중도에 넘어지니 나는 이로써 유가한 것이 좋은 기상인 줄로 안다.(.중략) 오직 그 평일의 말씨나 기색이 유가하고 온공(溫恭)한 후에야 능히 강해도 뱉지 않고 강포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니, 이 이치는 또한심히 분명한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목민심서>에서는 지은이의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수령으로 있는 사람은 사납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며 관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꺼리어 멀리함. 표리부동한 태도.**敬遠= 敬鬼神而遠之
[동]面從腹背 (면종복배)/表裏不同(표리부동) [출전]『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 [내용]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지(知)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공자는 "백성의 도리[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고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대답하였다. [예문1]물론 적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용한 머리에 포착되지 않는 비범한 사람들의 성취를 '천재의 것'으로 규정하는 치지도외 내지는 경이원지(敬而遠之) 식의 접근을 왕왕 본다.그것이 사회사적 접근이 없는 진공 속의 손 쉬운 논리에 불과하다는 흔지않게 지적도 동시에 접하기도 한다<책과 사람들> [예문2]지금 일어나는 각종 게이트들도 결국 돈 때문에 생긴것 아닌가. 수행자만이 돈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간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돈과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돈을‘경이원지(敬而遠之)’해야될 것 같다. 필요한 존재지만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존재가 바로 돈이다.<2002.01 한국일보>
☞언어와 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준말 : 輕薄)
[예문] 여반장(如反掌)으로 우정(友情)이 변하는 것을 오뉴월 날씨 변하듯 금시 흐리기도 하고 금시 비가 내리기도 한다는 비유를 들고 있다. 세상이 어수선(紛紛)하고 생활태도가 경조부박(輕 浮薄)하니 죽마고우의 옛 교분을 하루 아침에 헌신짝 버리듯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썩은 진흙 속에서 부용(芙蓉)이 피어나듯 관중과 포숙 같은 금란지교(金蘭之交)도 또한 없지 않은 것이다. <월간 불광>
☞온 세상을 다스림.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
[예문] 한(漢)나라 말엽 위한오(魏漢吳) 삼국시절에 황후유약(皇后幼弱)허고 군도병기(群 盜竝起)헌디 간흉(奸凶)허다. 조맹덕(曺孟德)은 천자를 가칭(假稱)하야 천하를 엿보았고 범람(汎濫)타 손중모(孫仲謀)는 강하(江夏)에 험고(險固)믿고 제업(帝業)을 명 심(銘心)허며 창의(倡義)헐사 유현적(劉玄德)은 종사(宗社)를 돌아보아 혈성(血誠) 으로 구치(驅馳)허니 충간(忠奸)이 공립(共立)허고 정족(鼎足)이 삼분헐새 모사는 운집(雲集)이요 명장은 봉기(蜂起)로다. 북위모사(北魏謀士) 정욱(程昱) 순유(筍攸) 순문약(筍文若)이며 동오모사(東吳謀士) 노숙(魯肅) 장소(張紹) 제갈근(諸葛瑾)과 경천위지(經天緯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잘긴들 아니허리. 그때여 한나라 유현덕은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더불어 도원(桃園)에서 의형제 결의(結義)를 허는디 <적벽가> [예문] 당시에 독보할 경천위지의 영웅호걸이라. 그대가 마치 팔팔 뛰는 버릇이 있으므로 본토에만 묻혀 있어서는 이 위에 여러 가지 복락을 결코 한가지로 누리지 못하고 전일과 같이 곤란한 재앙만 올 것이요, 본토를 떠나야만 여의(如意)할 것이로다." - <별주부전>에서 별주부가 토끼에게 유혹하는 말.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항문)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출전]『史記』蘇秦列傳 [내용]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원문]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今玆效之, 明年又復求割地.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 前功而受後禍.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 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臣聞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於是 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曰 "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今主君詔以趙王之敎,敬奉社稷以從." [예문]계구우후(鷄口牛後) 라는 말이 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음식재료의 차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여름내 파리 떼를 쫓느라 분주했던 소꼬리는 영양분의 보고다... <2002.10 한국경제>
☞계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유] 雪上加霜(설상가상) [속담]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窮人之事는 飜亦破鼻라)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수를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수를 하면 비가 온다.
[내용]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황희(黃喜, 號 : 尨村)는 마음이 착하고 생활이 검소하엿다. 황정승의 생활이 매우 빈한한 것을 상감(上監)께서 궁휼히 여기시고 어떻게 잘 살게 할 방도를 생각하시었다. 한 묘안을 얻어 명령하시되 내일은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자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이 문을 들어오는 물건을 다 황정승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종일토록 멎지 아니하므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 집에 들어 갈려고 할 때 무슨 까닭인지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어 이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곧 삶아 먹으려고 하니 알마다 곯아서 한 알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곯다’의 어간이 한자의 骨과 음이 같은 데서‘뼈가 있다’로 된 듯함. [참고]최창렬 전북대 교수(국어교육학)가 쓴 <우리 속담 연구>는 민중의 생활정서가 고스란히 녹아든 우리말 속담을 더 늦기 전에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순 우리말 속담들이 한글을 `언문'으로 낮춰보는 한자사대주의자들에 의해 고사성어인 듯 만들어진 사례다. 심지어 “박복한 놈은 모처럼 선물로 얻은 달걀도 곯아 있다”는 황희 정승의 일화에서 `곯아있다'가 `유골(골 있다)'로 잘못 표기되면서 `계란유골'이 숙어화한 웃지 못할 사례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한겨레 신문> [예문]그 깊은 슬픔도 나를 떠나고 우리를 떠나면 속물적인 뉴스가 되는 건 지. 사람들은 조용필 씨의 아내가 남긴 유산을 두고 툭툭 농담을 던 진다. "복도 많아, 유산이 꽤 될 텐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 했다. 농담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계란유골이기 때문이었다 . 웃고 나서 홀가분해지지 않으면 유머가 아니다.<2003.01매일경제>
☞① 닭의 갈빗대.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② 닭의 갈빗대가 약하고 작은 것처럼 자기 몸이 약하다.

[유] 兩手執餠(양수집병) : 양손에 든 떡. 갖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출전]『後漢書』 [내용1]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먼저 점령하니 위(魏)의 조조(曹操))가 반격해 왔다. 그러나 조조는 수개월간의 싸움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게 되자‘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조에게 양수(楊修)라는 은어를 잘 푸는 재주를 가진 주부(主簿)가 있었다. 그는 조조의 명령을 듣고 부리나케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리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닭의 갈비는 먹으려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한중(漢中)을 이에 견주었으므로 왕은 곧 귀환 할 것을 결정하신 것이오.”그 말대로 조조는 위나라 전군에게 한중으로부터의 철군 명령을 내렸다. [내용2] 유영(劉怜-竹林七賢)이 취홍 끝에 어떤 속인과 옥신각신 하였다. 그 속인이 팔을 걷어 부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니 유영은 점잖게 말하기를,“닭의 갈빗대가 허약하니 어찌 그대의 주먹을 당해 내리오.” 달려들던 속인은 어이없이 그만 두어 버렸다. [예문1]초라한 수원 월드컵구장 개장식 수원 월드컵 개장식과 개장기념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대다수 관중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랬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2,695억원이라는 어머어머한 사업비가 소요된 최첨단 구장이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 첫걸음은 매우 실망스러웠다.<중략> 전 수원시민의 열기를 모아 준비한 최첨단 월드컵구장에서 갖는 개막경기가 고작 자매도시 초청 청소년대회라니…. 개장경기에서 최고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목 놓아 기다리던 팬들이 실망스러워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 썰렁한 분위기는 사전에 예상됐던 바다.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경기장을 갖춰 놓고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계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월드컵 리허설’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스포츠투데이> [예문2]미국 최대의 유선 스포츠 채널인 인터넷 판을 통해서 밝힌 트레이드 카드 활용 가능한 한국 선수들은 봉중근(22ㆍ애틀랜타 브레이브스)과송승준(21ㆍ몬트리올 엑스포스) 그리고 박찬호(30ㆍ텍사스 레인저스).봉중근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야수 보강을 위해서, 송승준은 방망이를 영입하기 위한 카드로 언제든지 팀에서 내줄 수 있다는 것. 여기에다 몬트리올은 잠재적으로 4, 5선발 투수급도 트레이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김선우(26)도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김선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반면 박찬호는 텍사스가 내보내고 싶어도 받아줄 팀이 없는 경우로 계륵과같은 존재라는 것이 평가이다.<2003.7 한국일보>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④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
[동] 函谷鷄鳴(함곡계명) : 함곡관의 닭 울음소리라는 뜻.
[출전]『史記』, 孟嘗君傳 [내용]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가서 호백구(狐白?)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를 요구 하였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신이 능히 호백구를 얻어 오겠습니다.’하고 이에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원문]孟嘗君使人抵昭王幸姬求解, 幸姬曰: "妾願得君狐白(求+衣)." 此時, 孟嘗君有一狐白(求+衣), 直千金, 天下無雙, 入秦獻之昭王, 更無他求. 孟嘗君患之, (두루변)問客, 莫能對, 最下坐有能爲狗盜者, 曰 : "臣能得狐白(求+衣)." 乃夜爲狗, 以入秦宮藏中, 取所獻狐白(求+衣), 至以獻秦王幸姬, 幸姬爲言昭王, 昭王釋孟嘗君. 孟嘗君得出, 卽馳去, 更封傳(驛券)變名姓以出關. 夜半至函谷關, 秦昭王後悔出孟嘗君, 求之已去, 卽使人馳傳逐之. 孟嘗君至關, 關法鷄鳴而出客, 孟嘗君恐追至, 客之居下坐者, 有能爲鷄鳴, 而鷄盡鳴, 遂發傳出. 出如食頃, 秦追果至關. 已後孟嘗君出, 乃還. 始, 孟嘗君列此二人於賓客, 賓客盡羞之, 及孟嘗君有秦難, 卒此二人拔之, 自時之後, 客皆服.--『史記』, '孟嘗君列傳' [참고]鷄鳴狗盜(계명구도)의 주인공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의 孟嘗君(맹상군)이 3000명의 食客(식객)을 두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특이한 재능만 있으면 ‘過去不問’(과거불문)하고 받아들이고 衣食住(의식주)까지 해결 해 주다보니 자연히 별 희한한 인간群像(군상)들이 다 모였을 것이다. 그 중 鷄鳴狗盜의 고사에서 개 흉내나 닭울음소리를 내서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했던 식객은 아마도 전직이 좀도둑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보니 계명구도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 것 같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하찮은 재주도 언젠가 귀하게 쓰일 데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계명구폐 鷄鳴狗吠 [닭 계/울 명/개 구/짖을 폐]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人家나 村落이 잇대어 있다.
[원]鷄鳴狗吠相聞--닭 울음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서로 들림. 땅이 활짝 트여있고, 이웃 지방이 잘 보이고 인가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뜻.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왕안석(王安石) 世皆稱孟嘗君(세개칭맹상군)은 :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맹상군을 일컬어 能得士(능득사)라 : 선비를 잘 구했다고 한다 士以故(사이고)로 : 그대서 선비들은 歸之(귀지)하여 : 그에게로 모여들어서 而卒賴其力(이졸뢰기력)하여 : 마치내 그들의 힘을 빌려서 以脫於虎豹之秦(이탈어호표지진)이라 : 호랑이나 표범같은 진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嗟乎(차호)라 : 아 孟嘗君(맹상군)은 : 맹상군은 特鷄鳴狗盜之雄耳(특계명구도지웅이)라 : 다만 닭의 울음소리나 내고 개 짖는 소리나 내는 무리들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豈足以言得士(기족이언득사)리오 : 어찌 선비를 구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不然(불연)이면 : 그렇지 않다면 擅齊之强(천제지강)하여 : 강한 제나라를 마음대로 하면서 得一士焉(득일사언)이라도 : 올바른 선비 한 사람만 구했어도 宜可以南面而制秦(의가이남면이제진)이어니 : 마땅히 천자가 되어 진을 제합할 수 있었을 것이니 尙取鷄鳴狗吠之力哉(상취계명구폐지력재)아 : 어찌 닭 울음 소리나 내고 개 짖는 소리를 내는 무리들의 힘을 취해야 했겠는가 鷄鳴狗吠之出其門(계명구폐지출기문)이니 : 닭울음 소리나 내고 개 짖는 소리나 내는 무리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으니 此士之所以不至也(차사지소이부지야)니라 : 이것이 바로 바른 선비가 찾지 않았던 까닭인 것이니라.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냄.=곗술에 낯내기
[속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계찰이 마음 속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두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출전]『史記』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내용]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국(徐國)을 들르게 되었는뎨,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매우 부러워 하였다. 계찰은 칼을 주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사신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서국을 들렀으나 임금은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마음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 놓고 왔다.는 이야기로 《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에 보인다.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아들이 계찰(季札)이다. 계찰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촌에 살면서 밭을 갈며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지 않아서 왕은 계찰을 연릉(延陵)으로 봉후(封侯)했다. 그 후로부터 계찰을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렸다. 계찰이 처음 사신으로 길을 떠났을 때, 오(吳)나라의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평소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않았다. 계찰 역시 속으로는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으로 중원(中原)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각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徐)나라에 도착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 집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家樹而去]. 그의 종자(從子)가 물었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계찰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계찰계검'은 이 글을 요약한 말이며, 중국의 유서(類書)인 《몽구(蒙求)》의 표제어에는 '계찰괘검(季札掛劍)'으로 적고 있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평가하여,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원문]季札之初使, 北過徐君. 徐君好季札劍, 口弗敢言. 季札心知之, 爲使上國, 未獻. 還至徐, 徐君已死, 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 樹而去. 從者曰ː"徐君已死, 尙誰予乎?" 季子曰"不然. 始吾心已許之, 豈以死倍吾心哉!"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킴.
[출전]『史記』季布傳 [내용] 초(楚)나라 계포는 어떤 일에든지‘좋다’하고 한 번 내뱉은 이상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걸고 싸울 때, 계포가 초나라 대장이 되어 유방을 여러차례 괴롭혔는데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을 하자 쫓겨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자가 그를 밀고 하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여 사면시킨 뒤 벼슬까지 얻게 하였다. [원문]楚人曹丘生, 辯士, 數招權顧金錢. 事貴人趙同等, 與竇長君善. 季布聞之, 寄書諫竇長君曰: "吾聞曹丘生非長者, 勿與通." 及曹丘生歸, 欲得書請季布. 竇長君曰: "季將軍不說足下, 足下無往." 固請書, 遂行. 使人先發書, 季布果大怒, 待曹丘. 曹丘至, 卽揖季布曰: "楚人諺曰: '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足下何以得此聲於梁楚閒哉? 且僕楚人, 足下亦楚人也. 僕游揚足下之名於天下, 顧不重邪? 何足下距僕之深也!" 季布 大說, 引入. 留數月, 爲上客, 厚送之. 季布名所以益聞者, 曹丘揚之也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重臣).
[동]股肱(고굉)/. 股掌之臣(고장지신)./柱石之臣(주석지신)
[출전]『서경』익직편(益稷篇) [내용] 순(舜)임금이 말했다.“신하들이여! 옆에서 도와 주시오. 어려울 때 도와 주는 신하가 참된 신하로다.”하니 우(禹)가“옳으신 말씀입니다.”하였다. 순임금이 신하들을 둘러보며“그대들과 같은 신하는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 내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돕고자 하니 아울러 그대들도 도와 주시오……(臣作朕股肱耳目 予欲左右有民汝翼 予欲宣力四方汝爲).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충고해 주고 모든 동료들이 서로 공경하고 예의를 지켜 주오. 그리고 관리는 백성의 뜻을 짐에게 전하는 것이 임무이니 올바른 이치로써 선양하고 뉘우치는 자가 있으면 용서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처벌하여 위엄을 보이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참고]순임금이 성군이 되는 데는 신하들의 보좌가 필요했고,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준수, 인애(仁愛)와 형벌의 병행이 필요했던 것이다. 같은 뜻의 고장지신(股掌之臣;다리와 손바닥 같은 신하)이라는 말이 있고, 비슷한 말에 주석지신(柱石之臣;나라를 떠바치는 중심이 되는 신하)과 사직지신(社稷之臣:나라의 안위를 맡은 중신)이 있다. '고굉지신'을 줄여서 '고굉'이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 고군분투 孤軍奮鬪 [외로울 고/군사 군/떨칠 분/싸울 투]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함.
[예문1]박세리(21·아스트라)가 98US오픈 우승자 리 잰슨(34), 노장 휴버트 그린(51)과 함께 짝을 이뤄 출전한 98질레트투어 챌린지 골프대회(총상금 180만달러)서 고군분투했으나 참가 8개팀중 최 하위를 했다. <디지틀 조선>
[예문2][당수뇌부 입장]한화갑 "반대" 노무현·이인제 "어정쩡" 민주당의 ‘정풍(整風)’운동 파문이 확산되면서 당의 수뇌부격인 최고위원들이 점차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최고위원들 중 일부 초·재선의원들이 제기한 당정쇄신론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사람은 정동영(鄭東泳)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이다. 두 사람은 27일 오전 단독으로 만나 당정쇄신론 지지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초·재선의원들만의 성명 파동을 최고위원회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평가도 있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과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은 대표적인 개혁 성향의 인물로 꼽히면서도 정동영 정대철 최고위원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김 최고위원은 초·재선의원들의 충정을 이해한다면서도 방법론에 이의를 달고 있으며, 대책도 김중권(金重權) 대표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얘기하자는 태도다. 그동안 강연정치를 통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해 왔던 노 상임고문은 2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김원기(金元基)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도 김근태 최고위원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성급하게 결론을 낼 것이 아니라 김 대표가 귀국하면 충분히 논의해보자는 것. 지난해 말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의 ‘2선 퇴진론’ 파문 당시 정동영 최고위원 편에 섰던 것으로 인식됐던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이번에는 그 때와는 다른 태도다. 그는 27일 밤 최고위원 간담회에 불참했고, 28일 확대간부회의에선 재선의원들의 성명 발표 강행을 질책했다.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은 입을 무겁게 닫고 있다. 그는 “당정쇄신은 항상 하는 것”이라며 “초·재선들의 요구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그의 어정쩡한 태도는 권노갑 전 최고위원 등 구 동교동계의 협조 없이 대선에 대비한 당내 기반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시각들이 많다. 안동선(安東善) 최고위원은 동교동계 수비수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있다. 그는 최고위원 간담회에서도 정동영 최고위원의 최고위원 사퇴론을 공격했다.<동아일보>
☞기름진 고기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동]山海珍味(산해진미)/珍羞盛饌(진수성찬)/龍味鳳湯(용미봉탕)/食前方丈(식전방장) [내용]'시경 대아에 이르기를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으로 충족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이미 인의가 충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의 고량지미를 원하지 않고, 명성이 가득하기 때문에 남의 좋은 의복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고량(膏粱)은 살진 고기(肥肉)를 뜻하고, 진미(珍味)는 좋은 곡식(美穀)을 뜻한다 [원문]詩云 旣醉以酒 旣飽以德 言飽乎仁義也 所以不願 人之膏粱之味也 [예문1]오랜 요양 중에 구미의 증감이 잦으신지라, 인하여 말씀하시기를 [구미가 있으면 소사채갱도 오히려 달아서 몸에 영양이 되고, 구미가 없으면 고량진미도 맛이 없어서 소화불량을 일으키나니, 자신에게 도가 있으면 역경도 능히 좋게 운전하여 복락을 수용할 수가 있고, 자신에게 도가 없으면 순경도 나쁘게 운전하여 재앙의 밑천을 짓는 수 있나니라. 그러므로, 세상 살아나가기의 재미 있고 재미 없는 것이 밖의 경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실은 안으로 자기의 도력과 도미(道味) 유무에 달려 있나니라<원불교 홈페이지> [예문2]한방은 통풍의 원인을 외부의 차고 습한 기운이 침범하고 정신적인 억울함이 누 적되며 기혈이 허약할때 생긴다고 본다.또 고량진미와 과음 육류과다섭취 등으로 인해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서양의학의 통계에서도 발병요인은 비만이 47.4%, 고혈압이 42.1%로 가장 많고 과음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한국경제> [예문3]비만증에 특효가 있다고 선전하는 대다수의 건강식품이나 약은 과대광고이거나 부작용을 일으킨다.비만은 한방의 고전 의서에서도 비반증이라 하여 고량진미를 즐겨 먹고 몸의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에게서 생기는 질병으로 언급하고 있다.신체는 구조상 필요 이상으로 섭취한 잉여 영양분을 지방으로 만들어 몸에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2002.3국민일보>
☞고려의 정령이 사흘 만에 바뀐다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
[동]作心三日(작심삼일)/. 朝令暮改(조령모개)./ 朝變夕改(조변석개) [내용]이 속담이 처음 쓰인 예는 <세종실록(世宗實錄)> 권 73 정해조(丁亥條)에서 찾아 볼 수 있다.세종대왕께서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전지(傳旨)하는 대목에 나온다.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연대(烟臺)를 설비하는 것은 높은 데에 올라 멀리 관망하며 변경을 시찰하여,유사시에 각(角)을 불고 포(砲)를 놓아 이를 사방 인근에 알리고는,혹은 싸우기도 하고 혹은 수비하는 등,만전을 기하는 이기(利器)인 까닭에,여연(閭延),자성(慈城),강계(江界),이산(理山) 등 각 고을에 일찍이 화통교습관(火통敎習官)을 보내어 연대를 설치할 만한 곳을 심정(審定)한 바 있다. 그러나 신진의 이 무리들의 본 것이 혹시 대사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으므로 즉시 시행하지 못했던 것이니,경은 친히 가서 두루 관찰하고 그 가부를 생각한 연후에 기지(基地)를 정하여 축조하도록 하라.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이 사람이 상정(常情)이며,더욱이 우리나라 사람의 고질이다.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고 하지만,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이 속담은 '우리나라 사람의 성격이 처음에는 잘 하다가 조금 지난 후에는 흐지부지해진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용두사미격(龍頭蛇尾格)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말이다.어떤 일을 거창하게 벌려만 놓았지 끝마무리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중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오늘날 이 속담은 조변석개(朝變夕改)로 정령(政令)이 자주 바뀐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인조조(仁祖條) 유몽인(柳夢寅)의 <어유야담(於于野談)>에서 비롯된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명상(名相) 서애 유성룡(西涯 柳成龍)이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있을 때,각 고을에 발송할 공문이 있어서 역리(驛吏)에게 주었다.보낸 후 사흘 뒤에 그 공문을 다시 고칠 필요가 있어서 회수시켰더니 그 역리가 돌리지도 않고 있다가 고스란히 그대로 갖고 오더라는 것이다.서애는 "사흘이 지나도록 왜 공문을 발송하지 않았느냐"고 꾸짖자,역리 대답하기를 "속담에 조선공사삼일이란 말이 있어 소인의 소견으로 사흘 후에 다시 고칠 것을 예견(豫見)하였기에 사흘을 기다리느라고 보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서애는 "가히 세상을 깨우칠 말이다.내가 잘못이다."라고 역리에게 말하면서 고쳐서 반포했다.」라 되어 있다. 지금은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나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나 다같이 우리나라 사람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정령(政令)을 자주 변경한다는 뜻으로 똑 같이 쓰인다.그러나 위의 두 인용문에서 쓰인 뜻은 각기 달랐던 것이다. [참고] 高麗 :나라 이름. 또는 남의 사려를 높이어 이르는 말/考慮 : 생각하여 헤아림/ 苦慮 :애써 생각함. 顧慮 :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여 봄.
☞외톨이가 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동]孤立無依 (고립무의)
[예문1]㈜대우가 수출전선에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올들어 9월말까지 ㈜대우가 거둔 수출실적은 36억달러. 대우그룹 워크아웃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융지원이 막혀 대형플랜트 수주가 무산되고 영업망도 축소된 가운데 이뤄낸 성과다.
<서울경제> [예문2]굴원은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친제파였다. 당시 초나라는 굴원의 반대파인 친진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이들 친진 세력들은 진나라의 장의가 6백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 친교를 끊은 후 끊임없이 진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초나라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회왕은 다시 굴원을 불러들여 다시 등용하려고 하였다. 굴원은 오직 조국 초나라에 공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도인 영으로 돌아왔으나 재차 녹상의 참소를 입어 강남지방으로 추방되는 비운에 처해졌다.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 매우 살기 좋은 시절
[동]堯舜之節(요순지절) :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太平聖代(태평성대)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시대./ 康衢煙月(강구연월) /태평연월(太平烟月)/함포고복(含哺鼓腹)/격양지가(擊壤之歌)/당우천지(唐虞天地)/당우성세(唐虞盛世)/요순시절(堯舜時節) /태평성대(太平聖代)*唐--堯이 세운 나라 虞--舜이 세운 나라 [출전]『十八史略』제요편(帝堯扁)『사기(史記)』오제본기편(五帝本紀扁) [내용]유가(儒家)에서는 성군(聖君)의 표상(表象)으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꼽는다. 두 임금의 치세는 아직 고증이 되지 않아 신화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이 가상이나 전설의 인물을 그토록 받들고 거론했겠느냐’는 반론이 많다. 에, 천하의 성군으로 꼽히는 요임금이 천하를 통치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평복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가 어느 네거리를 지날 때였다. 어린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입아증민[立我烝民]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막비이극[莫匪爾極]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불식부지[不識不知]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순제지측[順帝之則]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어린이들의 순진한 노랫소리에 요임금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마음이 흐뭇해진 요임금은 어느 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곳에는 머리가 하얀 한 노인이 우물우물 무언가를 씹으면서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鼓腹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편 ‘격양’을 나무로 말굽 모양으로 만든 양(壤)을 땅에 세워 두고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을 던져서 맞히는 놀이라는 설이 있다. 《악부시집(樂府詩集)》 〈격양가(擊壤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일출이작 일입이식[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경전이식 착정이음[耕田而食 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제력하유우아재[帝力何有于我哉]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백발노인의 고복격양에 요임금은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없이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고, 정치의 힘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정치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노래의 내용은 요임금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정치였다. 다시 말해서 요임금은 백성들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먹고 쉬는, 이른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바랐던 것이다. ‘요 임금의 덕택이다’ ‘좋은 정치다’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그 노인처럼 백성이 정치의 힘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자신이 지금 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도교(道敎)의 창시자 노자(老子)도 이런 정치를 두고 ‘무위(無爲)의 치(治:다스림)’라고 했으며 정치론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요임금처럼 지배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를 정도로 정치를 잘하는 지배자를 최고의 통치자로 꼽았다. ** 息(쉴 식) 鑿(뚫을 착) 飮(마실 음) 耕(밭갈 경)
☞오래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들어나 보이는 모양.
[예문1]옛모습 제석봉을 넘어서 고색창연한 고사목의 앙상한 선골들이 암벽 기숡에 위태로이 나열하고 있는 고산지대의 특이한 선경을 감상하며 가파른 몇 개의 봉우리를 가쁘게 넘고 넘으면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에 이른다<지리산 노고단> [예문2]고색창연한 경복궁에서 한국의 과거 2000년 동안의 장엄한 복식 자취를 퍼레이드화 한 것은 미래의 찬란한 패션문화를 예시하는 증후였다.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의 디자이너들이 펼친 컬렉션은 패션을 통한 한국 혼의 정형을 보여준 무대였다.
☞고립무원한 외딴 성이 해가 지려고 하는 곳에 있다. 쓸쓸한 심정이나 삭막한 풍경을 비유하여 하는 말.
[동] 四顧無親(사고무친) : 친척이 없어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움. [출전]『송위평사(送韋評事)』왕유(王維)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내용]장군을 쫓아 우현을 잡고자, 모래땅에 말을 달려 거연으로 향한다. 멀리서 짐작하노니 한나라 사신이 소관 밖에서, 외로운 성에 지는 해의 언저리를 수심으로 바라볼 것을--멀리 외로이 서 있는 성에 해마저 서산으로 기운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쓸쓸한 풍경과 외로운 심정을 노래한 데 불과하지만 보통 ‘고성낙일’이라 하면, 멸망하는 그날을 초조히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낸다. [원문]欲逐將軍取右賢 沙場走馬向居延 遙知漢使蕭關外 愁見孤城落日邊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
[동] 因循姑息(인순고식) : 구습을 버리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을 취함. /彌縫策(미봉책) /臨時方便
[속담]눈가리고 아웅 ,언발에 오줌누기 [출전]『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 [내용]예기 단궁편에 이르기를 '증자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저것과는 같지 않다.군자가 사람을 사랑할 때는 덕으로써요 소인이 사람을 사랑할 때는 고식(姑息)으로일 뿐이다. 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올바른 것을 취하여 사악한 것을 넘어뜨리고자 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즉 군자의 사랑은 덕으로하기 때문에 오래가고 소인의 사랑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두고 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다. [원문]曾子曰, "爾之愛我也不如彼. 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예문]유단장은 이어 “팀성적에 대해 선수들이 책임지는 풍토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며 “팀이 먼저이고 내가 나중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혀야 팀워크도 단단해질 것으로 믿는다.당장은 힘들겠지만 미래를 위해 원칙을 세우겠다”고 덧붙였다.
고식지계(姑息之計)의 변칙을 버리고,시간이 걸려도 정도를 걷겠다는 LG 구단의 새로운 각오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다<2002.01스프츠투데이>
☞목마른 고기의 어물전. 매우 곤궁한 처지
[내용]장자(莊子)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감하후라는 자에게 꾸러 갔다. 감하후는 말했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형편 역시 어렵습니다. 조세를 거둬들인 후에 은자 3백냥을 빌려드리겠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장자는 그의 말에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어제 나는 길을 가다가 길가의 마른 구덩이 속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물고기는 나를 보고는, '저는 본래 동해에 있었는데 불행히 물이 말라 버린 구덩이에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물 한 통만 가져다 주어 구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 나는 지금 남쪽의 여러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 곳에는 물이 많으니 물을 가져와 너를 구해주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화를 내며 '그것이 가능합니까? 지금 저에게는 물 한 통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서강(西江)의 물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저는 이 곳에 없고 어물전에나 가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적을 속이는 수단으로서 제 몸 괴롭히는 것을 돌보지 않고 쓰는 계책
[동]고육계(苦肉計) /고육지계(苦肉之計) / 窮餘之策 (궁여지책) [출전]『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내용]계책은 가능한 한 자신을 희생시킴 없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건이 좋지 못해서 자신을 희생시켜 가면서 계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경 경우가 있는데, 이런 계책을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말하기를 '고육책'을 쓰지 않고서 어떻게 조조를 속일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군사상 고육계(苦肉計)란 자기편 사람을 고의로 해쳐 적국으로 달아나게 하여 적이 믿게 한 다음에 적정을 염탐해서 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조조가 군사를 몰아 오(吳)나라를 공격하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다가 커다란 강, 장강(長江)을 만나 진격을 멈추게 된다. 조조의 군사는 배를 타보지도 못한 군사들이라 배를 타자마자 모두들 배멀미하느라 난간을 붙잡고 물고기 밥을 주고 있어 강을 건너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은 위(魏)나라의 편, 언젠가는 조조의 군사들이 배멀미에 적응하게 되면 숫자로 불리한 오나라는 전쟁에서 질 수밖에는 없었다.
그 때 오(吳)나라의 장군은 주유. 매일 고민에 빠져 있는데 늦은 밤 늙은 신하가 주유를 찾아와선 무언가 작전은 짜고 돌아간다. 다음 날 작전회의 시간에 주유는 역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 늙은 신하가 주유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가 난 주유는 늙은 신하를 몹시 때려 쫓아낸다. 이에 화가 난 늙은 신하는 강을 건너 조조에게 투항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조도 약은 사람, 그를 믿지 않고 오나라에 보낸 첩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모든 것이 사실이라 그 늙은 신하를 믿고 자신의 참모로 쓰게된다. 그리고 그 신하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말해 주게되는데.. 작은 배들을 쇠사슬로 묶어 큰 배를 만들게 하니 배의 흔들림도 적어 배멀미를 하지 않자 조조는 많은 배를 하나의 커다란 배로 엮게 하고는 강을 건너 진격을 하게 된다.
강을 반쯤 건넜을 때까지도 강 건너편의 오나라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더니 갑자기 작고 빠른 배 몇 척이 나타나 조조의 배에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지르게 된다. 하나로 묶여 이는 배들은 모두들 불에 타고 조조의 군사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하여 조조는 대패하지요 겨우 목숨만을 구한 조조는 도망가다가 장비를 만나 또 혼이 나고 결국 관우에게 사로 잡히지만 관우는 그를 풀어 준다. 이 전쟁의 내용이 적벽대전(赤壁大戰)), 적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적벽부(赤壁賦), 판소리로 만든 것을 적벽가(赤壁歌)이다. 주유와 그 늙은 신하가 쓴 작전이 고육지계(苦肉之計)이다. 조조를 속이기 위해 주유는 자신의 늙은 신하를 몹시 상처주어 조조를 속인 것이다. [예문1]이인제 전경기지사 진영은 7일 부산 롯데호텔에 서 열리는 신당창당 발기인대회는 당초 자신들이 표방해온 '국민정당'이 란 이미지에 걸맞게 독특한 방식으로 발기인대회를 치르기로 했다고 밝 혔다. 발기인대회에 현역 국회의원과 거물급 정치인들의 합류가 무망해 짐에 따라 '창당 명분'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디지틀조선> [예문2]정부는 2012년까지 기계.플랜트산업을 세계 7위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 제조시스템, 고부가가치형 산업설비 및 장비 ,차세대 첨단기계 및 스마트 모듈 등 3개를 신성장동력 업종으로 선정,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멀치감치 앞서있는 미국,일본 등을 따라 잡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제조시스템의 경우 고기능 공작기계와 e-팩토리,산업용 로봇이 역점 개발대상이다. <2003.7 한국경제>
☞외 손뼉은 울릴 수 없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또는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동]因人成事(인인성사) : 남의 일을 비어 일함/十匙一飯(십시일반)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한 사람을 돕는 일은 쉽다. / 獨掌難鳴 / 獨掌不鳴 [속담]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난다. [예문]시장의 큰손인 외국인과 기관은 상대방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실제론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불신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의 형국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가를 방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 증권맨은 "11조가 넘는 고객예탁금이 보초를 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큰 손들이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서도 주가가 오르는 현상, 그건 한마디로 유동성의 힘이 아닐까. <2002.6 한국경제>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동] 生口不網(생구불망) :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반]興盡悲來 (흥진비래) [예문1] 밤은 깊어 삼경인듸 안자쓴들 임이올가, 누워슨들 잠이오랴. 임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도 원수로다. 홍진비? 고진감鏡 예로부텀 잇건마는 지달임도 륢지 안코…(完板春香傳) /이제는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라 주판지세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으니 나중에야 설마 길한 일이 없으랴.(興夫傳) [예문2]소진도 일시의 곤란을 겪으며 뜻을 가다듬어 필경 육국상인을 허리에 띄였다 하니 나도 재조와 담력을 가지고 신고를 견디어 큰 사업을 성취할지니 속담에 이르되 고진감래라 하고 궁한즉 통한다 하니 좋은 때 돌아 오기를 기다릴지로다.『 李仁稙,雪中梅』 [예문3]그러나 불황속에서도 속살을 채워가면서 남몰래 웃고있는 기업이 적지않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던 기업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보이지 않을때가 중요한 법. 농부들은 가끔 할 일이 없을 때가 생긴단다.<2003.5 한국경제>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함.
[동]고침이와(高枕而臥). [출전]『戰國策』〈魏策 哀王〉, 『史記』〈張儀列傳〉 [내용] 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 위(魏) 제(齊) 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했다. "전하,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사옵고[高枕安眠]'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목하고 합종을 탈퇘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나라 난왕( 王)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내용] 此臣之所以爲大王患也.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 則楚,韓必不敢動;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전국책(戰國策)>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則<楚>.<韓>必不敢動 ; 無<楚>.<韓>之患,則大王高枕而臥,國必無憂矣.<사기(史記)장의열전(張儀列傳) >
[참고]고침단명(高枕短命)--높은 베게가 수명을 단축시킨다.
■ 고황지질 膏황之疾 [염통밑 고/명치끝 황/어조사 지/ 병 질]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膏 : 心臟(심장)의 아래. ? : 橫隔膜(회경막)과 心臟의 사이.**황=亡+月
[내용] 옛날 중국 진후(晉候)가 병을 얻어, 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했더니, 꿈에 병이 든 두 소년으로 나타나서 한 놈이「그는 명의니까 어디로 숨을까」라고 말하니 또 한놈이 답하기를「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가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의원이 와 보고 병은 이미 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참고1]천석고황 泉石膏황(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
1. 명종 때, 이황 연시조 <도산십이곡> 12수 중 제1곡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믈 며 천석고황(泉石膏황)을 곳쳐 무슴하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정철 가사 <관동별곡> 제1행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치지 못할 병처럼 되어(세상 일을 잊고), 은거지인 창평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800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의 직분을 맡기시니, 임금님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그지없다. [참고2]相思病(상사병)--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강왕은 포악하고 음란하여 미인을 탐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절세미인인 시종 한빙의 아내 하씨를 발견하고는 강제로 후궁을 삼앗다. 그후 아내를 빼앗긴 한빙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자, 하씨는“시신을 한빙과 합장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격노한 강왕은 무덤을 서로 보이게는 하되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으나 밤 사이에 두 그루의 노나무가 각각 두 무덤 끝에서 나더니 열흘이 못되 아름들이가 되엇다.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맞닿았다. 그야말로 뜨거운 만남의 표현이었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어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었다. 이 새를 한빙 부부의 넋이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라고 했는데, 相思病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고,새는 원앙새라고 하였다.
■ 고희 古稀 [옛 고 / 드물 희]
☞70세(인생70이 예로부터 드물었다)
[출전] 두보(杜甫)의 『곡강(曲江)二首』 [내용]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잡혀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날마다 곡강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몇푼 안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穿花?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를 맴도는 호랑나비는 보이다 말다 하고 點水??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강물 위를 스치는 물잠자리는 유유히 난다.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賞春(상춘)의 기쁨 나누자. [註]朝回 조회에서 돌아옴./ 典春衣 봄 옷을 저당 잡힘/. 江頭 강기슭./ 盡醉歸 만취해서 돌아옴/ 尋常 尋(심)과 常(상)은 길이를 뜻하는 단위로 각기 8자, 16자를 뜻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옛날에는 그리 길지 않다는 뜻으로 인식했다.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 穿花 꽃 사이를 뚫고 다니다/?蝶 호랑나비/. 深深見 때로 숨고 때론 나타나는 모양/ ? ? 물잠자리/.款款 유유한 모습/ 風光 봄 경치/. 共 다 함께, 지는 꽃, 호랑나비, 물잠자리, 시인 모두를 가리/ 流轉 빙빙 돌다/相賞 봄 경치와 서로 융화되어 상춘의 기쁨을 누림/ 莫相違 서로 어기지 말자.
▷▶이시는 두보가 마흔 일곱 살 때 지은 것이다. 李白(이백)과 더불어 唐詩壇(당시단) 의 쌍벽을 이룬 두보는 나이 47세가 되어서야 左拾遺(좌습유)라는 벼슬자리에 앉 아 보았다.그러나 어지러운 政局(정국)과 부패한 관료사회에 실망한 두보는 관직생 활보다 詩作(시작)에 더 마음을 두었으며 매일같이 답답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술 이나 마시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상대로 시간을 보냈다. 곡강은 수도장안 중심지에 있는 유명한 연못 이름으로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며, 특히 봄이면 꽃을 찾 는 사람들로 붐비었다고 한다. 曲江(곡강)가에서 1년간 머물며 몇 편의 시를 남겼 는데 曲江이란 七言律詩(칠언율시) 두 편도 그 때 지은 것이다. 두번째 작품에 '古 稀'가 나온다. 시의 뜻은, 요즘은 조정에서 돌아오면 매일 곡강가로 가서 옷을 잡 히고 마냥 술이 취해 돌아오곤 한다. 술꾼이 술 빚을 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 로 내가 가는 술집마다 외상값이 밀려 있다. 하지만 내가 살면 몇 해나 더 살겠느 냐, 예부터 말하 기를 사람은 七十을 살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더냐 꽃밭사이를 깊숙이 누비며 지나가는 호랑나비도 제철을 만난 듯 즐겁게 보이고, 날개를 물에 적시며, 날아 다니는 잠자리도 제사상을 만난 듯 기운 차 보이기만 한다. 나는 이 약동하는 대자연의 풍광과 소리 없는 말을 주고받는다. 우리 함께 자연과 더불어 흘러가면서 잠시나마 서로 위로하며 즐겨보자 꾸나 하고 말이다. 「인생칠십고래 희」란 말은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을 그대로 두보가 시에 옮긴 것이라고도 한 다. 어쨌든 이 말은 두보의 시로 인해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古稀라는 말이 나왔지만 작자 자신은 고희와는 거리가 먼 59세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1]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지학(志學) : 공자는『논어』에서,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15세를 일컬음. 약관(弱冠) : 남자 나이 20세를 일컬음. 이립(而立) : 공자가『논어』에서, 30세가 되어 인생관이 섰다고 한 데서 나온 말. 30세를 일컬 음. 불혹(不惑) : 공자가『논어』에서, 40세가 되어 사물의 이치에 의문나는 점이 없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40세를 일컬음. 지명(知命) : 공자가『논어』에서, 50세가 되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 50세를 일컬음. 이순(耳順) : 공자가『논어』에서, 60세가 되어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 데 서 나온 말. 60세를 일컬음. 화갑(華甲)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에다 일(一)이 하나 있으므로 61세를 나타내며, 회 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61세를 일컬음. 진갑(進甲) :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란 뜻이다. 62세를 일컬음. 고희(古稀) : 70세를 일컬음. 종심(從心) : 공자가『논어』에서, 70세가 되어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 70세를 일컬음.(從心所欲不踰矩) 희수(喜壽) :「喜(희) 자를 초서로 쓰면 일곱 칠(七) 위에 하나, 아래에 두 개로 모두 세 개가 쓰이므로 喜壽는‘七 + 七’세 즉, 77세를 일컬음. 산수(傘壽) :「산(傘) 자는 초서로 쓰면 여덟 팔(八) 아래에 열 십(十)이 들어가 있으므로‘八 + 十’세 즉, 80세를 일컬음. 미수(米壽) :「미(米)」자를 분해하면‘八十八’이 되기 때문에 米壽는 88세를 일컬음. 졸수(卒壽) :졸(卒)」을 초서로 쓰면 九와 十이 합쳐진 것과 같이 보여 卒壽는‘九十’세, 즉 90세. 백수(白壽)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백(白)」즉 百에서 하나를 빼면 99세가 된다.
[참고2] :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紙婚式(지혼식) : 1주년 藁婚式(고혼식) : 2주년 糖菓婚式(당과혼식) : 3주년 革婚式(혁혼식) : 4주년 木婚式(목혼식) : 5주년 花婚式(화혼식) : 6주년 電氣器具婚式(전기기구혼식) : 8주년 陶器婚式(도기혼식) : 9주년 錫婚式(석혼식) : 10주년 鋼鐵婚式(강철혼식) : 11주년 麻(絹)婚式(마혼식) : 12주년 象牙婚式(상아혼식) : 14주년 銅婚式(동혼식) : 15주년 磁器婚式(자기혼식) : 20주년 銀婚式(은혼식) : 25주년 眞珠婚式(진주혼식) : 30주년 珊瑚婚式(산호혼식) : 35주년 碧玉婚式(벽옥혼식) : 40주년 紅玉婚式(홍옥혼식) : 45주년 金婚式(금혼식) : 50주년 回婚式(회혼식) : 60주년 金剛石婚式(금강석혼식) : 75주년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더욱 적음.
[내용]춘추 전국시대 말엽, 굴원(屈原)과 더불어 대표적인 남방시인으로 손꼽히던 송옥(宋玉)의 문장은 꽤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었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십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황은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름 위까지 오르는데, 동네 울타리를 날아다니는 참새가 어찌 하늘의 높음을 알겠으며,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를 어항 속의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새 가운데만 봉황이 있고, 물고기 중에만 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초왕은 송옥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었다.
☞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 화근을 미리 치움으로써 재앙을 미연에 방지함.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전]『說苑』 [내용]길 가던 어떤 나그네가 한 집을 찾아 들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나그네는 우연히 방밖을 내다보다가 그 집의 굴뚝이 너무 곧게 세워져 있어 이따금 불길이 새어 나오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게다가 굴뚝 옆에는 땔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큰일 나겠소이다. 얼른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도 멀리 옮겨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날지도 모르오" 그러나 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인을 구해내고 큰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었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손님들의 좌석도 불을 끌 때 힘쓴 정도에 따라 상석(上席)부터 차례로 배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처음에 굴뚝을 고치고 땔나무를 치우라고 말해준 나그네의 공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치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어떤 사람이 시 한 수를 썼는데 두 구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기라고 권고한 사람의 은혜는 모르고 불에 덴 사람만 귀빈 대접을 받는구나[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是上賓]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첨한다.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을 굽혀 권세나 시세에 아첨함.
[출전]『史記』 [내용]漢나라 경제(景帝)때 齊나라 사람 원고생(轅固生)은 90세의 늙은 신하였으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강직한 성격으로 인하여 헐뜯는 자들이 많았다. 또한 그와 함께 등용된 소장학자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이라는 늙은 신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원고생은 공손홍에게 태연한 자세로 이르기를,“요즘 學의 도는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네. 그대는 다행히 젊고 好學의 선비라고 들었네. 부디 올바른 학을 열심히 배워 세상을 넓히도록 노력하게.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학설을 굽히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지 않기를 바라네.”공손홍은 원고의 훌륭한 임품과 학식에 감복하여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은 거의 원고의 제자였다고 한다 [원문]<竇太后>好{老子}書, 召<轅固生>問{老子}書.<固>曰: 此是家人言耳. 太后怒曰: 安得司空城旦書乎? 乃使<固>入圈刺豕. <景帝>知太后怒而<固>直言無罪, 乃假<固>利兵, 下圈刺豕, 正中其心, 一刺, 豕應手而倒. 太后默然, 無以復罪, 罷之. 居頃之, <景帝>以<固>爲廉直, 拜爲 <淸河王>太傅. 久之, 病免. 今上初卽位, 復以賢良徵<固>. 諸諛儒多疾毁<固>,曰 <固>老. 罷歸之. 時<固>已九十餘矣. <固>之徵也, <薛>人<公孫弘>亦徵,側目而視<固>.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自是之後, <齊>言{詩}皆本<轅固生>也. 諸<齊>人以{詩}顯貴, 皆<固>之弟子也.
**歪曲(왜곡).阿附(아부).阿諂(아첨) **淸廉潔白(청렴결백) : 마음이나 행동이 깨끗하고 허울과 재물의 욕심이 없다.
[예문1]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제 말마따나 십 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러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오"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현진건,'운수 좋은 날' 중에서
[예문2] 상아탑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해야 할 상아 탑이 제 구실을 옳게 다하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학문에 진리 탐구 이외의 다른 목적이 섣불리 앞장을 설 때, 그 학문은 자유를 잃고 왜곡(歪曲)되 염려조차 있다. 학문을 악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못한 일을 하는 경우가 얼마 나 많은가? (학문의 목적)
[예문3]최근 신문지면을 통해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른바 곡학아세(曲學阿世) 공방을 벌였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5일 "이문열씨의 글에서는 역사와 정의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추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치를 잘못 배웠다"고 공격한 이씨를 겨냥,"이씨야말로 문학을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응수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에 앞서 추 의원은 지난 2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기득권층에 영합하는 야만적 지식인"이라며 이씨를 비난했고,이씨는 이를 "망발"이라 규정한 뒤 "(정치를)시작한지 얼마된다고 질 나쁜 기술부터 먼저 배워 휘두르는가"라고 비판했다.<한국경제> [예문4]얼그나저나 총장들을 날파리 잡듯 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학자라는 것들이 그 자리를 냉큼냉큼 차지하고 앉는 꼴이야. 지식인이란 것들이 아무 베알도 없이 허겁지겁 그 꼴들을 하니까 독재자가 더욱 기고만장해지는거야.지금까지 이 정권이 제대한 군 바리 천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여기에 빌붙은 지식인들 숫자가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해. 결국 지식인이란 것들이 권력에 기생해 가면서 이 나라 다 망쳐먹고 있는 거야<조정래 '한강'中>
☞뼈와 살이 서로 다툼.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
[동]同族相殘(동족상잔) /자두연기 煮豆燃기 [참고]조조는 훌륭한 무장이자 보기 드문 문학 애호가였다. 동한말 실세가 되어 전권을 휘두르자 그의 문하에는 시인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曹丕(조비)는 후에 漢(한)을 무너뜨리고 魏(위)를 세워 삼국시대를 열게 된다.그도 아버지처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중국 최초로 문학비평을 시도했는가 하면 최초로 7언시를 지었다. 둘째 아들 曹植(조식)도 문학과 무예에서는 형 못지 않았다. 조조는 그런 조식이 더 맘에 들었던지 그를 편애했다. 조비의 눈에는 동생이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니 이가 文帝(문제)다.하루는 조식을 해칠 생각으로 말했다. "내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엄벌을 내리겠다. 조식은 골육상쟁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 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
이 시를 들은 문제는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때 조식의 나이 열 살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예문]태조 이성계가 아들 방원의 골육상쟁으로 인하여 함흥이궁으로 행하던 중 심화가 치밀고 노기가 동등하여 조갈이 심히 날 때 차고 맑은 샘물 한 그릇을 진상하였다하여 '진상한 샘 물', '임금님이 잡수신 우물'이라하여 그 물을 '어수물'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어수동이라 전하여 왔다. 이곳 사람들의 주선으로 어수정에다 팔각으로 정자를 짓고 어수정이라하여 기념하고 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獨一物常獨露(독일물상독로)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죽고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담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네
[예문1]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한 때 IMF 때 연일 신문지상에서 보도되고 있는 경제의 한파로 인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었다. 실업자가 200만 명이 넘어설 것이다, 부실은행이 퇴출 된다는 등 온통 우리의 마음을 위축되게 하는 이야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 국민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중에도 절의 스님들이나 수녀님 그리고 저희 같은 성직자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더 돈을 잘 받아서가 아니라 일찍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까 잃을 것도 없고, 그저 밥 세끼만 먹고 옷만 걸치고 살면 만족하기 때문이다<천주교 원주교구 대화성당 황인찬 베네딕또 신부> [예문2]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놀고서 무엇하리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사 좋아 얼시구나 좋다 범나비는 이리저리 훨 훨 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청사초롱에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찾아온다 공수래는 공수거요 놀아가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사 좋아 얼시구나 좋다 범나비는 이리저리 훨 훨 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태평가]
■ 공자왈맹자왈 孔子曰孟子曰
☞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동]前無後無(전무후무) [예문1]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점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예문2]불사지존 백리극과 마애천불 천뢰선사는 이미 삼천 초(三千招)의 대격전을 벌였다. 그것은 실로 하늘도 땅도 경악할 공전절후의 대 혈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실로 막상막하였다. <무협소설>에서
☞공중에 누각을 지은 것처럼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
[동]沙上樓閣 (사상누각) [예문]<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
이 마애불상은 도솔암 왼편 칠송대라 불리우는 암벽에 양각되어 있는 미륵좌상으로 머리위 암벽에 사각형 구멍들이 10개이상 있으며 부러진 목재들이 보인다.이 마애불상의 높이는 약 5m, 무릎폭은 약 3m이며 무릎아래에는 삼단 형식의 불단이 조각되어 있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배꼽과 같은 돌출부가 있다. 이 마애불좌상은 원래 공중누각을 지어 공중감실처럼 꾸몄는데 인조 26년(1648)에 건물은 내려 않고 동량을 걸었던 구멍만 남아있다.이 불상 배꼽부위에 하얀 석회로 막은 흔적이 있는데 그곳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수수께끼 였었는데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었더니 비바람과 벼락이 일어 그대로 닫으면서 '이서구가 열었다'고 써 넣었다고 하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 접주가 무장에 머무르면서 심한 비바람을 무릅쓰고 은밀히 꺼내보니 선운사를 창건한검단선사의 비결록이었다는 말이 전한다. |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過不及)
[출전] 『논어』, 先進篇 [내용]자공(子貢)이 孔子에게“子張과 子夏 중 누가 현명합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날 자장이 공자에게,“士로서 어떻게 하면 達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그대가 말하는 達이란 무엇인가?”“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그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본성아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 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이라 할 수 있다.”하고 공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구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자공은 지나쳤고, 자장은 미치지 못하였다.”“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 [원문]子貢問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 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예문1]파워포인트란 간단히 말해서 이전의 문서의 성격에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부여한 '살아있는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교수-학습에 이용할 경우나 각종 세미나 및 발표 등에 활용한다면 높은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상당히 유리합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모든 멀티미디어 매체가 그렇듯 이 이 역시 지나친 의존은 학생들에게 짜증과 지루함을 줄 뿐으로 사용에 있어서 적절한 시간과 횟수의 배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예문2]그래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우리나라 여성들의 과잉 성형수술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문제는 문제인가 보다.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여성들이 극단적인 성형수술도 불사한다는 보도를 해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WSJ에 따르면 한국의 기존 성형수술은 턱을 깎거나 코를 높이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슈퍼모델처럼 미끈한 다리를 위한 종아리 근육제거 수술,심지어 처녀막 복원수술에까지 여성들이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 과전이하 瓜田李下 [오이 과/밭 전/오얏 리/아래 하]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출전]『文選』樂府篇 [내용]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 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애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예문]자신은 모르는 가운데 부인이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공직자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전이하(瓜田李下)는 비단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만 적용되는 도덕률이 아니라, 유엔 등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공직자의 행동 준칙이 아니던가.<중앙일보 옴부즈맨 칼럼>
☞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본다는 말로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뜻함

[유사어]정중(저)지와(井中(底)之蛙)--우물 안 개구리. 촉견폐일(蜀犬吠日)--촉나라의 개가 해를 보고 짖는다(촉나라는 산이 높고 안개가 짙어 해를 보기가 어려웠음) 월견폐설(越犬吠雪)--월나라의 개가 눈을 보고 짖는다(월나라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음). 尺澤之예(척택지예)-- 작은 못 속의 암고래. 식견이 매우 좁은 사람 以管窺天(이관규천)--대롱으로 하늘보기. 遼東豕(요동시)--: 요동의 어떤 사람의 집에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머리가 흰색이었다. 신 기하여 임금께 바치려고 하동(河東)에 갔는데 그곳의 돼지들이 모두 머리가 희므로 부끄러워 되돌아 왔다는 故事.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안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와 같은 좁은 견문. 통관규천(通管窺天) --대롱(管)을 통해(通) 하늘 보기(窺), 견문이 좁은 사람 비유 [내용]진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 왕희지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헌지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왕희지의 집 뜰에서 서생들이 모여앉아 노름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을 지나가던 헌지는 노름판을 한참 동안 보다가 패가 잘 풀리지 않는 한 아저씨 에게 이렇게 훈수를 했다. "남쪽 바람이 굳세지 못하여 형세가 불리하니 힘을 내세요." 어린아이의 훈수에 마음이 상한 아저씨는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보고 있군." 헌지는 이 말이 자신의 시야가 좁음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서 즉시 이렇게 반박했다. "멀리로는 순봉정(荀奉情)에게 부끄러워하고 가까이로는 유진장(劉眞長)에게 부끄러워 하십시오. 아버지의 친구인 유진장은 노름을 통해 환온의 배반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만일 대롱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게 된다면, 표범의 전체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단지 표범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이것이 바로 표범이구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이렇듯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별함에 일부분만으로 한다면 적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 없는 교제.

[출전]『史記』 管晏列傳 [내용] 제(齊)나라의 관중(管仲)이 포숙(鮑叔)과 함께 장사할때 이익을 많이 가져도 포숙이 나를 욕심이 많다고 여기지 않았고, 일을 도모하다가 곤궁해져도 어리석다 여기지 않았으며, 세 번 벼슬을 하였다가 세 번 쫓겨나도 못났다고 하지 않았고, 세 번 싸움에 세 번 도망갔으나 포숙은 관중을 겁장이라 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말하기를,「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했다. [원문]管仲이 曰 吾始困時에 嘗與鮑叔賈할새 分財利에 多自與어늘 鮑叔이 不以我爲貪은 知我貧也요 吾가 嘗爲鮑叔하여 謀事라가 而更窮困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愚는 知時有利不利也요 吾가 嘗三仕하여 三見逐於君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不肖는 知我不遭時요 吾가 嘗三戰三走어늘 鮑叔이 不以我爲怯은 知我有老母也요 公子糾가 敗할새 召忽은 死之하고 吾가 幽囚受辱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無恥는 知我不羞小節하고 而恥功名이 不顯於天下也라 生我者는 父母요 知我者는 鮑子也라. [주]嘗(상)일찍이/ 賈(고)장사하다 / 與(여) 주다 / 謀(모) 꾀하다 / 更(갱) 다시- / 見(견)당하다 / 逐(축) 쫓다,몰아내다 / 肖(초) 닮다 *不肖--아버지를 닮지 못해 못나다 / 遭(조) 만나/ 怯(겁) 겁내다 / 幽(유) 그윽하다 / 囚(수) 가두다 / 恥(치) 부끄러워하다 / 羞(수) 부끄러워하다 / 顯(현)드러나다 **更生갱생 更迭 경질 三更 삼경 變更변경 更正경정 **利己이기 有利유리 便利편리 銳利예리 利益이익 [참고]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 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魯)나라와 거( )나라로 망명했다.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 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 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유]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金蘭之交(금란지교)./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 [예문]휴랫은 책을 잘 읽을 수 없는 난독증 환자였지만 스탠퍼드대학에서 좋은 스승과 친구를 만난 것이 엄청난 자산이 됐습니다. 그의 스승인 프레데릭 터먼(Frederick Terman) 교수는 일찍이 산학 협동의 가능성을 감지한 걸출한 교수였습니다. 전자공학과 34학번 동기인 데이비드 팩커드와는 죽을 때까지 서로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먼저 앞서나가지 않으려는 관포지교를 유지했다고 휴랫의 맏아들 월터(Walter)는 전했습니다.<서울경제,HP社의 '휴랫'이 남긴 것> [참고] 빈교행(貧交行)---< 杜 甫 >
飜手作雲覆手雨 (번수작운 복수우) 紛紛輕薄何須數 (분분경박수수)
君不見官鮑貧時交(군불견관포빈시교) 此道今人棄如土(차도금인기여토)
손 뒤집으면 구름 일게 하고 손엎으면 비 오게 하니 수없이 어지러운 경박함을 어찌 따질 필요 있겠는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의 가난할 때의 사귐을 이 도리를 지금 사람들은 흙 버리듯 하고있네 [풀이]빈교행(貧交行)의 행(行)은 '노래'와 같다. 따라서 이 제목은 가난한 떄의 교제에 대한 노래라는 뜻이다. 작가가 장안(長安)에서 빈한한 생활을 하면서 사관(仕官)을 구하던 시절의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의 열망(熱望)에도 불구, 조정(朝廷) 사람들은 그에게 냉담해서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냉담한 세상에 노여움과 절망을 느낀 그가 이 시로써 어느 특정한 개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이란 설도 있다.
☞눈을 비비고 보며 상대를 대한다. 한동안 못 본사이에 상대방이 놀랄 정도로 발전한다.

[출전]『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주(呂蒙傳注) [내용] 오(吳)나라 왕 손권(孫權)에게는 부하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몸이 날쇄고 무술이 뛰어나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매우 무식하였다. 어느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할 것을 권했다. 얼마 후 손권의 신하 중에서 학식이 가장 뛰어나며 여몽과 오랜 친구인 노숙(魯肅)이 찾아왔다. 서로 이야기하던 중 여몽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오늘에 이르러 학식이 영특하고 박식하니 온나라 시골 구석에 사는 어리석은 여몽이 아니구려.”라고 말하니 여몽이“선비는 헤어진지 3일이 지나면 곧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네.”라고 대답하였다. [원문] 至於今者 學識莫博 非復吳下 阿夢曰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예문1]54스위스, 86멕시코, 90이탈리아, 94미국, 98프랑스 등 5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4무9패로 저조했던 한국축구가 월드컵 1승은 물론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괄목상대할 성장세를 보이며 치고 올라오는 신예가 필요하다는 게 축구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동아일보,월드컵 16강 '젊은 피' 믿는다>
[예문2]21세기 디지털 경제시대에서 우리경제의 돌파구를 지식집약형 기업, 특히 벤처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과거 3-4년 동안 정부, 정치권, 언론 등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벤처기업 정책 측면에서는 벤처 선진국인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괄목상대할 발전을 거듭해 왔고 지금은 중국이나 동남아 각국에서 우리나라의 모델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상황이다.<매일경제>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뜻.
[내용] 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覇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주] 화우지계 :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 비 갠뒤의 바람과 달,아무거리낌이 없는 맑고 밝은 인품
[출전] 宋書 周敦滯傳 [내용] 유교(儒敎)는 북송(北宋) 중기에 주돈이(周敦滯 : 1017-1073)가 나와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저술했고, 그 뒤에 정호(程顥)와 정이(程滯) 형제가 사서(四書 : 大學 中庸 論語 孟子)를 정하여 성도(聖道)를 밝히었으며, 주자(朱子)가 이것을 집대성(集大成)하여 형이상학(形而上學) 으로서의 경학(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주돈이는 옛사람의 풍도가 있으며, 정사를 베풂에는 도리를 다 밝힌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은 군자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애련설(愛蓮說)> 한 편은 글 안에 도학(道學)의 향기도 풍기지만 그의 인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관직에 있는 자가 제복에 딸린 관(冠)을 벗어 걸어 놓음. 관직을 사임함.
[출전] 후한서(後漢書) '봉맹전(蓬萌傳)' [내용] 중국 후한(後漢)의 봉맹(逢萌)이 왕망(王莽)에게 자기 아들을 살해당하자 관을 동도(東都:낙양)의 성문에 걸어 놓고 요동(遼東)으로 떠나갔다는 이야기,
후한 사람 봉맹(蓬萌)은 비록 도둑을 잡는 정장(亭長)이었지만 '춘추(春秋)'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전한(前漢)의 12대 왕 애제(哀帝)가 죽고 왕망(王莽)이 평제(平帝)를 세웠지만 왕망은 평제의 어머니인 위희(衛姬)와 그 집안 식구가 도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또 그 일을 간한 장남 왕우(王宇) 내외를 죽였다.
이것을 본 봉맹은 친구에게 "삼강(三綱)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도 재앙이 미칠 것이다." 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벗어 동도문(東都門)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요동(遼東)에서 숨어 지냈다.
봉맹은 왕망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머리에 기와로 만든 분을 올려 놓고 시장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면서 "아! 신(新)나라여, 신(新)나라여(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 라고 말하면서 거리를 지났다.
왕망이 멸망하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태수(太守)가 억지로 조정에 들어오려 했으나 칙령(勅令)을 내려 응하지 않았다.
☞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동] 矯枉過直(교왕과직/굽을왕/지나칠과)/小貪大失(소탐대실) [속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운다. [예문]한나라당.국민신당 등 야권은 23일 여권의 재벌개혁정책이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이한동 (李漢東) 한나라당대표는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재벌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나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측이 너무 서두르면 교각살우 (矯角殺牛) 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고 지적했다.<중앙일보>
[예문2] 대통령이 언론의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무언의 전제 아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만 동조해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것은 소를 죽이더라도 쇠뿔을 고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주문과 다를 바 없다.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
■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할 교/말씀 언/좋을 령/빛 색]
☞교묘한 말과 억지로 꾸민 얼굴 빛. 겉치레만 할 뿐 성실하지 못한 태도.
[출전]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양화편(陽貨篇) [내용]“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는 뜻이다. 즉,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 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된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예문1] 권위주의는‘윗사람에게는 복종과 아첨을 일삼으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군림하려 하는 의식 구조와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위계적인 사회 질서 속에서 살아왔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거의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적인 정치 질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힘있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는 복종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생존 방식이고 출세를 위한 처세술이라고 여겨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큰 폐단은 다른 사람의 인권은 물론이고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있다. 따라서, 권위주의는 민주적 시민 사회나 합리적인 산업 사회 이상 미덕이 될 수 없게 된 낡고 퇴행적인 가치관인 것이다. [예문2]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임진왜란의 침략사례를 대륙진출로 자구수정을 한다고 해 현실의 불만이 사라지는가. 일본 정부 스스로 속죄의 대상으로 공식발표했고 유엔 인권위원회까지 보상 책임을 명백히 했던 종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수만명의 여성들을 전쟁의 노리개로 삼았던 그 만행의 과거가 없던 일로 사라질 것인가. 잘못된 지난날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미화하고 위장된 과거를 자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죄악 아닌가. <중앙일보, 권영빈 칼럼>
☞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

[동]以心傳心(이심전심) 心心相印(심심상인) 不立文字(불립문자) [내용] 經典 바깥의 특별한 傳承,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보고 불경을 얻는다.(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直指 :‘곧바로 가리킨다.’지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며 여러 군말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는 마음의 전형.
[예문] 老子는 道德經에서“성(聖)을 절(絶)하고 지(智)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百倍)하리 라.”고 하여, 지식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의 불필요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딱한 것은 지식이 불필요하다고 아는 것도 하나의‘앎’이요, 후세 사람들이 도덕경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이 노자의 사상을 알 수 있게 마련이니, 노자의 말은 오히려 지(知) 자체를 반성한 지의 지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사람은 그 무지 조차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 다름직도 하다고 하였거니와, 노자는 지의 불필요를 아는 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듯이, 지가 불필요함을 지로써 전하는 껏이라 하겟다. 결국 지(知) 이상의 것도 지를 통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참고1]不立文字 敎外別傳說의 由來 우리나라 禪家의 전설은 대개 중국 선종의 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는 것으로 '禪宗系譜說'이 그러하고 '東土初祖說'이 그러하며 이제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說'도 그러하다. 다른 문제는 且置하고 이 不立文字의 문제, 곧 선종에도 所依經이 있었던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된 此說의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불교라 하는 것은 교주 釋迦牟尼佛의 敎說췱iddot;敎訓?iddot;敎示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교설 등이라 함은 言語와 文字로 된 經과 律 外에는 따로 없는 것이며,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교의 諸宗이므로, 만약 이것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經?iddot;律‥論 三藏을 所依로 하지 않고서 무엇으로써 어떠한 근거에서 自宗을 불교라 주장하는가. 선종의 견지에서는 釋迦牟尼佛이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 방법에는 二種이 있으니, 그 하나는 言說에 의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鈍根劣機에 대한 방법이요, 그 둘째는 言說文字에 의하지 않고 師資가 직접 以心傳心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殊勝한 근기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前者는 곧, 종교이요 후자가 곧, 선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쓰라.
[출전]『속맹자(續孟子)』. [내용] 춘추시대 노나라의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루는 땔나무를 해 오라고 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너는 여기서 백 보 떨어진 곳에 가서 해오겠느냐? 아니면 힘이 들더라도 백 리 떨어진 곳에 가서 해 오겠느냐?"
말할 것도 없이 자식놈은 백 보 떨어진 곳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곳은 언제든지 해올 수 있다. 하지만 백 리 떨어진 곳은 누가 가져가도 되니, 그 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고 먼 곳으로 땔나무를 하러 떠났다.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참고]膠着교착/琴瑟금슬/守株待兎수주대토/,刻舟求劒각주구검/尾生知信미생지신 [출전]『史記』. [내용]조나라에 조사(趙奢)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어 병서를 가르쳤는데 매우 영리하여 뛰어나게 병법을 잘 알았다. 그러나 조사(趙奢)는,"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결전이므로 이론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병법을 이론적으로만 논하는 것은 장수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으로 괄(括)이 장수가 된다면 조 나라가 큰 변을 당할 위험이 있다."하며 부인에게 나라에서 조괄을 대장으로 삼지 않도록 말려 달라는 유언까지 했다. 뒷날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면서 첩자를 보내 流言蜚語를 퍼뜨렸다. "조나라 염파 장군은 늙어서 싸움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진나라는 조괄이 대장이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流言蜚語에 빠진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상여(藺相如)가 극력 반대하면서, "임금께서는 그 이름만 믿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기둥[膠柱]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준 병법을 읽었 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모릅니다."[膠柱鼓瑟] 그러나 임금은 그토록 신임하던 인상여의 말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였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날로 병서에 있는 대로 하여 전부터 내려오는 군영들을 뜯어고치고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론만으로 작전을 감행한 끝에 40만이라는 대군(大軍)을 몽땅 죽이는 중국 역사 상 최대 최악의 참패를 가져왔다. 거문고의 기둥을 풀로 붙여 고정해 두고 거문고를 타니 조율을 할 수 없게 되어 소리 [音]가 제대로 날 리가 없었다 [원문]後四年, <趙惠文王>卒,子<孝成王>立. 七年, <秦>與<趙>兵相距<長平>, 時<趙奢>已死, 而<藺相如>病篤, <趙>使<廉頗>將攻<秦>, <秦>數敗<趙>軍, <趙>軍固壁不戰. <秦>數挑戰, <廉頗>不肯. <趙王>信<秦>之閒. <秦>之閒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 <趙王>因以<括>爲將,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 <趙王>不聽, 遂將之.
☞가르치고 배우면서 학업을 증진시키고 성장함

[출전] 『예기(禮記)』 [내용]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힌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원문]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先學하니라. 雖有佳肴라도 不食하면 不知其味야요, 雖有至道나 不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 是故로 知不足한 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 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야요, 知困然後에 能自强야니 故로 曰 敎學相長야니라.**肴(안주 효) [풀이]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 수록 겸허(謙虛)해 진다는 뜻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스승은 부족한 곳을 더 공부하여 제자에게 익히게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더욱 학식이 풍부한 인재로 성장한다 [예문]대교그룹은 이달 초 송자 전 교육부장관을 주력기업인 ㈜대교의 회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그룹 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등 그룹사업 구조의 재편에 나서고 있다. '가르치며 배운다' 는 뜻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창업 슬로건으로 내걸고 교육서비스 사업으로 그룹의 기반을 닦은 대교는 최근 케이블TV방송.광고.건설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중앙일보>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짐.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

[출전]『韓非者』 外儲說右 [내용]군주가 위협을 당하며 어질고 정치를 잘 하는 선비가 기용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비자(韓非子)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는 술을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고 손님들에게도 공손히 대접했으며 항상 양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보다 술이 잘 팔리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양천이 물었다. "자네 집 개가 사나운가?" "그렇습니다만, 개가 사납다고 술이 안 팔린다니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을 시켜 호리병에 술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술집 개가 덤벼들어 그 아이를 물었소. 그래서 술이 안 팔리고 맛은 점점 시큼해지는 거요."
☞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형편없는 사람을 고관(高官)에 등용함.
[출전]『晉書』 [내용]서진의 재상 조왕륜이 천자를 내쫓고 즉위하자 자기편을 늘리기 위해 하인들에게까지 벼슬을 내리고 고관대작만이 쓸 수 있는 초선관[담비의 꼬리로 장식한 관]을 쓰게 함으로써 그 관을 쓴 사람 중에는 형편없는 자가 많았다.그래서 세인들이 "담비의 꼬리가 부족해서 개꼬리를 이엇다"고 욕을 했다.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내용]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참고]歷史(역사)를 龜鑑(귀감)으로 삼는 까닭은 治亂(치란)과 興亡(흥망)의 자취를 통해 그 속에서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明君賢相(명군현상)이 있었던 때는 治世가, 昏主奸臣(혼주간신)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亂世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唐 玄宗(당 현종·712∼755 在位)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中國의 歷代(역대) 帝王(제왕) 중 그 만큼 人口에 많이 膾炙(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온통 劇的(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였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망쳐놓은 大唐帝國(대당제국)을 英明(영명)한 통치로 다시 일으켜 장장 30년에 이르는 유명한 ‘開元之治’(개원지치)를 이루었다. 당나라 최대의 太平聖代(태평성대)였다.
여기에는 물론 玄宗 자신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賢相의 登用 또한 빠뜨릴 수가 없다. 즉 그는 즉위 초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 때 그를 도왔던 이로 名宰相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이 있다. 결국 천하는 未曾有(미증유)의 太平을 맞게 되어 기록에 의하면 도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위 후반기의 天寶(천보·742∼755)시대는 판이했다. 玄宗의 聰明(총명)도 날로 흐려져 갔으며 忠臣(충신)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奸臣(간신)으로 채워지면서 급기야 대당제국은 亡國(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대표적 奸臣에 宰相 李林甫(이림보)가 있었다. 宦官(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宰相이 된 그는 간사하고 陰險(음험)했으며 猜忌心(시기심)이 많아 자신보다 훌륭한 자는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결국 그에 의해 제거된 충신만도 張九齡(장구령), 嚴挺之(엄정지), 李適之(이적지), 李邕(이옹) 등 수십 명에 달했다.
그가 政敵(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절대로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처리했으며 자신은 도리어 칭찬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은밀히 온갖 죄상을 날조하고 뒤집어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제거했다. 그래서 史家(사가)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입술에는 달콤한 꿀을 발랐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을 품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口蜜腹劍’으로 겉은 웃는 낯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해칠 무서운 생각을 품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모든 정치인은 먼저 국리 민리를 걱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당리를 궁리하며, 당리를 도모한 연후에 개인의 영달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그 연륜에 맞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큰 원인의 하나는 정치인이 입으로는 염불처럼 외고 다니면서 실지로는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분방한 데 있다.
☞동반을 두드리고 초를 만진다,어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함
[내용]옛날에 한 장님이 있었다. 그는 선천적인 장님이었으므로 태양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문득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그 모양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태양은 동반(銅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소." 그는 집으로 돌아와 동반을 찾아 구석구석 만져보고 두드려 보고는 '당당당' 하는 소리가 나자 잘 기억해 두었다. 그 후, 그가 길을 가는데 어떤 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가 동반을 두두렸을 때 들은 소리와 같았으므로, 그 장님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했다.
"저것이 바로 태양이오." 그러자 그 사람은 장님에게 말했다. "아니오. 태양은 동반 같기도 하지만 촛불처럼 빛을 낸다오." 장님은 집으로 돌아와 즉시 초 한 자루를 찾아 만져보고는 그 모양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약(대나무로 만든 구멍이 셋 또는 여섯 있는 피리)을 만지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정말 태양이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
[동]만사일생[萬事一生] [출전]『초사(楚辭)』《사기(史記)》〈굴원열전(屈原列傳)〉 [내용]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겨우 살아난다는 말로, 비슷한 말에 십생구사(十生九死)가 있다.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다. 초왕(楚王)의 일족으로 박학다식하고 변론(辯論)에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회왕(懷王)의 신임을 얻어 삼려대부(三閭大夫:왕가를 다스리는 대부)에 올랐으나, 양왕(襄王) 때 모략을 받아 두 번씩이나 강남(江南)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뒤 우국시(憂國詩) 회사부(懷沙賦)를 남기고 멱라수(
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굴원열전(屈原列傳)〉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굴평(屈平:平은 굴원의 이름)은, 임금이 신하의 말을 듣고 분간하지 못하고, 참언(讒言)과 아첨하는 말이 왕의 밝은 지혜를 가리고, 간사하고 비뚤어진 말이 임금의 공명정대함을 상처내어 마음과 행실이 방정한 선비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했다. 그리하여 근심스러운 생각을 속에 담아 〈이소(離騷)〉 한 편을 지었다.”이소(離騷)의 제6단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길게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으며, 인생의 어려움 많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선(善)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雖九死 猶未其悔(유미기회)].’” 이 〈구사(九死)〉에 대하여, 《문선(文選)》을 편찬한 유량주(劉良注)는 이렇게 말했다. “아홉은 수의 끝이다. 충성과 신의와 곧음과 깨끗함[忠信貞潔(충신정결)]이 내 마음의 선하고자 하는 바와 같으니, 이 해(害)를 만남으로써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유량주가 말한 이 ‘아홉 번 죽어서 한 번 살지를 못한다.’에서 나온 말로 죽을 고비에서 간신히 살아난다는 뜻이 된다. <두산백과> [원문]又申之以攬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有末悔 [예문1]그를 독일 점령 하에 있는 폴란드의 한 게토 (유태인 집단 거주지) 로 데려간 사람은 피터 카소비츠 감독이다. 헝가리 출신 유태인인 그는 다섯 살 때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다.<한국일보> [예문2]데니 브라운을 접촉하고 개를 살해할 것을 부탁했다.선수금 1,000달러를 받고 성공하면 500달러를 추가로 받기로 한 브라운은 개들이 좋아하는 개껌으로 ‘루이’를 유혹해 한적한 공터로 데려가 도끼로 수차례 내리쳤으나 개는 구사일생으로 도망쳤다.
■ 구상유취 口尙乳臭 [입 구/아직 상/젖 유/냄새 취]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아직 어리다. 하는 짓이 어리석고 유치 하다.
[속담] 이마빡에 피도 안 말랐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출전] <史記>高祖紀 [내용] 한왕이 한신을 시켜 위왕 표를 치게 하면서 물었다. "유나라의 대장이 누구인고?" 누군가가 대답했다. "백직(柏直)입니다." 그러자 한왕이 말했다.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구나. 어찌 우리 한신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원문]漢王以韓信魏王豹 問魏大將誰 左右對曰柏直 漢王曰 是口尙乳臭 安能當吾韓信 [예문] 나이 오십 줄에 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입에서 젖내 나는 년을 집구석으로 끌어 들이고 지랄을 버릇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슈?…[염상섭(廉想涉), 『三代』]
우리 집에서는 새 며느리를 맞는다고 야단 법석을 하며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제대로 가시지 못한, 열세살 먹은 꼬맹이에 冠帶(관대)를 입히고 紗帽(사모)를 씌워 나귀 등에 올려 앉히고 논틀을 건느고 산모롱이를 돌아 마을 앞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이와 같은 길을 三十里 쯤이나 갔을까. 역시 어떤 農村 조그마한 초가집 앞에 내려 놓는 것이었다.(이희승, 隨筆)
☞봄의 석 달 동안.
[예문]유유창천(悠悠蒼天)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인데 북망산천아 말 물어보자. 역대제왕과 영웅열사가 모두다 네게로 가드란 말가, 경리안색(鏡裡顔色)을 굽어보니 검든머리 곱든 양자(樣姿) 어언간에 백발이로구나. 인간 칠십은 고래희인데 팔십장년, 구십춘광 장차 백세를 다 살아도 죽기가 싫어서 일러를 왔건만 하물며 아동초목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생각하면 긴들 아니 가련탄 말가<엮음수심가>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동] 口若懸河(구약현하) /靑山流水(청산유수) [속담]말 잘하기는 소진 장의다./蘇張의 혀.(蘇陳張儀) [내용] 진(晉)나라 때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비범하고 어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밝히기를 좋아하였다. 도한 老子와 莊子의 사상을 즐기면서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학자였다. 당시 그에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특히 남들과 여러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였다. 왕연(王練)이 이르기를「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흐르는 물이 큰 물줄기로쏟아져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며 칭찬하였다.
[원문]廳象語면 如懸河하여 瀉水注而不竭이라 ** 象(코끼리 상) 瞭(밝을 료) 練(익힐 련) 廳(들을 청) 瀉(쏟을 사) 注(물댈 주)
[예문]우리는 흔히 청산유수와 같이 유창하게 쏟아지는 연설을 좋은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힘이 없이 유창하게 흘러가는 달변이 자꾸만 더듬거리는 눌변보다야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창함 자체만으로 좋은 스피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좋은 스피치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유창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유창함은 좋은 스피치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다. <광운대학 홈페이지>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 많은 것 가운데 극히 미미한 하나.
[동] 九牛毛(구우모) /滄海一粟(창해일속) /大海一滴(대해일적)-->물방울 적 [속담]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뽑기다. [출전] 『한서(漢書)』司馬遷, 報任安書 [내용]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은 秦始皇(진시황)이지만 漢武帝(한무제)는 秦나라 보다도 몇 배나 더 큰 판도를 이룩했다. 동서남의 3방향으로 국력을 뻗쳐 영토를 확장했다. 동쪽으로는 우리나라까지 쳐들어와 漢四郡(한사군)을 설치했음은 周知(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武帝에게도 북쪽의 오랑캐 匈奴(흉노)만은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영토를 넓히기는 커녕 侵攻(침공)과 掠奪(약탈)을 당해야 했으니 大漢帝國(대한제국) 武帝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장군 李陵(이릉)을 시켜 匈奴를 치게 했지만 오히려 패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武帝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다들 李陵을 逆賊(역적)으로 몰아 부쳤다. 그러나 『사기(史記)』의 저자司馬遷(사마천)만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武帝가 그의 의견을 물어왔다. 司馬遷은 솔직하게 말했다.
“5000의 군사로 8만의 흉노 騎兵(기병)을 당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입니다. 그가 항복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李陵의 친구였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여 한 말이 武帝의 노여움을 건드렸음은 물론이다. 결국 그는 下獄(하옥)되어 腐刑(부형·宮刑이라고도 함. 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고 말았다. 司馬遷은 극도의 치욕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 司馬談(사마담)의 유언이 귓전을 때렸다. 역대로 史官(사관)을 맡았던 家門의 명예를 위해 중국 최초로 通史(통사·모든 왕조의 역사를 담은 것)를 남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야했다.
또 이렇게 죽는다면 개죽음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泰山(태산)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새의 깃털보다도 가벼운 죽음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 자살로 끝맺는다면「가령 내가 법에 복종하여 죽임을 당할지라도 마치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假令 僕伏法하여 受誅라도 若九牛亡一毛라.)동정은 커녕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인 즉 그 명예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라고 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가 친구 任少卿(임소경)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유명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다. 九牛一毛는 여기서 나온 말로 ‘매우 하찮은 것’을 뜻한다.
마침내 그는 자살을 단념하고 恥辱(치욕)을 감수한 채 通史의 저술에 매달렸다. 不朽(불후)의 명저 ‘史記’(사기)는 이렇게 하여 태어났다. [원문]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人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曆近乎卜祝之間, 固主上所 弄, 倡優畜之, 流俗之所輕也.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 何異 [예문]민심 수습을 위한 여론 수렴 과정이 오히려 내분을 촉발시키고 국민 신뢰를 잃는 부작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확고하게 서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자리를 차지하고 녹 만 축내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행태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한 고위관계자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며 "퇴진론은 수많은 쇄신안 중 한 의견인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하다"고 말했다.<한국일보 권노갑 퇴진 파문>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하다.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
[예문1]노령제일의 眺望 운장산 구절양장 골마다 파고든 계류는 호남 의 고봉을 휘돌아 북으로 빠지고 그물길을 인도한 노령과 소백 두기둥 사이에 높은 지대를 이뤘다. 금강상류의 진안고원 운장산은 이 고원의 서북에 위치한 1,126m의 고산으로 호남평야를 굽어보며 노령봉 제일의 眺望을 연출한다. [예문2]동강뗏목축제 비가 와 강물에 기운이붙으면 강원 산골의 목재를 이어 붙인 뗏목이 출발했다. 구절양장 정선과 영월의 골짜기를 돌아 안동에 닿았고 이어 남한강을 타고 한양까지 긴 여행을했다. 이 위험한 여행을 무릅쓴 이유는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떼돈’이라는 말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영월의 동강뗏목축제(29, 30일)는그 시절의정한을 더듬는 행사이다.<한국일보>
☞입은 재앙의 문. 말을 삼가도록 경계.
[유]病從口入 禍從口出 (병종구입 화종구출)[동]구시화문[口是禍門] [내용]풍도(馮道)는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망한 뒤에도 진나라와 거란과 한나라의 여러 왕조에 벼슬한 사람으로 이 동란의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린 사람이다. <실시>라는 시에 는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원문]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 매우 뛰어난 인재.
[동]一歲之雄(일세지웅) : 한 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로 그시대에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 로 뛰어난 인물. /棟梁之材(동량지재)--기둥이 될 만한 인물 [출전]『史記』 [내용] 한왕 유방(劉邦)이 군사를 이끌고 남정(南鄭)으로 갈 때 길이 험하고 멀어서 도주에 이탈하는 자가 많아 군사들이 동요하자 한신(韓信)도 도망하였다. 그 때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그것을 알고 급히 한신을 쫓아갔다. 유방은 충복인 소하마저도 도망한 줄 알고 크게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에 한신을 데리고 돌아오니 유방이 꾸짖으며 다그쳤다.“왜 도망쳤는냐?”소하가“도망한 것이 아니라 한신을 잡으러 갔었습니다.”“다른 장수들이 이탈했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유독 한신만을 쫓아간 이유는 무엇이냐?”소하가 말하기를“「모든 장군은 얻기가 쉬울 따름이지만 한신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인물 중에 둘도 없습니다.(諸將은 易得耳나 至如信者는 國 士無雙이니다.)」 폐하께서 한중(漢中)의 왕만 되시려 한다면 그가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한신 없이는 더불어 그 일을 도모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蕭(맑은대쑥 소) 何(어찌 하) 諸(모두 제) 易(쉬울 이) [원문]<信>數與<蕭何>語, <何>奇之.至<南鄭>, 諸將行道亡者數十人, <信>度<何>等已數言上, 上不我用, 卽亡. <何>聞<信>亡, 不及以聞, 自追之. 人有言上曰: 丞相<何> 亡. 上大怒, 如失左右手. 居一二日, <何>來謁上, 上且怒且喜, 罵<何>曰: 若亡, 何也? <何>曰: 臣不敢亡也, 臣追亡者. 上曰: 若所追者誰何? 曰: <韓信>也. 上復罵曰: 諸將亡者以 十數, 公無所追;追<信>, 詐也. <何>曰: 諸將易得耳. 至如<信> 者, 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 無所事<信>;必欲爭天下, 非<信> 無所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 王曰: 吾亦欲東耳, 安能鬱鬱久 居此乎? <何>曰: 王計必欲東, 能用<信>, <信>卽留;不能用, <信>終亡耳. 王曰: 吾爲公以爲將. <何>曰: 雖爲將, <信> 必不留. 王曰: 以爲大將. <何>曰: 幸甚. 於是王欲召<信> 拜之. <何>曰: 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 去也. 王必欲拜之, 擇良日, 齋戒, 設壇場, 具禮, 乃可耳. 王許之. 諸將皆喜, 人人各自以爲得大將. 至拜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많은 닭 중에 한 마리의 학.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

[동]鶴立鷄群(학립계군) :. 鷄群孤鶴(계군고학). / 出衆(출중). 拔群(발군). 絶倫(절륜)..壓卷(압권)./ 白眉(백미) / 鐵中錚錚(철중쟁쟁) : 쇠 중에서 소리가 가장 맑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중 특별히 뛰어 난 사람. [반]人中之末(인중지말) :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뒤떨어지고 못난 사람. [속담] 닭이 천(千)이면 봉(鳳)이 한 마리. [출전] 『晉書 』紹傳 [내용]해소의 자는 연조라 하는데, 죽림칠현의 한사람으로서 유명한 위의 중산대부 혜강의 아들이다. 소는10세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사형을 당하자 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가 당시 이부 에 있을 때 무제에게 상주하였다. "강고에 부자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 시대의 진나라대부인 극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비서랑을 시키십시오." "경이 추천하는 사람 같으면 승이라도 족하겠지. 반드시 낭이 아니라도 좋지 않겠는가." 황제는 그를 비서랑보다 한등급 위인 비서승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그 후 소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사람인 왕융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혜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하여 ,독립불기한 들학이 닭 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네."
[원문]再昨日 初見 紹於混雜之群中 其資倜 如群鷄一鶴也
■ 군맹무상 群盲撫象[무리 군/소경 맹/어루만질 무/코끼리 상]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범인의 좁은 식견의 비유.
[동] 군맹모상(群盲摸象). 군맹평상(群盲評象). [출전]『涅槃經(열반경)』 [내용]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 날 맹인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얼마 후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댸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와 같사옵니다." (상아) "키와 같나이다." (귀) "돌과 같사옵니다." (머리) "절굿공 같사옵니다." (코) "널빤지와 같사옵니다." (다리) "독과 같사옵니다." (배) "새끼줄과 같사옵니다." (꼬리)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비유한 것이고, 소경들은 밝지 못한 모든 중생(衆生)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석가모니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즉 모든 중생들에게는 각기 석가모니가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영웅들이 각지에서 자리잡고 세력을 규합하여 대립하는 것.
[참고]分割(분할).役割(역할).割引(할인) [예문]대신증권이 독주해온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시장에 군웅할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삼성, LG 등 대형증권사들이 잇따라 새로운 시스템을선보이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업계 1위라는 자존심을 걸고 새로 개발한 'FNPro'를 6월1일부터 보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LG투자증권은 지난 4월말 'ifLG트레이딩'을 선보였다. 2위인 대우증권도 대신증권을 맹추격하고 있다.<매일경제>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
[출전]---『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유삼락이 왕천하불여존언 父母具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작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이에 들어있지 않다.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참고]*익자삼요(益者三樂)--예악(禮樂)을 적당히 좋아하고, 남의 착함을 좋아하고, 착한 벗이 많음을 좋아하는 것. *損者三樂(손자삼요)--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
☞군자는 자신에게 과실이 있다고 일단 판단되면 이를 고치는 데에 매우 신속하고 확실함/ 범의 무늬가 두드러지듯 성질과 태도가 급변함

[출전]『주역』 [내용]대인은 범처럼 변하고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나 소인은 얼굴 빛만 고칠 뿐이다 [원문]大人虎變 君子豹變 小人革面 [해설] 오늘날 이말은 그저 '표변'이라고만 따로 떼어 쓰면서, 자신의 주의, 주장이나 행동을 지조없이 하루아침에 싹 바꾸어버리는 비겁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참고]군자 화이부동(和而不同) ---군자는 사람들과 친화하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는 뜻. 곧 대인관계에 있어 중용의 덕을 지켜,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을 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중용>에 '화이불류(和而不流:화합하되 횝쓸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논어] 자로(子路) 편
☞매우 어려운 가운데 짜낸 한가지 계책.
[동]苦肉之策 [예문]정부가 당장 올해 50%를 지원하려면 추경예산 잔여분 1조5000억원을 거의 모두 사용해야 한다.그러나 7000억원 이상은 지원할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또 다른 조성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당국이 짜낸 궁여지책이 바로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현재의 갑당 2원에서 150원 내지 200원으로 해 최고 100배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안도 보험재정부담을 결국 국민에게 전가하는 꼴이라는 명분론에 밀려 결정을 미루고 있다.<매일경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는 교묘한 술책.
[예문1]이문영이사장은 최근 복간된 '씨량의 소리' 머리말에서 "현재의 정치는 '권모술수의 정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규정하며 김대통령에게 "가던 길을 바꿀 것을 촉구했다. 그는 "6·3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가 고위층 부인의 옷로비 사건 때문"이라고 전제, "과거 보수야당이 권모술수의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야는 보수야당을 지지했지만, 이제 정권교체를 한 마당에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3·1구국선언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동아닷컴> [예문2]사극의 생명은 눈빛 연기’라는 말이 있다. 강수연의 눈빛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관비라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눈빛에서는 섬뜩하고, 자신의 야망을 숨기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부분에선 간교함으로 넘친다.<한국일보>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한다.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는다.
[유]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 열흘 붉은 꽃이 없다,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속담]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최근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All'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유한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영원히 좋은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속담은 '모든 즐거운 경험들은 결국 끝이 나게 마련이다(All pleasant experiences eventually end).'라는 의미다. <속담영어> [내용]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秦始皇)은 '덕은 삼황(三皇)보다 낫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라고 하여, 자신의 칭호를 왕에서 황제(皇帝)로 바꾸었다. 자신은 첫 번째 황제이므로 '始(처음 시)'를 써서 '시황제(始皇帝)'라 하였고 아들을 이세황제, 그 다음을 삼세황제라 하여 자자손손 만년토록 이어지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황제의 명(命)은 '제(制)', 령(令)은 '조(詔)'라 하고, 짐(朕)과 옥새(玉璽)란 말도 황제에 한해서만 사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사(李斯)에게ㅔ 명하여 천하의 명옥(名玉) 화씨지벽(和氏之璧)에 '수명우천(受命于天-하늘에서 명을 받아 기수영창(旣壽永昌-영원히 번창한다)'이라고 새겨진 옥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세 등등하던 진시황의 왕조는 이세황제인 호해(胡亥)에 이르러 2대 15년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오래도록 누릴 수 없다는 말로,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거나 권력을 잡으려고 안달하는 인간들에게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예문1]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은 권력을 잡으면 10년은 간다는 뜻’을 읽고 쓴다. 국어정책을 총괄했던 전 문화부장관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아연실색, 유구무언일 뿐이다. ‘권불십년’은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오래 못 감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인데, 그는 이 말을 현정권이 한번 더 집권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세 치 혀를 적당히 놀려 권력자의 환심을 얻어 출세해 보려는 위선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니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위국위민의 대도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예문2]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세상만사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오는 봄을 누가 막으랴?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황이고 모든 경제지표가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증시의 붕괴설이 나돌면서 모든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라고 한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이러한 공황심리가 팽배한 가운데 주가는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일어선다.<매일경제>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하다.
[출전]『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내용]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 9월에 제(齊)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가 있던 교여(僑如 : 宣伯)가 부인 강씨(姜氏)를 제나라로 데리고 돌아왔다. 교여라고 높여서 부른 것은 부인을 안심시켜 슬며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선백(宣伯)이 제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갔었을 때는 선백을 숙손(叔孫)이라고 불러 군주(君主)의 사자로 높여 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이렇게 말한다. "춘추(春秋) 시대의 호칭은 알기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알기 쉽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뜻이 깊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으면서도 정돈되어 있고, 노골적인 표현을 쓰지만 품위가 없지 않으며, 악행을 징계하고 선행을 권한다.[勸善懲惡]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지을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원문]成公 14年 九月 僑如以夫人婦姜氏至自齊. 舍族, 尊夫人也. 故君子曰, "春秋之稱, 微而顯, 志而晦, 婉而成章, 盡而不汚, 懲惡而勸善, 非聖人, 誰能脩之?" [예문1]판소리계 소설들은 거의 겉으로 드러나는 주제(표면적 주제)와 속에 묻혀 있는 주제(이면적 주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표면적 주제는 '권선징악, 인과응보, 개과천선'등의 유교적 이념의 구현이라면 이면적 주제는 '평민의식의 성장에 따른 양반층에 대한 비판,봉건이념의 허구성 폭로' 등이다. [예문2]암행어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판타지 요소를 결합시킨 SF 판타지 만화라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암행어사'라는 비밀요원이 있었던 '쥬신'이라는 나라가 멸망하고 사라진 때, 한명의 암행어사만 남아 세상을 떠돌면서 권선징악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외롭게 수행한다.<한국일보>
☞사물의 시초,기원,창시
[동]미증유[未曾有]/,전대미문[前代未問]/전인미답[前人未踏]/파벽[破僻],파천황{破天荒]-드문 성씨의 가문이나 양반 없는 시골에서 인재가 나서 원래의 미천한 상태를 벗어남.효시[嚆矢],남상[濫觴] [주] 權은 저울의 추,輿는 수레의 차대(車臺) 저울을 만들 때 추를 먼저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차대부터 만든다는데서 유래,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도 먼저 네 귀를 놓아서 자리를 정하는 등 시초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점임을 말함.
☞흙 먼지를 날리면서 거듭 온다.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세력을 갖추어 일어남.
[동]死灰復燃(사회부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 붙었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세력을 다시 잡음**席捲(석권).--모조리 다 차지함/(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다 [내용] 唐나라 두목(杜牧 803∼852 : 杜甫를 老杜라 하고 두목은 少杜라 함)은‘題烏江亭詩’에「승패는 병가에서도 기약할 수 없는 것, 부끄러움을 안고 참는 것 이것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 재주있는 준걸이 많은데, 흙 먼지를 날리면서 다시 올 것을 알지 못 하였도다.[勝敗不可兵家期하고, 包羞忍恥是南兒이라. 江東子弟多才俊한데, 捲土重來未可知로다]」라 하여, 項羽가 죽은지 천 년이 지난 어느 날, 오강의 여사(旅舍)에 머물러, 그의 단순하고 격한 성격,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에서 볼 수 있는 인간성, 그리고 그의 요절(夭折-31세) 등을 회상하며 비감에 잠겨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 灰(재 회) 燃(불탈 연) 題(표제 제) 包(감쌀 포) 羞(부끄러워 수) 俊(준걸 준) [예문]대통령후보를, 민중당의 유진오(兪鎭午)대통령후보는 당 대표를 맡는 타협이 이뤄졌다. 절치부심하던 尹전대통령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상대로 권토중래의 기회를 잡았고, 대선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민중당 실세들은 통합신당의 당권 장악에 만족했다.<중앙일보 칼럼>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감.
[참고] 『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 동진(東晋)·송(宋)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적 작품. 405년(진나라 의회 1)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예문1]"박봉은 참을 수 있어도,전공과 거리가 먼 일로 시간을 때우는 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에서 통상전문관으로 일하다 최근 "본업"으로 복귀한 K 변호사의 "귀거래사"다. [예문2]저는 이내 씁쓸해지고 말았습니다. 80년 세월을 넘게 살다간 두 노인의 죽음의 차이를 싸늘하게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오늘 저의 이야기는 '한세상 이름없이' 살다 돌아가는 민초들의 쓸쓸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자...(이주빈 기자) 국가보안법은 그 노인네의 밥줄이었다 <오마이뉴스>
■ 귀이천목 貴耳賤目 [귀할 귀/귀 이/천할 천/눈 목]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김.먼 곳에 있는 것을 괜찮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나쁘게 여기는 보통 사람들의 풍조를 가리킨다.
[내용] . 본래 이 말은 복고주의적(復古主義的)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귀고천금(貴古賤今)'과 같은 말로 쓰인다. 〈환자신론(桓子新論)〉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본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긴다. 또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긴다." 《진서(晉書)》〈장형·동경부(張衡·東京賦)〉편에,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後學)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 받아 전하며, 들은 것을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라고 한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분별 있는 사고(思考)에 의해 올바른 것을 파악하기보다는 현재를 부정하고, 옛것만 쫓는 세태를 꼬집은 말이다.
■ 귤화위지 橘化爲枳 [귤 귤/화할 화/될 위/탱자 지]
☞귤이 탱자가 됨.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동]남귤북지 南橘北枳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내잡(內雜) 하(下) 편 [내용]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화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聞之 橘生淮南則爲橘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쫓음.
[출전]『論語』 顔淵篇) [내용] 안연(顔淵)이 어느 날 孔子에게 仁에 관하여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그러면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안회가 어리석고 불민합니다만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평생 힘쓰겠습니다.”
[원문]顔淵門仁한대 子曰“克己復禮爲仁이니라, 一日克己復禮하고 天下歸仁焉하면 爲仁由己이니, 而由人乎哉인져.”顔淵曰“請問其目하닛가.”子曰“非禮勿視하고, 非禮勿廳하고, 非禮勿言하고, 非禮勿動하라.”顔淵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니이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 빛이 된다. 사람은 늘 가까이 하는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 변하므로 조심하라.
[출전]『墨子』--近墨者黑이요 近朱者赤이라 [동]近朱者赤(근주자적) : 붉은 빛(인주)를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됨. [속담]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참고]①水隨方圓之器하고 人依善惡之友니라.물은 모나고 둥근 그릇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은 착하고 악한 친구에 의해 달라진다 /②從遊邪人하면 予亦自邪니라.사악한 친구를 따라 놀면 나 또한 사악해진다 ③蓬生麻中이면 不扶自直하고, 白沙在泥하면 與之皆黑이니라.『史記』 : (꾸불꾸불한)쑥도 (곧은) 삼 가운데에서 자라면 돕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도 진흙 가운데에 있으면 그와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隨따를 수/方모 방/圓둥글 원/遊놀 유/予나 여/蓬쑥 봉/扶도울 부/泥진흙 니 [예문]어찌하여 인심을 논하는 것인가. 공자께서,‘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하시었다. 또 옛적에 맹자의 어머님이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 이었다. 옳은 풍속을 가지지 아니하면 다만 자신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자손들도 반드시 나쁜 물이 들어서 그르치게 될 근심이 있다. 그러므로 살 터를 잡음에 있어서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李重換,『택리지(擇里地)』
☞금이나 옥과 같은 조문. 아주 귀중한 법칙이나 규범.
[출전]이 말의 출처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극진미신(劇秦美新)》에 있는 “懿律嘉量 金科玉條 神封靈兆 古文畢發 炳煥照耀”에서 비롯되었다. [예문]「묵묵히 일하면 틀림없이 망한다」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졌던 덕목과는 정반대되는 신(新)샐러리맨 성공수칙들이 화제다.현대산업개발 사보 최근호에 실린 「실패하는 샐러리맨 유형 7가지」라는 글에는... <동아일보>
☞쇠를 자를 정도로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견고한 벗 사이의 우정.
[고사]두사람이 마을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도 끊을 것이요,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냄새가 난초의 향기와 같다.[二人同心이면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이라]-『주역(周易)』 [유]管鮑之交(관포지교)/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 [참고]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영원한 친구가 필요 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물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을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계속 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되도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 것을.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도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진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 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다른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 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 유 안 진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좋은 일에 좋은 일이 겹칠 때.
[반] 雪上加霜(설상가상) : 눈위에 서리가 더한다.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난다. 病上添病(병상첨병) : 병을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겹치다/엎친데 덮친격 [속담] 누이 좋고 매부(妹夫) 좋다. /곶감 죽 먹고 엿 목판에 엎어지겠다. [내용] 북송(北宋) 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이 정계를 떠나 만년에 남경의 한적한 곳에서 은둔할 때 지은 시「즉사(卽事)」에 나오는 구절이다.“강물은 남원(南苑)으로 흘러 서쪽 언덕으로 기울고 바람에 영롱한 이슬 아름답구나. 문 앞 버드나무는 옛사람 도잠(陶潛)의 집이고, 우물가 오동나무는 옛 총지(總持)의 집이라.「아름다운 초대 술잔 속 맑은 술 따라 마시고, 즐거운 노래가락 비단 위에 꽃을 더하네.(嘉招欲覆盃中?,麗唱仍添錦上花)」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대접받으니 천원의 붉은 노을 아직도 많구나.” ** 嘉(아름다울 가) 招(부를 초) 覆(덮을 복) 盃(잔 배) ?(물맑을 록) 仍(이에 잉) [원문] 河流南苑岸西斜 風有晶光露有華 門柳故人陶令宅 井桐前日總持家 嘉招欲履盃中 麗唱仍添錦上花 便作武陵樽俎客 川源應未少紅霞
[예문1] 은행잎은 은행나무 중에서도 백미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오래 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그 신비가 상당 부분 벗겨져 있다. 특히 현대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고혈압, 뇌졸증, 심장병 등 성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고 있어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부작용도 거의 없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은행잎에서 추출한 의약품에 대한 연구 논문만 2백여 편을 헤아리며 전문 과학자도 3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예문2]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 같은 쪼무래기패가 옴닥옴닥 들어 박혀 윤직원 영감의 육중한 체구가 처억 그 틈에 끼어 있을라치면 들이 놀림감이 되고 그래 좀 창피했는데 오늘은 이 상등스런 하등이 모두 점잖은 어른들이나 이쁜 기생들뿐이요 그따위 조무래기 떼가 없어서 실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습니다.
☞쇠로 만든 성과 끓는 연못, 방비가 아주 견고한 성
[동의어] 탕지철성(湯池鐵城) 금성철벽(金城鐵壁),鐵甕城(철옹성)
[출전] 『漢書』 괴오강식부전( 伍江息夫傳) [내용]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 B.C 246-210)가 죽고 어리석은 2세 황제가 즉위하자 전국시대 6강국의 후예들이 군사를 일으켜 고을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관청을 점거했다. 그 무렵, 무신(武信)이라는 사람이 조(趙)나라의 옛땅을 평정하고 무신군(武信君)이라 일컬었다.
이를 본 모사 괴통( 通)은 범양 현령(范陽縣令) 서공(徐公)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사또께서는 지금 매우 위급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말대로 하시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공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무엇이 위급하다는 거요?" "사또께서 현령으로 재임한 지난 10년 동안에 진(秦)나라의 가혹한 형벌로 인해 부모를 처형당한 사람, 손발이 잘린 사람, 억울하게 죄인이 된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그들이 사또를 원망하며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모르오. 그런데, 전화위복이란 또 무슨 말이오?"
"제가 사또를 대신해서 지금 세력이 한창인 무신군을 만나 싸우지 않고 땅이나 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계책을 말해 주면, 그는 틀림없이 사또를 후대할 것입니다.""그럼, 나를 위해 수고해 주시오."
이리하여 무신군을 찾아간 괴통( 通)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귀공(貴公)이 범양을 쳐서 현령이 항복한 경우, 그 현령을 푸대접한다면 죽음을 두려워하며 부귀를 바라는 각지의 현령들은 '항복하면 범양 현령처럼 푸대접받는다.'며 더욱 군비(軍備)를 강화하여 마치 '끓어오르는 못에 둘러싸인 무쇠 성[金城湯池]' 같은 철벽(鐵壁)의 수비를 굳히고 귀공의 군사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땐 공격이 쉽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지금 범양 현령을 극진히 맞이하여 그로 하여금 각지의 현령들을 찾아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모두 싸우지 않고 기꺼이 항복할 것입니다." [원문]臣因對曰:『<范陽>令宜整頓其士卒以守 戰者也, 怯而畏死, 貪而好富貴, 故欲以其城先下君. 先下君而君不利[之], 則邊地之城皆將相告曰 <范陽>令先降而身死 , 必將 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爲君計者, 莫若以黃屋朱輪迎<范陽>令, 使馳 於<燕趙>之郊, 則邊城 皆將相告曰 <范陽>令先下而身富貴 , 必相率而降, 猶如阪上走丸也. 此臣所謂傳檄而千里定者也.』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이름. 아름다운 마음씨의 所有者.
☞부부사이의 더정하고 화목한 즐거움.(금슬>금실)
[동]금슬상화(琴瑟相和)/금슬상락(琴瑟相樂)/금슬지락(琴瑟之樂)[반]금슬부조(琴瑟不調)[출전]『시경(詩經)』
妻子好合 如鼓琴瑟 (처자호합 여고금슬) 兄弟歸翕 和樂且湛 (형제귀흡 화락차담) " 처자의 좋은 화합은 마치 거문고와 비파를 합주하는 것과 같고, 형제의 화합은 화락하고 또한 즐겁도다. " [상체장] 窈窕淑女 琴瑟友之 (요조숙녀 금슬우지) " 얌전하고 정숙한 숙녀를 금슬로 친애(親愛)하네." [관저장]
[유]비익연리 比翼連理/연리지(連理枝)/비익조(飛翼鳥) : 연리의 가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의 사이.「백낙천(白樂天)은 唐 현종 (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노래한‘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의 맹세로‘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데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데 연리지가 되기를[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鳥 連理枝]’라고 노래 하였다.」 ** 날개가 하나씩인 새로 두 마리가 합하여야 두 날개를 갖추게 되어 날 수 있다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것 [참고]연리지는 원래《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妙)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금오는 해, 옥토는 달. 즉 해와 달을 이름.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자기가 아무리 잘 하여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뜻.
[동]夜行被繡(야행피수) : 밤길을 가는데 수놓은 옷을 입다.
[반]衣錦晝行(의금주행)/衣錦之榮(의금지영)/ 錦衣還鄕(금의환향)

[속담]어두운 밤눈 깜짝이기/달 밤에 삿갓쓰고 나온다/밑 빠진 가마에 물 길어다 붓기/절 모르고 시주하기/죽은 자식 나이 세기/죽은 자식 눈 열어 보기/동무 몰래 양식(糧食) 내기. [출전] 『한서(漢書)』, (項籍篇) [내용] 유명한 홍문연(鴻門宴)이 있은 지 수일 후의 일이다. 유방(劉邦)과 진(秦)의 수도인 함양 (咸陽)입성을 다투다가 드디어 목적을 이룬 항우가 득의만만하여 함양으로 입성했는데, 이때 유방과는 대조적인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그는 유방과 달리 난폭했으며 누가 진언을 해 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러한 그를 보고 모장(謀將)범중(范增)이 말렸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랜 싸움 끝에 그는 망향의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진에서 약탈한 재물과 미녀를 다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란 자가 간했다. "관중(關中)은 천연적으로 사면이 막혀 있어 지세가 견고할 뿐 아니라 토질도 비옥하니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여 천하의 패권을 잡고 제후들에게 호령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불타다 남은 궁전, 형편없이 파괴된 황량한 초토일 뿐이었다. 그보다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동쪽 하 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소냐.(富貴不歸故鄕 如衣錦夜行誰知文者)" 그러자 한생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를 목욕시켜서 갓을 씌워놓은 것처럼 멍청하다고 하더니 말 그대로군'이라 하였다.이 말을 듣고 노한 항우는 그 자리에서 한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비단옷을 입고 밤에 간다'는 <한서>의 항적전(項籍傳)에 기재된 말이며, <사기>의 항우 본기(項羽本紀)에서는 [錦]이 [繡]로 되어 있다. [원문]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 ,燒秦宮室, 火三月不滅 ; 收其貨寶婦女而東. 人或說項王曰 "關中阻山河四塞, 地肥饒, 可都以 ." 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 又心懷思欲東歸,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 說者曰 "人言楚人沐 而冠耳, 果然." 項王聞之, 烹說者.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옴. 다른 고장에 가서 성공하여 高貴한 신분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내용]'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 상징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의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아방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출전은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이다. [예문1] 오직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남편이 몸 성히 있기를 축수하고 하루 바삐 성공을 해서 금의환향 하기를 三秋와 같이 기다리는 것을 도리어 난을 삼고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 …[심훈沈熏, 탈춤] [예문2] 이번 대회가 끝나면 곧장 귀국길에 올라 4일 부산 아시아드CC에서 개막되는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하는 한희원은 역전 우승과 함께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 한희원은 “2라운드 땐 비가 내려 그린이 느려진데다 3라운드에선 바람이 불어 퍼팅과 클럽 선택에 애를 먹었다. 마지막 날에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동아일보>
☞.길이 후세에 전해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번역한 말.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
[예문1]"내가 금메달을 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드디어 54㎏급의 세계정상도 심권호라는 사실이 실감됩니다.”올림픽 2연속 금메달의 금자탑을 이룬 심권호는 “상대가 너무 강해 이길줄 몰랐다”면서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일간스포츠> [예문2]27일 시드니 올림픽파크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여자단식 결승.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20·미국)는 ‘러시아의 샛별’ 엘레나 데멘티에바(19)를 55분만에 2―0(6―2 6―4)으로 꺾고 예상대로 정상에 올랐다.올 6월 프랑스오픈에서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스페인)에게 패한 뒤 파죽의 32연승을 달린 윌리엄스는 6개 대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동아일보>
☞금 가지에 옥 잎사귀. ① 임금의 자손이나 매우 귀한 집의 자손. ② 아름다운 구름을 고운 초목. ③ 가장 귀중한 물건.
[예문1] 황막한 눈 쌓인 벌판 요동 벌 천리를 거쳐 온 노국공주는 아무리 씩씩하고 발랄한 기상을 가진 여자지마는 그래도 나어린 금지옥엽의 귀한 몸이었다.[박종화(朴種和), 『多情佛心』] [예문2]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 길이 없어 풍설 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群吏(군리)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 신하가 둘러서 모시고있었다. 임금은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영월net>
■ 기고만장 氣高萬丈[기운 기/높을 고/일만 만/길이 장]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 **丈=10尺
[예문]192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 상륙한 자동차는 세도가나 부호들 또는 이들에게 웃음이나 미모를 팔던 기녀들의 행락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귀했던 보통사람들이 차 한번 타자면 쌀 반 가마니가 날아갈 판이니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천대받는 기녀들까지 기고만장해 자동차를 제 신발처럼 타고 다니게 되니까 동경의 대상을 넘어 질시의 대상으로 차츰 변해 갔다. 그래서 기녀가 탄 자동차가 지나가면 야유를 하고 돌팔매질이 예사였다고 한다. <굳바이카 홈페이지>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
[내용] 사슴의 몸에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를 갖고 있으며 온몸에 영롱한 비늘이 덮여 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성인(聖人)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산 풀을 밟지 않을 뿐 아니라 머리에 돋은 뿔이 살로 되어있어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는 인자한 동물이기도 하다.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는 기린은 용,봉황,거북과 함께 상서로운 네 영물의 하나이다.
기린(麒麟)은 중국 고대(B.C 2500년경)로부터 전해오는 길상(吉詳)의 사령(四靈:용, 기린, 봉황, 거북)중 하나로 성인(聖人)이 세상에 태어날 징조로 나타나는 상징의 동물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성공, 그리고 행복을 전해 준다.
기린의 형상은 사슴의 몸에 머리에는 살로된 뿔이 돋혔으며,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 온몸은 오색이 영롱한 비늘로 덮혔으며 산풀(生草)을 밟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같은 기린의 전설과 상징때문에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비상한 사람을 가리켜 기린아(麒麟兒)라 부르는가 하면, 신라시대에는 기린문양(麒麟文楊)을 부조(浮彫)한 벽돌을 만들어 건축에 이용하였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는 왕을 호위하는 호위군을 기린군이라 칭하고 기린을 수놓은 기린의장기(麒麟儀仗旗)를 세워 그 위용을 떨쳤다.
그후 조선왕조에 이르러 왕족을 비롯한 관직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는 표장(表章) 즉, 흉배(胸背)가 제정되자(단종 2년/1454년) 기린은 그 깊은 상징과 품격으로 왕족(王族)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양으로서 대군의 흉배에 금사(金絲)로 수놓아져 왕실의 권위와 품격을 나타냈던 전래의 상서로운 동물이며 상징이다. [참고]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은 모습이 전설속의 기린과 비슷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예문]시드니올림픽이 막바지에 다달으면서 기념품 수집가들의 눈에 독이 오르고 있다.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물품을 수집,‘추억을 돈으로’ 바꾸기 위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현재 가장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있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한 모리스 그린의 황금색 운동화와 호주 남자수영의 기린아 이언 소프의 수영복.그린의 운동화는 한 켤레에 대략 37만2,000달러,한짝당 18만6,000달러(약 1억1,000만원)가 출발가격. 경기가 끝난 후 모리스 그린이 던진 한짝의 운동화를 잡은 하퍼란 보석상은 수십달러를 내고 경기장에 들어가 1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셈이다.<스포츠투데이>
☞음력(陰曆)으로 16일. 이미 망월(望月:15일)이 지났다는 뜻에서 16일
[출전]소동파(蘇東波)의 『적벽부(赤壁賦)』 [내용]「임술년의 가을 7월 16일에 소동파가 객(客)과 더불어 배를 적벽강에 띄우고 놀새, 말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는 일어나지 않고 잔잔하니라[任戌之秋七月旣望에 蘇者 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기복염거 驥服鹽車 [천리마 기/멍에 멜 복/소금 염/수레 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헛되이 소금 수레를 끈다. 유능한 사람이 천한 일에 종사함
[출전]전국책(戰國策) [내용]백락(伯樂)은 주(周)나라 때 사람으로 말을 감정하는데 도가 튼 명인(名人) 이었다. 그가 훌륭한 말이라고 판정해 버리면 그 말 값이 하루아침에 열곱절은 쉽게 뛰었다. 그래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생겼다. 명마가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천리마라 해도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唐)나라 때의 명문장가 한유(韓愈)도 "세상에 백락이 있고 나서 천리마가 있게 마련이다. 천리마는 언제나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비록 명마라도 백락의 눈에 띄지 않으면 하인의 손에 고삐가 잡혀 끝내는 천리마란 이름 한 번 듣지 못하고 보통 말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죽고 만다"고 했다.
그런 백락이 어느날 긴 고갯길을 내려 가다가 명마 한 마리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천리마인데 이미 늙어 있었다.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축 늘어졌고 소금은 녹아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천리마가 이 꼴이 되었는가.
천리마도 백락을 보고는 '히힝' 하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명마로 태어 났으면서도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백락도 같이 울면서 자기의 비단옷을 벗어 말에게 덮어 주었다.
☞중병으로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남
[출전]『여씨춘추(呂氏春秋) 』별류편(別類篇) [내용]춘추시대 노나라의 오왕 부차는 3년 전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지만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 월나라의 대부 종은 구천에게 월나라에 화약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제계영에게 오나라로 가서 그렇게 부탁하도록 했다. 그런데 부차가 이보다 앞서 월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용서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왕은 월나라에 있어서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다.내 어찌 하늘의 재앙을 잊지 못하고,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겠는가?" 또한 <여씨춘추> "별류"편을 보면, 공손작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 이것은 크나큰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에는 위기에 빠졌다가 다시 회생하거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되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 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 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
■ 기산지절 箕山之節 [키,뿌리 기/뫼 산/어조사 지/마디,절개 절]
☞기산의 절개. 굳은 절개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함.
[출전]『漢書』 포선전 [내용]중국 요임금 시절 허유는 요임금이 자신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위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더럽혀졌다면서 영천으로 뛰어가 귀를 씻었다. 때마침 소부라는 자가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귀를 씻고 있는 허유의 행동을 보고는 이상히 여겨 물었다. "영천에 와서 귀를 씻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이 나에게 임금 자리를 양위한다지 않소!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귀가 더럽혀진 것 같아 냇가로 와서 씻는 것이오." 그리고는 곧장 기산으로 들어갔다. 허유의 말을 들은 소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려던 것을 멈추고 발을 돌리며 말했다.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었으니, 이 물 또한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런 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다." 소부 또한 그 길로 기산으로 들어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 기상천외 奇想天外 [기이할 기/생각 상/하늘 천/바깥 외]
☞상식에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
■ 기여보비 寄與補裨 [보낼 기/줄 여/도울 보/도울 비]
☞이바지하여 돕고 부족함을 보태어 줌.
[예문]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천에 처음으로 이민족(異民族)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尊榮)의 훼손됨이 무릇기하이며,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기미독립선언문>中
☞기나라 사람의 근심. 쓸데없는 군걱정.
[출전]『열자(列子)』 [내용]옛날 중국의 기국(杞國)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둘 바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소리를 들은 어떤사람이 이를 딱하게 여겨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저서 떨어지리요?”그 사람이 말하되“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마땅히 떨어지지 않으리요.”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라.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하는 바가 없느니라.”그 사람이 말하되“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오?”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그 사람이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고 일깨워 준 사람도 걱정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더라. [원문]杞國에 有人이 憂天崩墜하여 身無所寄하고 廢寢食者러니 又有憂彼之所憂者아여 因往曉之曰“天은 積氣이라. 奈何憂崩墜乎아”杞人이 曰“天果積氣인댄 日月星宿는 不當墜耶아”曉之者曰“日月星宿도 亦積氣中에 有光曜者니 只使墜라도 又不能有所中傷이라”杞人이 曰“奈地壞何오”曉者가 曰“地는 積塊耳라 奈何憂其壞오”杞人이 舍然大喜하고 曉之者도 亦舍然大喜하니라. **崩 무너질 붕/墜 떨어질 추/奇 붙어살 기/廢 그만둘 폐/舍 버릴 사(=捨)/壞 무너질 괴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리다.
[예문]未熟한 盜賊 ----김수영( 金洙映)지음 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 기진맥진하여서 주정을 하고 기진맥진하여서 여관을 차저 들어갔다 옛날같이 낯선 방이 그리 무섭지도 않고 더러운 침구가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義齒를 빼어서 물에 담거놓고 들어 누우니 마치 내가 臨終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옆에 누운 친구가 내가 이를 뺀 얼골이 어린 아해 갔다고 간간대소하며 좋아한다 이 친구도 술이 취한 얼골을 보니 凄慘하다 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도 不安하지도 않고 都會에서 태어나서 都會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前線의 戰士에 못지않게 불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하로하로 都會의 때가 묻어가는 나의 몸을 분하다고 한탄한다 친구가 일어나서 창밖으로 침을 뱉고 아래로 내려갔다 오드니 또 술을 마시려 나려가자고 한다
기진맥진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차가운 이를 건져서 끼고 따라서 나려간다 그중 끝의 방문을 열고보니 꺼먼 사람이 셋이나 앉었다 얼골은 분간할 수도 없는데 술 한병만이 방 한가운데 光彩를 띠우고 앉어 있다 나는 義齒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앉자 선뜻 인사를 하고 淫詩를 한바탕 읊었드니 여간 좋아들 하지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기에 마흔여덜이라고 하니 그대로 곧이듣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눈알에 백테가 앉은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 모두 몽롱하다 請한지 半時間만에 떠다 주는 냉수를 한 대접 마시고 階段을 내려와서 어제 ㅅ 밤에 술을 마시든 방을 드려다보니 이불도 벼개도 타구 하나 없이 깨끗하다.
[도적질을 하는것도 저렇게 부지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무어야, 빨리 나가서 배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세]하고 친구가 서두른다 [그러니까 初年生盜賊이지] 하고 쑥스러운 대 ㅅ 구를 하면서 기진맥진한 머??쉬일 곳을 찾아서 친구의 뒤를 따라서 걸어나왓다. 우리의 잔등이에는 [未熟한 盜賊]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을 것이다.
☞호랑이를 타고 가는 형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도중 내릴 수 없는 것처럼 그만 두거나 물릴 수 없는 상태./ 내친 걸음

[원] 기수지세(騎獸之勢). [동] 기호난하(騎虎難下). [출전]『수서 隨書』〈獨孤皇后傳〉 [내용]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양견의 뜻을 알고 있는 아내 독고(獨孤) 부인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맹수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獸之勢 不得下].'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시오소서."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선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년,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陳:557∼589)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원문]當周宣帝崩 高祖入居禁中 總百揆 后使人謂高祖曰 大事已然 騎虎之勢 不得不勉之.
[예문]10언더파 206타를 친 데이비드 듀발과 토마스 비욘(덴마크) 등 2위 그룹과는 무려 6타차의 기호지세. 아직 마지막 4라운드 18홀을 남겨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즈는 지난 20차례의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역전패한 전례가 단 두차례에 불과해, 큰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우승은 확정적이다. <인터넷 한겨레>
☞기이한 재물은 저축해 두는 것이 옳다. 좋은 물건을 사두면 장차 큰 이익을 본다.
[출전]『사기,』 呂不韋列傳 [내용] 전국(戰國)시대 말 韓나라의 대상(大商)「여불위(呂不韋)가 한단으로 장사차 갔다가 그를 보고 가련타 여기며 말하기를 이는 좋은 재물이니 거두어 둘 만하다 라고 여기고 곧 가서 자초를 뵈었다. 그 후 많은 돈을 써서 안국군의 정비(正妃)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환심을 샀으며 널리 인재들을 규합하여 마침내 자초를 진나라 태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불위는 자기의 아이를 잉태한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시집보내어 그 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진시황?秦始皇帝)가 되니 그의 권세도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원문] 呂不韋가 賈邯鄲하여 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라하고 乃往見子楚하다 ** 賈(장사 고) 邯(땅이름 한) 鄲(땅이름 단) 姬(아씨 희) 憐(가련할 련)
| |